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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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0년대는 냉전 시대의 긴장 완화와 국제적 분쟁, 각국의 내부 갈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시기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데탕트가 시작되었으나, 베트남 전쟁 종전, 캄보디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란 혁명 등 세계 각지에서 분쟁과 테러가 발생했다. 경제적으로는 오일 쇼크로 인한 세계 경제 위기가 심화되었지만,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문화적으로는 미국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커졌고, 록 음악, 디스코, 비디오 게임 등이 발전했다. 대한민국은 유신 체제 하에서 정치적 억압과 경제 성장이 공존했으며, 주요 사건으로 7.4 남북 공동 성명, 김대중 납치 사건, 부마 민주 항쟁, 10.26 사건, 12.12 군사 반란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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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은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냉전 시대의 대리전으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간의 갈등에 소련, 중국, 미국 등이 개입하여 광범위한 피해를 야기하고 반전 운동을 촉발하며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났다. - 1970년대 - 1960년대 반문화
1960년대 반문화는 냉전, 사회 문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으로 발생하여 기성 체제에 저항하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마약 문화, 베트남 전쟁 반대를 특징으로 하며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낳았다.
1970년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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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1970년대 | |
기간 | 1970년 ~ 1979년 |
이전 시대 | 1960년대 |
다음 시대 | 1980년대 |
시대적 특징 | |
주요 사건 |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이란 이슬람 혁명 오일 쇼크 중국-베트남 전쟁 |
문화 | 디스코 펑크 소울 글램 록 |
경제 | |
특징 | 자본주의 황금 시대의 종말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일본 경제 성장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 대두 |
기타 | |
참고 자료 | 자본주의 황금시대 재해석 |
일본 경제 | 1970년대와 80년대 일본 경제사 |
2. 국제 정치
청색 - 서방권 동맹, 적색 - 공산권 동맹, 녹색 - 비동맹주의]]
1970년대는 냉전이 지속되는 가운데, 데탕트라 불리는 긴장 완화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미국과 중국의 핑퐁 외교를 시작으로,[62] 냉전의 대립 구도 속에서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등 변화의 조짐이 있었다.[63]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에서는 여전히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64]
1970년대 세계는 냉전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각 지역별, 국가별 다양한 분쟁과 갈등이 표면화된 시기였다. 주요 분쟁들은 다음과 같다.
- 종교 및 민족 분쟁
-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속적인 갈등을 보였고, 1971년 인도가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 개입함으로써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일어났다.
- 1974년 튀르키예는 키프로스를 침략하여 북부 지역을 점령하였다.
- 1975년 인도네시아는 동티모르를 점령하였다.
- 1975년 시작된 레바논 내전은 1990년까지 이어졌고 다종교 다문화 사회인 레바논 내의 종교적 갈등 격화를 가져왔다. 레바논 내전은 또한 냉전에 따른 초강대국의 대리전 양상을 띄기도 하였다.
- 1977년 소말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으로 오가덴 전쟁이 일어났다. 지역 패권을 두고 일어난 이 전쟁에서 소련과 쿠바가 에티오피아를 지원하였고, 그 결과 소말리아는 패전 이후 소말리아 내전의 상황에 놓이게 되어 이후 오랫동안 제대로 된 중앙 정부가 없는 권력 공백을 겪게 되었다.
- 1978년 동아프리카의 패권을 두고 우간다-탄자니아 전쟁이 일어났다.
- 탈식민지화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탈식민지화의 물결로 각지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나 신생독립국들이 탄생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에까지 이어져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과 같은 독립 운동이 지속되었다. 포르투갈은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해외 식민지를 포기하였다.
1970년대는 국제적 분쟁뿐만 아니라 각국의 내부적 갈등이 폭력적으로 분출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는 극단적 정치 이념을 지닌 사람들이 테러 활동을 벌이는 납탄 시대를 겪었고,[70] 영국은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요구하는 IRA를 표방하는 여러 단체들과 갈등을 겪었다.[71] 1960년대 말부터 전 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청년 학생 운동의 일부가 1970년대를 거치며 극단화하여 일본의 적군파나[72] 독일 적군파[73],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과 같은 테러 조직이 생겨나기도 하였다.[74]
2. 1. 냉전과 데탕트
청색 - 서방권 동맹, 적색 - 공산권 동맹, 녹색 - 비동맹주의]]1970년대 세계는 여전히 냉전의 한복판에 있었지만,[61]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핑퐁 외교를 시작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진영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탕트가 시작되었다.[62] 냉전의 가장 첨예한 대립지였던 한반도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평화통일의 원칙에 합의하는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63] 그러나 이러한 긴장 완화는 제한적이었으며 세계는 여전히 각종 전쟁과 무력 충돌을 겪고 있었다.[64]
1970년대는 1945년 이후 이어진 냉전의 한복판에 해당한다. 세계는 서방권과 공산권의 양 진영과 비동맹주의 블럭으로 분할되었고 곳곳에서 전쟁이 있었다.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은 억지이론에 따라 핵무기 경쟁을 하면서도 핵전쟁으로 인한 공멸을 두려워하여 직접 충돌하지는 않았다.[83] 대신 지구 곳곳에서는 이들의 대립이 배경이 되는 대리전이 일어났다.[84]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 베트남 전쟁은 1975년 사이공 함락까지 계속되었다.
-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989년까지 계속되었다.
- 1975년 시작된 앙골라 내전은 신생독립국 앙골라에서 공산 진영과 반공 세력 사이에 벌어진 내전으로 세기를 바꾸어 2002년까지 지속되었다.
- 1967년 시작된 캄보디아 내전 역시 1975년까지 지속되었고 내전에서 승리한 크메르 루주는 수많은 인명을 학살하여 캄보디아를 킬링필드로 바꾸었다.
- 1974년 시작된 에티오피아 내전 역시 이념 갈등을 배경으로 1991년까지 지속되었다.
- 1971년 시작된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의 결과 파키스탄은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고 이후 서파키스탄은 파키스탄으로,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국명을 바꾸었다. 1971년 서파키스탄의 무자비한 집단 학살이 있었다.
-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은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크게 높인 사건이었다.






