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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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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군함행진곡은 일본의 군가로, 1897년 작사된 곡에 세토구치 토키치가 곡을 붙여 1900년에 완성되었다. 일본 제국 해군 공식 행진곡으로 사용되었으며, 태평양 전쟁 시기 라디오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전쟁 후에는 파칭코 가게 배경음악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일본 해상자위대 의례곡으로 지정되었다. 가사가 포함되어 있으며,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의 미카사 공원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공공 장소 사용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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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행진곡 - [음악]에 관한 문서
곡 정보
제목군함행진곡
원제Nihongo: 군함행진곡
로마자 표기: Gunkan Kōshinkyoku
다른 이름Nihongo: 군칸 마치
로마자 표기: Gunkan māchi
영어 제목Warship March
장르행진곡
작곡가세토구치 도키치
작사가도리야마 히라쿠
발표1897년 3월
음원 정보
기타 정보
관련 링크해상자위대 공식 웹사이트 - '군함'의 작가
해상자위대 공식 웹사이트 - 세계 속의 행진곡 '군함'

2. 역사

1893년 도리야마 히라쿠(鳥山啓)가 작사한 "군함"(초출부터 이 곡명이며, 일부 문헌에 '이 성'이라고 표기된 것은 사실무근)에 곡을 붙여 군가로 만들었다. 이후 1897년(메이지 30년)경, 세토구치 도키치가 새롭게 작곡하여 1900년(메이지 33년)에 "군함행진곡"으로 탄생했다. 초연은 같은 해 4월, 전함후지 승무 군악대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민간을 포함하여 널리 연주된 것은 1910년(메이지 43년)에 악보가 출판된 이후이다.

1941년 (쇼와 16년) 12월 8일 일미 개전 시에 라디오에서 반복적으로 방송되었다. 해군성의 제정 행진곡이며, 해상자위대에서도 의례곡 중 하나로 "군함행진곡"이라는 명칭으로 제정되어 진수식이나 출항 식전 등에서 연주되고 있으며, 관열 행진곡으로도 연주되고 있다.

원래는 내림 나장조였으나, 음이 너무 높아 (남성 군인이) 부르기 어려워 사 장조로 편곡되었고, 더 나아가 다이쇼 시대 말기에는 바 장조로 개정되어 현재의 곡이 되었다. 전전에는 주 멜로디가 4번 연주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3번으로 연주된다.

해군에서는 개정될 때마다 연주를 변경했지만, 육군에서는 해군으로부터 제공받은 오래된 악보를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에, 같은 시기라도 해군과 육군에서는 약간 다른 연주로 녹음되었다. 쇼와 시대 초기의 전기 녹음 시작 이후의 민간 군악대 등에 의한 녹음 등에서도, 여전히 오래된 악보로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는 해상자위대의 의례곡으로 지정되어, [http://www.clearing.mod.go.jp/kunrei_data/e_fd/1986/ez19860506_02152_000.pdf 의례곡의 통일에 관한 통달]에 의해 다음과 같은 경우에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 관열식에서의 관열 행진
  • 자위함기 수여식에서의 승무원 승함
  • 자위함 명명식에서의 진수
  • 기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2. 1. 기원과 발전

도리야마 히라쿠(鳥山啓)가 작사한 「이 성(此の城)」에 곡을 붙여 군가로 사용하다가, 1897년 무렵 준사관상당관이었던 세토구치 도키치(瀬戸口藤吉)가 새롭게 작곡하여 1900년(메이지 33년)에 「군함행진곡」으로 탄생하였다. 최초 연주는 1900년 4월 전함 후지의 승조원 군악대가 연주하였다.[4] 1941년(쇼와 16년) 태평양전쟁 개전 시에 배경음악으로 연주된 것이 유명하며,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에 의해 태평양전쟁 기간 내내 라디오에서 방송되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유명해져서, 전쟁 이후에는 파칭코 가게의 배경음악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구 일본제국 해군(IJN) 및 현재의 해상자위대의 공식 행진곡으로, 진수식 등에서 연주된다.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의 "군함행진곡" 기념비


도리야마 히라쿠가 작사한 이 행진곡은 본래 내림 나장조로 작곡되었으나, 남성 목소리에 더 적합하도록 다이쇼 시대에 바장조로 조옮김되었다. 노래의 세 번째 부분에는 ''우미 유카바''의 가사가 포함되어 있다.

