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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토시 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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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매킨토시 오피스는 애플이 IBM에 대항하여 기업 시장에 진출하려던 시도의 일환으로, 1980년대 중반에 발표된 일련의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제품군이다. 애플은 Apple III, Apple Lisa 등의 실패를 겪은 후, 매킨토시를 기반으로 기업 시장 공략을 시도했다. 매킨토시 오피스는 LocalTalk 네트워크, LaserWriter 프린터, AppleShare 파일 공유 소프트웨어 등을 포함하여, 데스크톱 출판 시대를 열었지만, 통합된 솔루션의 부재와 기술적 한계로 인해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2. 역사

매킨토시 오피스는 기업 환경에 진입하려는 애플의 세 번째 시도였다. 애플은 Apple II의 성공 이후, Apple III와 Lisa를 통해 비즈니스 시장에 진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Apple III는 기술적 문제에 시달렸고, Lisa는 너무 비싸고 기능이 부족했다.[1] Macintosh 출시 이후 Lisa는 단종되었다.[1]

애플은 매킨토시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전문적인 세계에 진출할 방법이 필요했고, 매킨토시는 비즈니스 커뮤니티로부터 장난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애플은 적절한 네트워킹 하드웨어를 갖추고 비즈니스 제품군의 핵심 구성 요소를 개발하기 시작했다.[3] 그중 하나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든 사용자가 공유하는 활판 인쇄 품질의 문서를 생성하는 레이저 프린터였다.

1985년 1월, 애플은 LaserWriter 프린터를 소규모 사무실에서 저렴하게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LocalTalk 네트워크 출시를 준비했다. 그러나 전용 파일 서버는 최대 2년, 네트워크 하드 디스크는 1년 이상 더 기다려야 했다. 1985년 초까지 애플은 매킨토시에서 작동하는 하드 드라이브조차 제공하지 않았고, 네트워크 하드 드라이브는 더더욱 없었다. 임시 방편으로 애플은 Lisa 2/10을 Macintosh XL로 브랜드 변경 후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그동안 Infosphere 및 Centram Systems West(나중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로 변경)와 같은 타사 개발자는 각각 ''XL/Serve''(나중에 ''MacServe'') 및 ''TOPS''라는 AppleTalk 기반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러나 애플이 완전히 지원하는 통합 솔루션은 없었다. Macintosh XL이 조기에 제거된 후, 애플은 마침내 Macintosh용 첫 번째 하드 드라이브인 Hard Disk 20을 제공했지만, 20MB 용량에 속도가 느렸고 네트워크 파일 서버의 약속을 제공하지 못했다.

1987년 1월, 애플은 마침내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인 AppleShare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는 2년 전의 초기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다.

2. 1. 이전의 노력

Apple III


매킨토시 오피스는 IBM에 대한 경쟁자로, 기업 환경에 진입하려는 애플의 세 번째 시도였다.

애플은 Apple II의 성공 이후, Apple III와 Lisa를 통해 비즈니스 시장에 진출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Apple III는 기술적 문제에 시달렸고, Lisa는 너무 비싸고 기능이 부족했다.[1] Macintosh 출시 이후 Lisa는 단종되었다.[1]

애플은 매킨토시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전히 전문적인 세계에 진출할 방법이 필요했고, 매킨토시는 비즈니스 커뮤니티로부터 장난감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2. 1. 1. Apple III



Apple II 개인용 컴퓨터의 성공 이후, 애플은 Apple III를 통해 수익성이 좋은 전문 비즈니스 시장에 진출하려 했다. Apple III는 비즈니스 전문가를 위한 기능을 갖춘 고급 컴퓨터였지만, 생산 기간 대부분 동안 많은 기술적 문제에 시달렸다.[1] 그 결과, 애플의 평판은 손상되었고 IBM PC가 출시되기 1년 전, 비즈니스 시장 진출에서 얻었던 이점을 잃었다.[1]