2. 2. 한반도 정세
1970년대 세계는 냉전의 한복판에 있었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핑퐁 외교를 시작으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진영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탕트가 시작되었다.[62] 냉전의 가장 첨예한 대립지였던 한반도에서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평화통일의 원칙에 합의하는 7·4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63]2. 3. 세계 각지의 분쟁
청색 - 서방권 동맹, 적색 - 공산권 동맹, 녹색 - 비동맹주의]]1970년대에도 세계는 여전히 냉전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데탕트라 불리는 긴장 완화의 움직임도 나타났다.[61][62]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에서는 여전히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64]
- '''베트남 전쟁'''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베트남 전쟁은 1973년 파리 평화 협정 체결 이후 미군이 철수하면서 북베트남의 승리로 기울었다.[65] 1975년 사이공 함락으로 전쟁은 종결되었고, 베트남은 통일되었다.[65]
- '''캄보디아 내전과 크메르 루주'''
캄보디아 내전은 크메르 루주의 집권으로 이어졌고,[66] 이들은 킬링필드라 불리는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다.
- '''아랍-이스라엘 분쟁과 중동 전쟁'''
아랍-이스라엘 분쟁은 197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은 큰 피해를 낳았고, 아랍 석유 수출국 기구의 석유 금수 조치로 인해 1973년 석유 위기가 발생했다.
- '''아프리카 지역 분쟁'''
앙골라 내전, 에티오피아 내전 등 아프리카 지역의 분쟁은 냉전 시기 이념 갈등과 맞물려 장기간 지속되었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았으며, 활동가 스티브 비코가 1977년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 '''이란 혁명'''
1979년 이란 혁명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신권 정치를 표방하는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했다.[69]
2. 4. 테러리즘의 확산
1970년대는 국제적 분쟁뿐만 아니라 각국 내부의 갈등이 폭력적으로 분출된 시기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는 극단적 정치 이념을 지닌 사람들이 테러 활동을 벌이는 납탄 시대를 겪었고,[70] 영국은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요구하는 IRA를 표방하는 여러 단체들과 갈등을 겪었다.[71] 1960년대 말부터 전 세계적인 영향을 끼친 청년 학생 운동의 일부가 1970년대를 거치며 극단화하여 일본의 적군파[72], 독일 적군파[73],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과 같은 테러 조직이 생겨나기도 하였다.[74]- 이탈리아 납탄 시대: 극좌 및 극우 테러 단체들이 활동하며 사회 불안을 야기했다.
- 영국-북아일랜드 분쟁: IRA의 테러 활동으로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 일본 적군파: 극좌 테러 단체로, 네덜란드 헤이그의 프랑스 대사관을 점거하는 등 국제적인 테러 사건을 일으켰다.[72]
- 독일 적군파: 극좌 테러 단체로, 독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73]
- 붉은 여단: 이탈리아의 극좌 테러 단체로, 납치, 살인 등 다양한 테러 활동을 벌였다.[74]
3. 국제 경제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고도 성장을 지속하던 국제 경제는 1970년대에 들어 위기를 맞았다.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끝나고 1970년대 초반부터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경제 위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3년 중동전쟁과 그 여파로 발생한 오일 쇼크는 국제 경제에 급격한 침체와 장기적인 불황을 초래했다.[75] 오일 쇼크와 경제 위기는 냉전 체제의 각 블록이 긴장 완화 정책을 추진하게 된 원인이 되었으며, 이후 1980년대 GATT를 뛰어넘는 강력한 국제무역기구의 필요성과 자유무역 확대 움직임으로 이어졌다.[76]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동아시아 지역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 일본은 소득 배증 계획을 초과 달성하며 1973년까지 "고도성장기"를 보냈고,[77] 대한민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며 고도 성장을 이어갔다.[78]
3. 1. 오일 쇼크와 세계 경제 위기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고도 성장을 지속하던 국제 경제는 1970년대에 들어 위기를 맞았다.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끝나고 1970년대 초반부터 이윤율이 하락하면서 경제 위기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73년 중동전쟁과 그 여파로 발생한 오일 쇼크는 국제 경제에 급격한 침체와 장기적인 불황을 초래했다.[75] 오일 쇼크와 경제 위기는 냉전 체제에서 각 블록이 긴장 완화 정책을 추진하게 된 원인이 되었으며, 이후 1980년대 GATT를 뛰어넘는 강력한 국제무역기구의 필요성과 자유무역 확대 움직임으로 이어졌다.[76]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동아시아 지역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일본은 소득 배증 계획을 초과 달성하며 1973년까지 "고도성장기"를 보냈고,[77] 대한민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며 고도 성장을 이어갔다.[78]
3. 2. 동아시아 경제 발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동아시아 지역은 높은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 일본은 소득 배증 계획을 초과 달성하면서 1973년까지 "고도성장기"를 지냈고[77], 대한민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의 고도 성장 역시 이어져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다.[78]3. 3.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
박정희 정권은 경제 개발 정책을 추진하여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 이 시기 중화학 공업 육성과 수출 주도형 경제 정책이 추진되었으며,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어 농촌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세계적인 경기 침체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며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78]
4. 사회
날짜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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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6월 1일 |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 페드로 에우헤니오 아람부루는 게릴라 조직인 몬토네로스에 의해 납치되어 살해당했다.[7] |
1972년 4월 19일 | 마지막 부룬디 국왕인 5세 엔타레는 망명에서 돌아온 후 체포되어 암살당했다.[8][9] |
1975년 3월 25일 |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는 그의 이복형제의 아들 파이살 빈 무사이드에 의해 암살당했다.[10] |
1975년 8월 15일 | 방글라데시의 초대 및 5대 방글라데시 대통령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과 그의 가족 대부분은 쿠데타 중 방글라데시 육군 병력이 그의 거주지에 가서 그를 살해했을 때 암살당했다.[11] |
1975년 9월 5일과 22일 | 미국의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1975년 9월 두 명의 다른 여성이 두 개의 다른 행사에서 그에게 총을 쏘면서 두 번의 암살 시도를 넘겼다. 첫 번째 시도는 사크라멘토에서, 두 번째 시도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했다.[12][13] |
1978년 4월 28일 | 아프가니스탄 초대 대통령 무함마드 다우드 칸은 사우르 혁명 중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과 관련된 군 장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14] |
1978년 5월 9일 | 이탈리아 전 총리 알도 모로는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조직인 붉은 여단에 의해 납치되어 나중에 살해되었다.[15] |
1979년 10월 26일 |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는 서울의 청와대에서 만찬 중 KCIA 국장 김재규에 의해 암살당했다.[16] |
1979년 10월 27일 |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 지도자 하피즐라 아민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에 소련에 의해 암살당했다.[17] |
5. 문화
1970년대 대중문화는 세계적으로 미국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헐리우드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볼거리를 제공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하여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79] 1970년대는 록 음악과 헤비 메탈의 전성기였으며, 디스코 역시 전 세계를 열광시켰다.[80][81] 비디오 게임이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하다.[82]
1970년대 초반, 대중음악은 롤링 스톤스,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기존 음악가들과 블랙 사바스, 레드 제플린과 같은 신예 록 그룹들이 이끌었다. 비틀즈는 1970년에 해체되었지만, 멤버들은 솔로 활동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폴 매카트니는 10년 내내 큰 인기를 누렸다. 펑크는 리듬 앤 블루스, 재즈 등의 영향을 받아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 중반에는 디스코 음악이 부상하여 비지스, 아바 등의 밴드와 함께 음악계를 지배했다. 모타운 레코드의 아티스트들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대중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34]
핑크 플로이드의 "달의 어두운 면"(1973)은 이 시대 가장 많이 팔린 앨범 중 하나였다.[35] 전자 예술 음악 음악가들은 뉴에이지 음악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는 신스팝을 개척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힙합 음악은 DJ 쿨 허크와 같은 디제이들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슈가힐 갱의 "래퍼스 딜라이트"와 같은 노래들은 힙합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컨트리 음악은 아웃로 운동을 중심으로 주류가 되었으며, 서던 록도 인기를 얻었다.
