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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프리 치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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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드프리 치탈루는 잠비아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964년부터 1982년까지 선수로 활약하며 잠비아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했다. 그는 키트웨 유나이티드와 카브웨 워리어스에서 클럽 경력을 쌓았고, 잠비아 올해의 축구 선수로 5번 선정되었다. 1972년 한 해 동안 107골을 기록했다는 주장이 있으며, 감독으로서는 카브웨 워리어스를 이끌고 1993년 항공 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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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프리 치탈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93년 치탈루
1993년의 치탈루
전체 이름Godfrey Kangwa Chitalu
출생일1947년 10월 22일
출생지루안샤, 북로디지아
사망일1993년 4월 27일
사망 장소가봉 앞바다 대서양
포지션공격수
유소년 경력
유소년 클럽 연도1957–1959
유소년 클럽Fisansa Youth Club
유소년 클럽 연도1959–1962
유소년 클럽Kwacha I Community Centre
선수 경력
클럽 연도1964–1970
클럽키트웨 유나이티드
출장200+
176+
클럽 연도1971–1982
클럽카브웨 워리어스
출장500+
314+
총 출장700+
총 골490+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 연도1968–1980
국가대표팀잠비아
국가대표팀 출장111
국가대표팀 골79
감독 경력
감독 연도1984–1986
감독 클럽카브웨 워리어스
감독 연도1991–1993
감독 클럽카브웨 워리어스
감독 연도1993
감독 클럽잠비아
메달 기록
스포츠남자 축구
대회아프리카 컵 오브 네이션스
은메달1974 이집트

2. 어린 시절

고드프리 치탈루는 어린 시절 축구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보였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잦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향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으며, 여러 학교와 유소년 클럽을 거치며 선수로서의 기량을 키워나갔다. 1958년에는 불라와요로 선수단과 함께 이동하여 후보 선수로 활동하기도 했고, 권투 선수로도 잠시 활동했다. 1964년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지만, 키트웨 유나이티드의 에멘트 카펭게의 권유로 키트웨 유나이티드 예비팀에 합류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19][20][21]

2. 1. 유년기 및 초기 축구 경력

고드프리 강와 치탈루는 루안샤의 구리벨트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루시안 치탈루는 광부로 일하면서 지방 법원 판사로도 활동했고, 어머니 에머리아 치탈루는 주부였다.[16] 그는 9명의 형제와 함께 로안 광산 타운십의 9구역에서 자랐으며, 고드프리는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 그는 이곳에서 타운십의 거리와 수많은 커뮤니티 운동장에서 맨발로 유소년 축구를 했다.[16] 경기들은 광산 타운십의 각 구역들 사이에서 열렸으며, 승리자에게는 단추가 주요 상품이었지만, 때로는 돈이 상품으로 걸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경기는 상대 팀 간의 난투극으로 끝나기도 했다. 치탈루는 축구를 매우 좋아했지만, 경기의 거친 특성 때문에 많은 부상을 입었다. 이러한 부상에는 팔 골절도 포함되었으며, 그는 미래에 여러 번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그는 병원에 있을 때도 가끔 탈출하여 친구들과 축구를 하러 가곤 했다.[17]

1954년 마코마 초등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시작했고, 10세의 나이에 학교 팀에 합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크리에이션 담당관 베니 에반스가 그를 피산사 유스 클럽으로 초청하여 테스트를 받게 했고, 이후 센터 포워드로 팀에서 뛰기 시작했다.[18] 그는 이 테스트를 통과하여 또 다른 잠비아 국가대표인 윌리 치피타를 포함한 여러 젊은 재능들과 함께하게 되었다. 이 유스 클럽은 베니 에반스가 구성한 마을의 소규모 소년 리그에서 종종 경쟁했다. 한때 이 리그에는 99개의 가맹 팀이 있었다. 피산사는 루안샤의 다른 유스 클럽들과 자주 맞붙었다. 이것이 고드프리가 훌륭한 공격적 위협을 가하며 때로는 골키퍼로도 뛰었던 만능 미드필더 보니파스 시무토웨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샌디 카포사, 해피 말라마, 다이슨 무갈라, 케니 분다, 헨리 카송고와 같은 선수들도 있었다. 경쟁이 치열했음에도 불구하고 치탈루는 15세 이하 지구 팀에 합류하여 1958년 불라와요로 선수단과 함께 이동하여 후보 선수로 활동했으며 권투에도 참여했다.[18]

1959년 키트웨의 카와마 학교로 전학하여 포지션을 인사이드 레프트로 바꾸고 정규 1군 선수로 활약했다.[18] 카와마 학교에 다니는 동안 콰차 I 커뮤니티 센터 팀에 합류하여 센터 포워드로 뛰었다. 그는 이곳에서 미래의 키트웨 유나이티드 팀 동료인 라멕 소코, 스티븐 무손다, 윈스턴 무암바를 만났다. 센터에서 3년 동안 콰차 I는 키트웨 구에서 챔피언 자리를 유지했다. 치탈루의 재능은 티리바비라는 클럽 코치에 의해 주목받았으며, 그는 그에게 축구에 집중하고 권투는 잊으라고 권유했다. 또한 그의 나이대의 소년들이 이 스포츠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도 그가 글러브를 벗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18]

1961년 초등 교육을 마치고 키트웨를 떠났다. 칭골라에 있는 형 스탠리와 함께 머물면서 무시시마 중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했고, 학교 팀에서 인사이드 레프트로 뛰었다.[18] 1964년 중학교 졸업 시험을 4개월 앞두고 스탠리가 직장을 잃고 학비를 낼 사람이 없어 키트웨와 콰차 I로 돌아와야만 했다.

