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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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안익조(安益祚, 1903년 ~ 1950년 11월 7일)는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군인입니다. 작곡가 안익태의 둘째 형입니다.
생애 및 활동
- 1903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 도쿄제국대학 농학부 수의학과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했습니다.
- 일본 유학 중에는 동경 유학생야구단에서 야구선수로 활동하며 야구단가를 작곡하기도 했고, 경성제대 재학 시에는 경성제대 만돌린 구락부 지휘자로 활동했습니다.
- 졸업 후에는 일본컬럼비아레코드사 경성지점 문예부장으로 일하면서 게이오기주쿠대학 만돌린 구락부 지휘자로도 활동했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독창을 하기도 했습니다.
- 만주군 군의관 소교로 복무하며 친일반민족행위를 하였고, 이 때문에 안익조는 동생 안익태와 함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습니다.
- 광복 후에는 경찰이 되어 경상북도 군위경찰서장을 지냈습니다.
- 1949년 6월 육군 헌병 소령으로 특별 임관했습니다.
- 제7사단 헌병대 중령으로 재직 중 6.25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되자, 군사비밀위원회에 자진 출두하여 자신의 집을 사무실로 제공하고, 무기와 실탄을 인민군에게 제공하고, 국군의 전투 상황을 발설하는 등 부역 행위를 했습니다.
-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된 후 부역자로 체포되어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50년 11월 7일 총살되었습니다.
안익조는 동생 안익태처럼 음악과 체육에 재능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행위를, 한국 전쟁 때는 부역 행위를 하는 등 자신의 안위를 위해 행동했습니다.
안익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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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안익조 |
생애 | 1903년 ~ 1950년 11월 7일 |
출생지 | 평양 |
사망지 | 알 수 없음 |
군사 복무 | |
소속 | 일본 제국, 조선 |
복무 기간 | 알 수 없음 |
최종 계급 | 만주군 소교/대한민국 육군 중령 |
부대 | 알 수 없음 |
지휘 | 알 수 없음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알 수 없음 |
서훈 내역 | 알 수 없음 |
기타 이력 | 알 수 없음 |
기타 | |
관련 뉴스 | 서울신문 - 부역자 26명 사형집행 (1950년 11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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