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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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유식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PC통신 시절부터 온라인 활동을 시작하여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를 설립했다. 그는 PC통신 하이텔 유머 게시판에서 활동하며 인기를 얻었고, 용산전자상가에서 컴퓨터 관련 사업을 벌였다. 일본 유학 후 CD 판매 사업을 하던 중 음반·비디오물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디시인사이드를 설립하여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횡령 혐의로 기소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정치적 발언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으며,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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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식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개인 정보 | |
이름 | 김유식 |
원어 이름 | 金裕植 |
로마자 표기 | Gim Yusik |
다른 이름 | 유식대장 ('Yu-Sik Daejang', captain Yu-Sik) |
출생일 | 1971년 2월 17일 (53세)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
대학원 | 한양사이버대학교 대학원 IT MBA 석사 |
대학교 | 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 |
전문학교 | 신주쿠정보비즈니스전문학교 국제경영 OA 비즈니스 |
고등학교 | 한영고등학교 |
중학교 | 풍납중학교 |
초등학교 | 풍납국민학교 |
경력 | |
직업 | 기업인 |
소속 | 디시인사이드 |
기타 정보 | |
배우자 | 박유진 |
2. 생애
2. 1. 성장기와 PC통신
1970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난 김유식은 언론계에 근무한 아버지 덕분에 일찍이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다.[3][4] 1980년대 초반,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김유식은 아버지를 따라 서울 종로2가 동화서적 3층에 위치한 컴퓨터학원에서 컴퓨터를 배웠다.[3]온라인에서 김유식이 유명해지게 된 것은 1990년에 PC통신 하이텔의 유머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3][4] 당시에는 '최불암 시리즈'류의 짧은 시리즈 유머만 있었는데 PCTOOLS 김현국과 더불어 그가 쓴 여러 기상천외하고 코믹한 이야기들을 장편으로 올리자 큰 인기를 얻게 된다.[3] 김유식은 이 때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PC통신을 이용하면 큰 돈벌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3]
입대 전 컴퓨터 학원 강사와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에서 일을 하던 김유식은 제대 후 1992년 가을, 후배와 함께 용산전자상가에 갔다가 후배가 후배의 지인인 용산업자로부터 당시 17~20만원을 하던 386 메인보드를 14만 원에 사온 것을 보고 바로 당장 업자에게 14만 원에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구두계약을 맺고 하이텔 팝니다 게시판에 15만 5천 원에 판매한다는 글을 올리면서 히트를 치고 큰 돈을 벌었다.[3] 이후 모뎀, CPU, 메모리, VGA 등등 사업을 확장했으나 그 후 경쟁자가 지속적으로 생기자 그대로 후배에게 일을 물려주고 일본의 신주쿠정보비즈니스전문학교 국제경영OA비즈니스과에 네트워크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게 된다.[3]
하지만, 거기에서 네트워크는 가르쳐주지 않고, XT-16비트 컴퓨터에 일본어 워드프로세서만 가르치고 있어, 그 대신 1994년 그곳에서 사업을 벌여 컴퓨터와 모니터, 워크맨 등 전자제품과 게임 및 영화 CD 등을 구입해 PC통신 팝니다 게시판을 통해 팔았다.[3] 당시 같은 제품이 일본보다 한국 가격이 약 2배 정도 차이나 그 중간가격으로 팔아 장사가 크게 잘 되었고 주문이 쏟아져 하루 2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낸다.[3] 김유식은 이 때를 "아침에 빈 봉투 갖고 나가 저녁에 돈을 쓸어 담고 왔다",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 라고 회고했다.[3]
1996년, 당시 CD를 5장 이상 수입하려면 문화관광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해서 3~4장 단위로 묶어 한국으로 들여오는 사업을 했었는데, 가와자리 요지아키 감독 작품의 성인 애니메이션 《수병위인풍첩》을 "동물병정 같은 것이 나와 아기자기하게 싸우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하며 확인을 안하고 판매했다가 음비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25일간 수감되었고 그 후 일본의 직원들 역시 뿔뿔이 흩어져 사업 역시 정리되어 버리고 만다.[3] 이 《수병위인풍첩》은 2년 뒤 《무사 주베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정식 개봉됐다.[3]