키트웨 유나이티드의 주장 겸 잠비아 국가대표 에멘트 카펭게는 콰차 I에서 그가 뛰는 것을 보고 1부 리그 팀에 합류할 것을 권유했으며, 그곳에서 치탈루가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클럽 회장 제스로 응와네의 초청을 받아 키트웨의 예비팀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응와네는 팀을 위한 젊은 재능을 찾고 있었다.[19][20][21]

3. 클럽 경력

1964년 키트웨 유나이티드 FC에서 데뷔했으며, 1971년 카브웨 워리어스 FC로 이적해 1982년까지 활약하였다. 잠비아 축구 협회1972년 치탈루가 리그, A매치, 올림픽 국가대표팀 경기를 포함해 총 60경기에서 107골을 기록한 것을 근거로 한해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라고 주장했으나,[76] 국제 축구 연맹은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키트웨 유나이티드 시절, 1968년에 리그 및 컵 경기 70골, 국가대표팀 11골로 올해의 선수상과 최고 득점상을 받았고,[25] 1970년에는 41골로 득점 3위를 기록했다.[28][29]

1971년 카브웨 워리어스로 이적 후 첫 시즌에 리그와 치부쿠 컵 더블을 달성, 클럽과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총 51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31] 1972년에는 107골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올해의 선수상과 득점왕을 차지, 로스만스 인터내셔널은 그의 업적을 기려 이름과 득점 수가 새겨진 특별한 노란색 공을 선물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하여 1977년 올해의 스포츠맨,[34][35] 1978년과 1979년에는 잠비아 올해의 축구 선수상을 연속 수상하며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36] 1981년 팔 부상에도 불구, 다음 해 복귀하여 시즌 말 은퇴했다.[37]

3. 1. 키트웨 유나이티드 (1964-1970)

1964년 말, 치탈루는 잠비아 내셔널 풋볼 리그 1부 리그의 키트웨 유나이티드의 주목을 받았다. 키트웨 유나이티드의 회장 제트로 응와네는 젊고 유망한 선수를 찾고 있었고, 지역 경기에서 뛰어난 골 감각을 가진 고드프리를 발견하고 그의 재능을 직감하여 리저브 팀으로 영입했다.[18]

1965년 시즌 대부분을 리저브 팀에서 보낸 치탈루는 시즌 말에 1군으로 승격되어, 10월 로카나 유나이티드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데뷔하여 득점을 기록하며 2-1 승리에 기여했고, 팀은 리그 3위를 기록했다.[18][20]

1966년, 등번호 10번을 달고 팀 내 입지를 굳힌 치탈루는 14골을 기록하며 팀의 주요 득점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지만, 팀은 6위에 머물렀다. 그는 꾸준히 경기에 출전했지만, 미래는 불확실했고, 키트웨 유나이티드의 주장 엠멘트 카펭궤는 치탈루에게 축구를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격려했다.[18][20] 데니스 로를 존경했던 치탈루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성격이 급하고 거칠다는 평판을 받았으며, "반격을 당하지 않고 발로 차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18] 챌린지 컵 결승에 진출했지만, 로카나 유나이티드에게 5-1로 패했다.

1967년 6월, 잠비아존 찰스 XI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치탈루의 활약은 카디프 시티의 주목을 받았지만, 계약 제안은 무산되었다.[22][23] 7월 8일, 루사카의 우드랜즈 스타디움에서 열린 루사카 시티와의 리그 경기에서 거친 플레이로 여러 번 경고를 받은 후 주심에게 자신의 이름을 데니스 로라고 말해 퇴장당했다. 그는 경기장을 떠나기를 거부했고, 키트웨 유나이티드 임원에게 이끌려 나갔다. 잠비아 NFL의 징계 위원회는 그에게 시즌 잔여 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19][23]

1968년, 20세의 나이로 1부 리그 최연소 주장이 된 치탈루는 언론으로부터 "최고의 결정 또는 최악의 결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24] 클럽은 그가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제어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치탈루는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 범죄를 저지를 때마다 주심에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키트웨 유나이티드 임원들이 그의 성격을 바꾸는 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24] 시즌 초, 리그 및 컵 경기 9경기에서 18골을 기록했다. 징계 기록이 개선되면서 득점 능력도 향상되었고, 클럽에서 70골, 국가대표팀에서 11골을 기록하며 올해의 선수상과 최고 득점상을 수상했다. 리그 4위를 기록했고,[25] 캐슬 컵 결승에 진출하여 리그 챔피언 무풀리라 원더러스에게 2-1로 패했다.[26]