세토구치는 작곡 후 3년 만에 해군 군악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이 곡을 해군 군악대를 위해 기악 편곡했다. 이 행진곡은 이후 일본 제국 해군의 공식 행진곡으로 채택되었다. 1907년 일본 제국 해군 군악대의 유럽 순회 공연 중에 유럽에서 연주되었다.

일본이 닛폰폰 라벨로 1910년 최초의 축음기 레코드를 제작했을 때, 군함행진곡은 처음 발매된 레코드 중 하나였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군함행진곡은 일본 점령군에 의해 금지되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된 후, 이 행진곡은 일본 제국 해군의 후신인 일본 해상자위대에 의해 부활했다. 전후 일본에서도 그 명성은 이어져, 당시 파칭코 업소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1996년, 군함행진곡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의 미카사 공원에 세워졌다.

2. 2. 태평양 전쟁 시기

도리야마 히라쿠(鳥山啓)가 작사한 곡에 붙여진 군함행진곡은 1941년(쇼와(昭和) 16년) 태평양전쟁 개전 시에 배경음악으로 연주되어 유명해졌다.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에 의해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라디오에서 계속 방송되었다.[1] 전후에는 파칭코 가게의 배경음악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1]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군함행진곡은 일본 점령군에 의해 금지되었다.[1]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 제국 해군의 후신인 일본 해상자위대에 의해 부활했다.[1]

2. 3. 전후

도리야마 히라쿠(鳥山啓)의 가사에 곡을 붙인 군가로 시작하여, 1897년 무렵 세토구치 도키치(瀬戸口藤吉)가 새롭게 작곡하여 1900년(메이지(明治) 33년)에 「군함행진곡」으로 탄생하였다. 1941년(쇼와(昭和) 16년) 태평양전쟁 개전 시 배경음악으로 연주되면서 유명해졌고,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라디오를 통해 널리 퍼졌다. 전후에는 파칭코 가게의 배경음악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구 일본제국 해군(IJN) 및 현재의 해상자위대의 공식 행진곡으로, 진수식 등에서 연주된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군함행진곡은 일본 점령군에 의해 금지되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 해상자위대에 의해 부활했다. 전후 일본에서도 이 행진곡의 명성은 이어져 파칭코 업소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1996년,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의 미카사 공원에 군함행진곡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원래는 내림 나장조였으나, 음이 너무 높아 (남성 군인이) 부르기 어려워 사 장조로 편곡되었고, 다이쇼 시대 말기에는 바 장조로 개정되어 현재의 곡이 되었다. 전전에는 주 멜로디가 4번 연주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3번으로 연주된다.

현재는 해상자위대의 의례곡으로 지정되어, [http://www.clearing.mod.go.jp/kunrei_data/e_fd/1986/ez19860506_02152_000.pdf 의례곡의 통일에 관한 통달]에 의해 다음과 같은 경우에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 관열식에서의 관열 행진
  • 자위함기 수여식에서의 승무원 승함
  • 자위함 명명식에서의 진수
  • 기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2. 4. 저작권

군함행진곡의 저작권은 오랫동안 일본 폴리도르 축음기 회사에 있었지만, 1938년 1월 10일, 이 회사는 이를 사유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해군에 헌납했다.[4] 전후 권리자는 불분명하지만, 세토구치가 사망한 지 50년이 지난 1991년저작권 보호 기간이 종료되어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다.

3. 가사

일반적으로 1절과 2절을 부른 후 옥쇄를 표현한 곡인 바다에 가면을 붙여 부른다.[1]

3. 1. 일본어 가사

'''1절'''


守るも攻むるも|마모루모 세무루모일본어 黒鐵|쿠로가네일본어


浮かべる城ぞ|우카베루 시로조일본어 頼みなる|타노미나루일본어


浮かべるその城|우카베루 소노 시로일본어 日の本|히노모토일본어


皇國の四方を|미쿠니노 요모오일본어 守るべし|마모루베시일본어


眞鐵のその艦|마가네노 소노 후네일본어 日の本|히노모토일본어


仇なす國を|아다나스 쿠니오일본어 攻めよかし|세메요카시일본어





'''2절'''


