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소제 (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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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소제는 후한 영제와 영사하황후의 아들로, 176년경 출생하여 189년 4월에 황위에 올랐으나 동탁에 의해 폐위되어 홍농왕으로 강등되었다. 그는 궁궐 밖에서 자랐고, 영제는 유변보다 유협을 더 총애했으나 하진의 영향으로 태자를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소제는 동탁에 의해 독살되었으며, 아내 당희와 이별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소제는 재위 기간이 짧았고, 사후 홍농 회왕으로 추존되었으며, 조조는 그의 묘에 참배하지 않았다.

후한 소제 (13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유변
한자劉辯
로마자 표기Liu Bian
별칭홍농왕
한자 (별칭)弘農王
로마자 표기 (별칭)Hongnong Wang
시호회왕
유변
다른 이름한 소제
한자 (다른 이름)漢少帝
로마자 표기 (다른 이름)Han Shaodi
통치
시대후한
재위189년 5월 15일 – 189년 9월 28일
연호광희, 소녕
섭정하진, 동탁
사후
칭호홍농회왕 (弘農懷王)
재위 (홍농왕)189년 9월 28일 – 190년 3월 6일
개인 정보
출생176년
사망190년 3월 6일
부황영제
모후하황후
배우자당희
자녀없음
후임 황제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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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6년 출생 - 마초 (촉한)
    마초는 후한 말기부터 촉한 시대의 무장으로, 마등의 장남이며 용맹을 떨쳤으나 조조에게 패배 후 유비에게 귀순하여 촉한의 오호대장군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며 여러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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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한 영제는 환제 뒤를 이어 13세에 즉위한 후한의 제12대 황제로, 재위 기간 동안 환관들의 발호와 매관매직, 황건적의 난 등으로 후한 멸망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붕어 후에는 황위 계승 싸움으로 후한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 후한말 황족 - 복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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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73년 또는 176년영제와 영사하황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궁궐이 아닌 도인 사자묘(史子眇)에서 자라서 사후(史侯)라 불렸다. 궁궐 바깥에서 성장했음에도 사족(士族)에 의해 성장했더라면 최소한의 예법 정도는 갖추었으나 평민보다도 급이 더 낮은 천민격인 도인에 의해 성장한 탓에 예법을 전혀 배우지 않았다.

여러 신하가 태자를 정하기를 청했다. 영제는 유변이 경박하고 위의가 없어 황제가 될 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하황후를 총애했고 하진은 권력을 쥐고 있었으므로 계속 미루기만 하였다. 중평 6년(189년) 4월 병진일(丙辰日, 음력), 영제가 가덕전(嘉德殿)에서 붕어했다. 건석은 하진을 죽이고 유협(훗날 헌제)을 세우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유변이 이틀 후 제위에 올라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광희로 고치는 한편 동생 유협을 발해(渤海王)에 봉하였다.

8월 무진일 십상시가 자신들의 정권을 지키고자 하진을 유인하여 처단하였다. 그러자 오히려 원소, 원술 등이 궁궐로 쳐들어가 수많은 환관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경오일 환관 장양, 단규 등은 소제와 진류왕 유협을 데리고 북궁 덕양전(德陽殿)으로 도망쳤다가 신미일 아예 궁을 빠져나가 소평진(小平津)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노식과 민공에게 뒤를 잡혔고 장양 등은 울며 “신들은 모두 망하고 천하는 난에 휩싸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스스로를 보존하십시오.”란 말을 남기고 속으로 투신하였다.

동탁이 휘하 군대를 이끌고 북망산에서 소제와 진류왕을 영접하여 낙양으로 환궁했다. 소제는 두려움에 울기만 할 뿐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는 반면에 유협은 차근차근 얘기하는데다 동탁과 같은 성씨동태후가 길렀으므로 폐위할 뜻을 품었다. 9월 갑술일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당하고 유협이 황제에 올랐다.

190년(초평 원년) 음력 1월, 동탁의 횡포에 반동탁 연합군이 일어났다. 동탁은 낭중령(郞中令) 이유를 시켜 소제를 독살하게 했다. 이유는 소제에게 독약을 바치며 "이 약을 드시면 병환이 낫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소제는 "나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 나를 죽이려는 것이로구나!"라며 꿍꿍이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유는 억지로 약을 권하였고, 소제는 어쩔 수 없이 당희(唐姬) 및 궁인들을 불러 이별연을 벌였다. 소제는 슬퍼하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이어서 당희에게 일어나 춤출 것을 명하니, 당희는 소매를 들고 노래하였다.