1970년대에는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등 인기 록 스타들이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8월 16일에 사망했으며,[36] 빙 크로스비는 1977년 10월 14일에 사망했다. 그의 싱글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역대 최고 판매량 싱글로 남아 있다.[37]
영화 부문에서는 '''프렌치 커넥션'''(1971), '''대부'''(1972), '''스팅'''(1973),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 '''록키'''(1976) 등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스타워즈''', '''죠스''', '''그리스''', '''엑소시스트''' 등이 흥행에 성공했다.[41]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콜세지,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젊은 영화 제작자들은 뉴 할리우드 운동을 이끌었다. '''토요일 밤의 열기'''(1977)는 미국에서 디스코 열풍을 일으켰다. '''엑소시스트'''(1973)는 공포 영화 장르에 큰 영향을 미쳤다.
TV 부문에서는, 영국에서는 컬러 방송이 가능해졌으며, ''닥터 후''가 큰 인기를 누렸다. 미국에서는 3대 방송 네트워크가 기존 프로그램 편성을 재편하여 젊은 시청자층을 공략했다. ''올 인 더 패밀리''와 같이 사회적 의식을 다룬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얻었다. 여성 운동의 영향으로 ''메리 타이러 무어 쇼''와 같이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MTM 엔터프라이즈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샌포드와 아들''과 같은 소수 민족 중심의 프로그램도 인기를 얻었다. ''소울 트레인''은 흑인 음악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다. 1970년대에는 ''해피 데이즈''와 같이 1950년대 향수를 자극하는 시트콤도 인기를 얻었다.
문학에서는 에리히 세갈의 《러브 스토리》를 통해 구식 이야기 전개 방식이 부활했다. 인종차별은 여전히 주요 문학적 주제였다.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토머스 핀천은 1973년 《무지개 중력》을 출판했다.
건축에서는 존 핸콕 센터, 시어스 타워, 세계 무역 센터 타워와 같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한 경쟁이 벌어졌다. CN 타워는 1976년에 완공되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독립 구조물이 되었다.
패션에서는 히피 스타일과 글램 록 스타일이 유행했다. 부츠컷 바지, 터틀넥 셔츠, 사이드번, 플랫폼 슈즈 등이 인기를 끌었다.
5. 1. 대중문화의 발전
미국 대중문화는 1970년대에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헐리우드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 침체되었던 영화 산업을 부흥시켰다. 1975년 작 죠스는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로 평가받으며, 이후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 방식은 전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79] 이러한 헐리우드의 부흥기를 뉴 헐리우드라고 부른다.1970년대는 록 음악과 헤비 메탈의 전성기였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블랙 사바스, 딥 퍼플, 플리트우드 맥, AC/DC, 이글스, 퀸 등 수많은 록 밴드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80] 한편, 댄스 음악에서는 디스코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디스코는 디스크 자키가 주도하는 춤 문화로, 전 세계에 댄스 클럽이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81]
비디오 게임 역시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77년에 출시된 아타리 2600은 컴뱃, 팩맨 등 새로운 게임들을 유행시켰다.[82]
1970년대 영화 산업은 뉴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영화의 세계적 흥행과 더불어, 홍콩 영화, 일본 영화와 같은 아시아 지역 영화들의 독특한 발전이 있었다.
- 헐리우드 주요 영화
5. 2. 대한민국의 대중문화
1970년대 한국 영화는 유신 체제의 영향으로 검열이 강화되면서 창작의 자유가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세대의 감성을 담은 영화들이 등장하여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1977) 등이 있다. 이들 영화는 청춘들의 사랑과 좌절,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아내며 젊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다.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은 포크 음악과 록 음악이 주류를 이루었다. 김민기, 양희은, 송창식 등은 포크 음악을 통해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며 젊은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신중현과 산울림 등은 록 음악을 통해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선보였다. 그러나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많은 포크 및 록 음악가들이 활동을 중단하면서 한국 대중음악은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1970년대 한국 TV 드라마는 일일연속극과 주간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드라마로는 김수현 작가의 《새엄마》(1972), 《아씨》(1970), 《여로》(1972) 등이 있다. 이들 드라마는 주로 가족 간의 사랑과 갈등, 여성의 삶과 애환을 다루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6. 과학 기술
1970년대는 집적회로와 레이저 개발로 고체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크게 높아진 시기였다.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과 우주의 경계 조건에 대한 이론을 개발, 호킹 복사 이론을 발표했다. 분자생물학, 세균학, 바이러스학, 유전학 등 생물학 분야도 발전하여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평형 이론은 진화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73년에는 자기 공명 영상(MRI) 이미지가 처음 발표되었고, 세사르 밀스타인과 조르주 쾰러는 단일클론 항체를 분리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칼 우즈와 조지 E. 폭스는 고세균을 새로운 생명 영역으로 분류했다. 1974년에는 도널드 요한슨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의 화석 인류인 루시를 발견하여 직립 보행이 인류 진화 초기에 나타났음을 보여주었다.[21] 1979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천연두 박멸을 공식 인증했다.
