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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몬드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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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존 오몬드는 1905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농부이자 정치인이다.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고, 1939년 결혼하여 4남 1녀를 두었다. 그는 뉴질랜드 농민 연합 와이푸쿠라우 지부 의원을 역임했고, 1935년 와이파와, 1938년 네이피어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으며, 전후에는 뉴질랜드 육류 생산자 위원회 의장과 뉴질랜드 해운 공사 의장을 역임하며 뉴질랜드 경제 발전에 기여했다. 1964년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존 오몬드 경 펠로우십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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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몬드 (농부)
기본 정보
존 오몬드의 초상화
존 오몬드의 초상화
출생1832년
사망1917년 10월 6일
직업뉴질랜드 정치인, 농부
배우자힐다 고어 리스 오몬드
자녀존 데이비스 오몬드
조지 오몬드
힐다 조앤 오몬드
도로시 힐다 오몬드
정치 경력
선거구클리브
임기 시작1861년
임기 종료1890년
정당독립
직책식민지 장관
공공 사업 장관
이민 장관
원주민 담당 장관
상원 의원 임기1892년 – 1903년
추가 정보
출생지고어스턴, 캠브리지셔, 잉글랜드
사망지와이오히키
국적뉴질랜드

2. 초기 생애 및 가족

오몬드는 뉴질랜드 와이푸쿠라우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존 데이비스 오몬드 주니어, 어머니는 에밀리 메리 글래디스 와일더였다. 그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교육받았다. 테니스와 럭비를 즐겨 했다. 1939년 8월 26일 주디스 월과 결혼하여[1] 슬하에 네 아들과 한 딸을 두었다.

그는 존 데이비스 오몬드의 손자이며, 정치인인 휴 존 다이크 아클랜드 경의 처남이었다. 증조부는 자메이카의 전 총독이었던 에드워드 존 에어이다. 교장인 오몬드 펠리시티 루스크는 그의 사촌이다.

3. 정치 경력

존 오몬드는 대규모 양 목장을 운영하며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1927년부터 1930년까지 뉴질랜드 농민 연합 와이푸쿠라우 지부 의원으로 활동하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급진 우익 성향의 정치 단체인 뉴질랜드 군단의 주요 지지자였다.[2] 이후 1935년 총선에서는 와이파와 선거구에 무소속 뉴질랜드 개혁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3][4] 1938년 총선에서는 국민당 소속으로 네이피어 선거구에 도전했지만 역시 당선되지 못했다.[5]

1935년에는 조지 5세 국왕 즉위 25주년 기념 메달을 받았다.[6]

3. 1. 1935년 와이파와 총선

1930년대 오몬드는 급진 우익 성향의 단체인 뉴질랜드 군단의 주요 지지자였다.[2] 그러나 이 활동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그는 1935년 총선에서 와이파와 선거구에 무소속 뉴질랜드 개혁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의 출마는 공식 연합-개혁 연립 후보였던 앨버트 율의 표를 잠식하며 우익 진영의 표를 분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민주당 역시 후보를 내면서 우익 표심 분열은 더욱 심화되었고, 결국 해당 선거구는 뉴질랜드 노동당 후보인 맥스 크리스티에게 돌아갔다.[3][4]

3. 2. 1938년 네이피어 총선

1938년 총선에서 그는 국민당 소속으로 네이피어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현직 노동당 의원인 빌 바나드에게 패했다.[5]

4.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중 그는 그리스에서 복무했다. 수송선에서 바다로 뛰어들어 익사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출한 공로로 대영 제국 훈장을 받았다. 전투 중 부상을 입어 뉴질랜드로 후송되었고, 그곳에서 교관으로 복무하며 육군 대위로 진급했다.[1]

5. 전후 경력

전후, 그는 뉴질랜드가 제품을 해외로 수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1951년부터 뉴질랜드 육류 생산자 위원회의 오랜 기간 의장을 맡았다. 만년에는 뉴질랜드 해운 공사를 조직했으며, 1979년 9월까지 의장을 역임했다.[1]

만년에 오몬드는 소와 양을 키우는 목장으로 은퇴했다. 그는 1964년 뉴질랜드 생일 기념 서훈에서 육류 생산자 위원회 의장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았다.[7] 1977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 메달을 받았다.[8] 존 오몬드 경 펠로우십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6. 서훈

1964년 뉴질랜드 생일 기념 서훈에서 뉴질랜드 육류 생산자 위원회 의장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았다.[7] 1977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 메달을 받았다.[8]

7. 말년

전쟁 이후, 오몬드는 뉴질랜드가 생산품을 해외로 수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1951년부터 뉴질랜드 육류 생산자 위원회의 의장을 오랫동안 맡았다. 또한 말년에는 뉴질랜드 해운 공사를 조직했으며, 1979년 9월까지 의장직을 수행했다.[1]

말년에 오몬드는 소와 양을 키우는 목장으로 은퇴했다. 그는 1964년 뉴질랜드 생일 기념 서훈에서 육류 생산자 위원회 의장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기사 작위를 받았다.[7] 1977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25주년 기념 메달을 받았다.[8] 존 오몬드 경 펠로우십은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참조

[1] DNZB Robert James 2010-01-09
[2] 웹사이트 Producer Control in the New Zealand Meat Industry in the 1940s/1950s https://ojs.victoria[...] 2018-08-03
[3] 뉴스 Election Results http://paperspast.na[...] 2013-11-14
[4] 뉴스 Three for Waipawa http://paperspast.na[...] 2013-11-15
[5] 웹사이트 The General Election, 1938 http://atojs.natlib.[...] National Library 2012-02-08
[6] 뉴스 Official jubilee medals http://paperspast.na[...] 2013-11-17
[7] 간행물 London Gazette 1964-06-13
[8] 서적 Honoured by the Queen – New Zealand New Zealand Who's Who Aotear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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