石炭の煙は|이와키노 케무리와일본어 大洋|와다츠미일본어


龍かとばかり|타츠카토 바카리일본어 靡くなり|나비쿠나리일본어


彈撃つ響きは|타마우츠 히비키와일본어 雷の|이카즈치노일본어


聲かとばかり|코에카토 바카리일본어 響むなり|도요무나리일본어


萬里の波濤を|반리노 하토-오일본어 乗り越えて|노리코에테일본어


皇國の光|미쿠니노 히카리일본어 輝かせ|카가야카세일본어





'''(3절; 바다에 가면)'''


海行かば|우미유카바일본어


水漬く屍|미즈쿠 카바네일본어


山行かば|야마유카바일본어


草生す屍|쿠사무스 카바네일본어


大君の辺にこそ|오-키미노 헤니코소일본어 死なめ|시나메일본어


長閑には死なじ|노도케니와 시나지일본어

3. 2. 한국어 해석

'''1절'''[1]

:방어도 공격도 강철의

:떠있는 성이라, 믿음직하다

:떠있는 그 성은 태양의 근본된

:황국의 사방을 수호할지라

:강철의 그 함선은 태양의 근본에

:대적하는 나라를 무찌르리라

'''2절'''[1]

:석탄의 연기는 대양의

:용과 같이 나부낄 뿐

:탄환 쏘는 소리는 벼락의

:소리와도 같이 울릴 뿐

:만리의 파도를 넘어 올라서

:황국의 영광, 빛내어 보리

'''(3절)'''[1]

:바다로 가면

:물에 잠긴 송장

:산으로 가면

:풀이 난 송장

:천황 폐하의 곁에서 죽으면

:편히 죽지는 않으리라

4. 연주 및 편곡

1900년 세토구치 도키치가 작곡한 군함행진곡은 일본 제국 해군해상자위대의 공식 행진곡으로 사용되었다. 1900년 4월 전함 후지의 승조원 군악대가 처음 연주하였고, 1941년 태평양 전쟁 개전 시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어 유명해졌다.[4]

원래 내림 나장조로 작곡되었으나, 음이 너무 높아 사장조를 거쳐 바장조로 변경되었다. 초기에는 "연주 → 1절 → 바다로 가자 → 2절" 순으로 연주되었으나, 현재는 "1절 → 2절 → 바다로 가자 → 연주" 순서가 일반적이다.

해군과 육군은 같은 시기라도 약간 다른 연주를 했는데, 이는 해군은 개정될 때마다 연주를 변경했지만, 육군은 해군으로부터 제공받은 오래된 악보를 오랫동안 사용했기 때문이다. 쇼와 시대 초기 민간 군악대 등에 의한 녹음에서도 여전히 오래된 악보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해상자위대에서는 의례곡으로 지정되어, 다음의 경우에 연주된다.


  • 관열식에서의 관열 행진
  • 자위함기 수여식에서의 승무원 승함
  • 자위함 명명식에서의 진수
  • 기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바다로 가자(海行かば)"를 "눈의 진군(雪の進軍)"으로 바꾼 노래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군함 행진곡에 의한 패러프레이즈 (나카다 기 나오 편곡) 등 다양한 편곡 버전이 존재한다.

군함행진곡 관련 음반 및 자료는 다음과 같다.

  • 『실용 레코드 시리즈 [행진] "군함 행진곡"』 (세토구치 후지키치 작곡, 사이토 도쿠사부로 지휘, 육상자위대 중앙 음악대 연주) 콜롬비아 레코드 GA-7 (GA-7B) 1975년 9월 제작
  • 『영구 보존반 군함 행진곡의 모든 것』 ( 킹 레코드, 1998년 4월 24일 발매)
  • ZENITHRASH 『GENUINE PRESTIGE ~성실한 명예~』 (TLMRC-003)
  • 해상자위대 도쿄 음악대 - 음반 『콩쿠르 자유곡 베스트 앨범 3 "머독으로부터의 마지막 편지/마 메르 로와"』 (포스터 뮤직 2011/02/10 발매)
  • 해상자위대 도쿄 음악대 - 음반 『아득한 바다로』 (유니버설 뮤직 2013/11/06 발매)
  • 해상자위대 도쿄 음악대, 미야케 유카리 - 음반 『THE BEST ~DEEP BLUE SPIRITS~』 (유니버설 뮤직 2016/06/01 발매)

4. 1. 조성

1893년 토리야마 케이가 작사한 "군함"(초출부터 이 곡명이며, 일부 문헌에 '이 성'이라고 표기된 것은 사실무근)에 곡을 붙여 군가로 만들었다. 이후 1897년경, 준사관 상당관인 군악사였던 세토구치 토키치가 새로 작곡하여 1900년에 "군함행진곡"으로 탄생했다.[4] 초연은 같은 해 4월, 전함후지 승무 군악대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민간을 포함하여 널리 연주된 것은 1910년(메이지 43년)에 세노 악보점에서 악보가 출판된 이후이다.[5] 1941년 12월 8일일미 개전 시에도 반복적으로 라디오에서 방송되었다.

