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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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는 대구광역시 군위군 인각사에 있는 고려시대 승탑 및 비석입니다. 1965년 9월 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2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보각국사탑보각국사 일연(1206~1289)의 사리탑으로, 높이 약 2.42m의 팔각원당형 승탑입니다. 1289년(고려 충렬왕 15) 일연이 입적한 후 1295년 (고려 충렬왕 21)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 구조: 자연석으로 된 바닥돌 위에 8각의 아래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다시 8각의 가운데받침돌을 올렸습니다. 윗받침돌은 8각이지만 원형에 가깝고, 단조롭고 소박한 연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몸돌 역시 8각으로, 정면에는 '보각국사정조지탑(普覺國師靜照之塔)'이라는 탑 이름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문 모양의 조각이 있습니다. 나머지 6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과 연꽃 위에 서 있는 보살상(菩薩像)이 새겨져 있습니다. 지붕돌은 두꺼운 추녀 밑이 위로 느리게 들려 있고, 낙수면은 급한 편이며 지붕선 끝부분에 꽃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 전설: 아침에 해가 뜰 때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일연 스님 어머니의 묘를 비추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보각국사비보각국사의 제자인 법진에 의해 세워졌으며,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었습니다. 글씨는 진나라까지 가서 왕희지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들었습니다. 비문에는 보각국사 일연의 업적과 생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 손상: 현재 비의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다행히 비문은 오대산 월정사에 사본이 남아있습니다.
- 크기: 현존하는 비신은 높이 1.22m의 파편 몇 점이 접합된 상태입니다.
인각사는 643년(선덕여왕 11)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연 스님이 1284년(충렬왕 10)부터 입적할 때까지 5년 동안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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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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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
로마자 표기 | Gunwi Ingaksa Bogakguksatap mit Bi |
유형 | 보물 |
지정 번호 | 428 |
지정일 | 1965년 9월 1일 |
주소 |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삼국유사로 250, 613-1 인각사 (화북리) |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인각사 |
참고 | 군위 인각사지 |
수량 | 2기 |
문화재청 ID | 12,04280000,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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