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네그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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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로네그로산은 1850년 이후 최소 23번 분화한 니카라과의 활화산이다. 이 화산은 스트롬볼리식, 벌칸식, 서브 플리니식 분화 등 다양한 유형의 폭발을 보였으며, 용암류, 화산재 낙하, 산사태로 인한 피해를 입혔다. 1923년, 1947년, 1968년, 1992년 분화는 특히 규모가 컸으며, 인근 지역의 대규모 대피와 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현재 세로네그로산은 지진, 가스 농도, 지표 변형, 온도 변동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하며, 분화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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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네그로산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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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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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세로 네그로 |
지리적 위치 | 레온 주, 니카라과 |
산맥 | 코르디예라 데 로스 마리비오스 산맥 |
좌표 | 12.506° N, 86.702° W |
높이 | 728 m |
지질학적 정보 | |
산의 종류 | 신더 콘 |
마지막 분화 | 1999년 8월 |
추가 정보 | |
거리 | 10 km |
퇴적 속도 | 9 cm |
2. 분화 역사
세로네그로산은 1850년 첫 분화가 기록된 이후 현재까지 여러 차례 분화했다.
- 1850년 ~ 1929년: 비교적 짧은 간격으로 여러 차례 분화했다.
- 1850년 4월 13일 분화 (VEI 2): 중앙 화구 폭발, 용암류 발생, 토지/재산 피해.[1]
- 1867년 11월 14일 분화 (VEI 2): 방사상 균열 및 폭발, 용암류 발생.[1]
- 1899년, 1914년, 1919년 분화 (VEI 2).[1]
- 1923년 분화 (VEI 3): 세로네그로산 역사상 가장 큰 분화 중 하나.[1]
- 1929년 분화: 측면 화구, 방사상 균열 폭발, 용암류 다량 발생.[1]
- 1947년 ~ 1950년:
- 1947년 분화 (VEI 3): 기록된 가장 큰 분화 중 하나, 대피령, 토지/재산 피해.[1]
- 1948년, 1949년 분화: 스트롬볼리식 분화.[1]
- 1950년 분화: 서브 플리니식 분화.[1]
- 1954년 ~ 1971년:
- 1954년, 1957년 분화: 스트롬볼리식 분화, 용암류로 인한 토지 피해.[1]
- 1960년 분화 (VEI 3): 주변 토지 피해.[1]
- 1961년 분화 (VEI 1): 기록된 가장 작은 규모 분화.[1]
- 1962년, 1963년 분화: 중앙 화구 분화.[1]
- 1968년 분화 (VEI 3): 크리스토 레이 분화구 형성, 대규모 대피, 용암류 전진.[1]
- 1969년 분화 (VEI 1).[1]
- 1971년 분화 (VEI 3): 준 플리니식 분화, 대규모 건물 붕괴, 농작물 피해.[1]
- 1992년 이후:
- 1992년 분화 (VEI 3): 20년 이상 잠잠하다가 대규모 분화, 대피, 인명 피해.
- 1995년 분화: 스트롬볼리식 분화, 화쇄류 발생.
- 1999년 분화 (VEI 1): 소규모 분화, 지진으로 촉발.