군함 마치의 저작권은 오랫동안 일본 폴리도르 축음기 회사에 있었지만, 1938년 1월 10일, 동사는 사유해야 할 것이 아니라며 해군에 헌납했다.[4] 전후 권리자는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세토구치가 사망한 지 50년이 지난 1991년저작권 보호 기간이 종료되어 퍼블릭 도메인이 되었다.

  • 처음에는 내림 나장조로 작곡되었지만, 나중에 바장조로 변경되었으며, 작곡자 자필의 합창 악보도 바장조이다. 1910년에 출판된 피아노 악보에서는 트리오의 손가락 사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장조로 표기했다.[5]
  • 초기에는 "연주 → 1절 → 바다로 가자 → 2절" 순으로 불렸지만, 현재는 "1절 → 2절 → 바다로 가자 → 연주"가 일반적이다.
  • 트리오 부분의 "바다로 가자"가 불리지 않는 경우, 간주가 길어질 수도 있다.




\set Staff.midiInstrument = #"piano"

\key g \major

\time 2/4

\tempo 4 = 114

\relative d' {

g4 a4 | g8 fis16 g16 c8 e8 | d8 dis8 e8 fis8 | g4 r4 | \break

d,8. b'16 b8 b | b c b a | a8. g16 a8. b16 | a4 r | d,8. a'16 a8 a

a b a g | g8. d16 g8. a16 \break

b4 r | d,8. b'16 b8 b | b c b a | a8. b16 d8 g, | d'4 r | d8. e16 g8 e

d8. e16 d8 b | a d a d \break

g, r d8. d16 | d'4 b~ | b a8. b16 | a4 g~ | g8 \breathe d4 e8 | g2 | g4. a8 | b2~ \break

b8 r b8. c16 | d4 b | a4. g8 | e2~ | e8 r d8. e16 | g2 | a4. b8 | g2~ | g8 r r4 \bar "|." \break

e2^"Trio." | g4 g | a2 | g4 r | d'2 | b | a | g4 r |

e2 | g | a~ | a4 r | d2~ | d4 b | a2 |

g4 r | a2 | g4 b | a2 | g4 r | e e | g g | a2 |

g4 e \breathe | d d | d c | d2~ | d4 r | c'2 | d | a |

g4 a | c2~ c4 r | d2~ | d4 r | a2 | g4 e | g2 | a4 g \breathe |

e2 | g4 g | a2 | g4 e | d2~ | d4 r | d2~ | d4 r \bar "|."

}

\addlyrics {

  • - - - - - - - - - - -

지키는 것도, 공격하는 것도, 검은 쇠가 드러내는 시로, 바라네

드러내는 그 성, 해의 나라의 요소를 지켜야 한다

검은 쇠, 그 배, 해의 나라에

원수 국가를 공격하라

바다로 가면 물에 썩을 시체

산으로 가면 풀에 썩을 시체

대왕의 곁에こそ, 섬기리라

목소리에는 친숙해지라

}

[6]

  • 해상자위대 도쿄 음악대 공식 사이트[2] (톱 페이지 > 갤러리 > 다운로드 > 행진곡 "군함" 악보 & 음원 > 행진곡 "군함"에 관하여[3])
  • 관악 합주 버전 (음악의 벗사, 절판)
  • 관악 합주 버전 (미토 토모아키·세토구치 아키라 편곡) (공동 음악 출판사, 절판)
  • 쇼와 30년대 전반의 공동 음악 출판사의 밴드 악보 커버에는 "공동 버전만이 표준 본격 편곡입니다"라는 광고가 게재되었다. 또한 "제1 테마 4소절의 하강 스케일은 (중략) 클라리넷으로 하면 청중의 실소를 사서 밴드가 경멸당합니다"나 "트리오의 변주는 절대로 코르넷이 불어야 합니다. (중략) 코르넷으로 이것을 할 수 없는 밴드에서 억지로 속여 연주를 할 바에는 "군함 행진곡"은 연주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엄격한 메시지도 적혀 있다.
  • 관악 합주 버전 (와다 나오야 편곡) (TRN Music [미국])

4. 2. 연주 순서

초기에는 "연주 → 1절 → 바다로 가자 → 2절" 순으로 불렸지만, 현재는 "1절 → 2절 → 바다로 가자 → 연주"가 일반적이다.[6] 트리오 부분의 "바다로 가자"가 불리지 않는 경우, 간주가 길어질 수도 있다.[6] 전전에는 주 멜로디가 4번 연주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재는 3번으로 연주된다.

