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은숙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계은숙은 1961년 서울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77년 CF 모델로 데뷔하여 1978년 가수로 활동을 시작, 1980년 MBC '10대가수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하며 <나에겐 당신밖에>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1984년 일본으로 건너가 1985년 <大阪暮色>로 데뷔, <夢おんな>로 일본유선대상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NHK 홍백가합전에 7년 연속 출연하는 등 엔카 가수로 전성기를 누렸다. 이후 소속사 이적과 각성제 사건, 사기 사건 등에 연루되며 활동을 중단했으나, 2014년 한국에서 활동을 재개했다. 2019년 앨범 『Re:Birth』를 발매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성원중학교 동문 - 오연서
오연서는 1987년 6월 22일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배우로, 2002년 걸그룹 LUV의 멤버로 데뷔하여 배우로 전향,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사랑의 열매 홍보대사로 사회 활동도 펼치고 있다. - 성원중학교 동문 - 성경화
- 서울답십리초등학교 동문 - 박준선 (1966년)
박준선은 대한민국의 검사, 변호사, 정치인으로, 검사, 변호사 활동 후 한나라당, 새누리당, 바른정당, 바른미래당 등에서 활동하며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미 FTA 찬성,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 매각 방안 발의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 서울답십리초등학교 동문 - 안준형 (야구인)
안준형은 서울답십리초등학교, 배명중학교, 한서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다. - 성덕고등학교 (서울) 동문 - 한채진
한채진은 2003년 WKBL에 데뷔하여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구리 금호생명 레드윙스, 수원 OK저축은행 읏샷을 거쳐 현재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여자 프로 농구 선수로, 다수의 WKBL 수상 경력과 올스타전 3점슛 콘테스트 우승 경력을 보유하며 WKBL을 대표하는 선수이다. - 성덕고등학교 (서울) 동문 - 간미연
간미연은 1997년 걸그룹 베이비복스 메인 보컬로 데뷔하여 그룹의 인기를 이끌었으며, 2006년 솔로 데뷔 후 중국 활동, 음반 발매, 라디오 DJ, 뮤지컬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대한민국 가수이다.
계은숙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계은숙 |
본명 | (정보 없음) |
별칭 | (정보 없음) |
출생지 | 대한민국 충청남도 서산시 (한국어 위키백과) |
학력 | 한국 천호상업고등학교 (일본어 위키백과) |
직업 | 가수 |
장르 | 트로트, 엔카, 가요 |
활동 기간 | 1979년(한국)-、1985년(일본) - |
혈액형 | B형 |
음반사 | |
소속사 | 소라벌 레코드(1979년 - 1982년) 동지바 EMI(1985년 - 1996년, 2005년 - 2006년) 토러스 레코드(1996년 - 1998년) 폴리돌 레코드(1998년 - 2001년) Naturally music(2019년 - ) |
소속사 | |
매니지먼트 | 제일프로덕션 타이거 엔터프라이즈 계 오피스 Promice Enterprise(2019년 - ) |
관련 활동 | |
관련 인물 | (정보 없음) |
공식 팬클럽 URL | 계은숙 공식 팬클럽 |
유튜브 | 유튜브 |
인스타그램 | 인스타그램 |
2. 생애
계은숙은 1977년 CF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하여 1978년 가수로 데뷔했다.[1] [2] 1979년 "노래하며 춤추며"를 발표했고,[2] 1980년 이 곡이 수록된 음반을 발매하여 MBC 10대 가수 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했다.[1] [2] 이후 "나에겐 당신밖에", "다정한 눈빛으로" 등을 발표했다.[1] [2]
발매년도 | 음반 제목 | 리드곡 | 발매사 |
---|---|---|---|
1978년 | 계은숙 노래 모음집 | 배 타고 간 님, 총각님 | 유니버설 레코드 |
1980년 | 노래하며 춤추며/기다리는 여심 |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 | 서라벌 레코드 |
1981년 | 계은숙 태양음향 전속 기념 1집 | 다정한 눈빛으로, 나에겐 당신밖에 | 태양음향 |
1982년 | 계은숙 '82 | 태양음향 | |
1986년 | 바람은 왜 불었나요/비의 초상 | 오아시스 레코드 | |
2019년 | Re:Birth | Naturally music |
1984년 일본으로 건너가 1985년 大阪暮色|오사카 보쇼쿠일본어로 데뷔했다.[1] 이후 すずめの涙|스즈메노 나미다일본어, 夢おんな|유메 온나일본어 등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며 NHK 홍백가합전에 7년 연속 출연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1] 1996년 소속사를 이적하며 잠시 침체기를 겪기도 했으나, 1998년 이후 다시 인기를 얻었다.