1973년에는 최초로 유전 공학을 이용해 박테리아를 조작했고, 1974년에는 쥐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1977년에는 박테리오파지 φX174의 DNA 게놈 서열이 처음으로 완전히 분석되었다. 1978년에는 루이스 브라운이 시험관 수정으로 태어난 첫 아기가 되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1973년 테리 위노그래드의 자연어 처리 연구와 1979년 MIT의 세계 최초 인지과학과 설립을 통해 발전했다. 노엄 촘스키는 행동주의를 비판하며 인지심리학과 생성언어학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1970년대에는 두 번째 세대의 안면 거상술이 처음 시도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6. 1.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1970년대는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명과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 1970년대는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발명되면서 개인용 컴퓨터 시대가 열렸다. 특히 애플은 1977년 6월 1일, 가정용으로 설계된 최초의 대량 생산 개인용 컴퓨터인 애플 II를 출시했다. 애플 II는 1298USD(4KB RAM)에서 2638USD(48KB RAM)에 이르는 가격으로 판매되었다.[46][47]
- '''ARPANET의 발전''': 인터넷의 전신인 ARPANET은 이 시기에 더욱 발전하여 현대 인터넷의 기반을 다졌다.
- '''비디오 게임 산업의 발전''':
연도 |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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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 스페이스 인베이더, 아스테로이드, 퐁, 브레이크아웃과 같은 인기 비디오 게임이 등장했다. |
비디오 아케이드 게임의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 |
건 파이트는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한 최초의 비디오 게임이었다. | |
1971년 | 최초의 교육용 비디오 게임인 오레곤 트레일이 출시되어 학교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
1972년 9월 | 랄프 H. 베어는 최초의 가정용 비디오 게임 콘솔인 맥나복 오디세이를 출시했다. |
1974년 | 메이즈 워와 스페이심이 등장하여 초기 멀티플레이어 3D 1인칭 슈팅 게임의 선구적인 예가 되었다. |
1976년 | 매텔은 최초의 휴대용 전자 게임인 매텔 오토 레이스를 출시했다. |
1976년 | 윌리엄 크로우더는 최초의 현대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인 콜로설 케이브 어드벤처를 제작했다. |
1977년 10월 | 아타리 2600이 출시되어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
1976년 | 페어차일드 채널 F는 최초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ROM 카트리지 기반 비디오 게임 콘솔이 되었다. |
1979년 11월 | 밀턴 브래들리 컴퍼니는 교체 가능한 카트리지를 사용한 최초의 휴대용 게임 콘솔인 마이크로비전을 출시했다. |
6. 2. 우주 개발 경쟁
1960년대에 이어 1970년대에도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은 계속되었다. 아폴로 계획은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에 이어 1970년대에 들어서도 계속되었으며, 1972년 아폴로 17호를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 이후 미국은 스카이랩 우주 정거장 건설에 집중하여, 1973년 발사에 성공하였다.한편, 1977년에 발사된 보이저 1호와 보이저 2호는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 외행성 탐사를 진행하여 인류의 우주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6. 3. 생명 과학과 의학의 발전
1970년대는 분자생물학, 세균학, 바이러스학, 유전학 등 생물학 분야에서 큰 발전이 이루어져 현대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단속평형 이론은 진화론적 사고에 혁명을 일으켰다.[1]7. 스포츠
1972년 하계 올림픽에서 마크 스피츠(Mark Spitz)는 수영에서 7개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7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1976년 하계 올림픽은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열렸다.
1975년 4월 9일, 아시아 최초의 프로 농구 리그인 필리핀 농구 협회(Philippine Basketball Association, PBA)가 필리핀 케손 시티 쿠바오에 있는 아라네타 콜리세움(Araneta Coliseum)에서 첫 경기를 가졌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Oakland Athletics)는 1972년부터 1974년까지 3년 연속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신시내티 레즈(Cincinnati Reds)는 빅 레드 머신(Big Red Machine)의 활약에 힘입어 1970년, 1972년, 1975년, 1976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여 2번 우승했다.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는 1976년에 패한 후 1977년과 1978년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Dallas Cowboys)와 피츠버그 스틸러스(Pittsburgh Steelers)가 NFL에서 10년대를 지배했다. 스틸러스는 테리 브래드쇼(Terry Bradshaw)와 척 놀(Chuck Noll)의 지휘 아래, 카우보이스는 로저 스타우바흐(Roger Staubach)와 톰 랜드리(Tom Landry)의 지휘 아래 활약했으며, 마이애미 돌핀스(Miami Dolphins)는 NFL 역사상 유일하게 무패로 시즌을 마치고 슈퍼볼(Super Bowl)에서 우승(무패 기록)하여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Philadelphia Flyers)는 "브로드 스트리트 불리스(The Broad Street Bullies)"로 기억되는 팀으로 1974 스탠리 컵 결승전(1974 Stanley Cup Finals)과 1975 스탠리 컵 결승전(1975 Stanley Cup Finals)에서 스탠리 컵(Stanley Cup)을 우승했다.
젊은이들이 사회적 규범에 소외되면서 저항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중에 반문화로 알려지게 될 집단을 형성했다. 탈출과 저항의 형태는 사회 운동, 대안적인 삶의 방식, 음식, 의복, 음악을 통한 실험적인 삶, 그리고 프리스비를 던지는 것과 같은 대안적인 레크리에이션 활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48] 빅터 말라프론테(Victor Malafronte), Z. 와이앤드(Z Weyand), 켄 웨스터필드(Ken Westerfield)와 같은 소수의 선수들이 프리스비를 던지고 받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면서 시작된 것이 나중에 프리스비 자유형으로 알려지게 되었다.[49] 1970년대에 조직적인 디스크 스포츠는 Wham-O와 어윈 토이(Irwin Toy)(캐나다)의 홍보 활동, 몇몇 토너먼트, 그리고 프리스비 쇼 투어를 통해 대학, 박람회 및 스포츠 행사에서 공연하는 프로 선수들과 함께 시작되었다.[50] 자유형, 더블 디스크 코트(double disc court), 거츠, 디스크 얼티밋, 디스크 골프(disc golf)와 같은 디스크 스포츠가 이 스포츠의 최초 종목이 되었다.[51][52]
7. 1. 올림픽
- 1972년 하계 올림픽 (뮌헨)에서는 검은 9월단 사건이 일어났다.
