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본문
예천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醴泉 鳴鳳寺 境淸禪院慈寂禪師陵雲塔碑)는 경상북도 예천군 명봉사에 있는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시대 초기까지 활동한 승려 자적선사(慈寂禪師, 882~939년)의 행적을 기록한 석비입니다. 2010년 2월 2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64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탑비의 건립 배경 및 시기자적선사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고려 태조의 명으로 태조 24년(941년)에 세워졌습니다. 자적선사는 신라 헌강왕 8년(882)에 태어나 효공왕 3년(899)에 수계하였으며, 고려 태조 22년(939)에 58세로 입적하였습니다.
탑비의 형태 및 특징
- 귀부(거북 모양 받침돌), 비좌(비신을 세우는 받침돌), 비신(비석의 몸체), 이수(용 모양 머릿돌)를 갖춘 통일신라 이래의 전형적인 일반형 석비입니다.
- 전체 높이는 2.91m (혹은 282cm), 귀부의 높이는 0.52m, 둘레는 5.05m입니다. 비신의 높이는 1.9m (혹은 186cm), 너비는 0.96m, 두께는 0.2m (혹은 20.5cm)입니다.
- 비문은 누가 찬하고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최언위가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 서체는 중국 당나라 서예가 구양순의 필적을 집자(集字)한 해서(楷書)입니다.
- 비문의 일부가 결락되어 있으나, 비문의 중요 내용은 거의 파악이 가능합니다.
비문의 내용
- 비문(앞면): 자적선사의 출가에서 입적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적선사가 봉림산문의 진경대사에게 출가하여 경명왕을 만나고, 예천 지방 세력의 후원을 받았으며, 태조를 만나 경청선원(境淸禪院)을 조성하다 입적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 음기(뒷면): 10행의 이두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976년에 판독되었습니다. 내용은 중앙관서인 도평성에서 홍준화상 중도의 우법사에게 보낸 첩문(牒文, 나라에서 발급하는 증서)과 탑비의 조성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이 첩문은 고려 초기의 공문서 양식과 당시 이두의 용법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탑비의 가치
- 고려시대 초기 불교사 및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 고려 초기의 공문서 양식과 이두 사용을 보여주는 희귀한 자료입니다.
- 통일신라 이래의 전형적인 석비 양식을 보여주는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 예천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 개요 | |
| 이름 | 예천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 원어 | 醴泉 鳴鳳寺 境淸禪院慈寂禪師陵雲塔碑 |
| 지정 종류 | 보물 |
| 지정 번호 | 1648 |
| 지정일 | 2010년 2월 24일 |
| 시대 | 고려시대 |
| 소유자 | 명봉사 |
| 수량 | 1기 |
| 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군 명봉사길 62 (상리면) |
| 관련 장소 | 예천 명봉사 |
| 추가 정보 | |
| 문화재청 ID | 12,16480000,37 |
| 참고 (과거 지정 내역) | |
| 지정 종류 (과거) | 유형문화재 |
| 지정 번호 (과거) | 3 |
| 지정일 (과거) | 1972년 12월 29일 |
| 해제일 (과거) | 2010년 2월 24일 |
| 문화재청 ID (과거) | 21,00030000,37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