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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 글라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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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리 글라이더 사건은 1983년 7월 23일, 에어 캐나다 143편 보잉 767기가 연료 계산 오류로 인해 엔진 고장을 겪고, 글라이더처럼 활공하여 김리 공군 기지에 비상 착륙한 사고이다. 이 사고는 연료량 표시 시스템(FQIS) 고장, 미터법과 야드파운드법 혼용, 조종사의 계산 오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숙련된 조종사들의 글라이더 비행 기술을 바탕으로 인명 피해 없이 착륙에 성공하여 "김리 글라이더"로 불리며, 항공 안전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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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 글라이더
사고 개요
사고 유형연료 부족으로 인한 비상 착륙
발생 위치기믈리 산업 공원 공항, 기믈리, 매니토바 주
날짜1983년 7월 23일
항공편 정보
항공사에어 캐나다
편명AC143
콜사인AIR CANADA 143
기종보잉 767-233
등록번호C-GAUN
출발지몬트리올-도르발 국제공항
경유지오타와 맥도널드-카르티에 국제공항
목적지에드먼턴 국제공항
승객 및 승무원
탑승 인원69명
승객61명
승무원8명
부상자10명
사망자0명
생존자69명
이미지
기믈리 활공기
비상 착륙 후의 에어 캐나다 143편

2. 사고의 배경

김리 글라이더 사고는 1983년에 발생한 항공 사고로, 연료량 계산 착오로 인해 발생했다.

사고기는 1983년에 제작된 보잉 767-233 기종(등록번호 C-GAUN)이었다. 사고 전날, 에드먼턴 국제공항에서 정기 점검 중 연료량 표시 장치(FQIS)에 결함이 발견되어 해당 채널을 비활성화했다.[6]

다음 날, 존 웨어 기장과 도널드 존슨 부기장은 이 문제를 전달받고 드립스틱(dripstick)으로 연료량을 확인한 후, 토론토몬트리올 미라벨 국제공항까지 비행했다.[6] 몬트리올 미라벨 국제공항에서 로버트 피어슨 기장과 모리스 퀸탈 부기장이 143편을 인계받았는데, 웨어 기장은 피어슨 기장에게 FQIS 문제를 알렸다. 피어슨 기장은 오타와 맥도날드-카르티에 국제공항에서 급유하지 않고 에드먼턴 국제공항까지 비행하기로 결정했다.[6]

이후 항공 전자 기술자가 FQIS 자체 테스트를 수행했으나, 연료 트럭 도착에 정신이 팔려 테스트 실패 후에도 채널을 활성화된 상태로 남겨두었다. 피어슨 기장이 조종석에 들어갔을 때 FQIS는 비어 있었다.[6]

몬트리올 미라벨 국제공항

2. 1. 항공기 정보

사고 항공기는 1983년에 제작된 보잉 767-233 기종으로, 시리얼 번호는 22520, 등록번호는 C-GAUN이었다. 이 항공기는 두 개의 프랫 & 휘트니 JT9D-7R4D 엔진으로 구동되었다.[6]

2. 2. 사고 전 상황

1983년 7월 22일, 에어 캐나다의 보잉 767-200 (기체 번호 C-GAUN) 항공기가 에드먼턴에서 정기 점검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기술자는 연료량 표시 장치(FQIS)에 결함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해당 결함 채널을 비활성화한 후 정비 일지에 기록했다.[6]

다음 날 아침, 존 웨어 기장과 도널드 존슨 부기장은 이 문제에 대해 전달받았다. FQIS가 단일 채널로 작동하게 되었으므로, 드립스틱(dripstick) 측정을 통해 연료량을 확인했다. 웨어 기장은 드립스틱 측정값을 센티미터에서 리터, 그리고 킬로그램으로 변환하여 FQIS 측정값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이 비행기는 토론토몬트리올로 문제없이 비행했다.[6]

몬트리올에서 로버트 "밥" 피어슨 기장과 모리스 퀸탈 부기장이 오타와와 에드먼턴으로 향하는 143편 항공기를 인계받았다. 인계 과정에서 웨어 기장은 피어슨 기장에게 FQIS에 문제가 있음을 알렸고, 피어슨 기장은 오타와에서 급유하지 않고 에드먼턴까지 비행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연료를 넣기로 결정했다.[6]