1969년 6월, 잠비아와 카디프 시티 간의 친선 경기에서 카디프 수비수 브라이언 해리스를 상대로 반칙을 범하여 퇴장당한 후, 벌금과 6주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 징계는 사과 후 잠비아 축구 협회에 의해 해제되었다.[19] 5월에는 로카나와의 경기에서 옐로 카드를 받은 후, 로카나의 회장 리처드 물렝가를 폭행했지만, 치탈루는 NFL로부터 처벌을 면했다. 그는 몸이 좋지 않아 루안샤에 있는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갔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팀 훈련 캠프를 무단으로 이탈한 혐의로 6개월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19]

1970년, 5개월의 징계를 마치고 복귀한 치탈루는 리그 첫 달 경기에 불참했다. 카브웨 워리어스를 1-0으로 꺾고 치부쿠 컵에서 우승했다.[27] 시즌 말, 두 번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고, 41골을 기록하며 득점 순위 3위를 기록했다.[28][29]

3. 2. 카브웨 워리어스 (1971-1982)

1971년, 치탈루는 카브웨로 이주하여 카브웨 워리어스에 합류했다. 이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키트웨 유나이티드는 "잘못된 물에서 물고기를 잡았다"라며 이적을 반대했고,[30] 당초 15,000콰차의 이적료를 요구했다. 이는 당시 잠비아 축구 역사상 최고 이적료였던 2,000콰차의 7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치탈루는 전국 축구 리그에 호소했고, 결국 이적료는 3,500콰차로 삭감되어 이적이 성사되었다.

시즌 초반 6경기를 놓친 치탈루는 칼루루시 모던 스타스와의 데뷔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유니온 카바이드에서 제조한 내구성이 뛰어난 유카 배터리를 따서 "유카(Ucar)"라는 별명을 얻었다.[19] 카브웨 워리어스에서의 첫 시즌에 리그와 치부쿠 컵 더블을 달성했고, 클럽과 국가대표팀 경기를 합쳐 51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으로 시즌을 마쳤다.[31]

1972년은 치탈루에게 엄청난 기록을 세운 해였다. 그는 1972년 1월 23일 마세루에서 열린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 컵 경기에서 마잔트자 FC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2월 6일 은돌라의 다그 함마르셸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두 번째 경기에서는 소토족을 상대로 7골을 몰아넣는 놀라운 득점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 골들은 잠비아 시즌 시작 전에 치러진 경기였기 때문에 잠비아 당국에 의해 무효 처리되었다.

이후에도 치탈루의 득점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카브웨 워리어스가 자선 실드에서 우승할 때 결승골을 넣었고, 리그 첫 경기에서 잠비아 경찰을 상대로 2골을 기록했다. 친선 경기, 치부쿠 컵 경기, FIFA 월드컵 예선전 등 다양한 경기에서 꾸준히 득점하며 엄청난 속도로 골을 쌓아갔다. 8월 14일 올스타와 더 레스트의 경기에서 2골을 추가하며 시즌 총 71골을 기록했다.

치탈루는 잠비아 챌린지 컵 결승전과 치부쿠 컵 결승전에서 모두 득점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1968년 자신이 세운 81골 기록을 넘어섰다. 10월 말에는 92골을 기록하며 무풀리라 원더러스의 버나드 챤다와 팀 동료 샌디 카포사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 그는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 컵 경기, 치부쿠 컵 경기, 캐슬 컵 준결승전 등에서 17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1월, 치탈루는 캐슬 컵 결승전에서 득점하며 또 하나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루사카 시티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시즌 총 득점을 99골로 늘렸다. 마침내 칼루루시의 인디펜던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칼루루시 모던 스타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100골 고지를 넘어섰다.

시즌이 끝날 무렵, 카브웨 워리어스는 모든 은식기를 휩쓸었고, 치탈루는 올해의 선수상과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팀 동료들의 헌신적인 지원 덕분이라고 밝혔다. 로스만스 인터내셔널은 그의 놀라운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과 득점 수가 새겨진 특별한 노란색 공을 선물했다.

이후에도 치탈루는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1973년과 1974년에도 득점 선두를 달렸고,[32] 1975년에는 팀이 강등 위기에 처했으나 잠비아 축구 협회의 결정으로 구제되었다.[33] 1976년에는 버나드 챤다에 이어 득점 2위를 기록했고, 1977년에는 올해의 스포츠맨으로 선정되었다.[34][35] 1978년과 1979년에는 잠비아 올해의 축구 선수상을 연속으로 수상하며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36]

1981년 7월, 치탈루는 루사카에서 열린 리그 경기 중 상대 수비수의 태클을 피하려다 잘못 착지하여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으로 남은 시즌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다음 해에 복귀하여 시즌 말에 은퇴했다.[37]

4. 국가대표팀 경력

치탈루는 1968년 6월 29일 루사카에서 열린 우간다와의 친선 경기에서 잠비아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잠비아가 2-1로 승리했다.[38] 5일 후 같은 팀과의 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첫 골을 넣었다.[39]

1970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수단을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잠비아는 아프리카 지역에 특이하게 적용된 규칙 때문에 탈락했다. 2차전에서 승리한 팀에게 유리한 규칙에 따라, 잠비아가 1차전에서 4-2로 승리하고 2차전에서 같은 점수 차로 패배하여 합계 6-6 동률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수단이 2차전에서 더 많은 골을 넣어 2라운드에 진출했다.[40] FIFA는 이 규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41]

치탈루는 1973년 7월 15일 루사카에서 나이지리아를 5-1로 꺾고 197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진출에 기여했다. 1974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에서 이집트와의 경기에서 3-1로 패배했지만 한 골을 넣었다. 잠비아는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재경기 끝에 자이르에게 패했다.

