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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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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묘는 후한 말기의 인물로, 하진의 이복 동생이자 하태후의 오빠이다. 그는 도살업으로 시작하여 누이의 총애를 등에 업고 관료가 되었으며, 형양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공을 세워 차기장군과 제양후에 봉해졌다. 영제가 죽고 소제가 즉위한 후, 환관 제거를 주장하는 하진과 대립하여 환관을 옹호했다. 하진이 십상시에게 암살당한 후, 하묘는 오광과 동민에게 살해당했으며, 동탁에 의해 무덤이 파헤쳐지는 수모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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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묘
하묘
하묘의 초상
하묘의 초상
정보
성씨하 (何)
이름묘 (苗)
생몰년몰년 미상
출생지창읍 (昌邑)
시대후한
직업장군
봉호미앙후 (美陽侯)
형제자매하진 (형)
친척하태후 (누이)
가족 관계하진 (형), 하태후 (누이), 소원 (조카), 하윤 (양자)

2. 생애

하묘는 의붓형 하진과 함께 남양(南陽)에서 도살업을 하다가, 이복동생이 영제의 총애를 받아 황후가 되면서 관직에 진출했다. 189년 영제가 죽고 소제가 즉위하자 환관 세력의 존폐를 둘러싸고 정치적 다툼이 벌어졌다. 하묘는 이복동생인 황태후와 결탁해 환관을 옹호하며 의붓형인 하진과 대립했다.

하묘는 십상시에게 뇌물을 받고 하진의 환관 제거 시도를 막았다. 189년 8월 하진이 암살당한 후 원소와 함께 십상시를 공격하기도 했으나, 평소 하묘를 미워하던 오광은 하묘가 하진 암살에 가담했다고 여겨 동탁의 동생 동민과 함께 하묘를 살해했다. 이후 하묘의 무덤은 동탁에 의해 파헤쳐지고 시체가 훼손되는 수모를 당했다.[1]

2. 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하묘는 이전에는 의붓형인 하진과 함께 남양(南陽)에서 도살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복동생이 영제의 총애를 받고, 황자인 유변(劉辯)을 낳아 황후가 되자, 의붓형과 함께 관료가 되어 하남윤에 임명되었다.[1] 그 후, 거기장군을 거쳐 제양후에 봉해졌다.[1]

중평 4년(187년), 형양에서 적이 일어나 군현을 휩쓸고 다니며 중모 현령이 살해되었다. 하묘는 조칙에 따라 출격하여 이를 격파하고 평정하여 귀환했다. 그 공으로 차기장군으로 승진하고 제양후에 봉해졌다.[4]

2. 2. 환관과의 갈등과 죽음

189년, 영제가 붕어하고 소제가 즉위하자, 환관의 존폐를 둘러싼 정치 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계형(의형)인 하진 등은 환관 제거를 요구하며 동생인 황태후에게 그 뜻을 상주했으나, 하묘는 이복동생인 황태후와 결탁하여 계형과 대립하였고, 한 왕조의 전통이라 주장하며 환관을 옹호했다.[1]

하묘는 어머니 무양군과 함께 십상시가 바치는 뇌물을 받았는데, 이 때문에 하진이 십상시를 제거하려 하자 누이 하태후에게 간언하여 이를 막게 하였다. 또 하진에게도 십상시를 해치지 말 것을 권하였다.[1]

189년 8월, 하진이 십상시에게 암살당하자, 원소와 함께 십상시를 공격하여 그 중 하나인 조충을 죽였다. 그러나 하진의 사병을 거느리던 장수 오광은 평소 십상시를 옹호하던 하묘를 곱게 보지 않았는데, 하진이 죽자 하묘가 하진 암살에 가담한 것으로 여기고 동탁의 동생 동민과 함께 하묘를 죽였다.[1]

하묘의 무덤은 상경한 동탁에 의해 파헤쳐져 시체가 절단당한 후 길에 버려지는 수모를 겪었다.[1]

2. 3. 사후

하묘의 무덤은 상경한 동탁에 의해 파헤쳐져 시체가 절단당한 후 길에 버려지는 수모를 겪었다.[1][2]

참조

[1] 서적 진고
[2] 서적 삼국지(역사서)
[3] 논문 하안총고
[4] 서적 영웅기
[5] 서적 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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