한편, 항공 전자 기술자가 조종석에 들어와 정비 일지를 확인했다. 그는 연료 트럭을 기다리는 동안 결함이 있는 채널을 활성화하고 FQIS 자체 테스트를 수행했다. 그러나 연료 트럭 도착에 정신이 팔려 FQIS 테스트 실패 후에도 채널을 활성화된 상태로 남겨두었다. 이후 피어슨 기장이 조종석에 들어갔을 때, 예상대로 FQIS는 비어 있었다.[6]

3. 사고 발생

1983년 7월 23일, 에어 캐나다 143편(보잉 767-200)은 퀘벡 주 몬트리올에서 앨버타 주 에드먼턴으로 비행하던 중 고도 약 12000m에서 연료가 완전히 고갈되는 사고를 겪었다. 엔진이 모두 정지된 후, 조종사들은 비행기를 활공시켜 매니토바 주 김리에 있는 캐나다 공군의 김리 기지 활주로(현재의 김리 산업 단지 공항)에 비상 착륙시켰다.[30]

이 사고는 연료량을 감시하는 기기의 고장과 야드파운드법과 미터법의 혼용에 따른 인적 오류가 주된 원인이었다.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다.

1985년에 촬영된 사고기


사고 후, 앞바퀴가 수리된 기체

3. 1. 연료 계산 오류

사고 당시 캐나다의 항공 부문은 야드파운드법에서 미터법으로 전환 중이었다. 이 과정의 일환으로, 에어 캐나다가 인수한 새로운 767은 미터법으로 보정된 최초의 항공기였다.[6] 몬트리올에서 에드먼턴으로 비행하기 위해 필요한 연료량은 22,300kg이었다. 연료 탱크에는 7,682L의 연료가 남아 있었다. 연료의 밀도는 0.803kg/L이므로, 올바른 계산은 다음과 같았다.

:7,682 L × 0.803 kg/L = 6,169 kg = 이미 탑재된 연료의 질량

:22,300 kg − 6,169 kg = 16,131 kg = 추가로 필요한 연료의 질량

:16,131 kg ÷ (0.803 kg/L) = 20,088 L = 추가로 필요한 연료의 부피

하지만, 연료 공급자는 당시 제트 연료의 밀도가 1.77lb/L였다고 보고했는데, 이는 다른 에어 캐나다 항공기에서 파운드(lb)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피어슨 기장과 퀸탈 부기장은 둘 다 kg/L로 변환하지 않고 제트 연료의 밀도를 lb/L로 사용했다.[6]

:7,682 L × 1.77 lb/L = 13,597 lb = 이미 탑재된 연료의 킬로그램으로 잘못 해석됨

:22,300 kg − 13,597 kg = 8,703 kg = 추가로 필요한 연료의 잘못된 질량

:8,703 kg ÷ (1.77 lb/L) = 4,917 L·kg/lb = 추가로 필요한 리터로 잘못 해석됨

그 결과, 필요한 20088L의 추가 연료 대신, 4917L만 탑재했다. 잘못된 변환 인수를 사용한 결과, 총 연료 적재량은 필요한 약 22303.12kg가 아닌 약 10115.10kg에 불과했다. 이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양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18]

3. 2. 비행 중 연료 고갈

온타리오주 레드레이크 상공에서 비행 중, 조종실 경고 시스템이 연료 압력 문제를 알렸다.[2] 조종사들은 연료 펌프 고장으로 판단하여 펌프를 껐는데, 이는 엔진이 중력으로 연료 공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8] 그러나 곧이어 오른쪽 엔진에도 연료 압력 경보가 울렸다. 조종사들은 위니펙으로 회항을 결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엔진이 멈췄고, 단발 엔진 착륙을 준비하던 중 조종실 경고 시스템은 모든 엔진이 정지되었음을 알리는, 들어본 적 없는 날카로운 "봉" 소리를 냈다.[8] 몇 초 뒤 오른쪽 엔진마저 멈추면서, 767기는 모든 동력을 잃었다. 모든 엔진이 정지된 상태는 훈련에서 다루어지지 않았던 상황이었다.[9]

항공기의 트랜스폰더가 고장나 고도 보고 기능이 중단되어, 관제사들이 1차 레이다로 항공기를 추적해야 했다는 점은 더 큰 문제였다.