1995년 일본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유식은 하이텔 노트북 동호회 시삽을 하면서 노트북에 대한 사용 후기를 400편 정도 적어 놓았는데, 1999년 하이텔 측이 이를 PC통신 외에 웹에도 쓰면 월 100만 원씩 주겠다고 제안받고 디시인사이드를 시작하게 된다.[3][4]
2. 2. 일본 유학과 사업
1990년, 김유식은 PC통신 하이텔의 유머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온라인에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최불암 시리즈'와 같은 짧은 시리즈 유머가 주류였지만, 김유식은 PCTOOLS 김현국과 함께 기상천외하고 코믹한 이야기들을 장편으로 올려 큰 인기를 끌었다. 김유식은 PC통신을 이용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3][4]입대 전 컴퓨터 학원 강사와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에서 일했던 김유식은 제대 후 1992년 가을, 후배와 함께 용산전자상가에 갔다. 후배가 지인인 용산업자로부터 386 메인보드를 저렴하게 구매하는 것을 보고, 김유식은 해당 업자에게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도록 구두계약을 맺고 하이텔 팝니다 게시판에 판매글을 올려 큰 돈을 벌었다. 이후 사업을 확장했지만 경쟁자가 늘어나자 후배에게 일을 물려주고 일본 신주쿠정보비즈니스전문학교 국제경영OA비즈니스과에 네트워크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났다.[3][4]
하지만, 학교에서는 네트워크 대신 일본어 워드프로세서만 가르쳤다. 그래서 김유식은 1994년 그곳에서 컴퓨터, 모니터, 워크맨 등 전자제품과 게임 및 영화 CD 등을 구입해 PC통신 팝니다 게시판을 통해 판매하는 사업을 벌였다. 당시 한국과 일본의 가격 차이를 이용하여 큰 이익을 얻었고, 주문이 쏟아져 하루 2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할 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김유식은 이 시기를 "아침에 빈 봉투 갖고 나가 저녁에 돈을 쓸어 담고 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 라고 회고했다.[3][4]
1996년, 김유식은 CD 수입 관련 법률 때문에 음비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25일간 수감되었다. 가와자리 요지아키 감독의 성인 애니메이션 《수병위인풍첩》을 확인하지 않고 판매한 것이 문제였다. 이 사건으로 일본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사업도 정리되었다. 《수병위인풍첩》은 2년 뒤 《무사 주베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정식 개봉됐다.[3][4]
1995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유식은 하이텔 노트북 동호회 시삽을 맡았다. 1999년 하이텔 측의 제안으로 디시인사이드를 하이텔의 한 코너로 시작하게 된다.[3][4]
2. 3. 디시인사이드 설립
김유식은 하이텔에서 월드 와이드 웹에 랩톱 리뷰를 작성할 것을 제안받았다.[1][2] 그는 랩톱에 관한 웹사이트와 디지털 카메라에 관한 웹사이트 두 개를 만들었는데, 후자는 디시인사이드가 되었고 전자인 ''노트북인사이드''(노트북 인사이드/노트북인사이드한국어)는 곧 폐쇄되었다.[1][2]2. 4. 디시위키 설립
리그베다 위키의 사유화 사태에 보다 못한 김유식은 차라리 자신이 위키를 운영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디시위키를 만들었다. 하지만 디시위키의 문서생성 속도는 대단히 빨라서 2개월 이내에 1만개 이상의 문서가 생성되었으나 질적 수준은 '''제2의 백괴사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2. 5. 주식 투자 실패
김유식은 주식에 관심이 많아 디시인사이드의 주식 갤러리를 드나들었다. 2008년 10월 17일, 화학 업체인 메이드에 80억원을 투자하여 주식 2천만 주를 취득했다. 그러나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10월 24일 기준으로 단 일주일 만에 36억원을 손해 보았다. 결국 투자한 80억원은 한 푼도 회수하지 못했다.3. 정치 성향 및 논란
본인의 말로는 반북보수우익 성향이라고 한다.[5] 월간조선에 우파네티즌들의 단결을 호소하는 컬럼을 쓰기도 했다. 각종 인터뷰에 따르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으나, 김유식 본인은 원래 자신의 성향을 밝히지 않아왔으나 노무현 정권 시절 정부 관계자가 김유식을 자기 편으로 알고 청와대로 초청하여 도와달라고 했다고 주장하며 김유식은 "난 당신들 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천명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PC통신이나 인터넷에서 개인이 쓴 글이나 언론보도에 관해서는 정부가 규제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대형 사이트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했던 인터넷 실명제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었다. 또한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때는 조선족 동포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자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다.
