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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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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강은 신나라에서 후한 시기에 활동한 인물로, 본래 도적떼를 이끌다 유영을 섬겨 횡행장군이 되었다. 후한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유영, 유우를 따르며 저항하다가 결국 항복했다.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2. 생애

교강은 후한 건무 초기에 유영 휘하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원래 서방(西防)에서 도적떼를 이끌다가 현한 유영을 섬기며 횡행장군(橫行將軍)에 임명되었다.[1]

건무 2년(26년), 유영이 후한의 토벌을 받아 (譙)로 달아나자 소무, 주건과 함께 구원하러 갔으나, 갑연에게 패하고 호릉(湖陵)으로 퇴각했다.

건무 3년(27년) 가을, 유영이 전사하자 소무와 주건은 유영의 아들 유우를 수혜취(垂惠聚)에서 옹립했고, 교강은 서방 수비를 맡았다. 이듬해 수혜취가 함락되자 서방으로 도망 온 유우를 받아들였다.[2]

건무 5년(29년) 봄, 후한의 두무와 마무가 서방을 포위하자 저항했으나 함락되었다. 이후 유우와 함께 동해동헌에게 의탁했다. 같은 해 6월, 유우의 명으로 방맹을 구원하러 소무와 출진했으나 오한에게 패하고 항복했다. 항복 이후 교강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성명교강
시대신나라 - 후한 시대
생몰년불명
자·별호불명
본관·출신지 등연주 산양군
직관지방 군벌 수장 → 횡행장군(유영)
작위·호칭 등-
진영·소속 등독립 세력 → 유영 → 유우 → 광무제
가족·일족불명


2. 1. 초기 활동

교강은 원래 서방(西防)에서 도적떼를 이끌던 우두머리로, 현한 유영을 섬기며 횡행장군(橫行將軍)에 임명되었다.[1]

건무 2년(26년), 후한의 토벌로 (譙)로 달아난 유영을 구원하기 위해 소무, 주건과 함께 출진했으나, 후한의 갑연에게 패하였다. 이후 주건과 함께 유영을 모시고 호릉(湖陵)으로 달아났다.

건무 3년(27년) 가을, 유영이 전사하고 소무와 주건이 수혜취(垂惠聚)에서 유영의 아들 유우를 옹립하자, 교강은 서방으로 돌아가 수비를 맡았다. 이듬해 수혜취가 함락되자, 교강은 서방으로 도망쳐 온 유우를 받아들였다.[2]

건무 5년(29년) 봄, 후한의 표기대장군 두무와 포로장군(捕虜將軍) 마무가 서방을 포위했다. 교강은 저항했으나 결국 서방은 함락되었고, 유우와 함께 동해동헌에게 의탁하였다. 같은 해 6월, 유우의 명으로 도성(桃城)을 포위하고 있던 방맹을 소무와 함께 구원했으나, 후한의 대사마 오한에게 패하고 항복하였다.

2. 2. 유영 휘하 장군

본래 서방(西防)에서 도적떼를 이끌던 자로, 현한 유영을 섬겨 횡행장군(橫行將軍)에 임명되었다.[1]

후한 건무 2년(26년), 후한의 토벌을 받아 (譙)로 달아난 유영을 구원하기 위해 소무, 주건과 함께 출진하였으나 후한의 갑연에게 패하였고, 이후 주건과 함께 유영을 모시고 호릉(湖陵)으로 달아났다.

건무 3년(27년) 가을, 유영이 전사하자 소무와 주건은 수혜취(垂惠聚)에서 유영의 아들 유우를 옹립하였고, 교강은 서방으로 돌아가 수비에 임하였다. 이듬해 수혜취가 함락되자, 교강은 서방으로 도망쳐 온 유우를 받아들였다.[2]

건무 5년(29년) 봄, 후한의 표기대장군 두무·포로장군(捕虜將軍) 마무가 서방을 포위하였다. 교강은 저항하였으나 결국 서방은 함락되었고, 유우와 함께 동해동헌에게 의탁하였다. 같은 해 6월, 유우의 명으로 도성(桃城)을 포위하고 있었던 방맹을 소무와 함께 구원하였으나 후한의 대사마 오한에게 패하였고, 오한이 재차 추격하니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였다.

성명교강
시대신나라 - 후한 시대
생몰년불명
자·별호불명
본관·출신지 등연주 산양군
직관지방 군벌 수장 → 횡행장군(유영)
작위·호칭 등-
진영·소속 등독립 세력 → 유영 → 유우 → 광무제
가족·일족불명


2. 3. 유우 옹립과 후한 저항

본래 서방(西防)에서 도적떼를 이끌던 자로, 현한유영을 섬겨 횡행장군(橫行將軍)에 임명되었다.[1]

후한 건무 2년(26년), 후한의 토벌을 받아 (譙)로 달아난 유영을 구원하기 위해 소무, 주건과 함께 출진하였으나 후한의 갑연에게 패하였고, 이후 주건과 함께 유영을 모시고 호릉(湖陵)으로 달아났다.

건무 3년(27년) 가을, 유영이 전사하자 소무와 주건은 수혜취(垂惠聚)에서 유영의 아들 유우를 옹립하였고, 교강은 서방으로 돌아가 수비에 임하였다. 이듬해[2] 수혜취가 함락되자, 교강은 서방으로 도망쳐 온 유우를 받아들였다.

건무 5년(29년) 봄, 후한의 표기대장군 두무·포로장군(捕虜將軍) 마무가 서방을 포위하였다. 교강은 저항하였으나 결국 서방은 함락되었고, 유우와 함께 동해동헌에게 의탁하였다. 같은 해 6월, 유우의 명으로 도성(桃城)을 포위하고 있었던 방맹을 소무와 함께 구원하였으나 후한의 대사마 오한에게 패하였고, 오한이 재차 추격하니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였다.

2. 4. 항복 이후

건무 5년(29년) 봄, 후한의 표기대장군 두무·포로장군(捕虜將軍) 마무가 서방을 포위하였다. 교강은 저항하였으나 결국 서방은 함락되었고, 유우와 함께 동해동헌에게 의탁하였다. 같은 해 6월, 유우의 명으로 도성(桃城)을 포위하고 있었던 방맹을 소무와 함께 구원하였으나 후한의 대사마 오한에게 패하였다. 오한이 재차 추격하니 버티지 못하고 항복하였다.[1]

그 후 교강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았다.

참조

[1] 서적 後漢書 劉永伝
[2] 서적 後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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