4. 비상 착륙

1983년 7월 23일, 에어 캐나다 143편(보잉 767-200)은 퀘벡 주 몬트리올에서 앨버타 주 에드먼턴으로 비행하던 중 고도 약 1만 2,000m에서 연료가 떨어지는 사고를 겪었다.[30] 조종사들은 활공 비행을 통해 매니토바 주 김리에 있는 캐나다 공군 기지(현: 김리 산업 단지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30]

이 사고는 연료량을 감시하는 기기의 고장과 야드파운드법과 미터법의 혼용에 따른 인적 오류가 주된 원인이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30]

4. 1. 글라이더 비행

온타리오주 레드레이크 상공을 비행하던 중, 조종실의 경보 장치가 4번 경고음을 울리며 좌측 엔진의 연료 압력에 문제가 있음을 알렸다. 기장은 연료 펌프 고장으로 판단하여 이를 껐다. 연료 탱크는 엔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펌프를 사용하지 않아도 연료 공급은 가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연료 압력 경고가 울리자 기장은 위니펙으로 목적지 외 착륙(다이버트)을 결정했다. 몇 초 후 좌측 엔진이 정지했고, 우측 엔진만으로 착륙을 준비하게 되었다.

조종사들은 엔진 재시동을 시도했고, 위니펙 관제사와 비상 착륙에 관해 연락을 주고받는 동안 경보 장치가 이전에는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긴 경고음을 냈다. 이는 모든 엔진의 정지를 알리는 신호였으며, 이러한 상황은 훈련에서 예상되지 않았다. 경고 후 몇 초 뒤 우측 엔진도 정지했다. 143편은 모든 동력을 잃었고, 조종실에는 일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트랜스폰더도 정지하여 2차 레이더로의 포착이 불가능해졌다. 따라서 위니펙의 관제사는 당시 사용되지 않던 1차 레이더를 꺼내 143편의 기체를 추적하는 한편, 위니펙 및 김리까지의 거리를 일일이 측정하여 조종사들에게 계속해서 전달했다. 연료가 소진되었을 때의 고도는 약 8,500미터(2만 8,000 피트)로, 상당히 강하한 상태였다.

제트 엔진은 항공기에 필요한 전력 공급을 위한 발전기를 갖추고 있다. 본 기의 조종석은 완전한 글래스 콕핏은 아니었고, 기존의 아날로그 계기류를 병용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계기류가 작동에 전력을 필요로 했으며, 엔진 정지와 함께 이들도 일제히 정지했다. 다만, 전력을 사용하지 않고 작동하는 계기 중 하나인 강하율계를 통해 조종사들은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강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활공 거리를 계산할 수 있었다. 대기 속도계, 고도계, 자침 또한 전력 없이 작동하는 기기였으며, 항공기를 착륙시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엔진은 기체 각부의 가동부를 제어하는 유압 시스템의 동력원이기도 하며, 유압이 없는 상태에서 보잉 767형기 정도의 크기의 항공기를 조종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항공기 설계에서는 이러한 상황도 고려하여, 그러한 경우에는 비상용 풍력 발전기 램 에어 터빈이 자동으로 기체 측면에 전개된다. 항공기의 속도는 발전기의 풍차를 돌리기에 충분했고, 기체 제어를 위한 충분한 유압을 얻을 수 있었다.

피어슨 기장은 글라이더 조종 경험이 많았으므로, 상업 비행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비행 기술에 익숙했다. 피어슨은 최대 활공 속도로 767기를 비행하여 최대 범위를 확보해야 했고, 따라서 착륙 장소를 최대한 선택할 수 있었다. 퀸탈 부기장은 위니펙에 도달할 수 있는지 계산하기 시작했다. 퀸탈은 기계식 백업 계측기 중 하나의 고도를 사용했고, 이동 거리는 위니펙에서 관찰된 항공기의 레이더 반사 신호를 통해 위니펙의 항공 교통 관제사가 제공했다. 에서 항공기는 를 잃어 약 12:1의 활공비를 보였다. (전용 글라이더 비행기는 50:1에서 70:1의 비율에 도달한다).[11]