김유식은 자신을 반북보수우익이라고 주장하였고,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난 노빠(노무현 빠돌이)가 아니며 극우에 가깝다"고 말했다.
김유식은 2011년 디시인사이드 정치사회 갤러리(정사갤)에서 한 이용자가 5.18에 대한 생각을 묻자 '5.18은 성역화되었고 나중에 역사가 재평가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이용자가 5.18이 왜 폭동이냐는 게시글을 올리자, "책도 좀 읽어보시고 관련 자료도 찾아보세요, 디시 내에서도 관련 자료가 꽤 있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김유식은 2008년 6월 25일 친일파, 일제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친일파들의 행적, 재산, 상속 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해하지만,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 토지의 소유권 이전이나 범죄의 공소시효를 고려할 때,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친일 행위에 대한 처벌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당시 사람들이 보고 배운 것을 고려하면, 친일 행위를 감싸 안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김유식은 친일 청산 논리가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반대하며, 이는 좌익 세력이 보수층을 공격하고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해 온 낡은 논리라고 비판했다. 또한, 을사오적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다는 주장은 국력이 약했던 것에 대한 반성을 가리는 것이며, 친일 문제 확대를 통해 국가 자체를 부정하고 북한의 정통성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와 무주지 점유 취득 시효를 언급하며,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친일 행위를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친일파로 매도하고 처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내선일체를 교육받고 자란 사람들에게 친일 행위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며, 이미 대부분 사망한 사람들을 굳이 처벌하려는 것은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유식은 친일파 청산은 인명부 작성으로 충분하며, 과거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끄러운 역사는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국력이 약해 나라를 빼앗긴 것이며, 친일파가 아닌 우리 민족 전체의 힘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고,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2013년 8월, 국정원의 대선 개입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김유식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썼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였다. 그는 오늘의 유머 사이트 이용자의 20%가 투표권이 없는 젊은 층이며, 해당 사이트가 좌편향되어 있어 댓글 작업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국정원 요원이라면 오유 사이트에 (댓글 작업 등의 활동을) 안 했을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김유식은 2006년 10월 코스닥 등록회사인 (주)IC코퍼레이션을 320억원에 인수하여 디시인사이드의 우회상장을 시도했다. 그러나 (주)IC코퍼레이션의 각자대표인 김현진과 부사장인 스티브 석(상근)으로부터 사기를 당해 76억원에 대한 횡령혐의로 기소되었고, 2009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법정구속을 당하였다. 2010년 1월 28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출소하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득한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은 김현진과 석상근의 기망과 협박에 따라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그 범행 동기에 참작할 사정이 있고, 가담 정도도 김현진, 석상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경미한 점"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또한 "IC코퍼레이션의 피해금액 66억 7,000만 원 중 절반 이상이 IC코퍼레이션에 입금된 점, 피고인이 원심에서 피해변제를 위하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고제 주식 100만 주 중 30만 주를 IC코퍼레이션에 양도하고 IC코퍼레이션과 원만히 합의하였고, 특히 당심에서 디시인사이드와도 원만히 합의하여 이 사건 피해자들 모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이 사건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IC코퍼레이션의 소액주주들 중 일부가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동종 및 실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점들과 "기타 피고인의 연령, 성행, 가정환경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양형조건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되므로,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은 이유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3. 1. 횡령 혐의