모두 흐느끼는 속에서 홍농왕은 "그대는 임금의 아내이니, 백성에게 개가하지 말고 자신을 아끼시구려."라는 마지막 말을 당희에게 남기고 독약을 마셨다.

2.1. 출생과 성장

유변은 176년에 영제와 후궁인 하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그는 영제의 유일한 아들이었는데, 그 전의 아들들은 일찍 사망했기 때문이다. 영제는 앞서 잃은 아들들이 불운 때문이라고 믿고, 도사인 사자묘(史子眇)에게 갓 태어난 아들을 기르도록 명했다. 유변은 "사후"(史侯)라는 칭호를 받았다. 유변의 어머니 하씨는 180년에 황후가 되었다. 181년에 영제의 또 다른 후궁인 왕미인이 아들 유협을 낳았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하황후는 왕미인을 독살했다. 어머니를 잃은 유협은 그의 할머니인 동태후에 의해 길러졌고, "동후"(董侯)라는 칭호를 받았다.

신하들이 아들 중 한 명을 황태자로 정하라고 요구했을 때, 영제는 유변과 유협, 두 아들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그는 유변이 경박하고 존경심을 얻지 못해 황제가 되기에 부적합하다고 느껴 유협을 더 선호했다. 하지만, 그가 유협을 선택할 경우 하황후가 이복동생인 하진에게 도움을 청할까봐 걱정했다. 하진은 대장군(大將軍)의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조정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결국 두 아들 중 누구도 황태자로 지명하지 않았다.

2.2. 즉위와 폐위

173년 또는 176년영제와 영사하황후 사이에서 태어났다. 궁궐이 아닌 도인 사자묘(史子眇)에서 자라서 사후(史侯)라 불렸다. 궁궐 바깥에서 성장했음에도 사족(士族)에 의해 성장했더라면 최소한의 예법 정도는 갖추었으나 평민보다도 급이 더 낮은 천민격인 도인에 의해 성장한 탓에 예법을 전혀 배우지 않았다.

여러 신하가 태자를 정하기를 청했다. 영제는 유변이 경박하고 위의가 없어 황제가 될 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하황후를 총애했고 하진은 권력을 쥐고 있었으므로 계속 미루기만 하였다. 중평 6년(189년) 4월 병진일(丙辰日, 음력), 영제가 가덕전(嘉德殿)에서 붕어했다. 건석은 하진을 죽이고 유협(훗날 헌제)을 세우려 했지만 실패하였다. 유변이 이틀 후 제위에 올라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광희로 고치는 한편 동생 유협을 발해(渤海王)에 봉하였다.

영제가 189년에 위독해지자, 그는 8세의 유협을 측근 환관 건석에게 비밀리에 맡겼다. 황제의 죽음 이후, 건석은 하진을 궁궐로 유인하여 함정에 빠뜨려 암살하고 유협을 즉위시키려 했다. 유협을 황제로 만들려는 건석의 계획은 결국 실패했고, 13세의 유변이 즉위하여 역사적으로 소제로 알려지게 되었다. 황제의 어머니인 하태후는 태후가 되어 아들과 함께 조정에 참석했다. 소제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대장군 하진과 태부 원외가 그의 섭정을 맡았다.

189년 여름, 하진은 건석이 자신을 암살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선제 공격을 가해 그를 체포하고 처형했다.

8월 무진일 십상시가 자신들의 정권을 지키고자 하진을 유인하여 처단하였다. 그러자 오히려 원소, 원술 등이 궁궐로 쳐들어가 수많은 환관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경오일 환관 장양, 단규 등은 소제와 진류왕 유협을 데리고 북궁 덕양전(德陽殿)으로 도망쳤다가 신미일 아예 궁을 빠져나가 소평진(小平津)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노식과 민공에게 뒤를 잡혔고 장양 등은 울며 “신들은 모두 망하고 천하는 난에 휩싸였습니다. 폐하께서는 스스로를 보존하십시오.”란 말을 남기고 속으로 투신하였다.