2007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활동이 중단되었다가,[9][10] 2014년 한국에서 활동을 재개했다.[14]
2. 1. 초년의 삶 (1961~1976)
계은숙은 1961년 7월 28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부친과 헤어진 후 친정으로 돌아와서야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모친 송종열 씨는 명동의 증권가에서 작은 매점을 운영했기 때문에, 계은숙은 서울에서 자랐다.[1]답십리초등학교와 성수여자중학교를 거쳐 천호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에는 사이클 선수로 활동했으나, 다른 팀 선수와 싸움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전학을 했다.[1]
계은숙은 중학교 때부터 계(桂) 씨 종친회를 찾아다니며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훗날 결국 아버지와 재회했지만, 이미 아버지에겐 새로운 가정이 있었고 어머니와도 서먹서먹하여 곧 인연이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1]
2. 2. 한국 데뷔 및 활동 (1977~1984)
계은숙은 1977년 LG생활건강의 "럭키샴푸" CF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하여 2년간 모델로 활동했다.[1] [2] 1978년 "유니버설레코드"에서 가수로 데뷔했으며,[1] 1979년에는 서라벌레코드를 통해 "노래하며 춤추며"를 발표했다.[2] "노래하며 춤추며"와 "기다리는 여심"이 수록된 음반은 1980년에 발매되었고, 같은 해 MBC 10대 가수 가요제 신인상을 수상했다.[1] [2] 이후 "나에겐 당신밖에", "다정한 눈빛으로"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1] [2]발매년도 | 음반 제목 | 리드곡 | 발매사 |
---|---|---|---|
1978년 | 계은숙 노래 모음집 | 배 타고 간 님, 총각님 | 유니버설 레코드 |
1980년 | 노래하며 춤추며/기다리는 여심 | 노래하며 춤추며, 기다리는 여심 | 서라벌 레코드 |
1981년 | 계은숙 태양음향 전속 기념 1집 | 다정한 눈빛으로, 나에겐 당신밖에 | 태양음향 |
1982년 | 계은숙 '82 | 태양음향 | |
1986년 | 바람은 왜 불었나요/비의 초상 | 오아시스 레코드 | |
2019년 | Re:Birth | Naturally music |
2. 3. 일본 데뷔 및 전성기 (1985~1996)
일본에 살던 지인이 1981년부터 3년 동안 일본 데뷔 및 활동을 제의했으나 고사했다. 이덕화, 김청이 진행하던 MBC 생방송 <쇼 2000> 100회 특집에서 현숙의 <정말로>를 부르기로 했으나, 한 차례의 파혼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방송 펑크를 내 방송 출연정지를 당했다. 한국에서 다시 가수 생활 할 자신이 없어 일본 지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1984년 일본행을 택했고, 지인의 추천으로 일본의 유명 작곡가 하마 케이스케(浜圭介)를 소개받았다. 1년 동안 하마 케이스케에게 가르침을 받은 계은숙은 1985년 大阪暮色|오사카 보쇼쿠일본어로 데뷔하였다.[1]이후 すずめの涙|스즈메노 나미다일본어, 夢おんな|유메 온나일본어, 酔いどれて|요이도레테일본어, 真夜中のシャワー|마요나카노 샤와일본어, ベサメムーチョ|베사메무초일본어 등의 곡을 발매해 히트시켰고, 각종 음악상을 휩쓸었다. 1988년 夢おんな|유메 온나일본어로 "제21회 일본유선대상"(日本有線大賞)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같은 해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으로 출연했고, 이후 1994년까지 7년 연속 출연했다. 일본 레코드 대상(日本レコード大賞)의 단골손님이 되었고, 1990년 앨범 真夜中のシャワー|마요나카노 샤와일본어로 "제32회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앨범 대상을 수상했다.[1]