1975년 4월, 국가대표팀에서 제외되어 거의 2년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브라이트웰 반다 코치 부임 후 복귀하여, 1977년 2월 27일 은돌라에서 열린 1978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우간다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두 골을 넣으며 4-2 승리를 이끌었다.[42] 5개월 후, 알제리와의 197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 1차전에서 0-2로 뒤진 상황에서 두 골을 넣어 2-2 무승부를 만들었고, 잠비아는 승부차기에서 6-5로 승리했다.[43] 30세가 되던 해에 CECAFA컵에서 5골을 넣었지만, 잠비아는 결승전에서 우간다에게 승부차기로 패했다.

1978년 가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두 번째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했지만,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44] 우간다에서 열린 CECAFA컵에서 케냐를 9-0으로 대파하는 경기에서 3골, 우간다를 4-0으로 꺾는 경기에서 4골을 포함하여 총 11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잠비아는 결승전에서 말라위에 3-2로 패했다.

1980년, 1980년 하계 올림픽에서 잠비아 대표로 출전하여 소련과의 경기에서 3-1로 패했지만 한 골을 넣었다.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도 득점하여 2-1 패배를 기록했다.[45] 1980년 12월 12일 나이로비에서 열린 케냐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잠비아는 2-1로 패했다. 통산 108경기에 출전하여 76골을 기록하며 잠비아 국가대표팀 최다 출전 및 최다 득점 기록을 세웠다.[6]

1981년 5월 25일, 잠비아 대통령 케네스 카운다로부터 잠비아 축구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 훈장을 받았다. 그는 "언젠가 잠비아가 월드컵이나 최소한 대륙컵을 가져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에는 평생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기다릴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46]

5. 감독 경력

고드프리 치탈루는 1975년 카브웨 워리어스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47] 1978년에는 스와질란드 원정 경기에서 임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6-1, 5-2 대승을 이끌었다.[47]

은퇴 후에는 일리야 루키치 감독 아래에서 카브웨 워리어스의 코치를 맡았다. 1983년 10월 16일, 레일웨이 경기장에서 열린 나카나 레드 데빌스와의 경기에서 심판을 폭행한 사건으로 인해[48] 클럽에서 해고되고 1년간 축구 활동이 금지되었다.[49] 잠비아 축구 협회는 치탈루에게 영구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내렸으나,[50] 항소를 통해 징계가 2년 집행유예와 벌금으로 경감되었다.[51]

1984년부터 1986년까지, 그리고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카브웨 워리어스의 감독을 맡았다. 1984년에는 인디펜던스 컵 우승을 이끌었고,[52] 1986년에는 리그 3위를 기록했다.[53] 1991년에는 강등되었던 팀을 다시 잠비아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시켰고, 챔피언 오브 챔피언스 트로피와 챌린지 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주었다.[59][60] 이러한 성과를 인정받아 1991년에는 올해의 코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87년 10월에는 국가대표팀 행정 관리자로 임명되었고, 1988 서울 올림픽 진출에 기여했다.[54] 비록 올림픽 본선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대회 후 같은 직책으로 복귀했다.[55] 1988년에는 국제 페어 플레이 위원회로부터 페어 플레이 명예 외교상을 받았다.[56][57][58]

1993년에는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1994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을 이끌었다.[61] 그러나 세네갈로 이동하던 중 항공 사고로 인해 탑승객 전원과 함께 사망하였다.[77] 잠비아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최종 기록은 4승 1무 1패, 13득점 3실점이었다.[62]

1993년 루사카에서 알렉스 촐라와 함께한 치탈루

6. 사망 및 유산

1993년 4월 27일,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1994년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경기를 위해 세네갈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이동 수단은 잠비아 공군 소속 비행기인 드 하빌랜드 캐나다 DHC-5 버펄로였다. 가봉 리브르빌에서 급유를 마친 후, 비행기에 문제가 발생하여 바다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잠비아 축구 협회 회장 마이클 음와페, 치탈루, 그리고 선수 18명을 포함한 탑승자 30명 전원이 사망했다.[77][65][66]

루사카에 있는 고드프리 치탈루의 묘


사망 이후 루사카에는 치탈루의 이름을 딴 '고드프리 치탈루 도로'가 세워졌다.[67] 2012년 카브웨 워리어스 FC는 그의 활약상을 기리고자 홈 경기장인 레일웨이스 경기장의 이름을 ''고드프리 "우카" 치탈루 107 경기장''으로 바꾸었다.[68][69]

7. 논란: 1972년 107골 기록

잠비아 축구 협회1972년 치탈루가 리그 경기와 A매치, 올림픽 국가대표팀 경기 등을 포함해 총 60경기에서 107골을 득점한 기록을 근거로 치탈루가 한해 최다골 기록을 가진 선수라고 주장했으나,[76] 국제 축구 연맹(FIFA)은 이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15]

리오넬 메시게르트 뮐러의 한 해 85골 기록을 깬 것으로 기록된 후, 잠비아 축구 협회는 1972년 한 해 동안 116골(또는 117골), 1972 시즌 동안 107골을 기록한 치탈루가 실제 세계 기록 보유자라고 주장했다. 득점 차이는 시즌이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9골이 먼저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잠비아 축구 협회는 FIFA에 증거를 제출했지만, FIFA 대변인은 국내 대회의 통계를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메시와 치탈루의 기록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한 국가 축구 협회가 주장하는 최고 공식 기록이 될 수 있다.