5. 사용

군함행진곡은 여러 국가와 다양한 매체에서 사용되었다.


  • '''미얀마''': 군가 "ဗမာတို့ရဲ့ တပ်မတော်"(버마도토예 타트마도)는 군함행진곡을 편곡한 곡으로, 군 운영 방송국의 아침 시작 음악으로도 사용된다. 대동아 전쟁(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에서 교육받은 아웅산 등 "30인 지사"가 버마군을 창설할 때, 일본 군가 중 가장 인기 있던 "군함"의 멜로디에 미얀마어 가사를 붙였다.[3] 수도 네피도의 군사 박물관에서는 "군함"과 "애마진군가"가 BGM으로 나온다.

  • '''대만''': CM의 BGM 등으로 사용되었다.

  • '''중화인민공화국''' 및 대한민국 :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면 비난받는다.
  • 2005년 광저우의 한 유치원에서 매일 아침 틀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 2014년 상하이 시의 한 유치원 졸업식에서 원아들이 소북을 치며 군함행진곡에 맞춰 춤을 췄다. 담당 교원은 곡의 배경을 몰랐다고 해명했고, 원장과 함께 엄중한 처분을 받았다.[9][10] 유치원생들은 이 곡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 '''1947년 대만 2.28 사건''': 방송국을 점거한 군중이 군함행진곡을 틀며 봉기를 호소했다.

5. 1. 일본

도리야마 히라쿠(鳥山啓)가 작사한 「이 성(此の城)」에 곡을 붙여 군가로 사용되었고, 이후 1897년 무렵 준사관상당관이었던 세토구치 도키치(瀬戸口藤吉)가 새롭게 작곡하여 1900년(메이지(明治) 33년)에 「군함행진곡」으로 탄생했다.[7] 첫 연주는 1900년 4월 전함 후지(富士)의 승조원 군악대가 연주했다. 1941년(쇼와(昭和) 16년) 태평양전쟁 개전 시에 배경음악으로 연주된 것이 유명하며, 그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에 의해 태평양전쟁 기간 중에 계속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이러한 배경으로 유명해져 전후에는 파칭코 가게의 배경음악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구 일본제국 해군(IJN) 및 현재의 해상자위대의 공식행진곡으로, 진수식 등에서 연주된다.

도리야마 히라쿠의 작사에 곡을 붙인 이 행진곡은 원래 내림 나장조로 작곡되었으나, 남성 목소리에 더 적합하도록 다이쇼 시대에 바장조로 조옮김되었다. 노래의 세 번째 부분에는 ''우미 유카바''의 가사가 포함되어 있다.

세토구치는 작곡 후 3년 만에 해군 군악대장으로 복무하면서 이 곡을 해군 군악대를 위해 기악 편곡했다. 이 행진곡은 이후 일본 제국 해군의 공식 행진곡으로 채택되었다. 군함행진곡은 1907년 일본 제국 해군 군악대의 유럽 순회 공연 중에 유럽에서 연주되었다.

일본이 닛폰폰 라벨로 1910년 최초의 축음기 레코드를 제작했을 때, 군함행진곡은 처음 발매된 레코드 중 하나였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군함행진곡은 일본 점령군에 의해 금지되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체결된 후, 일본 제국 해군의 후신인 일본 해상자위대에 의해 부활했다. 이 행진곡의 명성은 전후 일본에서도 이어져, 당시 파칭코 업소에서 많이 사용되었다.[7]

1996년, 군함행진곡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의 미카사 공원에 세워졌다.