2. 1. 2. Apple Lisa

Apple II 개인용 컴퓨터의 성공 이후, 애플은 Apple III를 통해 수익성이 좋은 전문 비즈니스 시장에 진출하려 했다. 비즈니스 전문가를 위한 기능을 갖춘 고급 컴퓨터였지만, 생산 기간 대부분 동안 많은 기술적 문제에 시달렸다. 그 결과, 애플의 평판은 손상되었고 IBM PC가 출시되기 1년 전, 비즈니스 시장 진출에서 얻었던 이점을 잃었다.[1]

애플의 두 번째 시도는 Macintosh의 기반이 될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커뮤니티를 겨냥한 고급 컴퓨터인 혁신적인 Lisa의 출시였다. 불행히도 Lisa는 너무 비쌌고, 대부분의 기업이 비용을 정당화하기에 기능이 부족했다. 1년 후, 훨씬 저렴한 Macintosh가 출시되면서 Lisa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판매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Macintosh XL로 이름을 변경한 후, 3년도 안 되어 생산이 중단되었다.[1]

2. 2. 전략

애플은 적절한 네트워킹 하드웨어를 갖추고 비즈니스 제품군의 핵심 구성 요소를 개발하기 시작했다.[3] 그중 하나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모든 사용자가 공유하는 활판 인쇄 품질의 문서를 생성하는 레이저 프린터였다.

1985년 1월, 애플은 LaserWriter 프린터를 소규모 사무실에서 저렴하게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LocalTalk 네트워크 출시를 준비했다. 그러나 전용 파일 서버는 최대 2년, 네트워크 하드 디스크는 1년 이상 더 기다려야 했다. 1985년 초까지 애플은 매킨토시에서 작동하는 하드 드라이브조차 제공하지 않았고, 네트워크 하드 드라이브는 더더욱 없었다. 임시 방편으로 애플은 Lisa 2/10을 Macintosh XL로 브랜드 변경 후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내장 10MB 하드 드라이브, 더 많은 RAM 및 Macintosh System 에뮬레이션 소프트웨어 MacWorks를 갖춘 XL은 애플이 파일 서버를 개발할 때까지 파일 서버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Macintosh XL을 활용할 파일 공유 소프트웨어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acintosh Office의 약속에 따라 Macintosh XL은 인기가 좋았고, 애플은 부품 부족으로 교체 네트워크 서버가 준비되기 훨씬 전에 단종시켰다.

그동안 Infosphere 및 Centram Systems West(나중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로 변경)와 같은 타사 개발자는 각각 ''XL/Serve''(나중에 ''MacServe'') 및 ''TOPS''라는 AppleTalk 기반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자는 원격 클라이언트 Mac이 호스트 Mac에 연결된 하드 드라이브에 로그인하여 파일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하드 디스크 공유 응용 프로그램이었지만, 한 번에 한 명의 사용자만 파일 볼륨에 액세스할 수 있었다. 반면 TOPS는 진정한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으로, 원격 클라이언트가 호스트 Mac에 로그인하여 다른 원격 또는 호스트 사용자와 동시에 모든 파일에 액세스하고 작업할 수 있었다. 또한 TOPS는 전용 호스트가 필요하지 않았고, 모든 Mac이 호스트가 되어 피어 투 피어 파일 공유를 제공할 수 있었으며, Macintosh뿐만 아니라 IBM PC와 교차 플랫폼에서 파일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제품들은 애플의 Macintosh Office 발표를 실현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애플이 완전히 지원하는 통합 솔루션은 없었다. Macintosh XL이 조기에 제거된 후, 애플은 마침내 Macintosh용 첫 번째 하드 드라이브인 Hard Disk 20을 제공했지만, 20MB 용량에 속도가 느렸고 네트워크 파일 서버의 약속을 제공하지 못했다. 타사 제품은 이를 잘 활용했지만, 애플은 1년 넘게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Macintosh Office의 다른 버전을 제공하지 않았다.

