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노부요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안도 노부요리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다. 2대 번주 안도 노부카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사촌 안도 노부요시의 양자가 된 후 가문을 상속받았다. 덴포 대기근으로 번 재정이 어려워졌으며, 47세 또는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뒤는 장남 안도 노부마사가 이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미카와 안도씨 - 안도 노부마사
안도 노부마사는 에도 시대 이와키 다이라 번의 번주이자 막부 로주로서, 공무합체 운동을 추진하여 가즈노미야 지카코와 도쿠가와 이에모치의 결혼을 성사시켰으나, 사카시타 문 밖의 변으로 실각하고 오우에쓰 열번동맹에 가담하여 신정부군에 저항하다 패배하였다. - 미카와 안도씨 - 다카사키번
에도 시대 고즈케국 다카사키 지역을 다스린 다카사키번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이 나오마사에게 성을 건설하게 하면서 시작되어 여러 가문이 통치했으며, 막부 말기 덴구토 당의 난 진압, 보신 전쟁 때 신정부군에 합류 후 폐번치현으로 폐지되었다. - 이와키 다이라번주 - 안도 노부마사
안도 노부마사는 에도 시대 이와키 다이라 번의 번주이자 막부 로주로서, 공무합체 운동을 추진하여 가즈노미야 지카코와 도쿠가와 이에모치의 결혼을 성사시켰으나, 사카시타 문 밖의 변으로 실각하고 오우에쓰 열번동맹에 가담하여 신정부군에 저항하다 패배하였다. - 이와키 다이라번주 - 나이토 마사키
나이토 마사키는 에도 시대 이와키타이라 번의 번주로, 양자로서 번주 자리를 계승했으나 어린 나이로 아버지의 후견을 받았고, 재임 중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문책으로 노베오카 번으로 전봉되었다. - 1847년 사망 - 펠릭스 멘델스존
펠릭스 멘델스존은 1809년 독일에서 태어난 작곡가, 피아니스트, 지휘자이며,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서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바흐의 음악 부활에 기여했으며,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했다. - 1847년 사망 - 쇼이쿠왕
쇼이쿠왕은 류큐 왕국 제2쇼씨 왕조의 제18대 국왕이자 류큐 국왕(재위 1835년 ~ 1847년)으로, 아버지 쇼코 왕의 사망 후 즉위하여 재정 재건 정책을 펼치고 학문 진흥에 힘썼으며, 서구 열강의 통상 요구에 제한적인 교류를 허용했다.
안도 노부요리 | |
---|---|
인물 정보 | |
씨명 | 안도 노부요리 |
원명 | 하마노스케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출생 | 교와 원년 10월 11일 (1801년11월 16일) |
사망 | 고카 4년 6월 5일 (1847년7월 16일) |
묘소 | 도쿄도스기나미구에이후쿠의 세이간인 |
관위 | 종5위하, 종4위하이세노카미, 쓰시마노카미 |
막부 | 에도 막부 소자반 |
주군 | 도쿠가와 이에나리, 도쿠가와 이에요시 |
번 | 무쓰이와키 다이라 번 번주 |
씨족 | 안도 씨 |
부모 | 아버지: 안도 노부카오루, 양아버지: 안도 노부요시 |
형제 | 노부오키, 노부요리 |
배우자 | 마쓰다이라 노부아키라 딸 종 |
자녀 | 노부마사, 이타쿠라 가쓰나리, 마사코, 리키코 |
계명 | 선조인덴코요초지토쿠다이고지 |
번주 재임 정보 | |
직책 | 이와키 다이라 번 번주 (안도가) |
대수 | 4 |
임기 | 1829년 ~ 1847년 |
2. 생애
분카 14년(1817년) 7월 28일, 11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나리를 알현했다.
2. 1. 출생과 가문 상속
교와 원년(1801년) 10월 11일(혹은 분카 3년(1806년) 10월 12일)에 2대 번주 안도 노부카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분카 9년(1812년)에 아버지가 사망했을 때, 형 노부모토는 이미 요절했고 노부요리는 아직 어렸기 때문에, 사촌 노부요시가 가문을 계승했다. 노부요시는 친아들이 없어 노부요리를 양자로 삼았다.분세이 12년(1829년) 7월 5일, 노부요시가 은거하면서 가문을 상속받았다.
2. 2. 번주 재임
분세이 3년(1820년) 12월 16일, 종5위하 이세노카미에 서임되었고, 이후 쓰시마노카미로 개명했다.[1] 분세이 12년(1829년) 7월 5일, 노부요시의 은거로 인해 가문을 계승했다.[1] 덴포 2년(1831년) 8월 17일, 주자반에 취임했다.[1]번정에서는 덴포 대기근이나 장마로 인한 냉해 등으로 3000명이 넘는 아사자가 발생하여, 번 재정이 곤궁해졌다.[1] 고카 4년(1847년) 6월 5일에 사망했다.[1] 향년 47세, 혹은 42세.[1] 뒤는 장남 노부마사가 이었다.[1]
3. 가계
참조
[1]
문서
板倉勝貞の養子
[2]
문서
安藤信勇の母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