계은숙은 데뷔 전 소속사(제일 프로덕션) 사장에게 "엔카로 가게 된다면 싱글보다도 앨범이 팔릴 정도로 생명력이 긴 아티스트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엔카 가수로는 드물게 앨범이 팔리는 가수가 되면서, "엔카는 [싱글은 팔려도] 앨범은 팔리지 않는다"는 징크스를 깼다.[1]
1987년 발매된 北空港|키타쿠우코우일본어는 하마 케이스케와 듀엣곡으로, 일본 엔카의 여러 듀엣 곡들 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높다. 이 곡은 현재도 가라오케 가게에서 사랑받아, 가라오케 랭킹에서 언제나 상위권에 있다.[1]
1992년 호리우치 다카오(堀内孝雄)와 듀엣으로 都会の天使たち|토카이노 텐시타치일본어를 발매하여 대히트를 기록했다. 이 해 NHK 홍백가합전에서는 백팀 소속인 호리우치 다카오와 홍팀 소속의 계은숙이 이 곡을 함께 불러, 프로그램 역사상 볼 수 없었던 듀엣 형식이 최초로 시도되기도 했다.[1] 1992년 2월 22일 3살 연상의 사업가와 조용기 목사의 주례로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결혼했다. 이 부부는 1998년 이혼한다.[1]
1993년 3월 27일 및 28일, 서울시내 호텔 하얏트 리젠시 서울에서 사단법인 한국연예협회 주최로 "계은숙 자선 디너쇼"를 열어, 일본 데뷔 9년 만에 처음으로 모국에서 일본어 노래 공연을 했다. 이듬해에는 서울 롯데호텔에서 데뷔 10주년 기념 디너쇼를 개최하여, 일본어 노래가 금지되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일 문화 교류에 의욕적으로 임했다.
2. 4. 소속사 이적 및 침체기 (1996~2007)
1996년 계은숙은 만족할 만한 콘서트 활동과 아시아 진출을 위해[2][3] 일본 데뷔 이래 활동했던 제일 프로덕션을 퇴사하고 독립했다.[1] 이후 "타이거 엔터프라이즈"로 이적했다. 또한 레코드 회사도 도시바-EMI에서 토러스 레코드로 바꾸고, 9월에 싱글 사랑 하나 꿈 하나를 발매했다.같은 레코드 회사 소속 가수 테레사 텐에게 자극을 받아, 이름 표기를 한자에서 가타카나 표기인 "케이 운수쿠"(ケイ・ウンスク)로 바꿨다. 그러나 1997년 7월 발매된 『Yes』라고 대답하고부터 다시 한자 표기인 "桂銀淑"을 사용했다.
1996년 10월 발매된 발라드 앨범 사랑 하나 꿈 하나에서는 쿠니요시 료이치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도쿄 후생 연금 회관에서 진행된 동명 타이틀 콘서트는 1997년 1월에 NHK-BS2에서 방송되었고, CD 및 비디오로도 출시되었다.
1993년 발매된 아모레 ~격렬하게 사랑해서~ 이후 하마 케이스케가 작곡한 곡을 부르지 않았지만, 1998년 발매된 인어 전설부터 이 콤비가 부활했다. 하마 케이스케는 팬클럽 회보에 "나는 그녀에게 다시 곡을 주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스스로도 많이 놀랐다"며 기쁨을 표시했다.
같은 해 발매된 Please…는 연속극(『가족 곡선』)의 주제가로 사용되면서 크게 히트했다. 오리콘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유선방송 리퀘스트 순위에서도 인기를 모았다. 유선방송 리퀘스트 엔카 2위, 종합 9위를 기록했다.
