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민주인민당 (헝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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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독교민주인민당 (KDNP)은 1944년 헝가리에서 창당된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으로, 가톨릭 정치가, 지식인, 성직자들이 주축이 되었다. 1949년 공산 정권에 의해 해산되었다가 1989년 재창당되었다. KDNP는 우익 보수 정당으로, 기독교 민주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전통적 보수주의를 강조하며 낙태 반대, 반LGBT, 반이민 입장을 고수한다. 2005년부터 피데스와 선거 협력을 맺고 있으며, 피데스의 위성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2024년 유럽 국민당(EPP)을 탈퇴하고 유럽의 애국자들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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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민주인민당 (헝가리)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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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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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기독교민주인민당 |
로마자 표기 | Kereszténydemokrata Néppárt (케레스트ény데모크라터 녚파르트) |
약칭 | KDNP (카데엠페) |
창립일 | 1944년 10월 13일 |
합법화 | 1989년 |
이전 정당 | 통일 기독교당 |
본부 | 1141 부다페스트, Bazsarózsa utca 69. |
청년 조직 | 청년 기독교민주연맹 |
여성 조직 | 기독교민주인민당 여성 조직 |
슬로건 | Több fényt! (퇴브 뻬ーny트!) ("더 많은 빛을!") |
지도부 | |
대표 | 셰미엔 졸트 |
부대표 | 페테르 하라흐, 미클로시 세스타크 |
이념 및 정치 성향 | |
이념 | 기독교 우파 정치적 가톨릭교 국가 보수주의 사회 보수주의 농본주의 소프트 유럽 회의주의 |
정치 성향 | 우익 |
종교 | 가톨릭 교회 |
소속 | |
국내 | 피데스-KDNP |
유럽 | 유럽 국민당 (1994년–2024년) |
유럽 의회 | 유럽 국민당 (2009년–2024년) 유럽 애국자 (2024년–현재) |
국제 | 중도 민주 인터내셔널 |
의석수 | |
국회 | 19 / 199석 |
유럽 의회 | 1 / 21석 |
웹사이트 | |
공식 웹사이트 | 기독교민주인민당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기독교민주인민당(KDNP)은 1944년 10월 13일, 헝가리의 가톨릭 정치인, 지식인, 성직자들이 모여 창당했으며, 이전 통합 기독교당의 후계 정당이다.[1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잠시 활동했으나 공산주의 정권 하에서 탄압받았고, 당명을 민주 인민당(DNP)으로 변경하여 1947년 선거에 참여해 제2당이 되기도 했다.[15] 하지만 반공주의 노선으로 인해 지도부가 망명하거나 투옥되었고, 결국 1949년 1월 해산되었다.[16]
1989년 동유럽 혁명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재창당되었다. 1990년 첫 자유 선거에서 원내에 진입하여 연립 정부에 참여했으나, 1998년 선거에서는 모든 의석을 잃었다. 이후 2005년 피데스와 선거 연대 협약을 맺은 뒤로는 계속해서 피데스와 연립 정부를 구성하여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적인 지지 기반이 약해 사실상 피데스의 위성 정당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17][18][19][20][21] 2024년에는 오랜 기간 속해 있던 유럽 국민당(EPP)을 탈퇴하고 피데스와 함께 유럽의 애국자들 그룹에 합류했다.[23]
2. 1. 창당과 초기 활동 (1944-1949)
기독교민주인민당(KDNP)은 1944년 10월 13일, 헝가리의 가톨릭 정치가, 지식인, 성직자들이 중심이 되어 창당되었다. 이 정당은 이전의 통합 기독교당의 후계 정당 성격을 가졌다.[14] 창립에는 어포르 빌모스 주교, 클루지나포카 대학교 학장 베일러 코브리그, Varga László (politikus, 1910–2003)|라슬로 바르가hu, 요제프 팔피 백작, 민족지학자 샨도르 벌린트, 정치 저널리스트 이슈트반 바라코비치 등이 참여했다. 이 정당은 시민 단체인 '가톨릭 사회 민속 운동'(KSzN)에서 파생되었다. 1945년 초, 당원들은 바라코비치를 주 서기로 선출했다.