기록 요약
대회연도시즌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134
캐슬 컵1515
챌린지 컵1010
자선 방패11
치부쿠 컵1616
친선 경기55
리그4949
NFL 자선 기금 경기22
NFL 트로피33
월드컵 예선22
합계116107



1972년 한 해 및 시즌 동안 득점 목록
대회상대결과비고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마잔트자2–22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마잔트자9–07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세인트 마이클스3–11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세인트 마이클스3–01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하츠 오브 오크2–71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하츠 오브 오크1–21
캐슬 컵카브웨 워리어스잠비아 공군12–23
캐슬 컵카브웨 워리어스로카나 유나이티드5–32
캐슬 컵카브웨 워리어스무풀리라 원더러스3–22
캐슬 컵카브웨 워리어스로안 유나이티드6–15
캐슬 컵카브웨 워리어스키트웨 유나이티드6–13
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로스만스10–03
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칼룰루시 모던 스타스7–32
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부톤도 웨스턴 타이거스10–02
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잠비아 이글스3–01
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은돌라 유나이티드3–12
자선 방패카브웨 워리어스키트웨 유나이티드1–01
치부쿠 컵카브웨 워리어스노르코 레인저스14–23
치부쿠 컵카브웨 워리어스부톤도 웨스턴 타이거스6–13
치부쿠 컵카브웨 워리어스부세코 FC10–25
치부쿠 컵카브웨 워리어스로안 유나이티드3–21
치부쿠 컵카브웨 워리어스로카나 유나이티드5–34
친선 경기카브웨 워리어스마세루 유나이티드7–13
친선 경기잠비아셰필드 유나이티드1–11
친선 경기카브웨 워리어스우니온 에스파뇰라1–11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잠비아 경찰5–22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루사카 타이거스4–01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은창가 레인저스2–12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루사카 시티3–01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부톤도 웨스턴 타이거스3–22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은돌라 유나이티드3–12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칼룰루시 모던 스타스12–36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잠비아 경찰7–14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로카나 유나이티드1–41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루사카 타이거스6–13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부톤도 웨스턴 타이거스5–04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은창가 레인저스1–11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무풀리라 원더러스5–14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은돌라 유나이티드2–21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로안 유나이티드4–13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무풀리라 원더러스7–13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루사카 시티9–24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칼룰루시 모던 스타스4–23
리그카브웨 워리어스키트웨 유나이티드4–02
NFL 자선 기금 경기올스타나머지 팀4–32
NFL 트로피미들랜드 XI코퍼벨트 XI2–51
NFL 트로피미들랜드 XI코퍼벨트 XI5–32
월드컵 예선잠비아레소토6–12



스페인 역사가 기옘 폰스는 해당 골 중 최대 88골만이 공식 골이라고 주장한다. 폰스는 잠비아 축구 협회 웹사이트에서 잠비아 자선 쉴드와 치부쿠 컵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사실에 간접적으로 근거하여 이 두 토너먼트에서 기록된 골을 제외했다.[73] 그러나 잠비아 자선 쉴드는 잉글랜드의 FA 커뮤니티 쉴드와 유사하게 시즌 개막 트로피로서 잠비아 축구 협회에서 관리하는 토너먼트라는 것을 알 수 있다.[74] 잠비아 역사가 제리 무침바는 캐슬 컵, 챌린지 컵, 치부쿠 컵은 모두 공식 녹아웃 컵 대회였으며, 리그가 시작된 시점부터 존재해 왔다고 증언했다. 또한 자선 쉴드는 1967년에 도입되었으며, 현재는 사무엘 "줌" 은들로부 자선 쉴드로 불리지만, 오늘날까지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75]

8. 수상 내역

연도대회소속팀비고
1984인디펜던스 컵카브웨 워리어스감독
1991잠비아 디비전 1 리그카브웨 워리어스감독
1991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감독
1991챔피언 오브 챔피언스 컵카브웨 워리어스감독
1992채리티 실드카브웨 워리어스감독


9. 기록

1964년 키트웨 유나이티드 FC에서 데뷔했으며 1971년 카브웨 워리어스 FC로 이적해 1982년까지 활약하였다. 1968년부터 1980년까지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03경기에 출전해 79골을 기록하며 잠비아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76] '잠비아 올해의 축구 선수'에 5번 선정되었고, 2006년 아프리카 축구 연맹에서 선정한 '아프리카 최고의 선수 200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잠비아 축구 협회1972년 치탈루가 리그 경기와 A매치, 올림픽 국가대표팀 경기 등을 포함해 총 60경기에서 107골을 득점한 기록을 근거로 한해 최다골 기록을 가진 선수라고 주장했으나,[76] 국제 축구 연맹(FIFA)은 이를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15]