김유식은 2006년 10월 코스닥 등록회사인 (주)IC코퍼레이션을 320억원에 인수하여 디시인사이드의 우회상장을 시도했다. 그러나 (주)IC코퍼레이션의 각자대표인 김현진과 부사장인 스티브 석(상근)으로부터 사기를 당해 76억원에 대한 횡령혐의로 기소되었고, 2009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법정구속을 당하였다. 2010년 1월 28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출소하였다.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하여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득한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은 김현진과 석상근의 기망과 협박에 따라 이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것으로 그 범행 동기에 참작할 사정이 있고, 가담 정도도 김현진, 석상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경미한 점"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또한 "IC코퍼레이션의 피해금액 66억 7,000만 원 중 절반 이상이 IC코퍼레이션에 입금된 점, 피고인이 원심에서 피해변제를 위하여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고제 주식 100만 주 중 30만 주를 IC코퍼레이션에 양도하고 IC코퍼레이션과 원만히 합의하였고, 특히 당심에서 디시인사이드와도 원만히 합의하여 이 사건 피해자들 모두가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이 사건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IC코퍼레이션의 소액주주들 중 일부가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동종 및 실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점들과 "기타 피고인의 연령, 성행, 가정환경 등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제반 양형조건을 종합하여 보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인정되므로, 피고인의 양형부당 주장은 이유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3. 2. 극우 발언 논란
김유식은 자신을 반북보수우익이라고 주장하였고,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난 노빠(노무현 빠돌이)가 아니며 극우에 가깝다"고 말했다.3. 3. 5.18 민주화운동 관련 발언 논란
김유식은 2011년 디시인사이드 정치사회 갤러리(정사갤)에서 한 이용자가 5.18에 대한 생각을 묻자 '5.18은 성역화되었고 나중에 역사가 재평가할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이용자가 5.18이 왜 폭동이냐는 게시글을 올리자, "책도 좀 읽어보시고 관련 자료도 찾아보세요, 디시 내에서도 관련 자료가 꽤 있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3. 4. 친일파, 일제 문제 관련 발언 논란
김유식은 2008년 6월 25일 친일파, 일제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친일파들의 행적, 재산, 상속 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해하지만,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 토지의 소유권 이전이나 범죄의 공소시효를 고려할 때,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친일 행위에 대한 처벌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3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당시 사람들이 보고 배운 것을 고려하면, 친일 행위를 감싸 안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김유식은 친일 청산 논리가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반대하며, 이는 좌익 세력이 보수층을 공격하고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해 온 낡은 논리라고 비판했다. 또한, 을사오적 때문에 나라를 빼앗겼다는 주장은 국력이 약했던 것에 대한 반성을 가리는 것이며, 친일 문제 확대를 통해 국가 자체를 부정하고 북한의 정통성을 옹호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살인에 대한 공소시효와 무주지 점유 취득 시효를 언급하며,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친일 행위를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친일파로 매도하고 처벌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내선일체를 교육받고 자란 사람들에게 친일 행위의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며, 이미 대부분 사망한 사람들을 굳이 처벌하려는 것은 국가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유식은 친일파 청산은 인명부 작성으로 충분하며, 과거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끄러운 역사는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국력이 약해 나라를 빼앗긴 것이며, 친일파가 아닌 우리 민족 전체의 힘이 없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고,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노력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3. 5. 청문회 발언 논란
2013년 8월, 국정원의 대선 개입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김유식은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국정원 직원'이 댓글을 썼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였다. 그는 오늘의 유머 사이트 이용자의 20%가 투표권이 없는 젊은 층이며, 해당 사이트가 좌편향되어 있어 댓글 작업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국정원 요원이라면 오유 사이트에 (댓글 작업 등의 활동을) 안 했을 것"이라고 발언하였다.4. 약력
4. 1. 경력
김유식은 1998년 6월부터 2000년 8월까지 폭스미디어 대표를 역임했다. 1999년 7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디시인사이드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2010년 1월부터 디시인사이드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다.2006년 12월부터 2008년 4월 4일까지 IC코퍼레이션 대표이사를 지냈다. 2007년 3월 전진코리아 공동대표를 맡았고, 같은 해 6월에는 선진평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009년 7월에는 국민대통합운동연합 선진의식개혁운동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4. 2. 학력
5. 저서
참조
[1]
웹사이트
[인물탐구]김유식 DC인사이드 대표 - 주간경향
http://newsmaker.kha[...]
2018-08-09
[2]
웹사이트
[아주 특별한 인터뷰]사업실패 쓴맛 본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 - 주간경향
http://newsmaker.kha[...]
2018-08-09
[3]
웹사이트
http://newsmaker.kha[...]
[4]
웹사이트
http://newsmaker.kha[...]
[5]
출처
2016-01-30
[6]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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