최근에는 드물지만, 전후부터 오랫동안 파칭코 가게의 단골 BGM으로 사용되고 있다. 1951년 (쇼와 26년) 봄, 도쿄 유라쿠초의 파칭코 가게 확성기에서 군함행진곡이 크게 흘러나왔다. 마루노우치서의 순경이 경영자를 미군헌병대(MP) 본부로 연행하여, 담당자에게 레코드를 들려준 결과 " (가사가 없는) 음악이므로 문제 없다"고 승인했다. 타니무라 마사지로(谷村政次郎)는 이것이 군함행진곡이 파칭코 가게에서 흘러나오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한다.[7]。당시에는 오사카의 스트립 극장에서 시작 시의 음악이 되기도 했다.[8] 1980년대까지 파칭코 가게의 CM의 BGM으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기타덴시에서 발매한 자글러 시리즈(『아이엠 자글러 EX』등)에서는, 자력으로 빅 보너스의 1G 연(원 지 게임 연)을 맞춘 경우 등, 특정 게임 수에서 성립된 빅 보너스 중의 BGM으로 사용되고 있다.

1983년 (쇼와 58년), 당시 내각총리대신인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방미했을 때, 나카소네가 대일본제국해군주계소좌 출신이기 때문에 미국 해군군악대가 이 곡을 연주하여 환영했다.

영화 감독 후루사와 켄고는 "후루사와라고 하면 군함 마칭"이라고 할 정도로 이 곡을 좋아해, 수많은 작품에서 삽입곡으로 사용하고 있다. 크레이지 영화에서 함께 일했던 각본가 가사하라 료조는 "그렇게 파칭코를 좋아하는 건가?"라고 놀리기도 했다.

작곡가 이케노 나리는 특촬 영화 『전송인간』(감독: 후쿠다 준)에서 음악을 담당했을 때, 재즈 어레인지를 더한 군함 마치를 삽입곡으로 제공하고 있다.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작품에서는 『원사군』의 제22화와 『우주전함 야마토』의 재방송판 제2화에서 사용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사자에상』 제3회 A 파트(1969년 10월 19일 방송) "의사 선생님의 권"에서, 충치에 걸린 사자에가 치과에 가려고 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왔다.

도라에몽』의 땡땡이 코믹스 14권 『라지콘 대해전』 안에서 2절이 사용되고 있다. 라지콘의 전함 야마토가 등장해 군함행진곡을 흘리면서 나아가게 되었다.

액션 영화 『폭주 패닉 대격돌』에서는, 종반의 은행 강도 장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다이닛폰 프로레슬링의 회장인 프로레슬러 그레이트 오가의 테마곡으로, 링인 시에 장내에 울려 퍼진다.

애니메이션 영화 『반딧불이의 묘』에서, 방공호 내에서 반딧불이를 날릴 때, 제국해군의 관함식의 환상이 등장하고 있지만, 그 배경음악이 군함행진곡이다.

타이토에서 발매된 패밀리 컴퓨터용 소프트 『다케시의 도전장』에서는 파칭코 가게의 BGM으로 사용되고 있다.

코나미에서 발매된 파로디우스다! 〜신화에서 웃음으로〜에서는 파칭코를 본뜬 6면의 BGM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이 버전이 파칭코 프로그램이나 "파칭코"를 이미지하는 장면의 BGM으로 사용되는 일이 있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홈즈"의 극장판 "해저의 보물"에서 군함 마치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한편, 텔레비전판 "해저의 보물"의 같은 장면에서는 다른 BGM이 되고 있다. 또한 텔레비전판 제24화 "들어라! 모리아티 찬가"에서, 개사곡이 불리고 있다.

1947년 대만에서 일어난 2.28 사건에서 방송국을 점거한 군중이 "군함 마칭"을 흘려 봉기를 호소했다.

해상자위대의 음악대의 콘서트에서, 앙코르곡으로 종종 연주된다.

이와테현기타카미시니시와가정에 소재하는 슈퍼마켓 "슈퍼 오센"에서는, 점내 BGM으로 흘러나오고 있다.[11]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미고로! 타베고로! 와라이고로!』에서, 벤자민 이토(이토 시로)가 이끄는 "전선 군단"이 입장할 때 사용, 후계로서, 미스 벤자민(쓰루마 에리)이 이끄는 "백업 군단"이 입장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일본의 조선소에서는 자위함뿐만 아니라 민간의 선박의 진수식에서도 이 곡이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다.

1942년 공개의 영화 『하와이·말레이 해전』의 라스트에서, 전함 나가토나 무쓰 등이 주포를 쏘는 실사 장면에 맞춰 이 곡이 반복적으로 연주되었다.