2. 5. 각성제 사건 및 활동 중단 (2007~2013)
2001년부터 계은숙은 TV와 라디오에서 모습을 감추고 콘서트 활동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소속사와의 채무 문제로 트러블이 발생하여 계약이 해지되고, 2억 5,500만 엔의 지급금 반환 소송이 진행되었다.[1] 계은숙은 1996년 독립 이후 콘서트 제작비 증가와 아시아 진출 실패로 빚이 늘어났다고 밝혔다.[2][3]재판 중에도 콘서트와 디너쇼를 통해 꾸준한 인기를 확인했지만, 전 남편과의 이혼, 빚 문제, 갱년기 장애와 우울증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5] 2006년에 재판에서 화해가 성립되어, 재일 한국인 사업가가 채무를 인수하고 계은숙에게 매달 50만 엔을 지급하기로 했다.[6]
같은 해, 계은숙은 과거 히트곡을 다시 부른 앨범을 발표하고, NHK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2007년 11월 26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소지) 혐의로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9][10]
2008년 5월, 일본 당국으로부터 비자 연장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으나, 추가 심사로 국외 퇴거 처분이 연기되었다.[11][12] 하지만 결국 비자 발급이 거부되어 2008년 8월 2일 한국으로 귀국했다.[13]
2010년 3월, 서울에서 디너 콘서트를 개최하고, TV 인터뷰를 통해 심경을 밝혔다. 2011년에는 일본에 돌아가 사죄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2. 6. 한국 복귀 및 재기 노력 (2014~현재)
2014년 1월 19일 KBS '열린음악회'와 1월 26일 KBS '콘서트 7080'에 출연하여 32년 만에 한국에서의 음악 활동을 재개하였다.[14] '열린음악회'에서는 '노래하고 춤추고', '기다리는 여심', '나에겐 당신뿐'을 불렀고, '콘서트 7080'에서는 '기다리는 여심', '노래하고 춤추고', 신곡 '주문'을 불렀다.[14]3월 8일에는 서울 시내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디너 쇼를 개최하여, 일본에서 온 팬 약 500명을 동원했다.[15]
한국에서는 32년 만에 신곡 '꽃이 된 여자', '주문' (모두 이건우 작사, 나카무라 타이시 작곡) 발매가 고지되었고,[16] 여름 이후에는 이 곡들과 다른 3곡을 포함한 앨범 '고백'의 한일 동시 발매(일본반에는 일본어 버전 수록), 자서전 출판,[18] 한국 콘서트 투어, 일본에서는 계은숙의 코멘트와 뮤직 비디오 등을 담은 필름 콘서트 상영이 예정되어 있었다.[17][19] 그러나 사기 및 각성제 사용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CD 발매와 이후 연예 활동 예정은 모두 백지화되었다.
3. 사회적 논란
계은숙은 1996년 독립 이후 소속사와의 채무 문제, 전 남편과의 이혼 및 사업 실패, 갱년기 장애와 우울증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5] 1996년 독립 후 아시아 진출 실패와 채산성을 무시한 콘서트 제작비 증가로 빚이 늘어났고, 전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한 빚과 1억원의 맨션 론을 포함하여 총 4억원에 달하는 빚을 지게 되면서 소속 프로덕션과 2억 5,500만 엔의 변제를 요구하는 재판을 벌이기도 했다.[1][2][3][4]
2001년부터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모습을 감추고 콘서트 활동에 전념했는데, 이는 소속사와의 채무 문제 때문이었다.[1] 콘서트에서 계은숙은 "텔레비전에 지쳤다. 지금까지 많이 싸워왔다. 이제부터는 이렇게 라이브로 직접 여러분과 만나고 싶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2006년에 재일 한국인 사업가가 계은숙의 맨션 권리 양도, 계은숙 오피스의 부채를 포함한 모든 권리 양도, 그리고 계은숙 본인에게 매달 50만 엔을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채무를 인수하면서 빚 문제가 해결되는 듯했다.[6] 이후 계은숙은 음악 활동을 재개하고, NHK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3. 1. 각성제 복용 문제
