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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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앤서니 베리는 영국의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1925년에 태어나 1984년에 사망했다. 그는 이튼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선데이 타임스의 부편집장, 이후 선데이 크로니클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1964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마거릿 대처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으며, 1983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베리는 1984년 브라이튼 호텔 폭탄 테러로 사망했으며, 그의 딸 조 베리는 테러범과의 화해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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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베리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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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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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앤서니 조지 베리 |
출생 | 1925년 2월 12일 |
출생지 | 이턴, 버킹엄셔, 잉글랜드 |
사망 | 1984년 10월 12일 |
사망지 | 브라이턴, 이스트서식스주, 잉글랜드 |
사망 원인 | 폭탄 테러 |
국적 | 영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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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력 | |
소속 정당 | 보수당 |
의회 의원 | 엔필드 사우스게이트 사우스게이트 (1964년–1983년) |
의원 임기 시작 | 1964년 10월 15일 |
의원 임기 종료 | 1984년 10월 12일 |
차관보 | 1979년 5월 5일 |
차관보 임기 종료 | 1981년 9월 30일 |
가계부 감사관 | 1981년 9월 30일 |
가계부 감사관 임기 종료 | 1983년 2월 17일 |
가계 재무관 | 1983년 2월 17일 |
가계 재무관 임기 종료 | 1983년 6월 11일 |
개인 정보 | |
배우자 | 메리 버크 로슈 (1954년 결혼, 1966년 이혼) 세라 클리퍼드-터너 (1966년 결혼) |
자녀 | 6명 (조 포함) |
부모 | 고머 베리 |
학력 | 크라이스트 처치, 옥스퍼드 |
2. 초기 생애 및 교육
앤서니 베리는 1925년 버킹엄셔의 이튼에서 신문 재벌 고머 베리, 1대 자작 켐슬리와 그의 아내 메리 홈즈의 여섯 번째이자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2] 이튼 칼리지와 크라이스트 처치, 옥스퍼드에서 교육을 받았고,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2] 1943년부터 1947년까지 웰시 근위대에서 중위로 복무했다.[2]
근위대에 사임서를 제출한 후 베리는 언론계에 입문했다.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선데이 타임스의 부편집장으로 일했으며, 이후 선데이 크로니클의 편집장으로 임명되었다.[2]
근위대에서 사임한 후, 베리는 언론계에 진출하여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선데이 타임스의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이후 선데이 크로니클의 편집장을 역임했다.[2]
3. 언론 경력
4. 정치 경력
1962년, 베리는 글래모건의 고등 보안관으로 임명되었다.[3]
보수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1964년 총선에서 사우스게이트(후에 엔필드 사우스게이트)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1] 1979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한 후 마거릿 대처 정부에서 활동했다. 그는 1979년부터 1981년까지 궁내 부총장을, 1981년부터 1983년까지 궁내 감사를 역임했으며, 1983년에 궁내 재무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983년 12월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4] 사망 당시 그는 대처 정부의 원내 부총무였다.[5]
4. 1. 초기 정치 활동
근위대에서 사임한 후, 베리는 언론계에 진출하여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선데이 타임스의 부편집장으로 일했다. 이후 선데이 크로니클의 편집장을 역임했다.[2]
1962년, 베리는 글래모건의 고등 보안관으로 임명되었다.[3]
1964년 총선에서 보수당 소속으로 사우스게이트(후에 엔필드 사우스게이트)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1] 1979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한 후 마거릿 대처 정부에서 활동했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궁내 부총장을, 1981년부터 1983년까지 궁내 감사를 역임했으며, 1983년에 궁내 재무관으로 임명되었다. 1983년 12월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4] 사망 당시 그는 대처 정부의 원내 부총무였다.[5]