1941년 12월 10일에 일어난 말레이 해전의 대승리를 받아, 해전 당일에 발표된 『영국 동양 함대 궤멸』의 1절과 2절의 간주에 이 곡이 연주되었다.

5. 2. 해외


  • 일본에서는 파칭코 가게의 배경음악(BGM)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1951년 봄, 도쿄 유라쿠초의 한 파칭코 가게에서 군함행진곡이 흘러나왔는데, 미군 헌병대(MP)는 가사가 없는 음악이므로 문제없다고 승인했다. 이것이 파칭코 가게에서 군함행진곡이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7] 오사카의 스트립 극장과 파칭코 가게의 CM송으로도 사용되었다. 기타덴시의 자글러 시리즈에서는 특정 조건에서 빅 보너스 BGM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 미얀마군에서는 군함행진곡을 편곡한 군가 "ဗမာတို့ရဲ့ တပ်မတော်"(버마도토예 타트마도)를 사용하며, 군 운영 방송국의 아침 시작 음악으로도 사용한다. 대동아 전쟁 말기, 일본에서 교육받은 아웅산 장군 등 "30인 지사"가 버마군을 창설할 때, 일본 군가 중 가장 인기 있던 "군함"의 멜로디에 미얀마어 가사를 붙여 사용하게 되었다. 수도 네피도의 군사 박물관에서는 "군함"과 "애마진군가"가 BGM으로 흘러나온다.[3]
  • 대만과 동남아시아에서는 CM송 등으로 사용될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반면, 중화인민공화국대한민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사용하면 비난받는다. 2005년 광저우의 한 유치원에서 매일 아침 군함행진곡을 틀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당시 총리가 방미했을 때, 미국 해군 군악대가 군함행진곡을 연주하며 환영했다. 나카소네 총리가 대일본제국해군 주계소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 영화감독 후루사와 켄고는 이 곡을 좋아하여 자신의 작품에 자주 삽입했다. 크레이지 영화 각본가 가사하라 료조는 그에게 "파칭코를 좋아하는가?"라고 묻기도 했다.
  • 작곡가 이케노 나리는 영화 『전송인간』에서 군함행진곡을 재즈풍으로 편곡하여 삽입했다.
  •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작품 『원사군』과 『우주전함 야마토』, 애니메이션 『사자에상』, 『도라에몽』, 영화 『폭주 패닉 대격돌』, 다이닛폰 프로레슬링 그레이트 오가의 테마곡, 애니메이션 영화 『반딧불이의 묘』, 게임 『다케시의 도전장』, 『파로디우스다! 〜신화에서 웃음으로〜』, 애니메이션 "명탐정 홈즈" 등 다양한 작품에서 군함행진곡이 사용되었다.
  • 1947년 2.28 사건 당시, 방송국을 점거한 군중이 군함행진곡을 틀며 봉기를 호소했다.
  • 2014년 6월 27일, 중국 상하이 시의 한 유치원 졸업식에서 군함행진곡에 맞춰 원아들이 춤을 췄다. 담당 교원은 곡의 배경을 모르고 사용했다고 해명했고, 원장과 함께 엄중한 처분을 받았다. 유치원생들은 이 곡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9][10]
  • 해상자위대 음악대의 콘서트에서 앙코르곡으로 자주 연주된다.
  • 이와테현 기타카미시니시와가정의 슈퍼마켓 "슈퍼 오센"에서는 점내 BGM으로 군함행진곡이 흘러나온다.[11]
  • 텔레비전 프로그램 『미고로! 타베고로! 와라이고로!』에서 "전선 군단"과 "백업 군단"의 입장 시 사용되었다.
  • 일본 조선소에서는 진수식 때 군함행진곡을 트는 경우가 있다.
  • 1942년 영화 『하와이·말레이 해전』과 1941년 12월 10일 발표된 『영국 동양 함대 궤멸』에서도 군함행진곡이 사용되었다.

6. 기념비



1996년(헤이세이 8년) 시민 단체에 의해 "군함 행진곡의 비"가 건립되었다.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미카사 공원 기념함 미카사에 설치되었다. 기념비 한 면에는 선율, 반대쪽에는 가사가 적혀 있다. 선율은 사장조로 표기되어 있다.