2007년 11월 26일, 계은숙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소지) 혐의로 관동신에쓰후생국 마약 단속부에 현행범 체포되었다. "자신이 사용할 생각이었다, 죄송합니다"라며 혐의를 인정하고 사죄했다.[9] 12월 21일, 도쿄지방법원의 즉결 심판에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소지)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10]3. 2. 사기 사건 연루
2001년부터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모습을 감추고 콘서트 활동에 전념했지만, 소속사와의 채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1] 1996년 독립 이후 아시아 진출 실패와 콘서트 제작비 증가로 빚이 늘어났고, 한때 전 남편의 사업 실패 등으로 4억원에 달하는 빚을 지게 되었다.[1][2][3][4]2006년, 재일 한국인 사업가가 채무를 일괄 인수하면서 빚 문제가 해결되었다.[6] 이후 음악 활동을 재개하였으나, 2014년 사기 및 각성제 사용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CD 발매가 중단되고 연예 활동이 중단되었다.[17][19]
4. 수상 경력
년도 | 시상식 | 상 | 수상 작품 | |
---|---|---|---|---|
1986년 | 제19회 전일본유선방송대상 | 신인상 | 大阪暮色|오사카 보쇼쿠일본어 | |
1987년 | 제20회 일본유선대상 | 협회 선장 | すずめの涙|스즈메노 나미다일본어 | |
제20회 전일본유선방송대상 | 노미네이트 | |||
제8회 고가마사오기념음악대상 | 입상 | |||
제16회 동경음악제 아시아데이 | 한국대표 | |||
1988년 | 제21회 일본유선대상 | 그랑프리 | 夢おんな|유메 온나일본어 | |
중간발표 엔카부문 1위 | ||||
최다리퀘스트가수상 | ||||
유선음악상 | ||||
제21회 전일본유선방송대상 | '88상반기우수스타상 | |||
요미우리TV 최우수상 | ||||
특별상 | ||||
제19회 일본가요대상 | 입상 | |||
제15회 요코하마음악제 | 엔카상 | |||
제9회 고가마사오기념음악대상 | 입상 | |||
제7회 메갈로폴리스가요제 | 팝송부문 입상 | |||
1989년 | 제31회 일본레코드대상 | 금상 | 酔いどれて|요이도레테일본어 | |
제20회 일본가요대상 | 방송음악상 | |||
제15회 전일본가요음악제 | 금상 | |||
제22회 일본유선대상 | 유선음악상 | |||
제22회 전일본유선방송대상 | 심사위원회 우수상 | |||
제18회 FNS가요제 | 우수가요음악상 | |||
1990년 | '''제32회 일본레코드대상 | 앨범 대상 | 真夜中のシャワー|마요나카노 샤와일본어 (앨범) | 真夜中のシャワー|마요나카노 샤와일본어 |
제23회 일본유선대상 | 유선음악우수상 | 真夜中のシャワー|마요나카노 샤와일본어 | ||
제23회 전일본유선방송대상 | 요미우리TV 최우수상 | |||
우수스타상 | ||||
제23회 일본작사대상 | 입상 | |||
제18회 긴자음악제 | 특별상 | |||
제16회 전일본가요음악제 | 특별상 | |||
제9회 메갈로폴리스가요제 | 팝송대상 | |||
1991년 | 제33회 일본레코드대상 | 골든디스크상 | 悲しみの訪問者|카나시미노 호몬샤일본어 | |
편곡상 | ||||
제6회 일본골든디스크대상 | 앨범상 가요곡・엔카부문(여자) | 桂銀淑 全曲集|카츠라 긴슈쿠 젠쿄쿠슈일본어 | ||
1992년 | 제34회 일본레코드대상 | 골든디스크상 | 都会の天使たち|토카이노 텐시타치일본어 | |
제25회 일본유선대상 | 유선음악우수상 | |||
제25회 일본작사대상 | 입상 | |||
1994년 | 제36회 일본레코드대상 | 우수상 | 花のように鳥のように|하나노 요니 토리노 요니일본어 | |
작사상 | ||||
제27회 일본작사대상 | 우수작품상 | |||
1995년 | 제28회 일본작사대상 | 입상 | ベサメムーチョ|베사메 무쵸일본어 | |
1997년 | 제30회 일본작사대상 | 입상 | 「Yes」と答えて|예스 토 코타에테일본어 | |
5. 음반 목록
(데뷔 7주년 기념·특별 기획 7매 세트)
2003년 9월 29일
(데뷔 10주년 기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