4. 2. 국회의원 활동
근위대에 사임서를 제출한 후 베리는 언론계에 입문했다. 그는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선데이 타임스의 부편집장으로 일했으며, 이후 선데이 크로니클의 편집장으로 임명되었다.[2]
1962년, 베리는 글래모건의 고등 보안관으로 임명되었다.[3]
보수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1964년 영국 총선에서 사우스게이트(후에 엔필드 사우스게이트)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1] 1979년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한 후 마거릿 대처 정부에서 활동했다. 그는 1979년부터 1981년까지 궁내 부총장을, 1981년부터 1983년까지 궁내 감사를 역임했으며, 1983년에 궁내 재무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983년 12월에 기사작위를 받았다.[4] 사망 당시 그는 대처 정부의 원내 부총무였다.[5]
4. 3. 대처 정부 요직 역임
앤서니 베리는 근위대 사임 후 언론계에 입문하여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선데이 타임스의 부편집장, 이후 선데이 크로니클의 편집장으로 일했다.[2] 1962년에는 글래모건의 고등 보안관으로 임명되었다.[3]
1964년 총선에서 보수당 소속으로 사우스게이트(후에 엔필드 사우스게이트)의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1] 1979년 총선에서 보수당 승리 후 마거릿 대처 정부에서 요직을 역임했다. 1979년부터 1981년까지 궁내 부총장, 1981년부터 1983년까지 궁내 감사를 역임했고, 1983년에는 궁내 재무관으로 임명되었다. 1983년 12월에 기사를 받았다.[4] 사망 당시 그는 대처 정부의 원내 부총무였다.[5]
5. 사망
1984년 10월 12일, 베리는 브라이튼 호텔 폭탄 테러로 살해당했다. 당시 그는 보수당 전당대회 기간 중 그랜드 브라이튼 호텔에 설치된 폭탄으로 사망했으며, 향년 59세였다.[8] 그의 부인이자 레이디 베리는 폭발로 부상을 입었으며 그가 사망할 당시 의원으로 당선된 지 20주년을 3일 앞두고 있었다.
베리의 사망으로 인해 1984년 엔필드 사우스게이트 보궐선거가 치러졌으며, 이 선거에서는 미래의 내각 장관 마이클 포티요가 승리했다.
1986년 9월, 폭탄 테러를 저지른 패트릭 매기는 8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성 금요일 협정에 따라 1999년에 석방되었다.[6][7]
매기가 석방된 이후, 베리의 딸 조 베리는 폭탄 테러에 대한 화해를 모색하고, 그녀의 말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브라이튼 폭탄 테러범과 논란이 많은 일련의 만남을 가져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논의 중 일부는 2001년 12월 BBC Two에서 방영된 ''Everyman'' 프로그램으로 촬영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만남으로 인해 다른 IRA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8][9]
폭탄 테러 25주년인 2009년 10월 12일, 베리의 엔필드 사우스게이트 선거구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그의 미망인(도너휴 경의 부인)과 딸 사샤는 새로 명명된 체이스빌 퍼레이드의 서 앤서니 베리 하우스에서 그를 기리는 명판을 공개했다. 윈치모어 힐
5. 1. 브라이튼 호텔 폭탄 테러
1984년 10월 12일, 베리는 브라이튼 호텔 폭탄 테러로 살해당했다. 당시 그는 보수당 전당대회 기간 중 그랜드 브라이튼 호텔에 설치된 폭탄으로 사망했으며, 향년 59세였다.[8] 그의 부인 레이디 베리는 폭발로 부상을 입었으며 그가 사망할 당시 의원으로 당선된 지 20주년을 3일 앞두고 있었다. 베리의 사망으로 인해 1984년 엔필드 사우스게이트 보궐선거가 치러졌으며, 이 선거에서는 미래의 내각 장관 마이클 포티요가 승리했다.1986년 9월, 폭탄 테러를 저지른 패트릭 매기는 8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성 금요일 협정에 따라 1999년에 석방되었다.[6][7] 매기가 석방된 이후, 베리의 딸 조 베리는 폭탄 테러에 대한 화해를 모색하고, 그녀의 말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브라이튼 폭탄 테러범과 논란이 많은 일련의 만남을 가져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논의 중 일부는 2001년 12월 BBC Two에서 방영된 ''Everyman'' 프로그램으로 촬영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만남으로 인해 다른 IRA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8][9]
폭탄 테러 25주년인 2009년 10월 12일, 베리의 엔필드 사우스게이트 선거구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그의 미망인(도너휴 경의 부인)과 딸 사샤는 새로 명명된 체이스빌 퍼레이드의 서 앤서니 베리 하우스에서 그를 기리는 명판을 공개했다. 윈치모어 힐
5. 2. 보궐 선거
1984년 10월 12일, 베리는 보수당 전당대회 기간 중 그랜드 브라이튼 호텔에 설치된 폭탄으로 인해 발생한 브라이튼 호텔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향년 59세였다.[8] 그의 부인 레이디 베리는 폭발로 부상을 입었다. 당시 베리는 의원으로 당선된 지 20주년을 3일 앞두고 있었다.베리의 사망으로 인해 1984년 엔필드 사우스게이트 보궐선거가 치러졌으며, 이 선거에서는 마이클 포티요가 승리했다.
