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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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등비는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개천군 양양부 출신이다. 원래 양림 등과 도적 동료였으며, 음마천에서 산적 생활을 시작하여 배선을 수령으로 세우고 자신은 제2위 두령이 되었다. 양산박에 합류하여 여러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마군소표장 겸 척후두령 제16위에 임명되었다. 방랍 정벌 중 항주 공격에서 석보에게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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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전 - 양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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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비 | |
|---|---|
| 인물 정보 | |
| 이름 | 등비 |
| 별명 | 화안산예 (불타는 눈의 산예) |
| 이명 | 해당 없음 |
| 랭킹 | 49위, 지살성 |
| 소속 | 양산박 |
| 역할 | 표범자두령 |
| 출신 | 산적 두목 |
| 고향 | 샹양, 후베이성 |
| 첫 등장 | 44회 |
| 무기 | 철퇴 |
| 간체자 | 邓飞 |
| 번체자 | 鄧飛 |
| 병음 | Dèng Fēi |
| 웨이드-자일스 | Teng Fei |
| 로마자 표기 | Deung Bi |
2. 생애
등비는 개천군 양양부 출신으로, 붉어진 눈 때문에 "불눈아(火眼狻猊)"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긴 쇠사슬을 무기로 사용했다. 그는 금표자 양림 등과 도적 동료였다가 옥번간 맹강과 음마천에서 산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무고한 죄로 사문도로 유배되던 철면공목 배선을 음마천의 수령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제2위 두령이 되었다.[1]
양산박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간 공손승을 찾기 위해 대종이 파견되었다. 대종은 양림을 통해 음마천의 세 두령과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공손승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들을 양산박으로 초대하여 함께 입산하게 되었다.[1]
양산박과 축가장의 전투에서 등비는 선봉으로 출진했으나, 난정옥을 추격하다 사로잡힌 진명을 구하려다 자신도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후 양산박과 내통하던 손립이 축가장에 들어오자, 등비는 그의 부하 추연과의 친분을 통해 구출될 희망을 품었다. 양산박군이 공격해오자 손립 등이 내응했고, 등비도 이에 가세하여 축가장을 함락시키는 데 기여했다.[1]
이후 등비는 고당주, 증두시, 북경대명부, 동창부 공격 등 양산박군의 주요 전투에 마군 장수로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108명이 양산박에 모두 모였을 때, 등비는 마군소표장 겸 척후두령 제16위에 임명되었다. 요나라와의 전투 등에서도 활약했으나, 마지막 방랍 토벌 중 항주 공격에서 적장 석보에게 쓰러진 색초를 구하려다 자신도 석보에게 베여 전사했다.[1]
2. 1. 음마천 시절
개천군 양양부 출신으로, 본래 금표자 양림 등과 도적 무리였으나, 훗날 음마천에서 옥반간 맹강과 함께 도적질을 시작한다.[1] 이후 무고한 죄로 사문도로 유형을 당해 음마천 부근을 호송받던 중이었던 철면공목 배선을 데려와 우두머리로 맞이하고, 스스로는 제2위의 두령이 되었다.[1]한편, 양산박에서는 고향 계주로 돌아간 채 돌아오지 않는 공손승을 맞이하기 위해 대종이 파견되었다.[1] 대종은 그 도중 양림과 알게 된 인연으로 음마천의 삼두령과 알게 되어 의기투합한다.[1] 이후 계주로 향했지만 결국 공손승의 소식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삼두령을 양산박으로 유인하여 세 사람은 양산박에 들어갔다.[1]
2. 2. 양산박 합류
대종은 공손승을 찾으러 가던 중 양림을 알게 되고, 양림의 소개로 음마천의 두령들과 의기투합한다. 대종은 음마천의 세 두령인 배선, 등비, 맹강에게 양산박 합류를 제안하고, 이들은 이를 수락한다.[1]양산박과 축가장의 전투에서 등비는 선봉으로 출진하지만, 진명을 구하려다 함께 사로잡힌다. 이후 양산박과 내통하던 손립이 축가장에 들어오자, 등비는 오랜 지인인 추연을 만나 반가워한다. 손립 등의 내응으로 양산박군이 쳐들어오자 등비는 장내에서 활약하며 축가장 함락에 기여한다.[1]
2. 3. 양산박에서의 활약
개천군 양양부 출신인 등비는 본래 금표자 양림 등과 함께 도적 활동을 했다. 이후 옥번간 맹강과 함께 음마천에서 산적 생활을 시작했고, 무고한 죄로 사문도로 유배되던 철면공목 배선을 음마천의 수령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제2위 두령이 되었다.양산박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간 공손승을 찾기 위해 대종이 파견되었다. 대종은 양림을 통해 음마천의 세 두령과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공손승을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들을 양산박으로 초대하여 함께 입산하게 되었다.
양산박과 축가장의 전투에서 등비는 선봉으로 출진했으나, 난정옥을 추격하다 사로잡힌 진명을 구하려다 자신도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후 양산박과 내통하던 손립이 축가장에 들어오자, 등비는 그의 부하 추연과의 친분을 통해 구출될 희망을 품었다. 양산박군이 공격해오자 손립 등이 내응했고, 등비도 이에 가세하여 축가장을 함락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후 등비는 고당주, 증두시, 북경대명부, 동창부 공격 등 양산박군의 주요 전투에 마군 장수로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108명이 양산박에 모두 모였을 때, 등비는 마군소표장 겸 척후두령 제16위에 임명되었다. 요나라와의 전투 등에서도 활약했으나, 마지막 방랍 토벌 중 항주 공격에서 적장 석보에게 쓰러진 색초를 구하려다 자신도 석보에게 베여 전사했다.
2. 4. 최후
노준의가 방랍을 공격하기 위해 두송관(獨松關, 현재 저장성 안지현 남쪽에 위치)을 공격하기 전, 등비, 구붕, 이충, 주통이 이끄는 소규모 정찰대가 지형을 정찰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정찰대가 지형을 살피는 동안 관문이 갑자기 열리고 기마 부대가 쏟아져 나왔다. 주통은 기습을 받아 죽었고, 등비와 다른 사람들은 간신히 도망쳤다. 이후 양산군은 두송관을 함락시켰다.[1]노준의 군대는 나중에 송강 군대와 합류하여 항저우를 공격했다. 등비, 삭초 등은 북문을 공격하도록 배정되었다. 삭초가 적군 장수 석보에게 죽임을 당하자, 등비는 복수를 하려 했다. 그러나 등비 역시 석보에게 허리가 잘려 죽임을 당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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