1987년 1월, 애플은 마침내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인 AppleShare를 선보였다. 3개월 전에 출시된 더 빠른 SCSI 하드 드라이브인 Hard Disk 20SC와 함께, 애플은 마침내 공식적으로 지원되는 통합되고 사용하기 쉬운 파일 공유 네트워크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는 2년 전의 초기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었다. ''Macintosh Office''는 성능이 떨어지는 Mac에서 실행되는 조각난 솔루션이었으며, 이전 타사 응용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많은 기능을 갖추지 못했다. 실제로 애플Share가 System 7에서 피어 투 피어 파일 공유를 제공하기까지 거의 5년이 더 걸렸고, 성장하는 업계 표준인 이더넷을 수용하고 더 크고 빠른 내장 하드 드라이브를 갖춘 확장 가능한 Mac이 출시되기까지 4개월이 더 걸려 대규모 사무실을 지원할 수 있는 AppleTalk의 잠재력을 관리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졌다. IBM 네트워크 호환성은 여전히 사용할 수 없었다.

2. 2. 1. AppleTalk Personal Network

애플은 처음에 근거리 통신망을 AppleNet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했으나, 1983년에 이 계획을 철회하고 IBM의 토큰 링 시스템 출시를 기다리기로 했다.[1]

이후 내부적인 노력이 계속되었고, Bob Belleville의 메모는 시스템의 기능, 네트워킹 시스템, 네트워크 레이저 프린터, 파일 서버의 개요를 설명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2]

매킨토시는 원래 Zilog Z8530 직렬 드라이버 칩을 사용하여 설계되었는데, 이 칩은 간단한 네트워킹 프로토콜을 실행할 수 있었다. 초기 목표는 여러 장치를 단일 포트에 연결하는 AppleBus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1] AppleBus 개념은 개발 과정에서 중단되었지만, 근거리 통신망 지원에 필요한 하드웨어는 갖추게 되었고, 적절한 소프트웨어만 있으면 되었다.

단기적인 네트워킹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애플은 230 kbit/s로 실행되는 저속 시스템 개발을 발표했다. 매킨토시의 직렬 포트는 링으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업" 및 "다운" 연결을 제공하기 위해 외부 상자(나중에 LocalTalk로 알려짐)가 사용되었다. 이 시스템은 1985년 1월 "AppleTalk Personal Network"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2. 2. 2. 빅 맥 (Big Mac)

애플은 코드명 '''빅 맥'''으로 명명된 전용 파일 서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4] 이것은 Mac OS를 실행하는 셸 인터페이스를 가진 빠른 유닉스 기반 서버로 구상되었다. 또한 네트워크에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 하드 드라이브도 포함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85년 초, 애플은 네트워크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하드 드라이브조차 제공하지 못했다. 결국 애플은 유닉스 기반 ''빅 맥'' 파일 서버 개념을 취소하고 차세대 Macintosh II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5]

2. 2. 3. LaserWriter

애플은 1985년 1월, 소규모 사무실에서 새로 출시된 LaserWriter 프린터를 저렴하게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LocalTalk 네트워크를 출시할 준비가 되었다.[1] 애플은 적절한 네트워킹 하드웨어를 갖추고, 비즈니스 제품군의 다른 핵심 구성 요소 중 하나로 네트워크의 모든 사용자가 공유하는 활판 인쇄 품질의 문서를 생성하는 레이저 프린터 개발을 시작했다.[3]

2. 3. 타사 솔루션

애플이 자체적인 네트워킹 솔루션을 개발하는 동안, 타사 개발자들은 매킨토시 오피스의 기능을 보완하는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했다.