1986년 9월, 폭탄 테러를 저지른 패트릭 매기는 8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성 금요일 협정에 따라 1999년에 석방되었다.[6][7]
매기가 석방된 이후, 베리의 딸 조 베리는 가해자와 직접 만나 화해를 모색하는 행보를 보였다.[8][9] 이들의 만남은 2001년 12월 BBC Two에서 방영된 ''Everyman'' 프로그램으로 촬영되기도 했다.
폭탄 테러 25주년인 2009년 10월 12일, 베리의 엔필드 사우스게이트 선거구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그의 미망인과 딸 사샤는 새로 명명된 체이스빌 퍼레이드의 '서 앤서니 베리 하우스'에서 그를 기리는 명판을 공개했다. 윈치모어 힐
5. 3. 패트릭 매기와의 화해 시도
1984년 10월 12일, 베리는 브라이튼 호텔 폭탄 테러로 살해당했다.[8] 당시 그는 보수당 전당대회 기간 중 그랜드 브라이튼 호텔에 설치된 폭탄으로 사망했으며, 향년 59세였다.[8] 그의 부인은 폭발로 부상을 입었으며, 베리는 의원으로 당선된 지 20주년을 3일 앞두고 사망했다.[8]1986년 9월, 폭탄 테러를 저지른 패트릭 매기는 8번의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성 금요일 협정에 따라 1999년에 석방되었다.[6][7]
매기가 석방된 이후, 베리의 딸 조 베리는 폭탄 테러에 대한 화해를 모색하고, 그녀의 말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브라이튼 폭탄 테러범과 논란이 많은 일련의 만남을 가져 주목을 받았다.[8] 이들의 논의 중 일부는 2001년 12월 BBC Two에서 방영된 ''Everyman'' 프로그램으로 촬영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만남으로 인해 다른 IRA 피해자 가족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8][9]
6. 개인사
1954년, 웨스트민스터에서 베리는 모리스 로치, 4대 펌보이 남작의 딸인 메리 신시아 로치(1934–2023)와 결혼했다.[2] 메리의 여동생 프란시스 샨드 키드는 존 스펜서, 제8대 스펜서 백작과 결혼했고, 따라서 베리는 다이애나, 웨일스 공녀의 삼촌이 되었다.[10]
베리와 그의 아내 메리는 알렉산드라 메리(1955년 출생), 안토니아 루스와 조앤나 신시아 (조)(쌍둥이, 1957년 출생), 그리고 에드워드 앤서니 모리스(1960년 출생) 등 4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은 1966년에 이혼했다.[2]
그 후, 그는 1966년 런던 첼시에서 사라 클리포드-터너와 결혼했고, 조지(1967년 출생)와 사샤 제인(1969년 출생) 등 두 명의 자녀를 더 두었다.[2]
사망 직전, 베리는 차량을 세우려던 두 명의 경찰관을 고의로 들이받아 그 중 한 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보행자 두 명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혐의로 음주 운전 및 위험 운전 혐의로 기소되었다.[11]
6. 1. 첫 번째 결혼과 자녀
앤서니 베리는 1954년 웨스트민스터에서 모리스 로치, 4대 펌보이 남작의 딸인 메리 신시아 로치(1934–2023)와 결혼했다.[2] 메리의 여동생 프란시스 샨드 키드는 존 스펜서, 제8대 스펜서 백작과 결혼했고, 따라서 베리는 다이애나, 웨일스 공녀의 삼촌이 되었다.[10]베리와 메리 사이에는 알렉산드라 메리(1955년 출생), 안토니아 루스와 조앤나 신시아 (조)(쌍둥이, 1957년 출생), 그리고 에드워드 앤서니 모리스(1960년 출생) 등 4명의 자녀가 있었다. 이들은 1966년에 이혼했다.[2]