2. 1. 1850년 ~ 1929년 분화
1850년 4월 13일, 세로네그로산의 첫 분화가 기록되었으며, 5월 27일까지 지속되었다. 중앙 화구에서 폭발성 분화가 발생하고 용암류가 흘러나와 토지와 재산 피해를 입혔다. 화산 폭발 지수(VEI)는 2로, 스트롬볼리식/벌칸식 분화로 분류되었다. 용암 부피는 5.4천m3, 테프라 부피는 65만m3였다.[1]1867년 11월 14일에는 두 번째 분화가 발생하여 11월 30일까지 이어졌다. 방사상 균열 및 폭발성 분화와 함께 NE-SW 추세선 균열을 따라 용암류가 흘렀다. VEI는 역시 2였고, 테프라 부피는 860만m3였다.[1]
1899년 11월 22일부터 11월 29일까지 세 번째 분화가 발생했다. 폭발성 분화로 토지 피해가 발생했으며, VEI는 2, 테프라 부피는 170만m3였다.[1]
1914년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중앙 화구에서 폭발적인 분화가 있었다. 산사태로 토지 피해가 늘었지만, 인명 피해는 없었다. VEI는 2였고, 테프라 부피는 280만m3였다.[1]
1919년 6월 20일부터 6월 30일까지 다시 분화하여 폭발성 분화가 일어났고, VEI는 2였다. 이 시기에는 테프라나 용암 부피가 기록되지 않았다.[1]
1923년 10월 23일부터 12월 11일까지 세로네그로산은 정상과 북쪽 상부 측면을 따라 분화했다. 중앙 화구와 방사상 균열에서 폭발이 발생했으며, 용암류가 기록된 VEI 3 서플리니안 분화였다. 이는 화산 역사상 가장 큰 분화로, 용암 부피는 1000만m3, 테프라 부피는 3600만m3였다.[1]
1929년 2월 10일에 분화하여 3월까지 화산 활동이 지속되었다. 측면(편심) 화구와 방사상 균열도 폭발적으로 분화하여 많은 용암류가 흘렀다. 분출된 용암의 부피는 10만m3였고, VEI는 2였다.[1]
2. 2. 1947년, 1948년, 1950년 분화

1947년 7월 9일, 18년 만에 다시 분화했는데, 이 분화는 지금까지 기록된 가장 큰 분화였다. 화산폭발지수(VEI)는 정상부와 북동쪽 사면에서 3으로 기록되었으며, 중앙 화구 분화, 측면 분출 및 용암류가 발생했다. 말파이시요 마을에 대피령이 내려졌으며, 화산 폭발로 인해 주요 토지와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기록된 용암 부피는 380만m3였고, 테프라 부피는 3100만m3였다.[1]
1948년 3월 31일, 세로 네그로 화산은 중앙 화구에서 스트롬볼리식 분화(VEI 2)를 기록했다. 용암이나 테프라 부피는 기록되지 않았다.[1] 1949년 6월에도 비슷한 분화가 일어났으며, VEI 2 분화가 중앙 화구에서 폭발했다.[1]
1950년 11월 21일부터 12월 17일까지 세로 네그로 화산의 중앙 화구에서 서브 플리니식 VEI 3 폭발적인 벌칸식 분화가 발생했다. 용암류가 발생했지만, 대피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 분화의 용암 부피는 10만m3였고, 테프라 부피는 3800만m3였다.[1]
2. 3. 1954년 ~ 1971년 분화
1954년 2월, 세로네그로산의 중앙 화구에서 스트롬볼리식 분화(VEI 2)가 발생했다.[1] 1957년 9월 4일부터 24일까지 세로네그로산 정상과 동쪽 사면에서 VEI 2의 분화가 있었다.[1] 용암류가 발생하여 주변 토지가 훼손되었으며, 용암 부피는 450만m3, 테프라 부피는 280만m3에 달했다.[1]1960년 9월 28일, 정상과 남쪽 사면에서 폭발이 발생했고, 12월 26일까지 화산 활동이 계속되었다.[1] 방사형 열구와 중앙 화구 분화가 발생했으며, VEI는 3으로 기록되었다.[1] 용암류로 인해 주변 토지가 피해를 보았고, 용암 부피는 520만m3, 테프라 부피는 3400만m3였다.[1]
1961년 10월 25일, 세로네그로산의 북동쪽 사면 열구에서 분화가 발생했다.[1] 방사형 열구 분화와 용암류가 관찰되었지만, VEI는 1로 기록되었고, 용암이나 테프라 부피는 기록되지 않았다.[1] 이는 기록된 세로네그로산 분화 중 가장 작은 규모였다.[1]
1962년 3월 21일, 중앙 화구에서 분화가 발생하여 4월 초까지 지속되었다.[1] VEI는 2로 기록되었고, 용암류가 관찰되었지만 토지 피해는 없었다.[1] 1963년 3월 21일, 세로네그로산의 중앙 화구에서 VEI 1의 분화가 발생했다.[1]