Infosphere의 ''XL/Serve''(나중에 ''MacServe'')는 원격 클라이언트 Mac이 호스트 Mac에 연결된 하드 드라이브에 로그인하여 파일을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하드 디스크 공유 응용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한 번에 한 명의 사용자만 파일 볼륨에 접근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Centram Systems West(나중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인수됨)의 ''TOPS''는 진정한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이었다. TOPS를 사용하면 원격 클라이언트가 호스트 Mac에 로그인하여 다른 원격 또는 호스트 사용자와 동시에 모든 파일에 접근하고 작업할 수 있었다. 또한 TOPS는 전용 호스트가 필요하지 않아 모든 Mac이 호스트가 될 수 있었고, IBM PC와도 파일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러한 타사 솔루션들은 애플이 AppleShare를 출시하기 전까지 매킨토시 오피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2. 3. 1. MacServe

1985년 1월까지 애플은 소규모 사무실에서 새로 출시된 LaserWriter 프린터를 저렴하게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LocalTalk 네트워크를 출시할 준비가 되었다. 하지만 전용 파일 서버는 최대 2년이 걸릴 예정이었다. 네트워크 하드 디스크는 더 가까웠지만, 여전히 1년 이상 남았다. 1985년 초까지 애플은 매킨토시에서 작동하는 하드 드라이브조차 제공하지 않았고, 네트워크 하드 드라이브는 더더욱 제공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애플의 새로 발표된 네트워크는 인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임시 방편으로 애플은 Lisa 2/10을 Macintosh XL로 브랜드를 변경하고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내장 10MB 하드 드라이브, 더 많은 RAM 및 Macintosh System 에뮬레이션 소프트웨어 MacWorks를 갖춘 XL은 애플이 교체품을 개발할 때까지 파일 서버 역할을 하도록 위치를 잡았다. 그러나 Macintosh XL을 활용할 파일 공유 소프트웨어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acintosh Office가 약속한 전제에 따라 Macintosh XL은 인기가 좋았고, 애플은 부품이 부족해 교체 네트워크 서버가 준비되기 훨씬 전에 단종되었다.

그 동안, Infosphere 및 Centram Systems West(나중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와 같은 애플과 함께 작업하는 타사 개발자는 각각 ''XL/Serve''(나중에 ''MacServe'') 및 ''TOPS''라는 AppleTalk 기반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자는 실제로 원격 클라이언트 Mac이 호스트 Mac에 연결된 하드 드라이브에 로그인하여 파일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하드 디스크 공유 응용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한 번에 한 명의 사용자만 파일 볼륨에 액세스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Macintosh Office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 네트워크 하드 드라이브를 충족시켰다.

2. 3. 2. TOPS

Centram Systems West(나중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인수됨)는 ''TOPS''라는 AppleTalk 기반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1] TOPS는 진정한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으로, 원격 클라이언트가 호스트 Mac에 로그인하여 다른 원격 또는 호스트 사용자와 동시에 모든 파일에 접근하고 작업할 수 있도록 했다. TOPS는 전용 호스트가 필요하지 않았고, 모든 Mac이 호스트가 되어 피어 투 피어 파일 공유를 제공할 수 있었다. TOPS는 Macintosh에만 국한되지 않고 IBM PC와 교차 플랫폼에서 파일을 공유할 수도 있었다.[1]

2. 4. AppleShare

애플은 처음에 근거리 통신망을 AppleNet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했다. 이 네트워크는 이더넷과 유사한 동축 케이블을 사용하여 최대 128대의 Apple II, Apple III, Apple Lisa를 연결하고 1 Mbit/s 속도를 지원했다. 1983년 6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전국 컴퓨터 컨퍼런스에서 발표되었지만, 4개월 후 조용히 중단되었다. 당시 애플은 "네트워크 시스템을 만드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1] IBM이 1984년에 토큰 링 시스템을 출시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발표했다.[1]

이 때문에 애플은 IBM이 토큰 링을 출시할 때까지 자체 네트워크 시스템이 없었다. 하지만 내부적인 연구는 계속되었으며, Bob Belleville의 메모가 큰 도움이 되었다. Belleville는 시스템의 기능, 네트워킹 시스템, 네트워크 레이저 프린터, 파일 서버 등에 대한 개요를 작성했다.[2]

