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오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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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성오광대는 1900년대 초 마산 지역에서 전승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의 탈춤이다. 영남 지방 탈춤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금지되기도 했지만 광복 이후 부활했다. 평민의 삶, 토호 세력 풍자, 첩 문제 등을 다루며 오락적인 성격을 지닌다. 문둥북춤, 오광대, 비비, 승무, 제밀주 등 다섯 마당으로 구성되며, 덧배기 춤사위가 특징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양반, 중, 소모, 비비, 영감 등 13종류이며, 가면은 마분지 또는 오동나무로 제작된다. 김창후, 전세봉, 배갑문, 홍익수, 남상익, 최응두, 허판세 등이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이윤선이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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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오광대 | |
---|---|
기본 정보 | |
![]() | |
종류 | 탈춤, 민속극 |
지정 번호 |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
지정일 | 1964년 12월 24일 |
전승지 | 경상남도 |
보유자 | 고성오광대놀이보존회 |
개요 | |
정의 | 경상남도고성군에서 전승되는 오광대 놀이 |
특징 | 오광대 중에서도 가장 향토색이 짙고 서민적인 예술 형태를 지님. |
역사 | |
기원 | 조선시대 후기 |
유래 | 고성 지역의 농민들이 정월 대보름에 액운을 쫓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시작한 놀이에서 유래 |
전승 과정 | 일제강점기: 민족 문화 말살 정책으로 인해 중단 해방 이후: 지역 주민들의 노력으로 복원 현재: 고성오광대놀이보존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승 |
내용 | |
구성 | 다섯 마당 (오방신장무, 문둥이 과장, 양반 과장, 중 과장, 비비 과장)으로 구성 각 마당은 독립된 내용과 형식을 가지면서도 전체적으로 사회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음. |
등장인물 | 오방신장: 동, 서, 남, 북, 중앙의 오방신을 상징하는 신 문둥이: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변 양반: 권위적이고 허례허식에 젖은 지배 계층을 풍자 중: 파계승을 통해 종교의 위선을 비판 비비: 민중의 해학과 저항 정신을 대변 |
반주 | 꽹과리, 징, 장구, 북 등의 악기로 구성된 농악 반주 사용 |
의미 | |
민중 문화 | 사회 비판과 풍자를 통해 민중의 정서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민중 문화 유산 |
향토 문화 | 고성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독창적인 향토 문화 유산 |
예술적 가치 | 춤, 음악, 연극 등 다양한 예술적 요소를 결합한 종합 예술로서의 가치 인정 |
2. 역사
고성오광대의 기원과 전승 경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공연 보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00년대 초 마산 지역의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했다고 한다.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변화했지만, 고성오광대는 대사, 탈, 의상, 춤의 특징으로 볼 때 그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어 영남 지방의 탈춤 양식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평가받는다.
고성오광대는 다섯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춤은 주로 영남 지방의 전통적인 춤 스타일인 덧배기(염불타령, 굿거리)로 이루어진다.[1] 말뚝이의 춤은 검무처럼 역동적이었지만 점차 차분해졌다.[1] 공연은 보통 고성의 산에서 함께 했고, 가면은 나무로 만들었으며, 5~6겹의 짚 매트 위에서 진행되었다.[1] 악사들은 한쪽에 자리 잡았다.[1] 이야기는 통영오광대와 유사하다.[1]
일제강점기에는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으나, 광복 이후 부활했다. 고성오광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 토호 세력을 풍자하며, 첩의 문제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주로 공연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봄과 가을에 공연된다. 다른 다섯 마당의 전통 탈춤과는 달리, 고성오광대는 공연 전후에 악귀를 쫓는 의식이 없고 오락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3. 구성 및 내용
다섯 마당은 다음과 같다.3. 1. 제1마당: 문둥북춤
고성오광대는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춤은 주로 영남 지방의 전통적인 춤 스타일인 덧배기(염불타령, 굿거리)로 이루어진다.[1] 고성오광대의 춤은 덧배기라고 불리며, 말뚝이의 춤은 검무처럼 역동적이었지만 점차 차분해졌다.[1] 보통 사람들은 고성의 산에서 함께 공연을 했고, 가면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공연은 5~6겹의 짚 매트 위에서 진행되었다.[1] 한쪽에는 악사들이 자리 잡았다.[1] 이야기는 통영오광대와 유사하다.[1]
제1마당은 문둥북춤에 관한 것이다.[1] 문둥이는 악기를 들고 나와 애절하게 춤을 추며, 자신의 불치병이 조상 탓이라고 말한다.[1]
3. 2. 제2마당: 오광대 (양반)
고성오광대의 제2마당은 오광대(양반)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춤은 주로 영남 지방의 전통적인 춤 스타일인 덧배기(덧뵈기)라고 불리는 염불-타령, 굿거리로 이루어진다. 고성오광대의 춤은 덧뵈기라고 불리며, 말뚝이의 춤은 검무처럼 역동적이었지만, 점차 차분해졌다. 보통 사람들은 고성의 산에서 함께 공연을 했다. 가면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공연은 5~6 겹의 짚 매트 위에서 진행되었다. 한쪽에는 악사들이 자리 잡았다. 이야기는 통영오광대와 유사하다. 말뚝이가 등장하여 일곱 명의 양반을 조롱하고, 자신만이 유일한 양반이라고 주장한다.
