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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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규암면은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에 속하는 면으로,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읍과 마주하고 있다. 과거 엿바위라는 뜻의 규암과 규암나루를 중심으로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 중심지로 번성했으며, 현재는 백제대교 건설로 나루터의 기능은 쇠퇴했다. 주요 시설로는 규암면사무소, 부여소방서, 한국인삼공사 고려인삼창 등이 있으며, 백제문화단지, 부산서원, 자온대, 수북정 등 문화유산도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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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암면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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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규암면 |
한자 표기 | 窺岩面 |
영문 표기 | Gyuam-myeon |
광역시도 | 충청남도 |
시군구 | 부여군 |
면적 | 46.58 |
세대 | 4,310 |
세대 조사 | 2011년 1월 1일 |
인구 | 11,890 |
인구 조사 | 2022년 2월 |
법정리 | 19 |
행정리 | 32 |
반 | 193 |
면사무소 | 규암면 계백로 39 |
홈페이지 | 규암면 행정복지센터 |
2. 역사
규암면은 백제 시대부터 '엿바위'라는 뜻으로 불렸으며, 백마강을 통해 부여로 들어가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당나라 소정방이 부여를 침공할 때 바위 뒤에 숨어 적정을 엿보던 병사가 사비성에 소식을 알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규암면의 중심지인 규암리는 고려 시대에 형성된 마을로 추정되며, 진주 강씨와 청주 한씨가 오랫동안 거주해 왔다고 한다.[1] 조선 후기에는 부여현의 물류를 보관했던 해창과 홍산창이 규암리 자온대 옆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작로가 뚫리면서 버스와 차량을 실어나르는 넓적배가 운행되었고, 나무배 수십 척을 연결한 배다리나 철배다리를 놓아 도강하기도 했다. 해방 전후에는 규암 오일장이 크게 번성하여 군산과 강경을 잇는 정기여객선이 규암나루까지 연장 운행되기도 했다.
1968년 백제대교가 준공되면서 규암나루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오일장도 쇠퇴하였다. 현재 규암나루는 낙화암-구드래나루-자온대를 운행하는 유람선이 이용하고 있다.[1]
2. 1. 고대
규암은 엿바위라는 뜻인데, 당나라 소정방이 부여를 침공할 때 바위 뒤에 숨어서 적정을 엿보던 병사가 사비성에 소식을 알렸다는 일화가 있다.[1] 규암은 백마강을 사이에 두고 부여와 맞닿아 있는데, 규암나루는 금강을 건너 부여로 들어가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조선 후기 오일장이 크게 번성하면서 홍산장, 은산장, 강경장 등 저산팔읍의 장시 유통망이 규암나루를 통하여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루터 주변에 오일장과 상설시장이 형성되어 부여의 물산이 집결되는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규암나루는 충청도의 중심지 공주목에 이르는 금강 수로의 중요한 지점이었으며 강경을 거쳐 한양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강 서쪽에는 내산, 은산, 홍산, 외산, 보령, 청양이 있으며 강의 동쪽에는 부여, 논산, 공주가 자리하고 있다.[1]2. 2. 고려 및 조선 시대
규암리는 고려시대에 형성된 마을로 추정되며 진주 강씨와 청주 한씨가 오랫동안 거주해 왔다고 전해진다.[1]조선 후기에 규암나루는 백마강을 건너 부여로 들어가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홍산장, 은산장, 강경장 등 저산팔읍의 장시 유통망이 규암나루를 통하여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루터 주변에 오일상과 상설시장이 형성되어 부여의 물산이 집결되는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규암나루는 충청도의 중심지 공주에 이르는 금강 수로의 중요한 지점이었으며 강경을 거쳐 한양으로 통하는 지름길이었다.
부여현의 물류를 보관했던 해창과 홍산창이 규암리 자온대 옆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규암 오일장은 3일과 8일에 열렸으며 쇠전, 모시전, 포목전, 싸전, 어물전이 주축을 이루었다. 한때 군산과 강경을 잇는 정기여객선이 규암나루까지 연장 운행되었고, 만조 때에는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와서 사리 때에 새우젓과 소금을 실은 큰 상선이 조수를 따라 거슬러 올라와 나루터에 정박한 채 곡식을 사가지고 내려갔다.