Macintosh는 원래 Zilog Z8530 직렬 드라이버 칩을 사용했는데, 이 칩은 간단한 네트워킹 프로토콜을 실행할 수 있었다. 초기 목표는 여러 장치를 단일 포트에 연결하는 AppleBus라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1] AppleBus는 개발 과정에서 중단되었지만, 시스템은 근거리 통신망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갖추게 되었고, 남은 것은 적절한 소프트웨어뿐이었다. 단기적인 네트워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플은 230 kbit/s로 실행되는 저속 시스템 개발을 발표했다. Macintosh의 직렬 포트는 링으로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업" 및 "다운" 연결을 제공하기 위해 외부 상자(나중에 LocalTalk로 알려짐)를 사용했다. 이 시스템은 1985년 1월 "AppleTalk Personal Network"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네트워킹 하드웨어를 갖춘 애플은 비즈니스 제품군의 다른 핵심 구성 요소 개발을 시작했다.[3] 여기에는 코드명 '''빅 맥'''으로 명명된 전용 파일 서버, 네트워크에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 하드 드라이브, 네트워크의 모든 사용자가 공유하는 활판 인쇄 품질의 문서를 생성하는 레이저 프린터가 포함되었다.[4] 빅 맥은 Mac OS를 셸 인터페이스로 실행하는 빠른 유닉스 기반 서버로 구상되었다.

1985년 1월, 애플은 소규모 사무실에서 새로 출시된 LaserWriter 프린터를 저렴하게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LocalTalk 네트워크를 출시했다. 하지만 전용 파일 서버는 최대 2년, 네트워크 하드 디스크는 1년 이상 남은 상태였다. 1985년 초, 애플은 Macintosh에서 작동하는 하드 드라이브조차 제공하지 않았고, 네트워크 하드 드라이브는 더더욱 없었다. 애플의 새 네트워크는 인쇄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임시 방편으로 애플은 Lisa 2/10을 Macintosh XL로 브랜드를 변경하고 가격을 대폭 인하했다. 내장 10MB 하드 드라이브, 더 많은 RAM, Macintosh System 에뮬레이션 소프트웨어 MacWorks를 갖춘 XL은 애플이 새 제품을 개발할 때까지 파일 서버 역할을 했다. 그러나 Macintosh XL을 활용할 파일 공유 소프트웨어는 없었다. Macintosh Office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Macintosh XL은 인기가 좋았고, 애플은 부품 부족으로 인해 교체 네트워크 서버가 준비되기 훨씬 전에 단종시켰다.

한편, Infosphere와 Centram Systems West(나중에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인수) 같은 타사 개발자들은 AppleTalk 기반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인 ''XL/Serve''(나중에 ''MacServe'')와 TOPS를 만들었다. XL/Serve는 원격 클라이언트 Mac이 호스트 Mac에 연결된 하드 드라이브에 로그인하여 파일을 작업할 수 있게 해주는 하드 디스크 공유 응용 프로그램이었지만, 한 번에 한 명의 사용자만 파일 볼륨에 액세스할 수 있었다. 반면, TOPS는 진정한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이었다. TOPS를 사용하면 원격 클라이언트가 호스트 Mac에 로그인하여 다른 사용자와 동시에 모든 파일에 액세스하고 작업할 수 있었다. 또한 TOPS는 전용 호스트가 필요하지 않았고, 모든 Mac이 호스트가 되어 피어 투 피어 파일 공유를 제공할 수 있었다. TOPS는 Macintosh뿐만 아니라 IBM PC와도 파일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제품들은 애플의 Macintosh Office 발표를 실현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애플이 완전히 지원하는 통합 솔루션은 없었다. Macintosh XL이 조기에 단종된 후, 애플은 마침내 Macintosh용 첫 번째 하드 드라이브인 Hard Disk 20을 출시했다. 발표 9개월 후 출시된 Hard Disk 20은 20MB 용량이었지만, 속도가 느렸고 네트워크 파일 서버의 기능을 제공하지 못했다. 타사 제품들이 이를 활용했지만, 애플은 1년 넘게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Macintosh Office를 제공했다. 대신 애플은 유닉스 기반 ''빅 맥'' 파일 서버 개념을 취소하고 차세대 Macintosh II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5]