- 1976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7. 2. FIFA 월드컵
1970년 FIFA 월드컵(멕시코)에서 브라질이 우승했고, 1974년 FIFA 월드컵(서독)에서 서독이 우승했으며, 1978년 FIFA 월드컵(아르헨티나)에서 아르헨티나가 우승했다. 1970년 FIFA 월드컵은 최초로 컬러 텔레비전으로 방송된 월드컵이었다.8. 주요 사건
- 자동차 산업의 변화: 1973년 석유 위기로 인해 연비가 좋은 소형차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22] 미국에서는 수입차가 인기를 얻었고, AMC 그레믈린, AMC 페이서와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미국산 자동차도 등장했다.[22] 제너럴 모터스는 1977년 대형 모델을 다운사이징하여 성공을 거두었다.[24] 유럽에서는 폭스바겐 골프, BMW 3, 5, 7 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같은 고연비, 고성능 차량이 등장했다.[24] 일본 자동차 산업은 저렴한 가격, 신뢰성, 연비를 바탕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27] 혼다 시빅은 높은 연비로 인해 잘 팔렸고, 토요타는 1975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차 브랜드가 되었다.[27]
- 여성 지도자의 부상: 여성주의가 확산되면서, 1970년대에는 여러 국가에서 여성이 국가원수 및 정부 수반으로 등장했다. 이사벨 페론은 1974년 아르헨티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서반구 최초의 여성 비군주 국가원수가 되었고,[28] 인디라 간디는 1977년까지 인도 총리직을 유지했으며, 마가렛 대처는 1979년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되었다.
8. 1. 대한민국
1970년대 대한민국은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다.- 1970년, 농촌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마을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농촌의 생활 환경 개선과 소득 증대에 기여했지만, 정부 주도의 획일적인 개발 방식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새마을운동의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민주적인 절차와 지역 주민의 참여를 더욱 강조해야 한다고 본다.
-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되어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텄다.[1] 그러나 같은 해 유신헌법이 공포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종신 집권 체제가 강화되었다.[1] 더불어민주당은 7·4 남북 공동 성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평화 통일을 추구해야 하지만, 유신헌법과 같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본다.
-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이 발생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탄압이 극심해졌다.[2]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 납치 사건과 같은 반인권적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며,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어 대중교통 발전에 기여했다.[3] 같은 해 육영수 저격 사건으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고, 민청학련 사건으로 많은 대학생들이 투옥되었다.[3] 더불어민주당은 육영수 여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만, 민청학련 사건과 같은 민주화 운동 탄압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 1975년, 인민혁명당 사건 관련자 8명이 사형당했다.[4] 더불어민주당은 사법살인으로 규정된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 1976년,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미국의 대한 외교 정책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5] 같은 해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으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었고, 에버랜드(자연농원)가 개장했다.[5] 더불어민주당은 코리아게이트와 같은 외세 의존적인 행태를 비판하며, 자주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과 같은 무력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해야 하지만, 동시에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 1977년, 이리역 폭발 사고가 발생하여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6]
- 1978년, 세종문화회관이 개장하여 문화 예술 발전에 기여했고,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으로 국제적인 긴장이 고조되었다.[7]
- 1979년, 부마 민주 항쟁이 일어나 유신 체제에 대한 저항이 거세졌다.[8] 같은 해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고, 12·12 군사 반란으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8] 더불어민주당은 부마 민주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확인했으며, 10·26 사건과 12·12 군사 반란은 민주주의를 짓밟은 군사 쿠데타로 규정한다.
1970년대는 경제 성장과 민주화 운동이 공존했던 시기였다. 보수 진영은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며 박정희 정권의 업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은 경제 성장의 과실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 탄압받았다는 점을 비판한다.
8. 2. 국제
1970년대는 냉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러 국제 분쟁과 정치적 격변이 일어난 시기였다.- 주요 사건:
- 1970년 미시마 유키오 할복 자살[30]
- 1971년 달러 쇼크[31]
- 1972년 뮌헨 올림픽 참사
-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32]
- 1973년 칠레 쿠데타
- 1975년 베트남 전쟁 종결[33]
- 1979년 이란 혁명[34]
- 1979년 제2차 오일 쇼크[35]
-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36]
- 냉전과 대리전:
미국과 소련은 핵무기 경쟁을 벌이면서도 직접 충돌은 피했지만, 베트남 전쟁,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앙골라 내전, 캄보디아 내전, 에티오피아 내전 등 세계 곳곳에서 대리전이 일어났다.[83][84]
- 종교 및 민족 분쟁: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아랍-이스라엘 분쟁과 욤키푸르 전쟁, 튀르키예의 키프로스 침공,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 레바논 내전, 오가덴 전쟁, 우간다-탄자니아 전쟁 등 종교 및 민족 갈등으로 인한 분쟁이 발생했다.
- 쿠데타:
시리아, 우간다, 칠레,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아르헨티나 등에서 쿠데타가 발생했으며, 이 중 상당수는 미국이나 소련의 영향을 받았다.
- 탈식민지화: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등 독립 운동이 계속되었고, 카네이션 혁명으로 포르투갈은 해외 식민지를 포기했다.
- 주요 테러 사건:
뮌헨 올림픽 참사를 비롯하여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 독일의 바데어-마인호프단 등 유럽의 무장 조직들이 테러를 일으켰다.
- 여성 지도자의 등장:
이사벨 페론, 인디라 간디, 마가렛 대처 등 여러 국가에서 여성이 국가원수 또는 정부 수반으로 등장했다.