3. 3. 제3마당: 비비
비비는 사람의 얼굴에 괴물의 몸을 가진 괴물이다.[1] 비비 이야기는 통영오광대와 유사하다.[1]
3. 4. 제4마당: 승무 (중)
고성오광대는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춤은 주로 영남 지방의 전통적인 춤 스타일인 덧배기(염불타령, 굿거리)로 이루어진다. 고성오광대의 춤은 덧배기라고 불리며, 말뚝이의 춤은 검무처럼 역동적이었지만 점차 차분해졌다. 보통 사람들은 고성의 산에서 함께 공연을 했다. 가면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공연은 5~6겹의 짚 매트 위에서 진행되었다. 한쪽에는 악사들이 자리 잡았다. 이야기는 통영오광대와 유사하다. 네 번째 이야기는 스님에 관한 것으로, 스님은 재작아씨를 위해 춤을 추다가 할머니에게 쫓겨난다.
3. 5. 제5마당: 제밀주
제5마당은 제밀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늙은이가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다 아내에게 들키는 내용으로, 첩 제도를 풍자한다.[1]
4. 등장인물 및 가면
고성오광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가면은 각 역할의 특징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대부분 마분지(종이를 풀에 이겨 만든 것)를 기본 재료로 사용하였으며, 오동나무, 털, 거울 조각 등을 추가하여 각 인물의 개성을 표현하였다.
각 가면의 재료, 특징, 놀이 복색은 다음과 같다.
4. 1. 주요 등장인물
고성오광대는 다섯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춤은 주로 영남 지방의 전통적인 춤 스타일인 덧배기(염불타령, 굿거리)로 이루어진다. 고성오광대의 춤은 덧배기라고 불리며, 말뚝이의 춤은 검무처럼 역동적이었지만 점차 차분해졌다. 이야기는 통영오광대와 유사하다.- 첫 번째는 문둥북춤 이야기이다. 문둥이는 악기를 들고 나와 애절하게 춤을 추며, 자신의 불치병이 조상 탓이라고 말한다.
- 두 번째는 오광대 이야기이다. 말뚝이가 등장하여 일곱 명의 양반을 조롱하고, 자신만이 유일한 양반이라고 주장한다.
- 세 번째는 비비 이야기이다. 비비는 사람의 얼굴에 괴물의 몸을 가진 괴물이다.
- 네 번째는 스님 이야기이다. 스님은 재작아씨를 위해 춤을 추다가 할머니에게 쫓겨난다.
- 마지막은 제밀주 이야기이다. 늙은이가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다 아내에게 들킨다. 이 이야기는 첩 제도를 풍자한다.
