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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내산서원 소장 필사본 건거록(간양록) 등 문적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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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광 내산서원 소장 필사본 건거록(간양록) 등 문적일괄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수은 강항의 저술을 포함하는 문적들의 일괄이다. 여기에는 강항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 겪은 경험과 견문을 기록한 『건거록(巾車錄)[간양록(看羊錄)]』, 시문 등을 모아둔 『운제록』, 『강감회요』, 『문선주』, 『잡지』 등이 포함된다. 특히 『건거록[간양록]』은 당시 일본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사료적 가치가 높으며, 강항의 친필본과 제자들에 의해 간행된 목판본을 통해 문헌 전승의 양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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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내산서원 소장 필사본 건거록(간양록) 등 문적일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문화재 정보
이름영광 내산서원 소장 필사본 건거록(간양록) 등 문적일괄
원어 이름靈光 內山書院 所藏 筆寫本 巾車錄(看羊錄) 等 文籍一括
국기대한민국 전라남도
유형유형문화재
번호288
지정일2008년 4월 11일
주소전라남도 영광군
시대조선시대
수량10책(5종)
참고내산서원

2. 건거록(巾車錄)[간양록(看羊錄)]

정유재란수은 강항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가 겪은 경험과 견문을 기록한 책이다. 강항은 왜군에 포로로 잡혀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서명을 『건거록(巾車錄)』이라 하였는데, 제자들에 의해 1656년(효종 7) 목판본으로 간행할 때 『간양록』으로 개칭되었다.

책의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 적지에서 임금께 올린 「적중봉소(賊中封疏)」
  • 당시 일본 각지의 특징을 밝힌 「적중견문록(賊中見聞錄)」
  • 귀국 뒤에 올린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
  • 적국에서의 환란 생활의 시말을 기록한 「섭란사적(涉亂事迹)」
  • 포로들에게 준 「고부인격(告俘人檄)」


이 기록들은 적국에서 당한 포로들의 참상과 그곳에서 보고 들은 실정을 빠짐없이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전란에 대비해야 할 국내 정책까지 언급하고 있어 당시 일본의 정보에 취약했던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문헌이다. 「적중봉소」와 「섭란사적」은 강항의 친필로 보이며 그 밖의 것은 다른 사람의 서체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강항의 친필 여부를 떠나 당시 일본의 지리와 풍속 등의 사실을 수록하고 있어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문헌이다.

이 필사본은 임진, 정유 양난을 몸소 체험한 강항의 생생한 기록이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리고 『건거록[간양록]』의 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강항이 친히 짓고 쓴 필사본으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필사본은 문인과 후손들에 의해 목판본으로 간행되어, 문헌 전승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학술사 및 출판사적 가치를 지닌다.

2. 1. 적중봉소(賊中封疏)

2. 2. 적중견문록(賊中見聞錄)

2. 3. 예승정원계사(詣承政院啓辭)

2. 4. 섭란사적(涉亂事迹)

2. 5. 고부인격(告俘人檄)

3. 강감회요(綱鑑會要)

3. 1. 편찬 배경

4. 운제록(雲堤錄)

강항이 평소에 주고받은 시문 등을 모아둔 책이다. 시문(詩) 54편, 만사(輓詞) ·제문(祭文類) 21편, 관문류(官文類 ; (箋文, 公狀 等) 20편, 서(書) ·계(啓) 10편, 기문 5편, 상량문 2편 등 112편의 글이 실려있다. 운제(雲堤)는 영광에 거주한 진주강씨 일가의 별거(別居)가 있었던 곳으로 강항이 퇴임후 자제와 문인들을 가르쳤던 곳이었다.

4. 1. 구성

4. 2. 운제(雲堤)

5. 문선주(文選註)

6. 잡지(雜誌)

7. 사료적 가치

수은 강항(睡隱 姜沆, 1567-1618)의 필사본 저술들은 임진왜란정유재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특히, 『건거록(巾車錄)[간양록(看羊錄)]』은 당시 일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조선의 대일 정책 수립에 기여했을 것으로 평가된다. 강항은 왜군에 포로로 잡혀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서명을 『건거록(巾車錄)』이라 하였는데, 제자들에 의해 1656년(효종 7) 목판본으로 간행할 때 『간양록』으로 개칭하였다.

이 기록들은 적국에서 당한 포로들의 참상과 그곳에서 보고 들은 실정을 빠짐없이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전란에 대비해야 할 국내 정책까지 언급하고 있어 당시 일본의 정보에 취약했던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문헌이다. 『건거록(간양록)』의 「적중봉소(賊中封疏)」와 「섭란사적(涉亂事迹)」은 강항의 친필로 보이며 그 밖의 것은 다른 사람의 서체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강항의 친필 여부를 떠나 당시 일본의 지리와 풍속 등의 사실을 수록하고 있어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문헌이다.

『강감회요』, 『운제록』, 『건거록(간양록)』 3종은 필사본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어 문헌 전승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학술적, 출판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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