기록 요약
대회연도시즌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134
캐슬 컵1515
챌린지 컵1010
자선 방패11
치부쿠 컵1616
친선 경기55
리그4949
NFL 자선 기금 경기22
NFL 트로피33
월드컵 예선22
합계116107



{| class="wikitable sortable collapsible collapsed" style="text-align:center"

! colspan="6" | 1972년 한 해 및 시즌 동안 득점 목록

|-

!대회

!팀

!상대

!결과

!골

!비고

|- bgcolor=#F3E2A9

|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마잔트자||2–2||2||

|- bgcolor=#F3E2A9

|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마잔트자||9–0||7||

|- bgcolor=#F3E2A9

|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세인트 마이클스||3–1||1||

|- bgcolor=#F3E2A9

|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세인트 마이클스||3–0||1||

|- bgcolor=#F3E2A9

|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하츠 오브 오크||2–7||1||

|- bgcolor=#F3E2A9

| 아프리카 챔피언 클럽컵||카브웨 워리어스||하츠 오브 오크||1–2||1||

|- bgcolor=#CEECF5

| 캐슬 컵||카브웨 워리어스||잠비아 공군||12–2||3||

|- bgcolor=#CEECF5

| 캐슬 컵||카브웨 워리어스||로카나 유나이티드||5–3||2||

|- bgcolor=#CEECF5

| 캐슬 컵||카브웨 워리어스||무풀리라 원더러스||3–2||2||

|- bgcolor=#CEECF5

| 캐슬 컵||카브웨 워리어스||로안 유나이티드||6–1||5||

|- bgcolor=#CEECF5

| 캐슬 컵 ||카브웨 워리어스||키트웨 유나이티드||6–1||3||

|- bgcolor=#D0F5A9

| 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로스만스||10–0||3||

|- bgcolor=#D0F5A9

| 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칼룰루시 모던 스타스||7–3||2||

|- bgcolor=#D0F5A9

| 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부톤도 웨스턴 타이거스||10–0||2||

|- bgcolor=#D0F5A9

| 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잠비아 이글스||3–0||1||

|- bgcolor=#D0F5A9

| 챌린지 컵||카브웨 워리어스||은돌라 유나이티드||3–1||2||

|- bgcolor=#F5A9F2

| 자선 방패||카브웨 워리어스||키트웨 유나이티드||1–0||1||

|- bgcolor=#A9A9F5

| 치부쿠 컵||카브웨 워리어스||노르코 레인저스||14–2||3||

|- bgcolor=#A9A9F5

| 치부쿠 컵||카브웨 워리어스||부톤도 웨스턴 타이거스||6–1||3||

|- bgcolor=#A9A9F5

| 치부쿠 컵||카브웨 워리어스||부세코 FC||10–2||5||

|- bgcolor=#A9A9F5

| 치부쿠 컵||카브웨 워리어스||로안 유나이티드||3–2||1||

|- bgcolor=#A9A9F5

| 치부쿠 컵||카브웨 워리어스||로카나 유나이티드||5–3||4||

|- bgcolor=#D0A9F5

| 친선 경기||카브웨 워리어스||마세루 유나이티드||7–1||3||

|- bgcolor=#D0A9F5

| 친선 경기||잠비아||셰필드 유나이티드||1–1||1||

|- bgcolor=#D0A9F5

| 친선 경기||카브웨 워리어스||유니온 에스파뇰라||1–1||1||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잠비아 경찰||5–2||2||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루사카 타이거스||4–0||1||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은창가 레인저스||2–1||2||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루사카 시티||3–0||1||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부톤도 웨스턴 타이거스||3–2||2||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은돌라 유나이티드||3–1||2||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칼룰루시 모던 스타스||12–3||6||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잠비아 경찰||7–1||4||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로카나 유나이티드||1–4||1||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루사카 타이거스||6–1||3||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부톤도 웨스턴 타이거스||5–0||4||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은창가 레인저스||1–1||1||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무풀리라 원더러스||5–1||4||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은돌라 유나이티드||2–2||1||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로안 유나이티드||4–1||3||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무풀리라 원더러스||7–1||3||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루사카 시티||9–2||4||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칼룰루시 모던 스타스||4–2||3||

|- bgcolor=#F5D0A9

| 리그||카브웨 워리어스||키트웨 유나이티드||4–0||2||

|- bgcolor=#BCF5A9

| NFL 자선 기금 경기||올스타||나머지 팀||4–3||2||

|- bgcolor=#F5A9A9

| NFL 트로피||미들랜드 XI||코퍼벨트 XI||2–5||1||

|- bgcolor=#F5A9A9

| NFL 트로피||미들랜드 XI||코퍼벨트 XI||5–3||2||

|- bgcolor=#A9A9F5

| 월드컵 예선||잠비아||레소토||6–1||2||

'''카브웨 워리어스'''


  • 잠비아 프리미어리그: 1971, 1972
  • 캐슬컵: 1972
  • 챌린지컵: 1972
  • 하인리히 치부쿠컵: 1970, 1971, 1972
  • 채리티 실드: 1971, 1972, 1973


'''잠비아'''