이 시점에서 퀸탈은 RCAF 기지 김리의 이전 기지에 착륙할 것을 제안했는데, 그는 과거에 캐나다 공군의 조종사로 복무했던 폐쇄된 공군 기지였다. 퀸탈이나 항공 교통 관제사도 알지 못하게, 시설의 일부가 레이스 트랙 단지로 전환되었으며, 현재는 김리 모터스포츠 공원으로 알려져 있었다.[12]

4. 2. 김리 공군 기지로의 접근

1983년 7월 23일, 에어 캐나다 143편은 몬트리올에서 에드먼턴으로 비행 중 연료 고갈을 겪었다. 조종사들은 매니토바 주 김리에 있는 이전 캐나다 공군 기지(RCAF Station Gimli)에 비상 착륙을 시도했다. 퀸탈 부기장은 과거 공군 조종사로 복무했던 김리 기지를 제안했지만, 그곳은 이미 김리 모터스포츠 공원으로 바뀌어 경주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12]

항공기가 활주로에 접근할수록 속도가 줄면서 램 에어 터빈의 동력 감소로 제어가 어려워졌다.[14] 주 전원이 없어 조종사들은 중력 낙하로 착륙 장치를 내렸으나, 앞바퀴는 고정되지 않았다.[14]

너무 높고 빠른 속도로 접근했기에 플랩/슬랫 확장이 불가능했다.[14] 360° 회전 대신, 피어슨 기장은 속도와 고도를 줄이기 위해 전진 활공을 수행했다.[14]

접근 중에는 엔진이 정지되어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아 지상의 사람들은 대피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14] 활주로에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다행히 두 가지 요인 덕분에 큰 사고를 피할 수 있었다.[14] 첫째는 앞바퀴가 고정되지 않은 것이었고, 둘째는 경주 트랙으로 개조된 활주로 중앙의 가드레일이었다.[14]

피어슨 기장은 급제동으로 타이어 두 개가 터졌고, 고정되지 않은 앞바퀴는 땅에 부딪혀 긁히면서 추가 마찰을 제공하여 속도를 줄였다.[14] 또한, 오른쪽 브레이크를 더 밟아 주 착륙 장치가 가드레일을 벗어나게 했다.[14] 결국, 에어 캐나다 143편은 연료가 떨어진 지 17분 만에 멈췄다.[14]

4. 3. 착륙

비행기가 활주로에 접근하면서 조종사들은 너무 높고 빠르게 내려오고 있어 767기가 활주로를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압 압력이 부족하여 정상적인 조건에서 항공기의 실속 속도를 줄이고 날개의 양력 계수를 증가시켜 안전한 착륙을 위해 항공기의 속도를 늦추는 플랩/슬랫 확장이 불가능했다. 조종사들은 속도와 고도를 줄이기 위해 360° 회전을 잠시 고려했지만, 그 기동을 위한 고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결정했다. 피어슨 기장은 드래그를 늘리고 고도를 줄이기 위해 전진 활공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컨트롤 교차(rudder를 한 방향으로 적용하고 에일러론을 다른 방향으로 적용)"로 수행되는 이 기동은 전진 속도를 증가시키지 않고 더 빨리 하강하기 위해 글라이더와 경비행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이 비행과 같은 드문 상황 외에는 대형 제트 여객기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14] 전진 활공은 램 에어 터빈을 지나가는 기류를 방해하여 사용 가능한 유압 동력을 감소시켰고, 조종사들은 전진 활공 후 항공기가 똑바로 돌아갈 때 반응이 느린 것을 보고 놀랐다.