하진이 죽자, 그의 부하 오광과 장장이 원소, 원술 등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궁궐을 습격하여 복수를 위해 환관들을 죽였다. 그들은 환관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했고, 어떤 젊은이들은 절박한 상황에서 군인들 앞에서 바지를 내려 자신이 환관이 아님을 증명하기도 했다. 공격 중에 환관들은 소제, 진류왕 유협 및 하태후를 인질로 잡고 궁궐에서 도주하려 했다. 노식은 환관 단규를 가로막아 하태후를 구출했다. 하진의 동생 하묘는 환관들에게 동정심을 느껴 오광과 동민에게 살해당했다. 이 공격으로 2,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동탁이 휘하 군대를 이끌고 북망산에서 소제와 진류왕을 영접하여 낙양으로 환궁했다. 소제는 두려움에 울기만 할 뿐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는 반면에 유협은 차근차근 얘기하는데다 동탁과 같은 성씨동태후가 길렀으므로 폐위할 뜻을 품었다. 9월 갑술일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당하고 유협이 황제에 올랐다.
삼국지 동탁전에서는



삼국지연의 제4장에서는



황제와 황태자를 낙양으로 호송한 후, 동탁은 하진과 환관 세력 간의 갈등으로 생긴 권력 공백을 이용하여 중앙 정부와 조정의 통제권을 장악했다. 많은 관리들과 낙양에 주둔한 황실 군대는 동탁이 량주에서 데려온 정예 병사들에게 위협을 느꼈다. 동탁은 결국 소제를 폐위시키고 유협을 옹립했는데, 그는 역사적으로 헌제로 알려지게 되었다. 전 소제는 "홍농왕"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았다.

2.3. 죽음

190년(초평 원년) 음력 1월, 동탁의 횡포에 반동탁 연합군이 일어났다. 동탁은 낭중령(郞中令) 이유를 시켜 소제를 독살하게 했다. 이유는 소제에게 독약을 바치며 "이 약을 드시면 병환이 낫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소제는 "나는 병에 걸리지 않았다. 나를 죽이려는 것이로구나!"라며 꿍꿍이를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유는 억지로 약을 권하였고, 소제는 어쩔 수 없이 당희(唐姬) 및 궁인들을 불러 이별연을 벌였다. 소제는 슬퍼하며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이어서 당희에게 일어나 춤출 것을 명하니, 당희는 소매를 들고 노래하였다.



모두 흐느끼는 속에서 홍농왕은 "그대는 임금의 아내이니, 백성에게 개가하지 말고 자신을 아끼시구려."라는 마지막 말을 당희에게 남기고 독약을 마셨다.

동탁은 반동탁 연합이 홍농왕을 다시 황위에 앉혀 자신이 낙양에서 통제하는 정부의 정통성을 위협할까 봐 걱정하여 소제를 독살했다. 소제는 운명을 받아들이기 전에 아내 당희와 다른 후궁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는 원래 환관 조충을 위해 지어진 무덤에 묻혔고, 후에 "홍농 회왕"(弘農懷王중국어)으로 추존되었다.

조조가 유변의 묘전 앞을 지날 때, 황제 능으로 참배해야 하는지 여부를 곁에 있던 동우에게 물었다. 그러자 동우는 "황제로 간주되지 않으므로 참배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했고, 조조는 그 의견에 따랐다.

3. 사후

환관 조충이 마련해뒀었던 묏자리에 묻혔으며 시호는 회왕(懷王)이라 하였다. 조조가 서쪽으로 친정을 가다가 홍농왕의 를 지나게 됐다. 보고 가야 하는지 자문을 구하니 동우(董遇)가 답하였다.춘추지의에는 한 해를 넘기지 못 하고 죽은 임금은 임금으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홍농왕은 재위 기간이 짧을 뿐더러 제후에 봉해졌으니 인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그냥 지나쳤다.

4. 평가

5. 《삼국지연의》에서의 소제

《삼국지연의》에서 유변(소제)은 유협(후의 헌제)보다 약간 연상의 소년으로 등장한다. 유협이 더 총명하고, 반대로 유변은 어리석었기 때문에 폐위된 후, 하태후와 함께 이유에 의해 높은 곳에서 떨어져 살해당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덧붙여, 《삼국지연의》나 그 파생 작품 등에서는 어린 황제 취급을 받고 있지만, 즉위 당시 17세는 후한의 역대 황제 즉위 당시 연령 중에서 4번째로 높은 연령에 해당한다. 이는 후한에 어린 황제가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6. 가족 관계

* 부황 : 후한 영제 유굉
* 모후 : 영사황후 하씨
* 후비 : 당희(唐氏)
* 이복동생 : 후한 헌제 유협
* 홍농 공주 첩, 당희 (홍농왕비 당씨/弘農王妃 唐氏중국어)는 유변이 죽은 후 이각에게 아내가 되라는 강요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헌제는 홍농왕비에 봉했다.

7. 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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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원년
서력
(西曆)
189년
간지
(干支)
기사(己巳)
연호
(年號)
광희(光熹)
원년
소녕(昭寧)
원년

소녕/昭寧중국어 (189년 5월 15일 – 189년 9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