  • 히어로스컵 (우간다와의 3경기 시리즈): 1968
  • 피터 스투이베산트 트로피 (말라위와의 3경기 시리즈): 1969
  •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준우승: 1974


'''개인'''

  • 잠비아 올해의 축구 선수: 1968, 1970, 1972, 1978, 1979
  • 잠비아 리그 득점왕: 1968, 1971, 1972, 1974, 1977, 1980
  • 잠비아 올해의 스포츠맨: 1977
  • CECAFA컵 득점왕: 1978
  • 잠비아 훈장: 1981
  • 국제 페어플레이 위원회 페어 플레이상: 1988


리오넬 메시게르트 뮐러의 한 해 85골 기록을 깬 것으로 기록된 후, 잠비아 축구 협회는 1972년 한 해 동안 116골(또는 117골), 1972 시즌 동안 107골을 기록한 치탈루가 실제 세계 기록 보유자라고 주장했다. 잠비아 축구 협회는 FIFA에 증거를 제출했지만, FIFA는 국내 대회 통계를 기록하지 않기 때문에 메시와 치탈루의 기록 모두 승인하지 않겠다고 답변했다.[15]

스페인 역사가 기옘 폰스는 치탈루의 골 중 최대 88골만이 공식 골이라고 주장한다. 폰스는 잠비아 자선 쉴드와 치부쿠 컵에서 기록된 골을 제외했는데, 잠비아 축구 협회 웹사이트에서 이 두 토너먼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사실에 간접적으로 근거하여 추정했다.[73] 그러나 잠비아 자선 쉴드는 잉글랜드의 FA 커뮤니티 쉴드와 유사하게 시즌 개막 트로피로서 잠비아 축구 협회에서 관리하는 토너먼트이다.[74]

잠비아 역사가 제리 무침바는 "캐슬 컵, 챌린지 컵, 치부쿠 컵은 모두 공식 녹아웃 컵 대회였으며, 리그가 시작된 시점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자선 쉴드는 1967년에 도입되었으며, 현재는 또 다른 상징적인 축구 선수인 사무엘 "줌" 은들로부 자선 쉴드(Samuel “Zoom” Ndhlovu Charity Shield)로 불리지만, 오늘날까지도 존재합니다."라고 증언했다.[75]