9. 인물
1970년대에는 여러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제2차 여성주의 운동은 1960년대부터 이어져 1970년대에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베티 프리단, 베티 포드, 셜리 치좀, 벨라 아브주그, 로빈 모건, 케이트 밀렛, 엘리자베스 홀츠먼 등 많은 여성들이 평등 운동을 이끌었다. 헬렌 레디의 "나는 여자다"는 여성 해방 운동의 주제가가 되었다.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분열되기 시작했다. 흑인 민족주의 운동은 비폭력 전략에 대한 좌절감에서 비롯되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로버트 F. 케네디 암살 이후, 많은 흑인들은 고립을 받아들였다. 코레타 스콧 킹은 모든 차별의 종식을 촉구하며 여성 해방 운동을 돕고 격려했다. 전미 여성 회의에서는 인종 평등을 보장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동성애 운동은 하비 밀크와 같은 정치 인물들의 등장과 동성애 차별 금지 법안 통과 등으로 큰 진전을 이루었다. 프레디 머큐리, 앤디 워홀 등 유명인들의 커밍 아웃은 동성애 문화를 더욱 주목받게 했다.
배우
가수
작가
작가 이름 | 작가 이름 | 작가 이름 | 작가 이름 |
---|---|---|---|
더글러스 애덤스 | 마야 안젤루 | 아이작 아시모프 | 제임스 볼드윈 |
아미리 바라카 | 피터 벤치리 | 주디 블룸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레이 브래드버리 | 앙드레 브링크 | 옥타비아 버틀러 | 앤서니 버지스 |
존 르 카레 | 아서 C. 클라크 | 재키 콜린스 | 마이클 크라이튼 |
로버트슨 데이비스 | 리처드 도킨스 | 새뮤얼 R. 딜레이니 | 필립 K. 딕 |
제임스 디키 | E. L. 도크토로우 | 오리아나 팔라치 | 켄 폴릿 |
프레데릭 포사이스 | 존 파울스 | 카를로스 푸엔테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니키 조반니 | 윌리엄 골드먼 | 나딘 고르디머 | 귄터 그라스 |
어슐러 K. 르 귄 | 시머스 히니 | 로버트 A. 하인라인 | 프랭크 허버트 |
엘리너 히버트 | 잭 히긴스 | 존 어빙 | P. D. 제임스 |
리샤르 카푸슈친스키 | 스티븐 킹 | 잭 커비 | 스탠 리 |
로버트 러들럼 | 노먼 메일러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조지 R.R. 마틴 |
제임스 A. 미체너 | 토니 모리슨 | 아이리스 머독 | V. S. 나이폴 |
테리 프랫쳇 | 마리오 푸조 | 토머스 핀천 | 루스 렌델 |
해럴드 로빈스 | 필립 로스 | 에리히 제갈 | 모리스 센닥 |
닥터 수스 | 어윈 쇼 | 시드니 셸던 | 요세프 슈크보레츠키 |
윌리엄 스타이런 | 자클린 수산 | 헌터 S. 톰슨 | 존 업다이크 |
고어 비달 | 커트 보네것 | 앨리스 워커 | 톰 울프 |
허먼 우크 | 로저 젤라즈니 |
운동선수
선수 이름 | 선수 이름 | 선수 이름 | 선수 이름 |
---|---|---|---|
앙드레 더 자이언트 | 행크 애런 | 자코모 아고스티니 | 마리오 안드레티 |
카림 압둘자바르 | 카를로스 알베르토 토레스 | 바비 앨리슨 | 무하마드 알리 |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 | 네이트 아치볼드 | 아서 애쉬 | 미콜라 아빌로프 |
고든 뱅크스 | 릭 배리 | 셜리 바바쇼프 | 프란츠 베켄바워 |
조니 벤치 | 세르게이 벨로프 | 조지 베스트 | 데이브 빙 |
비외른 보르그 | 발레리 보르조프 | 빌 브래들리 | 테리 브래드쇼 |
루 브록 | 카린 뷰트너-얀츠 | 바비 찰턴 | 잭 찰턴 |
윌트 체임벌린 | 바비 클라크 | 로베르토 클레멘테 | 나디아 코마네치 |
지미 코너스 | 헤즐리 크로포드 | 빌리 커닝햄 | 데이브 코웬스 |
요한 크루이프 | 래리 슨카 | 케니 달글리시 | 데이브 드부슈셰르 |
우세비오 | 로이 엠머슨 | 줄리어스 어빙 | 필 에스포지토 |
크리스 에버트 | 칼턴 피스크 | 엠머슨 피티팔디 | 릭 플레어 |
조지 포먼 | 조 프레이저 | 월트 프레이저 | 클라우디오 젠틸레 |
조지 거빈 | 밥 깁슨 | 아티스 길모어 | 에본 굴라공 코울리 |
게일 굿리치 | 도로시 해밀 | 존 해블리체크 | 코니 호킨스 |
밥 헤이즈 | 엘빈 헤이즈 | 스펜서 헤이우드 | 오트마어 히츠펠트 |
울리 회네스 | 래리 홈즈 | 제임스 헌트 | 데니 헐름 |
자키 익스 | 안토니오 이노키 | 댄 이셀 | 레지 잭슨 |
자이르지뉴 | 케이트린 제너 (당시 브루스 제너) | 알베르토 후안토레나 | 가토 사와오 |
케빈 키건 | 킵초게 케이노 | 마리오 켐페스 | 켄모쓰 에이조 |
빌리 진 킹 | 올가 코르부트 | 가이 라플뢰르 | 니키 라우다 |
로드 레이버 | 모세스 말론 | 피트 마라비치 | 롤란트 마테스 |
밥 맥어두 | 윌리 매코비 | 존 매켄로 | 디노 메네긴 |
피에트로 메네아 | 얼 먼로 | 페드로 모랄레스 | 조 모건 |
에드윈 모세스 | 게르트 뮐러 | 캘빈 머피 | 존 네이버 |
나카야마 아키노리 | 요한 네스켄스 | 잭 니클라우스 | 안헬 니에토 |
척 노리스 | 켄 노턴 | 톰 오커 | 바비 오어 |
볼프강 오버라트 | 아널드 파머 | 짐 파머 | 버니 패런트 |
팻 패터슨 | 월터 페이지턴 | 데이비드 피어슨 | 펠레 |
토니 페레스 | 로니 페터슨 | 리처드 페티 | 로디 파이퍼 |
안네마리 모저-프뢸 | 할리 레이스 | 윌리스 리드 | 클레이 레가조니 |
카를로스 로이테만 | 더스티 로즈 | 리벨리노 | 케니 로버츠 |
오스카 로버트슨 | 프랭크 로빈슨 | 래리 로빈슨 | 피트 로즈 |
켄 로즈월 | 놀란 라이언 | 보르예 살밍 | 브루노 사마르티노 |
빅토르 사네예프 | 랜디 새비지 | 조디 셰크터 | 마이크 슈미트 |
아널드 슈워제네거 | 톰 시버 | 어니 셰이버스 | O. J. 심슨 |
스탠 스미스 | 소크라테스 | 레온 스핑크스 | 마크 스피츠 |
켄 스테이블러 | 윌리 스타겔 | 로저 스토바크 | 재키 스튜어트 |
빅 존 스터드 | 네이트 서몬드 | 루드밀라 투리셰바 | 쓰카하라 미쓰오 |
웨스 언셀드 | 기예르모 빌라스 | 라세 비렌 | 질 빌뇌브 |
베르티 포크츠 | 빌 월턴 | 아르센 벵거 | 제리 웨스트 |
폴 웨스트팔 | 조조 화이트 | 자말 윌크스 | 레니 윌킨스 |
맥 윌킨스 | 데이브 윈필드 | 케일 야보로 | 칼 야스트렘스키 |
디노 초프 | 지쿠 |
9. 1. 정치
1970년대는 쿠데타에 의한 정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정변의 상당수는 미국이나 소련이 배후에 있었다.년도 | 국가 | 주도 인물/세력 |
---|---|---|
1970년 | 시리아 | 하페즈 알아사드 |
1971년 | 우간다 | 이디 아민 |
1973년 | 칠레 |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
1974년 | 에티오피아 | 아만 안돔/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
1975년 | 방글라데시 | 방글라데시 육군 |