양쪽 엔진 모두 완전히 연료 고갈되었기 때문에 비행기는 접근하는 동안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지상의 사람들은 즉흥적인 착륙에 대한 경고를 받지 못했고 대피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활공하는 비행기가 폐쇄된 활주로에 접근하면서 조종사들은 아이들이 예상 충돌 지점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14]

재앙을 막는 데 두 가지 요인이 도움이 되었다. 중력 낙하 중 앞쪽 착륙 장치가 제자리에 고정되지 않은 것과 드래그 경주 트랙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조된 활주로 중앙을 따라 설치된 가드레일이었다. 피어슨 기장은 바퀴가 활주로에 닿자마자 급브레이크를 밟아 항공기 타이어 2개가 미끄러지면서 즉시 터졌다. 고정되지 않은 앞바퀴가 붕괴되어 휠웰로 밀려 들어가면서 항공기 앞부분이 땅에 부딪혀 튀어 올랐다가 땅을 따라 긁혔다. 이 추가적인 마찰은 비행기의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되었고 활주로 주변에 모인 군중과 충돌하는 것을 막았다. 피어슨 기장은 추가로 오른쪽 브레이크를 적용하여 주 착륙 장치가 가드레일을 벗어나게 했다. 에어 캐나다 143편은 연료가 떨어진 지 17분 만에 지상에서 최종 정지했다.[14]

5. 사고 이후

캐나다 항공 안전 위원회(현재 캐나다 교통 안전 위원회의 전신)는 에어 캐나다 경영진의 "기업 및 장비 결함"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하면서도, 비행 및 객실 승무원들의 "전문성과 기술"을 칭찬했다.[6] 에어 캐나다 내부 조사 결과, 피어슨 기장은 6개월 강등, 퀸탈 부기장은 2주간 정직 처분을 받았으나,[19] 항소를 통해 복직했다.

1985년, 피어슨과 퀸탈은 국제 항공 연맹으로부터 뛰어난 항공술에 대한 디플로마를 수상했다.[20] 밴쿠버에서 진행된 시뮬레이션에서 같은 상황을 재현했을 때, 다른 승무원들은 모두 추락했다는 점이 이들의 능력을 증명한다.[21] 퀸탈은 1989년에 기장으로 승진했고,[22] 피어슨은 아시아나 항공으로 이직하여 1995년에 은퇴했다.[7]

사고기는 김리에서 임시 수리를 받은 후 이틀 뒤 위니펙 정비 기지로 이동해 완전한 수리를 받았다. 이후 에어 캐나다에 다시 투입되어 운항하였다.[19]

2008년 2월 모하비 공항 및 우주기지에 주차된 C-GAUN (C-GAUN의 에어 캐나다 도색은 이후 제거됨)


C-GAUN은 25년에 가까운 운항을 마치고 2008년 1월 1일 마지막 유료 운항을 했다. 2008년 1월 24일, 몬트리올 트뤼도에서 투손 국제공항으로 AC7067편으로 마지막 비행을 시작했고, 캘리포니아 모하비 공항에서 퇴역했다. 이 비행에는 에어 캐나다 조종사 협회 전 회장이었던 장-마르크 벨랑제 기장이 조종을 맡았고, 로버트 피어슨과 모리스 퀸탈 기장도 탑승했으며, 143편 승무원 6명 중 3명도 함께했다.[8][22]

2013년 4월, 김리 글라이더는 Collectable Cars라는 회사에 의해 경매에 부쳐졌으나, 예상 가격(275만~300만 CAD)에 미치지 못하는 425,000CAD의 입찰가로 인해 팔리지 않았다.[7][26][27]

김리 글라이더는 2014년 초 폐기되었다. 금속 동체 외피 일부는 10,000개의 수하물 태그로 제작되어, 캘리포니아 MotoArt 회사가 "PLANETAGS"라는 제품명으로 판매했다.[28]

5. 1. 조사

캐나다 항공 안전 위원회(현재 캐나다 교통 안전 위원회의 전신)는 에어 캐나다 경영진이 "기업 및 장비 결함"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했다. 보고서는 비행 및 객실 승무원의 "전문성과 기술"을 칭찬했다. 보고서는 에어 캐나다가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연료 탑재량을 계산하는 책임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할당하는 것을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6] 또한 이 항공사가 연료 탑재량 확인 업무(과거 3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구형 항공기에서는 항공 기술자의 책임이었다)를 재분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안전 위원회는 또한 에어 캐나다가 결함이 있는 연료량 표시기를 대체할 부품을 포함하여 더 많은 예비 부품을 유지하고 조종사와 급유 담당자에게 미터법에 대한 더 좋고 철저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 최종 보고서는 1985년 4월에 발표되었다.[6]

5. 2. 처벌 및 포상

캐나다 항공 안전 위원회는 에어 캐나다 경영진의 "기업 및 장비 결함"에 책임이 있다고 보고하면서도, 비행 및 객실 승무원들의 "전문성과 기술"을 칭찬했다.[6] 에어 캐나다의 내부 조사 이후, 피어슨 기장은 6개월 동안 강등되었고, 퀸탈 부기장은 2주간 정직 처분을 받았다.[19] 그러나 이들은 항소를 통해 복직했다.

