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젠 랑콩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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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외젠 랑콩블레는 네덜란드 해군 장교로, 자와해 해전에서 일본 제국 해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그는 네덜란드 왕립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해군 함정에서 복무하며 경력을 쌓았다. 1940년에는 순양함 HNLMS 데 뤼터의 지휘관이 되었으며, 1942년 자와해 해전에서 카렐 도어만 해군 소장과 함께 전사했다. 사후에는 반 스트라엘렌급 소해정 Hr. Ms. 랑콩블레로 명명되었으며, 빌럼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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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외젠 랑콩블레는 고등 시민 학교( Hogere Burger School|호허러 뷔르허르 스홀nl, HBS)를 졸업하고 1914년 네덜란드 왕립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하여 해군 장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임관 후 네덜란드령 동인도와 네덜란드 본토를 오가며 다양한 함정에서 근무하고 지휘관을 역임하며 경력을 쌓았다. 1938년에는 네 번째로 동인도에 파견되어 순양함 ''데 뤼터''의 1등 항해사를 맡았으며, 1940년에는 Kapitein-luitenant ter zee|카피테인-뢰터난트 테르 제nl(해군 중령급)로 진급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고 일본이 동인도를 침공하자, 그는 연합 타격 부대 사령관 카렐 도르만 해군 소장 휘하에서 기함 ''데 뤼터''의 지휘관으로 참전했다. 1942년 2월 27일 자와 해 해전에서 일본 제국 해군과의 격전 중 ''데 뤼터''가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였고, 랑콩블레는 도르만 제독과 함께 함선과 운명을 같이하며 전사했다. 이 전투에서 연합군은 패배하였고 기함 ''데 뤼터''도 함께 손실되었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고등 시민 학교(Hogere Burger School, HBS)를 졸업한 후, 랑콩블레는 1914년 빌렘소르트의 네덜란드 왕립 해군 사관학교에서 항해술을 훈련받았다. 1917년 해군 중위(Lieutenant ter Zee 또는 LtZ) 3급으로 진급하여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배치되었다.2. 2. 군 경력
고등 시민 학교( Hogere Burger School|호허러 뷔르허르 스홀nl, HBS)를 졸업한 후, 랑콩블레는 1914년 빌렘소르트에 있는 네덜란드 왕립 해군사관학교에서 항해술 교육을 받았다. 1917년 Lieutenant ter Zee|뢰터난트 테르 제nl (LtZ) 3급으로 진급하여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배치되었고, 당시 Lieutenant ter Zee|뢰터난트 테르 제nl N. 마츠의 지휘 아래 있던 ''데 뤼터'' 함에 배속되었다. 3개월 후 해군 소위 2급으로 진급하여 어뢰 훈련선 ''코닌힌 엠마 데르 네덜란덴''에 탑승해 어뢰 관련 임무를 수행했다. 이후 1927년 말까지 잠수함에서 복무하며 네덜란드를 몇 차례 오갔다. 1928년 해군 소위 2급 계급으로 ''브리노'' 호의 1등 항해사가 되었으며, 1년 안에 해군 대위 1급으로 승진했다.1931년에는 우편선 ''크리스티안 호이겐스'' 호를 타고 세 번째로 동인도로 파견되었다. 수라바야에 도착한 후 1등 항해사 자격으로 고벵의 해군 막사에 배치되었다. 1932년 초에는 HNLMS ''데 제벤 프로빈시엔''으로 전출되었고, 같은 해 여름에는 수라바야 해군 기지의 장비 책임자가 되었다. 3년 후 네덜란드로 돌아와 1935년 말에는 오스텐드와 루앙에 주둔한 기뢰 부설함 ''도우에 아우케스''의 지휘를 맡았다. 이후 국방부의 해군 참모 부서에서 몇 달간 근무했다.
1938년 랑콩블레는 M.S. ''마믹스 판 신트 알데공데'' 호를 타고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동인도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여 당시 Kapitein ter zee|카피테인 테르 제nl H.J. 부에닝크의 지휘 아래 있던 순양함 ''데 뤼터''의 1등 항해사가 되었다. 1940년 2월 1일, 랑콩블레는 Kapitein-luitenant ter zee|카피테인-뢰터난트 테르 제nl(해군 중령급)로 진급했다. 일본의 동인도 침공 당시, 그는 연합 타격 부대를 지휘하던 해군소장 카렐 도르만 휘하에서 순양함 ''데 뤼터''의 지휘관을 맡고 있었다. 1942년 2월 27일, ''데 뤼터''는 자와 해 해전 중 일본 제국 해군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 도르만 제독과 랑콩블레는 승무원들에게 배를 떠나도록 명령했으나, 그들 자신은 배와 함께 침몰하며 최후를 맞이했다. 이 전투에서 ''데 뤼터'' 함은 침몰하였고 연합군은 일본 해군에 패배하였다.
2. 3. 자바해 해전과 전사
1938년 랑콩블레는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파견되어 순양함 데 로이터의 1등 항해사로 임명되었다. 1940년 2월 1일에는 카피테인-LtZ(Kapitein-LtZ, 해군 대위급)로 진급했다.일본의 동인도 침공 당시, 그는 '연합 타격 부대' 사령관이었던 카렐 도어만 해군 소장 휘하에서 기함인 ''데 로이터''의 지휘관을 맡았다. 1942년 2월 27일, 자와 해 해전 중 ''데 로이터''는 일본제국 해군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 배가 침몰하자 도어만 제독과 랑콩블레는 승무원들에게 퇴함 명령을 내렸으나, 그들 자신은 배와 함께 침몰하며 전사했다.
3. 사후
네덜란드 왕립 해군의 반 스트라엘렌급 소해정(기뢰 탐색함)인 Hr. Ms. 랑콩블레는 외젠 랑콩블레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4. 서훈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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