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수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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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지창수 (池昌洙, 1906년 ~ 1950년)는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여순 14연대 반란사건의 주동자로, 당시 14연대 인사계 육군 상사였다. 전라남도 광산군 출신이다.
생애지창수는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받고 출동 준비 중이던 여수 주둔 14연대에서 남로당 계열의 장교 및 하사관들과 함께 봉기를 일으켰다. 당시 14연대에는 김지회, 홍순석 등 좌익 계열 장교들과 지창수와 같은 하사관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반이승만 계열이나 좌익 수배자들을 적극적으로 모병하여 연대 내에 남로당 세포 조직을 만들었다.
봉기 당일, 지창수는 무기고와 탄약고를 점령하고 비상나팔을 불어 병력을 집결시킨 후, '친일파 처단'과 '조국통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봉기를 선동했다. 이후 지창수는 잔여 병력을 이끌고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하였으나, 1949년 1월 중순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토벌대에 생포되었다. 이후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상사 계급으로 강제 예편되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다른 죄수들과 함께 집단으로 처형되었다.
여순사건에서의 역할지창수는 여순사건 당시 14연대에서 김지회와 함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사건 초기에는 김지회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후 지창수가 사건을 주도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일각에서는 지창수가 여수군 인민대회에서 연설을 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여순사건을 남로당의 지령에 따른 '반란'으로 규정하기 위한 프레임이라는 의견도 있다.
평가지창수는 여순사건의 주동자 중 한 명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한 그의 행동을 불의에 저항한 의거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지창수 (군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여수·순천 10·19사건
- 뉴스프리존: 다시 생각하게하는 여·순사건은 항쟁인가 반란인가?
- SBN뉴스: 【단독】<신수용 한국 정치사(32)> 여수·순천의 너무도 아프고 슬픈 좌익군인 반란 사건
- 한겨레21: 극우반공국가의 탄생
- 나무위키: 여순사건
지창수 (군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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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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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지창수 |
출생 | 1927년 9월 19일 |
사망 | 2013년 11월 26일 (향년 86세) |
본적 | 평안남도 평원군 |
배우자 | 김재희 |
자녀 | 3남 |
학력 | |
군사 | 육군사관학교 (7기) 국방대학교 |
경력 | |
주요 보직 |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 육군참모차장 |
최종 계급 | 대한민국 육군 대장 |
임관 | 1948년 |
퇴역 | 1987년 |
수상 | |
훈장 |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천수장 수교훈장 흥인장 미국 공로훈장 |
기타 | |
종교 | 천주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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