1985년, 피어슨과 퀸탈은 국제 항공 연맹으로부터 뛰어난 항공술에 대한 디플로마를 수상했다.[20] 밴쿠버의 시뮬레이터에서 같은 상황을 재현했을 때, 다른 승무원들은 모두 추락했다는 점이 이들의 능력을 증명한다.[21] 퀸탈은 1989년에 기장으로 승진했고,[22] 피어슨은 아시아나 항공으로 이직하여 1995년에 은퇴했다.[7]

5. 3. 항공기 퇴역

사고 항공기는 김리에서 임시 수리를 받은 후 이틀 뒤 위니펙의 정비 기지로 날아가 완전한 수리를 받았다. 이후 에어 캐나다에 다시 투입되어 운항하였다.[19]

25년에 가까운 운항을 마치고, C-GAUN은 2008년 1월 1일 마지막 유료 운항을 했다. 2008년 1월 24일, 몬트리올 트뤼도에서 투손 국제공항으로 AC7067편으로 마지막 비행을 시작했고, 캘리포니아 모하비 공항에서 퇴역했다. 이 비행에는 에어 캐나다 조종사 협회의 전 회장이었던 장-마르크 벨랑제 기장이 조종을 맡았고, 로버트 피어슨과 모리스 퀸탈 기장도 탑승했으며, 143편의 승무원 6명 중 3명도 함께했다.[8][22]

2013년 4월, 김리 글라이더는 Collectable Cars라는 회사에 의해 경매에 부쳐졌으며, 예상 가격은 2750000CAD~3000000CAD이었다.[7][26] 하지만 입찰가는 425000CAD에 그쳤고, 매물은 팔리지 않았다.[27]

항공기를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웹사이트에 따르면, 김리 글라이더는 2014년 초에 폐기되었다. 금속 동체 외피의 일부는 10,000개의 순차적으로 번호가 매겨진 수하물 태그로 만들어졌으며, 캘리포니아의 MotoArt라는 회사가 "PLANETAGS"라는 제품명으로 판매했다.[28]

6. 김리 글라이더 사건의 의의

1983년에 발생한 김리 글라이더 사건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 사건은 항공 안전 관리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특히 인적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다중 안전 장치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숙련된 조종사들의 위기 대처 능력과 글라이더 비행 기술이 대형 참사를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1년 에어 트랜샛 236편 활공 사고는 부적절한 정비로 인한 연료 누출로 인해 아조레스 제도에 비상 착륙한 유사한 사고였다.[8] 이 외에도 2000년 하파크로이드 플루크 3378편 불시착 사고, 2008년 브리티쉬 에어웨이즈 38편 사고, 1988년 타카 항공 110편 긴급 착륙 사고, 2009년 US 에어웨이즈 1549편 불시착 수 사고, 2010년 알로사 항공 514편, 2019년 우랄 항공 178편 불시착 사고 등 유사한 사고 사례들과 비교 연구되어 항공 안전 개선에 기여했다.

7. 미디어

1995년 텔레비전 영화 ''하늘에서 떨어지다: 174편 항공기''(Falling from the Sky: Flight 174)가 제작되었다.[24]

디스커버리 채널 캐나다 / 내셔널 지오그래픽 TV 시리즈 ''메이데이''(Mayday)는 2008년 "김리 글라이더"라는 제목의 에피소드에서 이 사고를 다루었다. 이 에피소드에는 생존자, 피어슨과 퀸탈과의 인터뷰, 그리고 드라마틱한 비행 재현이 포함되었다.[24]

일본의 여러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 및 방영되었다.