새롭게 창당된 KDNP는 제2차 세계 대전 말 약 4~5개월 동안 준합법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전쟁 후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한 전후 당국은 KDNP의 합법적인 활동을 허용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운영 허가나 선거 참여도 불가능했다. 바르가와 바라코비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식 활동은 제약을 받았다. 창립 멤버 중 Varga László (politikus, 1910–2003)|라슬로 바르가hu를 포함한 일부 인사들은 파시스트 정당인 화살십자당 세력에게 잠시 투옥되기도 했다.
한편, 당 내부에서는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 커졌다. 일부 당원들은 이슈트반 바라코비치가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는 당국에 지나치게 타협한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갈등은 바라코비치가 이끄는 기독교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와, 요제프 민드젠티 추기경의 측근인 요제프 팔피가 이끄는 보수적-성직자주의 우파 사이에서 첨예하게 나타났다. 결국 좌파가 당내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1945년 5월 8일 이슈트반 바라코비치가 요제프 팔피를 대신하여 당 대표가 되었다. 이후 당명을 '''민주 인민당'''(DNP)으로 변경했다. 요제프 팔피가 이끄는 보수파는 KDNP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정당 창당을 시도했으나, 점증하는 소련의 영향력 하에서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1947년 선거에서 민주 인민당(DNP)은 유권자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며 총 411석 중 60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15]
민주 인민당(DNP)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반공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1949년, 공산 정권의 지도자 머터시 라코시는 이슈트반 바라코비치에게 당시 투옥되어 병상에 있던 요제프 민드젠티 추기경에 대한 공개 재판에 협력할 것을 요구했다. 바라코비치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 당을 떠나 미국 외교관의 도움으로 오스트리아로 망명했다. 그의 망명 이후 많은 당원들이 그를 따라 망명하거나 공산 정권에 의해 투옥되었다. 결국 민주 인민당은 1949년 1월 해산되었다.[16]
2. 2. 재창당과 현재 (1989-)
1989년, 당은 현재의 이름으로 재창당되었다. 과거 정당과 현재 정당 간의 연계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László Varga와 같이 원래 정당의 주요 구성원들이 재창당 과정에 참여했다. 재창당 이후 199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21석을 확보하며 원내에 복귀했고, 헝가리 민주 포럼(MDF), 독립 소농, 농업 노동자 및 시민당(FKgP), 그리고 이후 연합 소농당(EKGP)과 함께 연립 정부에 참여했다.1994년 선거에서는 22석을 얻었으며, 헝가리 사회당(MSZP)과 자유 민주주의 연합(SZDSZ)이 구성한 새로운 연립 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1998년 선거에서는 단 한 석도 얻지 못하고 모든 의석을 잃었다. 2002년에는 중앙당과 공동 명부를 구성했으나, 다시 한번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2005년, KDNP는 피데스와 선거 협력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력은 KDNP가 다시 국회 의석을 확보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2006년 선거에서 피데스-KDNP 동맹은 정당 명부 투표에서 42.0%를 획득하며 총 386석 중 164석을 차지했고, KDNP는 이 중 23석을 확보하여 독자적인 원내 교섭 단체를 구성했다.
피데스-KDNP 동맹은 2010년 선거에서 압승하여 정권을 잡았고, KDNP는 의석수를 36석으로 늘렸다. 이때 당 대표인 Zsolt Semjén은 부총리 겸 국가 정치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2014년과 2018년 선거에서도 피데스-KDNP 동맹은 승리를 이어갔으나, KDNP의 의석수는 16석으로 감소했다. 현재 당은 제4차 오르반 정부에서 두 명의 장관직을 맡고 있다. 당 대표 Zsolt Semjén은 부총리 겸 국가 정치, 교회 문제 및 국적 담당 장관을, János Süli는 팍스 원자력 발전소의 신규 원자로 2기 건설 담당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다.