참조

[1] 서적 Godfrey 'Ucar' Chitalu https://books.google[...] Troubador Publishing Ltd 2015-05-28
[2] 뉴스 Lest we forget them http://www.postzambi[...] The Post (Zambia) 2010-12-27
[3] 웹사이트 Samuel "Zoom" Ndhlovu: True Zambian Legend http://bolazambia.co[...] Bolazambia 2012-05-24
[4] 웹사이트 Interview with Ndaye Mulamba Living Legend http://simbasports.i[...] Simbasports 2009-06-17
[5] 뉴스 Dennis Liwewe talks to Fast Track http://news.bbc.co.u[...] BBC 2009-06-10
[6] 웹사이트 Zambia National Team Appearance and Scoring Records http://www.zambianfo[...] Zamfoot 2012-11-09
[7] 뉴스 Stars of yester-year – Solly Pandor: True Zambian Legend 2010-08-14
[8] 웹사이트 Profile: Before Lionel Messi, there was Godfrey Chitalu http://www.thescore.[...] The Score 2012-12-17
[9] 웹사이트 Chitalu's record spins football world http://www.superspor[...] Supersport 2012-12-13
[10] 웹사이트 Zambia's Chitalu 'scored more goals than Messi' http://www.france24.[...] France24 2012-12-17
[11] 웹사이트 Kamanga: "El Derby County vino dos veces para fichar a Chitalu" http://futbol.as.com[...] as.com 2012-12-15
[12] 뉴스 Οι 200 κορυφαίοι Αφρικανοί http://www.sport24.g[...] Sport24.gr 2011-10-15
[13] 웹사이트 Super League History http://www.fazfootba[...] Football Association of Zambia
[14] 웹사이트 Godfrey Chitalu: Did Zambian Striker Score More Goals Than Lionel Messi? http://bleacherrepor[...] Bleacher Report 2013-03-29
[15] 뉴스 FIFA refuses to back Lionel Messi or Godfrey Chitalu for goal record https://www.bbc.co.u[...] BBC Sport 2012-12-15
[16] 서적 Godfrey 'Ucar' Chitalu Matador 2015
[17] 서적 Godfrey 'Ucar' Chitalu https://books.google[...] Troubador Publishing Ltd 2015-05-28
[18] 뉴스 The 'Magic Feet" of Godfrey Chitalu 1968-05-07
[19] 뉴스 The Soccer Greats of Zambia: Fined, suspended, sent off. That was Godfrey Chitalu but now the firebrand has cooled 1971-09-01
[20] 뉴스 Face to Face – Godfrey Chitalu 1970-02-02
[21] 서적 Godfrey 'Ucar' Chitalu https://books.google[...] Troubador Publishing Ltd 2015-05-28
[22] 뉴스 Kitwe club 'thinks twice" on Chitalu 1967-07-07
[23] 뉴스 Cardiff: 'Forget! 1967-12-27
[24] 뉴스 Chitalu leads Kitwe United – one time bad boy is youngest captain in Division I 1968-04-10
[25] 뉴스 Chitalu footballer of the year 1968-12-12
[26] 뉴스 Wanderers call the tune 1968-10-07
[27] 뉴스 1970 – the controversial year 1970-12-26
[28] 뉴스 Chitalu gets the nod 1970-12-10
[29] 서적 Godfrey 'Ucar' Chitalu https://books.google[...] Troubador Publishing Ltd 2015-05-28
[30] 뉴스 Kitwe: Chitalu is our baby! 1971-03-31
[31] 뉴스 Chitalu tops scoring list with 51 goals 1971-11-09
[32] 뉴스 Chanda heads scorer's chart 1974-01-03
[33] 뉴스 Warriors head for the second division 1975-10-06
[34] 뉴스 Chileshe was the right choice insists FAZ; 1978-02-08
[35] 뉴스 Chitalu still going strong 1978-04-01
[36] 뉴스 Chitalu, the great, named winner again Zambia Daily Mail 1980-01-26
[37] 뉴스 Warriors keep reigns Times of Zambia 1981-07-03
[38] 뉴스 Hats off to Zoom Zambia Mail 1968-07-02
[39] 뉴스 Small crowd sees Zambia through Times of Zambia 1968-07-05
[40] 뉴스 Zambia go down 4–2 Times of Zambia 1968-11-09
[41] 뉴스 It's official: Zambia is out of the World Cup Zambia News 1968-11-10
[42] 뉴스 Zambia tames Uganda Times of Zambia 1977-02-27
[43] 뉴스 We've done it – at last! Zambia Daily Mail 1977-06-27
[44] 서적 Zambia Sporting Score: A Period of Hits and Misses https://books.google[...] iUniverse
[45] 웹사이트 Godfrey Chitalu: Biography & Statistics https://www.sports-r[...] Sports Reference LLC 2012-12-11
[46] 뉴스 Evergreen Chitalu honoured by KK Times of Zambia 1981-05-27
[47] 뉴스 Chitalu now coach for national XI Times of Zambia 1978-08-23
[48] 뉴스 Soccer Star beats ref Chayu Times of Zambia 1983-10-17
[49] 뉴스 Club bans Chitalu Times of Zambia 1983-10-17
[50] 뉴스 "'Bad boy' Chitalu banned," Times of Zambia 1983-11-23
[51] 뉴스 FAZ lifts Chitalu ban Times of Zambia 1984-02-20
[52] 뉴스 Can Warriors regain 'Magnificent' tag? Times of Zambia 1985-02-19
[53] 뉴스 Warriors grab league title Times of Zambia 1988-01-04
[54] 뉴스 Seoul here we come Times of Zambia 1988-02-01
[55] 뉴스 Chitalu recalled Times of Zambia 1988-10-12
[56] 뉴스 Chitalu honoured Times of Zambia 1988-08-19
[57] 뉴스 Routed Italian squad disbanded Times of Zambia 1988-10-28
[58] 웹사이트 Fair Play Award Winners http://www.fairplayi[...] International Fair Play Committee
[59] 뉴스 I deserved the award – Chitalu The Weekly Post 1992-02-28
[60] 뉴스 I deserve the award, quips coach Chitalu Times of Zambia 1992-02-24
[61] 뉴스 Simwala sidelined as squad camps Times of Zambia 1993-01-05
[62] 뉴스 We'll reach finals – coach Times of Zambia 1993-01-18
[63] 뉴스 Ucar and the girl of his dreams Times of Zambia 1972-10-10
[64] 뉴스 Magnificent Warriors outplay Wanderers Times of Zambia 1992-08-27
[65] 뉴스 Zambian footballers remember a lost generation of players https://www.bbc.co.u[...] BBC Sport 2012-02-10
[66] 뉴스 The day a team died: A tragedy for Zambian football https://www.independ[...] 2012-01-19
[67] 웹사이트 Godfrey Chitalu Rd http://maps.google.c[...] Google Maps 2012-12-19
[68] 뉴스 Kabwe Warriors To Honour Zambia's Greatest Player of All Time – Godfrey 'Ucar' Chitalu http://tumfweko.com/[...] Tumfweko 2012-12-19
[69] 뉴스 Zambian club to name stadium after hero Chitalu http://tensport.com.[...] ten sport 2012-12-19
[70] 문서 Godfrey 'Ucar' Chitalu Matador
[71] 웹사이트 Godfrey Chitalu – Century of International Appearances https://www.rsssf.or[...] 2014-12-24
[72] 서적 Godfrey 'Ucar' Chitalu https://books.google[...] Troubador Publishing Ltd 2015-05-28
[73] 뉴스 Desmontando a Chitalu http://www.mundodepo[...] 2018-05-23
[74] 뉴스 Charity Shield final moved to Konkola http://mobi.fazfootb[...] Football Association of Zambia 2012-03-13
[75] 뉴스 Blog: Proof that Chitalu did score 107 goals in a single season http://www.zambianfo[...] Zambia 2012-01-11
[76] 웹인용 잠비아, 치탈루 107골 기록 공개…논란 확산되나 http://www.sportswor[...] 2012-12-14
[77] 웹인용 30명전원 사망 http://newslibrary.n[...] 199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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