1976년 | 아르헨티나 |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프로세소 |
1979년 | 대한민국 | 전두환/하나회 (12·12 군사 반란) |
대한민국에서는 1979년 전두환과 하나회를 중심으로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났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권력 공백기에 발생한 사건으로,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1960년대에 시작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는 1970년대 초 급증했다. 1970년, 켄트 주립대학교 총격 사건은 전국적으로 충격과 불신을 불러일으켰고, 베트남 반전 시위의 상징이 되었다.
요약에 언급된 주요 정치인들은 다음과 같다.
- 대한민국
- 박정희: 유신 체제를 통해 장기 집권을 추구했으나,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 억압이라는 양면적인 평가를 받는다.
- 김대중: 박정희 정권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으며, 납치 사건 등 탄압을 받으면서도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 전두환: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5·18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등 폭압적인 통치를 했다.
- 미국
- 리처드 닉슨: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대통령으로, 대외 정책에서는 데탕트를 추구했지만 국내 정치에서는 분열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 지미 카터: 인권 외교를 강조하며 외교 정책을 펼쳤지만, 경제 문제와 이란 인질 사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 중국
- 마오쩌둥: 문화 대혁명을 일으켜 중국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했지만, 여전히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지도자로 군림했다.
- 저우언라이: 마오쩌둥의 충실한 동반자로, 외교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기여했다.
- 덩샤오핑: 마오쩌둥 사후 권력을 잡고 개혁 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중국 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 소련
-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내세워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미국과의 군비 경쟁을 지속했다.
- 영국
- 마거릿 대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여 영국 경제를 재편하려 했으나, 사회적 불평등 심화와 노동 운동 탄압으로 비판을 받았다.
- 이란
- 루홀라 호메이니: 이란 혁명을 이끌어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하고, 서방 세계와 대립하는 강경한 노선을 걸었다.
9. 2. 경제
1970년대는 대한민국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등 여러 주요 경제인들이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9. 3. 문화/예술/스포츠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의 영향으로 서구 사회에서는 성혁명이 일어나 이혼, 혼외 관계, 동성애가 점차 수용되기 시작했다. 1972년 영화 ''그린 도어 뒤에서''는 X등급 영화임에도 그 해 최고 수익을 올린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29] 플레이보이와 같은 기존 성 관련 잡지들은 펜트하우스, 허슬러 등 더욱 노골적인 잡지들의 등장으로 구식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말, 이러한 성적 자유에 대한 반발이 증가했고, 에이즈 유행은 성혁명의 종식에 영향을 주었다.[30]
1960년대부터 이어진 제2차 여성주의 운동은 1970년대에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70년 여성 참정권 50주년을 기념하여 여성 평등을 위한 파업과 시위가 열렸다. 1971년에는 런던에 세계 최초의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가 설립되었고, 이는 다른 국가에도 영향을 주어 1974년 암스테르담에 유럽 대륙 최초의 쉼터가 문을 열었다.[31][32] '자매애는 강하다', '성 정치'와 같은 책들이 출판되고, 197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로 낙태 권리가 헌법적으로 보장되면서 여성 권리 운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글로리아 스타이넘, 베티 프리단, 베티 포드, 셜리 치좀, 벨라 아브주그, 로빈 모건, 케이트 밀렛, 엘리자베스 홀츠먼 등 많은 여성들이 평등 운동을 이끌었다. 헬렌 레디의 "나는 여자다"는 여성 해방 운동의 주제가가 되었다.
여신 운동은 종교의 가부장적 사상에 맞서는 또 다른 운동이었다. 사회적 평등과 성차별적 법률 폐지를 위한 노력은 대부분 성공적이었지만, 수정헌법 비준 실패와 같은 한계도 있었다. 성별 임금 격차는 좁혀졌지만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제2차 여성주의 운동은 1982년 수정헌법 실패와 보수 지도부 등장으로 종식되었지만, 1990년대 초 제3차 여성주의 운동으로 이어졌다.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분열되기 시작했다. 흑인 민족주의 운동은 비폭력 전략에 대한 좌절감에서 비롯되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로버트 F. 케네디 암살 이후, 많은 흑인들은 고립을 받아들였다. 페미니즘 운동 또한 더 큰 민권 운동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코레타 스콧 킹은 모든 차별의 종식을 촉구하며 여성 해방 운동을 돕고 격려했다. 전미 여성 회의에서는 인종 평등을 보장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동성애 운동은 하비 밀크와 같은 정치 인물들의 등장과 동성애 차별 금지 법안 통과 등으로 큰 진전을 이루었다. 프레디 머큐리, 앤디 워홀 등 유명인들의 커밍 아웃은 동성애 문화를 더욱 주목받게 했다.