1987년 1월, 애플은 마침내 파일 공유 응용 프로그램인 AppleShare를 선보였다. 3개월 전 출시된 더 빠른 SCSI 하드 드라이브인 Hard Disk 20SC와 함께, 애플은 공식적으로 지원되는 통합 파일 공유 네트워크를 제공했다. 그러나 2년 전 발표했던 초기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Macintosh Office''는 성능이 떨어지는 Mac에서 실행되는 조각난 솔루션이었으며, 이전 타사 응용 프로그램의 많은 기능을 갖추지 못했다. System 7에서 AppleShare가 피어 투 피어 파일 공유를 제공하기까지 거의 5년이 더 걸렸고, 이더넷을 수용하고 더 크고 빠른 내장 하드 드라이브를 갖춘 확장 가능한 Mac이 출시되기까지 4개월이 더 걸렸다. IBM 네트워크 호환성은 여전히 제공되지 않았다.

3. 영향

대부분 실패작으로 여겨졌지만, ''매킨토시 오피스''는 레이저라이터의 등장과 함께 데스크톱 출판 시대를 열었다.[1] 레이저라이터는 저렴한 네트워크 인터페이스를 통해 비용을 절감했고, 매킨토시 GUI와 프린터의 PostScript 전문적인 출력을 활용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등장시켰다.[1] 무엇보다도 이는 매킨토시가 진지한 컴퓨터라는 평판을 굳히고 사무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했으며, 특히 DOS 기반의 경쟁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졌다.[1]

3. 1. 데스크톱 출판 (DTP)

''매킨토시 오피스''는 대부분 실패작으로 여겨졌지만, 레이저라이터의 등장과 함께 데스크톱 출판 시대를 열었다.[1] 레이저라이터는 저렴한 네트워크 인터페이스를 통해 비용을 절감했고, 매킨토시 GUI와 프린터의 PostScript 전문적인 출력을 활용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등장시켰다.[1] 무엇보다도 이는 매킨토시가 진지한 컴퓨터라는 평판을 굳히고 사무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했으며, 특히 DOS 기반의 경쟁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졌다.[1]

3. 2. 대한민국에서의 영향

대부분 실패작으로 여겨졌지만, '매킨토시 오피스'는 레이저라이터(LaserWriter)의 등장과 함께 데스크톱 출판 시대를 열었다. 레이저라이터는 저렴한 네트워크 인터페이스를 통해 비용을 절감했고, 매킨토시 GUI와 프린터의 PostScript 전문적인 출력을 활용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등장시켰다. 무엇보다도 이는 매킨토시가 진지한 컴퓨터라는 평판을 굳히고 사무실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했으며, 특히 DOS 기반의 경쟁 제품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졌다.

4. 애플 제품 연표

{| class="wik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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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제품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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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연표의 제품은 출시일만 나타내며, 새로운 제품이 연속적인 제품 라인에서 시작되므로 단종된 날짜는 반드시 나타내지 않습니다.''

참조

[1] 간행물 Apple, waiting for IBM net, links micros with AppleBus https://books.google[...] InfoWorld 1984-03-26
[2] 서적 Inside AppleTalk Addison-Wesley 1988
[3] 웹사이트 Apple's Worst Business Decisions http://www.osnews.co[...]
[4] 웹사이트 Apple's Failed BigMac Project http://lowendmac.com[...]
[5] 웹사이트 Steve Jobs and 20 Years of Apple Servers http://www.roughlyd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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