KDNP는 사실상 피데스의 위성 정당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17] 피데스와의 연대 없이는 독자적인 지지율을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이며,[18][19][20] 피데스의 주요 정치인인 János Lázár는 2011년에 피데스가 현재 정부를 연립 정부 형태로 보지 않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21]
유럽 정치 무대에서 KDNP는 2024년까지 유럽 국민당(EPP)의 회원으로 활동했다. 연대 파트너인 피데스의 EPP 회원 자격이 2019년 3월 정지되고, 피데스 소속 유럽 의회 의원들이 2021년 3월 유럽 국민당 그룹을 탈퇴한 이후에도 KDNP는 EPP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KDNP의 유일한 유럽 의회 의원이었던 György Hölvényi는 한동안 EPP 그룹 내 유일한 헝가리 출신 의원으로 남아 있었다.[22] 그러나 2024년 유럽 의회 선거 이후, 헝가리의 신생 정당인 Tisza 당이 EPP에 가입하자 이에 반발하여 2024년 6월 18일 EPP와 EPP 그룹을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KDNP는 EPP가 기독교 민주주의의 가치를 저버렸다고 비판하며, 이후 피데스와 함께 극우 성향의 유럽의 애국자들 연합에 합류했다.[23]
3. 이념 및 정책
KDNP는 스스로를 기독교 민주주의와 보수주의 이념을 따르는 우익 정당으로 규정한다.[24] 사회 문제에 있어 연립 파트너인 피데스보다 더 전통적 보수주의 가치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지만,[25] 실제로는 피데스의 위성 정당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17] 독자적인 지지 기반이 미미하여[18][19][20] 피데스의 지원 없이는 의회 진출이 불투명하며, 피데스 내에서도 연립 정부로 인식하지 않는 시각이 존재한다.[21]
오랫동안 유럽 국민당(EPP) 소속이었으나, 2024년 유럽 의회 선거 이후 Tisza 당의 EPP 가입에 반발하며 EPP가 기독교 민주주의 가치를 저버렸다고 비판, 2024년 6월 탈퇴하고 피데스와 함께 유럽의 애국자들에 합류했다.[23] 과거 기독교 가치를 내세워 추진했던 일요일 상점 영업 제한 정책은 큰 사회적 반발에 부딪혀 결국 2016년에 철회된 바 있다.[26][27][30]
3. 1. 기독교 민주주의
KDNP는 헝가리의 우익 보수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이다. 헝가리 내에서 전통적인 결혼 가치를 옹호하고, 낙태 반대 및 이민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유럽의 기독교 유산을 중요하게 여겨, 유럽 헌법 제정 조약이 이를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 표를 던졌다. 하지만 당 스스로를 유럽회의주의자로 규정하지는 않는다.[24] KDNP는 전통적 보수주의를 강조하며, 특히 낙태, 가족법, 교육, 교회의 역할과 같은 문제에서 연립 파트너인 피데스보다 더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피데스는 상대적으로 더 세속적인 입장을 취한다.[25]KDNP는 기독교적 가치를 근거로 일요일 상점 영업 제한(소위 "자유로운 일요일")을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이러한 주장은 2014년 12월 14일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서 현실화되었고,[26] 2015년 3월 15일부터 시행되었다. 다만, 공휴일과 겹치는 일요일은 제외되었다.[27] 그러나 이 정책은 시행 직후부터 거센 여론의 반대에 직면했다. 2015년 봄에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60% 이상의 국민이 반대 의사를 표했으며(Szonda Ipsos 64%, Medián 62%, Tárki 59%), 심지어 피데스-KDNP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과반수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8] 야당과 시민 사회는 이 법의 폐지를 위해 국민 투표를 추진하려 했으나, 2015년 11월까지 16차례의 시도가 여러 관료적 이유로 인해 번번이 가로막혔다.[29] 2016년 초, 헝가리 사회당이 발의한 국민 투표 안건이 마침내 통과되자, 정부는 국민 투표 실시에 따른 정치적 부담(특히 집권 여당 지지층 내에서도 반대가 높았기에 야당의 승리로 해석될 여지가 컸음)을 피하기 위해 2016년 4월 스스로 일요일 영업 제한법을 폐지했다.[30] 이는 KDNP가 주도했던 정책의 실패이자 후퇴로 평가받는다.