1971년 미국 수정헌법 제26조가 비준되어 투표 연령이 21세에서 18세로 낮아졌다. 이는 젊은 남성들이 투표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베트남 전쟁에 징집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비롯되었다.[33]
1970년대의 주요 배우, 작가, 운동선수는 다음과 같다:
배우
가수
작가
작가 이름 | 작가 이름 |
---|---|
더글러스 애덤스 | 마야 안젤루 |
아이작 아시모프 | 제임스 볼드윈 |
아미리 바라카 | 피터 벤치리 |
주디 블룸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레이 브래드버리 | 앙드레 브링크 |
옥타비아 버틀러 | 앤서니 버지스 |
존 르 카레 | 아서 C. 클라크 |
재키 콜린스 | 마이클 크라이튼 |
로버트슨 데이비스 | 리처드 도킨스 |
새뮤얼 R. 딜레이니 | 필립 K. 딕 |
제임스 디키 | E. L. 도크토로우 |
오리아나 팔라치 | 켄 폴릿 |
프레데릭 포사이스 | 존 파울스 |
카를로스 푸엔테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니키 조반니 | 윌리엄 골드먼 |
나딘 고르디머 | 귄터 그라스 |
어슐러 K. 르 귄 | 시머스 히니 |
로버트 A. 하인라인 | 프랭크 허버트 |
엘리너 히버트 | 잭 히긴스 |
존 어빙 | P. D. 제임스 |
리샤르 카푸슈친스키 | 스티븐 킹 |
잭 커비 | 스탠 리 |
로버트 러들럼 | 노먼 메일러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조지 R.R. 마틴 |
제임스 A. 미체너 | 토니 모리슨 |
아이리스 머독 | V. S. 나이폴 |
테리 프랫쳇 | 마리오 푸조 |
토머스 핀천 | 루스 렌델 |
해럴드 로빈스 | 필립 로스 |
에리히 제갈 | 모리스 센닥 |
닥터 수스 | 어윈 쇼 |
시드니 셸던 | 요세프 슈크보레츠키 |
윌리엄 스타이런 | 자클린 수산 |
헌터 S. 톰슨 | 존 업다이크 |
고어 비달 | 커트 보네것 |
앨리스 워커 | 톰 울프 |
허먼 우크 | 로저 젤라즈니 |
운동선수{| class="wikitable"
|-
! 선수 이름 !! 선수 이름
|-
| 앙드레 더 자이언트 || 행크 애런
|-
| 자코모 아고스티니 || 마리오 안드레티
|-
| 카림 압둘자바르 || 카를로스 알베르토 토레스
|-
| 바비 앨리슨 || 무하마드 알리
|-
|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 || 네이트 아치볼드
|-
| 아서 애쉬 || 미콜라 아빌로프
|-
| 고든 뱅크스 || 릭 배리
|-
| 셜리 바바쇼프 || 프란츠 베켄바워
|-
| 조니 벤치 || 세르게이 벨로프
|-
| 조지 베스트 || 데이브 빙
|-
| 비외른 보르그 || 발레리 보르조프
|-
| 빌 브래들리 || 테리 브래드쇼
|-
| 루 브록 || 카린 뷰트너-얀츠
|-
| 바비 찰턴 || 잭 찰턴
|-
| 윌트 체임벌린 || 바비 클라크
|-
| 로베르토 클레멘테 || 나디아 코마네치
|-
| 지미 코너스 || 헤즐리 크로포드
|-
| 빌리 커닝햄 || 데이브 코웬스
|-
| 요한 크루이프 || 래리 슨카
|-
| 케니 달글리시 || 데이브 드부슈셰르
|-
| 우세비오 || 로이 엠머슨
|-
| 줄리어스 어빙 || 필 에스포지토
|-
| 크리스 에버트 || 칼턴 피스크
|-
| 엠머슨 피티팔디 || 릭 플레어
|-
| 조지 포먼 || 조 프레이저
|-
| 월트 프레이저 || 클라우디오 젠틸레
|-
| 조지 거빈 || 밥 깁슨
|-
| 아티스 길모어 || 에본 굴라공 코울리
|-
| 게일 굿리치 || 도로시 해밀
|-
| 존 해블리체크 || 코니 호킨스
|-
| 밥 헤이즈 || 엘빈 헤이즈
|-
| 스펜서 헤이우드 || 오트마어 히츠펠트
|-
| 울리 회네스 || 래리 홈즈
|-
| 제임스 헌트 || 데니 헐름
|-
| 자키 익스 || 안토니오 이노키
|-
| 댄 이셀 || 레지 잭슨
|-
| 자이르지뉴 || 케이트린 제너 (당시 브루스 제너)
|-
| 알베르토 후안토레나 || 가토 사와오
|-
| 케빈 키건 || 킵초게 케이노
|-
| 마리오 켐페스 || 켄모쓰 에이조
|-
| 빌리 진 킹 || 올가 코르부트
|-
| 가이 라플뢰르 || 니키 라우다
|-
| 로드 레이버 || 모세스 말론
|-
| 피트 마라비치 || 롤란트 마테스
|-
| 밥 맥어두 || 윌리 매코비
|-
| 존 매켄로 || 디노 메네긴
|-
| 피에트로 메네아 || 얼 먼로
|-
| 페드로 모랄레스 || 조 모건
|-
| 에드윈 모세스 || 게르트 뮐러
|-
| 캘빈 머피 || 존 네이버
|-
| 나카야마 아키노리 || 요한 네스켄스
|-
| 잭 니클라우스 || 안헬 니에토
|-
| 척 노리스 || 켄 노턴
|-
| 톰 오커 || 바비 오어
|-
| 볼프강 오버라트 || 아널드 파머
|-
| 짐 파머 || 버니 패런트
|-
| 팻 패터슨 || 월터 페이지턴
|-
| 데이비드 피어슨 || 펠레
|-
| 토니 페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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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긴장을 내던지고 디스코, 디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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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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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아이디어(7) - 아타리(Atari) 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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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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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미국의 국가안보와 핵억지 전략의 변화: 트루먼-트럼프 행정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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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역연구논총
201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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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기 아시아는 왜 전쟁과 폭력으로 물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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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2023-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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