기념비 건립 당시, 시장의 설치 허가서는 나왔지만, 가사의 내용이 "호전적"이라는 이유로 요코스카시 공원 관리과 담당 직원이 난색을 표했다. 기념비 제막식 때 직원의 독단으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가사 부분은 검은 비닐로 덮어 가렸다. 또한 그 후, 가사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 콘크리트로 덧칠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 후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 노래비는 복원되었고, 현재는 가사가 기재된 상태이다.[12]

7. 비판 및 논란


  • 1951년 봄, 도쿄 유라쿠초의 파칭코 가게에서 군함행진곡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는데, 미군 헌병대(MP)는 가사가 없는 음악이므로 문제없다고 승인했다. 이후 파칭코 가게와 스트립 극장에서 널리 사용되었다.[7][8]
  • 미얀마군에서는 군함행진곡을 군가 "버마도토예 타트마도"로 사용하고 있으며, 군 운영 방송국의 아침 시작 음악으로도 사용된다. 이는 대동아 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교육받은 미얀마군이 일본 군가 중 군함행진곡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다.[3]
  • 대만과 동남아시아에서는 CM 배경음악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대한민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사용 시 비난받는다. 2005년 광저우시의 한 유치원에서 이 곡을 매일 아침 틀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 방미 당시, 미국 해군군악대가 나카소네가 대일본제국해군 주계소좌 출신임을 고려하여 이 곡을 연주했다.
  • 1947년 대만에서 일어난 2.28 사건에서 방송국을 점거한 군중이 봉기를 호소하며 군함행진곡을 틀었다.
  • 2014년 6월 27일, 중국 상하이 시의 한 유치원에서 졸업식에 군함행진곡을 사용했다. 담당 교원은 곡의 배경을 모르고 사용했다고 해명했으며, 원장 및 담당 교원은 엄중 처분을 받았다.[9][10]
  • 이와테현기타카미시니시와가정의 슈퍼마켓 "슈퍼 오센"에서는 점내 배경음악으로 군함행진곡이 사용된다.[11]
  • 일본의 조선소에서는 진수식 때 군함행진곡이 연주되기도 한다.
  • 홋카이도 대학 게키료와 이와테 현립 모리오카 제1고등학교의 교가는 군함행진곡의 멜로디와 같다.

8. 한국에서의 인식

세토구치 도키치가 작곡하여 1900년(메이지 33년)에 〈군함행진곡〉으로 탄생했다. 1900년 4월 전함 후지(富士)의 승조원 군악대가 첫 연주를 했다. 1941년(쇼와 16년) 태평양 전쟁 개전 시에 배경음악으로 연주되어 유명하며, 당시 일본의 군국주의 체제에 의해 태평양 전쟁 기간 동안 라디오에서 계속 흘러나왔다.[1] 이러한 유명세로 전후에는 파칭코 가게의 배경음악 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1] 구 일본제국 해군(IJN) 및 현재의 해상자위대의 공식 행진곡으로, 진수식 등에서 연주된다.[1]

참조

[1] 웹사이트 キングレコードSP盤総目録 http://78music.jp/ki[...] 78MUSIC 2022-05-08
[2] 웹사이트 海上自衛隊公式サイト - 「軍艦」の作者 https://www.mod.go.j[...] 2018-12-31
[3] 웹사이트 海上自衛隊公式サイト - 世界における行進曲「軍艦」 https://www.mod.go.j[...] 2018-12-31
[4] 간행물 著作権を海軍に献納、日本ポリドール『東京朝日新聞』(昭和13年1月11日)『昭和ニュース事典第6巻 昭和12年-昭和13年』 毎日コミュニケーションズ 1994
[5] 웹사이트 海上自衛隊東京音楽隊:行進曲「軍艦」について https://www.mod.go.j[...] 2019-12-25
[6] 서적 軍艦行進曲 音楽社 (東京) 1910-07
[7] 뉴스 メロディーとともに (19) 軍艦マーチ 1999-08-27
[8] 웹사이트 坂口安吾 安吾の新日本地理 道頓堀罷り通る https://www.aozora.g[...]
[9] 뉴스 知らなかった・・幼稚園の卒園式で“軍艦マーチ”、担当教員は「リズム感が気にいったから」―中国上海 http://headlines.yah[...] XINHUA.JP 2014-09-12
[10] 웹사이트 スポニチ"上海の幼稚園 「軍艦マーチ」で停職処分" https://web.archive.[...]
[11] 웹사이트 岩手県の名物激安スーパー「SUPERオセン」 地域で愛される「低価格」の打ち出し方! https://diamond-rm.n[...]
[12] 웹사이트 軍艦マーチ・復活 http://www.asah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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