4. 2. 가면의 특징
고성오광대 가면은 등장인물의 특징을 살려 제작되었다. 대부분 마분지(종이를 풀에 이겨 만든 것)로 만들었으며, 일부는 오동나무를 파서 채색하거나 털, 거울 조각 등을 덧붙여 만들었다. 가면의 크기, 형태, 색깔은 등장인물의 신분, 성격, 역할을 나타낸다. 놀이 복색 또한 각 배역에 맞게 갖춰 입는다.가면 이름 | 재료 | 특징 | 놀이 복색 |
---|---|---|---|
문둥이 | 마분지 (현재: 오동나무) | 흰색 또는 검은색 바탕에 반점, 눈•코•입 뚫림 높이 24cm~27cm, 너비 22cm | 검은 벙거지, 검은 더거리, 북채와 북 |
원양반 (청보양반) | 마분지, 흰 털 | 흰색 얼굴, 흰 수염 높이 25cm, 너비 20cm | 말관, 중치막, 부채, 지팡이, 손수건 |
젓양반 | 마분지, 검은 털 | 흰색 얼굴, 검은 수염 높이 24cm, 너비 20cm | 정자관, 중치막, 부채 |
젓광대 | 마분지 | 자줏빛 2개, 녹•백•흑색 각 1개 (흑색은 흰 털) 높이 24cm~25cm, 너비 19cm~22cm | 관이나 탕건, 두루마기, 부채, 지팡이 |
말뚝이 | 마분지, 거울 조각 | 붉은색 바탕, 이마와 양 볼에 거울 조각 높이 28cm, 너비 26cm | 대나무 패랭이, 검은 더거리, 채찍 |
초랭이 | 마분지 | 붉은색 또는 황색 바탕에 반점 높이 29cm, 너비 19cm | 수건, 더거리 |
중 | 마분지, 토끼털 | 황색 또는 자줏빛 바탕, 눈썹은 털 높이 23cm~24cm, 너비 19cm~20cm | 백지로 만든 고깔, 장삼 |
소모 (각시) | 마분지 | 흰색 얼굴, 검은색 머리 높이 23cm, 너비 18cm | 검은 전립, 채색옷 |
비비양반 | 마분지 | 흑갈색 바탕 높이 24cm, 너비 20cm | 갓, 중치막, 부채, 지팡이 |
비비 (영노) | 마분지 | 붉은색 바탕, 흰 반점 높이 19cm, 너비 18cm | 두루마기, 비비(호드기) |
영감 | 마분지, 흰 털 | 회색 바탕, 흰 털 높이 24cm, 너비 20cm | 갓, 중치막, 부채 |
작은어미 (제물집) | 마분지 | 소모(각시)탈과 유사 높이 22.5cm, 너비 17cm | 채색 치마•저고리, 비녀, 술상 |
큰어미 | 마분지 | 얼굴 왼쪽은 녹색(혹은 백색), 오른쪽은 홍색, 비뚤어진 입 높이 23cm, 너비 18cm | 큰머리, 짧은 호동(장)저고리, 몽당치마 |
5. 춤사위
고성오광대의 춤은 주로 영남 지방의 전통적인 춤 스타일인 덧배기(염불타령, 굿거리)로 이루어진다.[1] 말뚝이의 춤은 검무처럼 역동적이었지만, 점차 차분해졌다.[1]
6. 전승 현황 및 기능보유자
고성오광대는 그 기원과 전승 경로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공연 보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00년대 초 마산 지역의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내용이 점차 변화를 겪었지만, 대사, 탈, 의상, 춤의 특징으로 보아 고성오광대는 그 기원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으며, 영남 지방의 스타일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받는다.[1]
일제강점기에는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지만, 광복 이후 부활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고성오광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묘사하고, 토호 세력을 풍자하며, 첩의 문제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거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주로 공연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주로 봄과 가을에 공연된다. 다른 다섯 마당의 전통 탈춤과는 달리, 고성오광대는 공연 전후에 악귀를 쫓는 의식이 없고, 오락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1]
6. 1. 역대 기능보유자
연희자 중 공이 컸던 사람으로는 이평언, 김창준, 정창순 등이 있으며, 기능보유자는 다음과 같다.이름 | 출생년도 | 역할 | 비고 |
---|---|---|---|
조용배 | 1929년 | 중, 말뚝이 | |
허종복 | 1930년 | 말뚝이 | 탈 제작 |
박진학 | 1913년 | 접광대 | |
허판세 | 1920년 | 양반 | |
허현도 | 1921년 | 큰어미, 비비 | |
최규칠 | 1904년 | 양반, 비비 | |
이금수 | 1919년 | 접광대, 악사 | |
이윤순 | 1918년 | 악사 |
이윤희와 정화쿵은 공연의 주인이었으며, 15~16명의 젊은이들에게 전승하려 노력했다. 김창후, 전세봉, 배갑문, 홍익수, 남상익, 최응두, 허판세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이윤선이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6. 2. 현재 전승 현황
이윤희와 정화쿵은 공연의 주인이었으며, 15~16명의 젊은이들에게 전승하려 노력했다. 김창후, 전세봉, 배갑문, 홍익수, 남상익, 최응두, 허판세는 사람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이윤선이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참조
[1]
웹사이트
고성오광대 (固城五廣大)
https://www.heritag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2011-11-23
[2]
웹사이트
고성오광대(固城五廣大)
http://encykorea.aks[...]
2022-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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