1968년 10월 23일부터 12월 10일까지 화산 활동은 세로네그로산 정상과 남쪽 사면에서 분출이 일어난 크리스토 레이(Cristo Rey) 분화구 형성을 야기했으며, 부 플리니안 VEI 3의 폭발이었다.[1] 새로운 분화구는 길이 750m, 폭 600m, 두께 3m인 용암류를 형성했다.[1] 과도한 화산재 낙하로 인해 화산 근처 13개 마을에서 27일에 대피가 이루어졌다.[1] 니카라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레온에서는 1cm 이상의 화산재 낙하가 기록되었고, 추가적인 대규모 대피가 이루어졌다.[1] 용암류는 하루 23m 속도로 전진했으며, 세로네그로산의 세 개 분화구에서 용암이 솟아올라 공중으로 30m 높이까지 솟아오르면서 추가적인 토지 피해를 입혔다.[1] 폭발성 화산재 기둥은 2.3km~4.8km 높이에 이르렀다.[1] 또한 분화구에서 나오는 고온 가스는 120m 높이까지 상승했으며, 이 가스는 화산에서 5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1] 화산 활동 중단 시, 용암 부피는 총 690만m3, 테프라 부피는 총 2700만m3였다.[1]

1969년 12월 19일부터 29일까지 중앙 분화구가 폭발한 후 VEI 1의 분화가 일어났다.[1] 1971년 2월 3일부터 14일까지 세로 네그로 산 주변 마을은 정상에서 준 플리니식 VEI 3 분화와 새로운 동쪽 측면 형성 및 분화로 인해 다시 대피했다.[1] 화산탄은 약 600m 상공으로 솟아올랐고, 분화 사이에는 격렬한 가스가 방출되었다.[1] 화산재 기둥은 약 10km 높이였고, 테프라 양은 5800만m3 (300km2 이상)으로 지역 농작물과 건물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1] 레온 시에만 18cm의 화산재가 기록되었고, 이로 인해 대규모 건물 붕괴가 발생했다.[1]
2. 4. 1992년 이후 분화
1992년 4월 9일, 세로네그로산은 20년 이상 잠잠하다가 대규모 분화를 일으켰다. 이 분화는 5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주요 부분 플리니식 분화(VEI 3)는 이틀 동안 발생하여 약 7킬로미터 높이의 화산재 기둥을 생성했다. 급수 시스템 고장으로 2만 명 이상이 대피했고, 여러 명이 사망했다. 테프라 부피는 2.6 x 107 m3로 측정되었으며, 레온 대부분 지역에 약 4센티미터의 화산재가 쌓여 많은 지붕이 무너지고 추가적인 부상과 사망자가 발생했다.1995년 5월 29일, 화산 활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단계에서 작은 프리틱 분화가 하루 평균 100~160회 발생했다. 스트롬볼리식 분화는 200~1000미터 높이의 대류성 화산재 기둥을 생성했으며, 79일 동안 지속되었다. 6월 2일에는 북서쪽 측면에서 낮은 에너지의 화쇄류가 관찰되었다. 6월 6일 이후 분화 횟수는 하루 30~40회로 감소했다. 7월 19일까지 95일 동안 화산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11월 중순에 재개되었다. 13일 동안 지속된 두 번째 단계에서는 분화가 더 강력해져 지름 최대 2미터의 화산탄과 블록이 분출되었다. 화산재 기둥은 2~2.5미터 높이에 도달했다. 화산 폭발 지수(VEI)는 2로 측정되었으며, 중앙 통풍구 폭발, 화쇄류, 프리틱 폭발, 용암 돔 압출이 특징이었다. 새로운 용암은 1992년 분화구의 약 2/3를 채웠고, 추가적인 용암류는 북쪽으로 1.5km까지 뻗어 나갔다. 화산재 낙하로 레온(화산에서 약 20km)에서 하루 평균 2mm의 퇴적물이 기록되었지만, 주변 마을 6,000명이 대피하여 사망자는 없었다. 용암류 부피는 8.0 x 106 m3, 테프라 부피는 5.8 x 106 m3였으며, 화산재 원추 높이가 약 50미터 증가했다.
1999년 8월 5일, 세로네그로산의 마지막 화산 활동이 발생하여 2일 동안 지속되었다. 3시간 동안 규모 5.2의 지진 3회가 발생하여 소규모 분화를 촉발했다. 이는 세로네그로산 역사상 대규모 지진이 분화를 앞지른 첫 사례였다. VEI는 1로 기록되었으며, 남쪽 측면(크리스토 레이 분화구 근처)에서 방사형 열구 분화와 함께 폭발적이고 마그마성 분화가 일어나 세 개의 새로운 환기구가 형성되었다. 주변 마을에서 소규모 대피가 이루어졌지만, 휘발성이 낮고 결정성이 높은 현무암질 마그마는 용암 부피가 6 x 105 m3에 불과했다. 테프라 부피는 106m3 범위였다. 1999년 화산 활동은 구조적으로 유발되었으며, 지진이 없었다면 분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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