6. 2. 두 번째 결혼과 자녀
1954년, 앤서니 베리는 웨스트민스터에서 모리스 로치, 4대 펌보이 남작의 딸인 메리 신시아 로치(1934–2023)와 결혼했다.[2] 메리의 여동생 프란시스 샨드 키드는 존 스펜서, 제8대 스펜서 백작과 결혼했고, 따라서 베리는 다이애나, 웨일스 공녀의 삼촌이 되었다.[10]베리와 그의 아내 메리는 알렉산드라 메리(1955년 출생), 안토니아 루스와 조앤나 신시아 (조)(쌍둥이, 1957년 출생), 그리고 에드워드 앤서니 모리스(1960년 출생) 등 4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은 1966년에 이혼했다.[2]
그 후, 그는 1966년 런던 첼시에서 사라 클리포드-터너와 결혼했고, 조지(1967년 출생)와 사샤 제인(1969년 출생) 등 두 명의 자녀를 더 두었다.[2]
6. 3. 사망 직전의 사건
1954년, 웨스트민스터에서 베리는 모리스 로치, 4대 펌보이 남작의 딸인 메리 신시아 로치(1934–2023)와 결혼했다.[2] 메리의 여동생 프란시스 샨드 키드는 존 스펜서, 제8대 스펜서 백작과 결혼했고, 따라서 베리는 다이애나, 웨일스 공녀의 삼촌이 되었다.[10] 베리와 그의 아내 메리는 알렉산드라 메리(1955년 출생), 안토니아 루스와 조앤나 신시아 (조)(쌍둥이, 1957년 출생), 그리고 에드워드 앤서니 모리스(1960년 출생) 등 4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들은 1966년에 이혼했다.[2] 그 후, 그는 1966년 런던 첼시에서 사라 클리포드-터너와 결혼했고, 조지(1967년 출생)와 사샤 제인(1969년 출생) 등 두 명의 자녀를 더 두었다.[2] 사망 직전, 베리는 차량을 세우려던 두 명의 경찰관을 고의로 들이받아 그 중 한 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보행자 두 명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혐의로 음주 운전 및 위험 운전 혐의로 기소되었다.[11]7. 기념
참조
[1]
Hansard
Hon. Anthony Berry (Hansard)
https://api.parliame[...]
[2]
Who's Who
Berry, Hon. Sir Anthony George
Who Was Who
2024-10-12
[3]
London Gazette
1962-03-16
[4]
London Gazette
1983-12-20
[5]
뉴스
Brighton bombing: 25th anniversary of Sir Anthony Berry's death remembered
http://www.thisisloc[...]
2009-10-12
[6]
뉴스
Patrick Magee: The IRA Brighton bomber
http://news.bbc.co.u[...]
2019-11-08
[7]
뉴스
Outrage as Brighton bomber freed
http://news.bbc.co.u[...]
2019-11-08
[8]
뉴스
Brighton bomb: Filming forgiveness
http://news.bbc.co.u[...]
2019-11-08
[9]
뉴스
Looking the Brighton bomber in the eye
http://news.bbc.co.u[...]
2019-11-08
[10]
뉴스
Frances Shand Kydd
https://www.theguard[...]
The Guardian
2004-06-04
[11]
웹사이트
Conviction politics » 29 Sep 1984 » The Spectator Archive
http://spprd.insec.n[...]
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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