방송사프로그램 제목방영일
후지 TV기적 체험! 언빌리버블2002년 3월 21일
니혼 TV세상에 이런 일이! TV 특수 수사반2011년 8월 8일
TV 아사히트리하(비) 스쿠프 영상 100과 사전2013년 5월 28일
TBS TV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랭킹 왜? 왜? 왜?2015년 9월 21일
TV 도쿄정말로 있었던 (비) 미스터리2017년 10월 10일
TBS TV월드 극한 미스터리2019년 11월 27일


참조

[1] 웹사이트 What Happened on July 23, 1983 https://www.onthisda[...] 1983-07-23
[2] 뉴스 Fuel-starved engines blamed for crash landing of Ottawa jet https://news.google.[...] Ottawa Citizen 1983-07-25
[3] 뉴스 Jetliner glides down on race track https://news.google.[...] Calgary Herald 1983-07-25
[4] 뉴스 Jet's Fuel Ran Out After Metric Conversion Errors https://www.nytimes.[...] 1983-07-30
[5] 웹사이트 Great Miscalculations https://www.bbc.com/[...] BBC 2014-05-22
[6] 웹사이트 Final report of the Board of Inquiry investigating the circumstances of an accident involving the Air Canada Boeing 767 aircraft C-GAUN that effected an emergency landing at Gimli, Manitoba, on the 23rd day of July, 1983 http://data2.collect[...] 1985-04
[7] 뉴스 'Gimli Glider' pilot recalls heroic landing of Air Canada 767 as famed plane put up for sale http://news.national[...] 2015-04-14
[8] 웹사이트 The Gimli Glider http://www.wadenelso[...] Originally published in [[Soaring (magazine)]] 1997-10
[9] 간행물 The 156-tonne Gimli Glider http://www.casa.gov.[...] 2003-07
[10] 웹사이트 Accident description http://aviation-safe[...]
[11] 웹사이트 Flugerprobung – Leisting – Leistungsvermessung http://www.leichtwer[...] 2002-06-20
[12] 웹사이트 Gimli Motorsports Park website http://www.gimlimoto[...]
[13] 웹사이트 Red River PCA website http://redriverpca.o[...]
[14] 웹사이트 The Gimli Glider Incident – From an article published in Soaring Magazine http://hawaii.hawaii[...] University of Hawai'i 1997
[15] 웹사이트 The Gimli Glider http://www.damninter[...]
[16] 서적 Emergency, Crisis on the Flightdeck Airlife Publishing Ltd
[17] 웹사이트 Accident Boeing 767-233 C-GAUN, Saturday 23 July 1983 http://aviation-safe[...] 2016
[18] 웹사이트 Air Canada 143 – Accident Case Study http://code7700.com/[...] 2014-06-07
[19] 뉴스 'Gimli glider' recalled at trial of pilot in crash http://www.cbc.ca/ne[...] CBC 2007-04-26
[20] 웹사이트 FAI Diploma for Outstanding Airmanship http://www.fai.org/a[...]
[21] 뉴스 Air Crash Investigation National Geographic Channel
[22] 뉴스 Storied 'Gimli Glider' on final approach https://www.theglobe[...] 2009-03-13
[23] 웹사이트 Obituary of Maurice Quintal https://www.afterlif[...] 2015-10-15
[24] 간행물 Gimli Glider
[25] 뉴스 Hero pilot is guest for Gimli Glider 25th anniversary http://www.cbc.ca/ne[...] CBC News 2008-07-23
[26] 웹사이트 Boeing 767 known as Gimli Glider up for auction https://www.thestar.[...] 2013-02-22
[27] 웹사이트 'Gimli Glider' not sold at Ontario auction https://www.cbc.ca/n[...] 2013-04-14
[28] 뉴스 Boeing 767 that landed near Gimli being repurposed into luggage tags http://www.interlake[...] 2015-12-16
[29] 뉴스 Gimli commemorates historic airline touchdown with new exhibit https://www.winnipeg[...] 2017-07-21
[30] 웹사이트 archives.cbc.ca http://archives.cbc.[...]
[31] 웹사이트 The 156-tonne GIMLI GLIDER https://web.archive.[...]
[32] 웹사이트 The Gimli Glider / Air Canada http://www.wadenel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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