2. 3. 일제 강점기 및 광복 이후
일제강점기에 신작로가 뚫리면서 버스와 차량을 실어 나르는 넓적배가 규암나루에서 운행되었다. 또한 나무배 수십 척을 연결한 배다리를 놓아 사람과 우마차가 통행하도록 하였으며, 홍수로 유실된 후에는 나무다리 및 철선을 연결한 철배다리를 놓아 도강하기도 했다.[1]해방 이후에는 규암리의 장이 부여읍내의 장보다 규모가 클 정도로 번성했다. 규암 오일장은 3일과 8일에 열렸으며 쇠전, 모시전, 포목전, 싸전, 어물전이 주축을 이루었다.[1] 한때 군산과 강경을 잇는 정기여객선이 규암나루까지 연장 운행되기도 했다.[1]
1968년 백제대교가 준공되면서 규암나루는 쇠퇴하고, 오일장도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1] 현재 규암나루는 낙화암-구드래나루-자온대를 운행하는 유람선이 이용하고 있다.
3. 행정 구역
조선 후기에 규암면은 천을면(淺乙面)이라고 불렸으며 여지도서(1757~1765)에 따르면 청산리, 내리, 돌모오리, 검복리, 창리, 걸산리, 반산리, 건지리, 나복리, 신대리, 용화리, 평월리, 학곡리, 녹야리, 모동리, 치리의 16개 동네가 속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4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는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천을면, 도성면, 송당면을 폐지하고 규암면과 규암리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3. 1. 법정리
다음은 규암면의 법정리 목록이다.4. 주요 시설
규암면사무소, 부여소방서, 우체국, 농협 등이 규암리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의 외리와 내리에는 규암초등학교, 백제중학교, 부여정보고등학교, 규암천주교회, 규암감리교회, 규암성결교회 등이 있다.
4. 1. 산업 시설
1950년대 한국 전쟁을 피해 개성전매지청이 1951년 규암면으로 이전해 왔다. 1978년 [http://www.kgc.co.kr/rnd/factory/buyeo-factory.do 고려인삼창]이 준공되었고, 한국인삼공사의 홍삼 제품인 정관장이 생산되고 있다. 고려인삼창은 56000평의 부지에 조성되어 있고, 인삼 박물관이 개장되어 매년 1만 명이 방문하고 있다.4. 2. 문화 관광 시설
호암리와 합정리 일대에는 백제문화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단지 내에는 백제역사문화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백제 왕궁과 능사, 롯데 부여리조트, 롯데아울렛 부여점, 롯데 부여스카이CC가 들어서 있다.4. 3. 아파트
부여읍은 문화재 발굴로 인해 고도제한이 걸려 있어, 근처 규암면에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아파트명 | 건설사 | 입주 시기 |
---|---|---|
부여센트럴휴엔하임 | ㈜신구건설 | 2018년 6월 |
대동황토방 | 대동주택㈜ | 2002년 8월 |
무지개 | 원건설㈜ | 2002년 2월 |
코아루 더퍼스트 부여 | 서희건설 | 2018년 4월 |
5. 문화 유산
규암면에는 부산서원, 자온당산제, 자온대, 수북정, 천정대, 백제문화단지 등 다양한 역사 문화 유적이 남아 있다.
5. 1. 부산서원
부산서원은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데, 조선 중기 문인 이경여가 낙향 후 후학들을 기르기 위해 건립하였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정책에 의해 훼철되었으나 오늘날 복설되어 현재 백강 이경여를 배향하고 있다.5. 2. 자온당산제
규암리의 사람들은 자온대를 할아버지 당산, 수북정 서쪽 맞은편에 있는 봉구재를 할머니 당산이라 부르는데, 해마다 음력 정월 초사흘 날에는 수북정에서 자온당산제(할아버지 당산제)와 봉구재에서 할머니 당산제를 지낸다. 고려 말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5. 3. 자온대
규암나루 옆의 큰 바위인 자온대는 백제 시대 왕이 왕흥사에 행차할 때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구들돌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암벽에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自溫臺(자온대)라고 쓴 친필이 새겨져 있다.[1]5. 4. 수북정
조선 광해군 때 양주목사를 지낸 수북 김흥국(1557~1623)이 후학 양성을 위해 건립하였다. 따스한 봄날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의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 부여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5. 5. 천정대
천정대는 규암면 호암리에 있으며, 백제의 수상인 좌평을 선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1]5. 6. 백제역사재현단지 (백제문화단지)
백제역사재현단지는 규암면 합정리에 건립되었으며, 백제역사문화관과 백제왕궁이 자리잡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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