3. 2. 보수주의
KDNP는 우익 성향의 보수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이다.[24] 헝가리 내에서는 전통적인 결혼관을 지지하며, 낙태 반대 및 반이민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4] 유럽 헌법 제정 조약에 대해서는 유럽의 기독교 유산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스스로를 유럽회의주의자라고 여기지는 않는다.[24]이 정당은 전통적 보수주의를 강조하며, 낙태 문제, 가족법, 교육, 교회의 역할 등 다양한 사회적 쟁점에서 동맹 관계인 피데스보다 더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상대적으로 피데스는 더 세속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평가된다.[25]
KDNP는 기독교적 가치를 내세워 소위 "자유로운 일요일"이라 불리는 일요일 상점 영업 제한 정책을 오랫동안 지지해왔다. 이 법안은 2014년 12월 14일 의회에서 통과되었고,[26] 2015년 3월 15일부터 시행되었다.[27] 하지만 이 정책은 시행 초기부터 상당한 사회적 반대에 직면했다. 2015년 봄에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반대 여론이 60%를 상회했으며,[28] 심지어 피데스-KDNP 지지층 내에서도 과반수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8] 야당과 시민들은 여러 차례 국민투표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무산되다가,[29] 2016년 초 헝가리 사회당의 시도가 성공하면서 정부는 국민투표 실시에 대한 부담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정부는 국민투표를 강행하기보다는 2016년 4월에 해당 금지 조치를 철회하는 방향을 선택했다.[30]
2024년 6월 18일, KDNP는 유럽 국민당(EPP)이 기독교 민주주의 가치를 저버렸다고 비판하며 EPP와 그 의원 그룹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2024년 유럽 의회 선거 이후 Tisza 당의 EPP 가입에 대한 대응이었으며, 이후 피데스와 함께 유럽의 애국자들에 합류했다.[23]
3. 3. 유럽 연합에 대한 입장
KDNP는 2024년까지 유럽 국민당 (EPP)의 회원이었다. 동맹 정당인 피데스의 회원 자격이 2019년 3월 20일에 정지되고, 피데스 소속 유럽 의회 의원들이 2021년 3월 3일에 유럽 국민당 그룹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KDNP는 유럽 연계를 유지했다. 당시 KDNP의 유일한 유럽 의회 의원이었던 György Hölvényi는 헝가리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EPP 그룹에 남아 있었다.[22]그러나 2024년 유럽 의회 선거 이후 Tisza 당이 EPP에 가입하자, KDNP는 이에 반발하여 2024년 6월 18일 EPP와 그 의원 그룹을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KDNP는 EPP가 기독교 민주주의 가치를 배반했다고 비난하며 탈퇴 이유를 밝혔다. 이후 KDNP는 피데스와 함께 유럽의 애국자들에 합류했다.[23]
4. 선거 결과
기독교민주인민당(KDNP)은 1990년 재창당 이후 첫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하여 헝가리 민주 포럼(MDF) 등과 연립 정부에 참여했다. 1994년 선거에서는 의석을 소폭 늘렸으나 야당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1998년과 2002년 선거에서는 연이어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원외 정당으로 밀려나는 시기를 겪었다.
2005년, KDNP는 피데스와 선거 연합(피데스–KDNP)을 결성하면서 정치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2006년 선거를 통해 다시 국회에 진입했으며, 2010년부터는 피데스와 함께 오르반 빅토르 정부의 연립 파트너로서 여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피데스와의 연합을 통해 꾸준히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KDNP는 피데스와의 연합 속에서 독자적인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실상 피데스의 위성정당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17][18][19][20] 실제로 피데스의 주요 정치인인 야노시 라자르(János Lázár)는 2011년에 피데스가 정부를 연립 정부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발언하여 이러한 시각을 뒷받침하기도 했다.[21]
4. 1. 헝가리 국회의원 선거
(FKgP와 공동 명부)(FKgP-MKP-MSZDP-NPP-KNDP)
(MDF-FKgP-KNDP) (1990–1993)
(MDF-EKGP-KNDP) (1993–1994)
(중앙당-KDNP 연합)
(피데스–KDNP 연합)
(피데스–KDNP 연합)
(피데스-KDNP)
(피데스–KDNP 연합)
(피데스-KDNP)
(피데스–KDNP 연합)
(피데스-KDNP)
(피데스–KDNP 연합)
(피데스-KDN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