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김진세는 1942년 강원도 울진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제7회 사법시험에서 수석 합격했다. 검사로 임용되어 부산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등에서 근무했으며, 이한열 사망 사건 수사를 맡기도 했다. 검찰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했다. 퇴임 후에는 법무법인 율촌 대표 변호사,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한국사회 무엇이 문제인가》(1999), 《미완성의 토론》(2003) 등이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울진중학교 동문 - 박요한 (1994년)
박요한은 강릉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강원 FC 유스팀 우선 지명을 받은 후 단국대학교를 거쳐 강원 FC에 입단, 김해시청 임대 후 부천 FC 1995에서 데뷔골을 기록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 울진중학교 동문 - 주성영
주성영은 검사 출신 변호사로, 2004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18대 국회의원까지 지냈으나, 촛불 시위 관련 발언 등으로 논란을 겪었고 2020년과 2022년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으며, 검사 시절과 정치 활동 중 여러 사건에 연루되기도 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 울진군 출신 - 주호영
주호영은 대한민국의 6선 국회의원이자 제22대 국회 전반기 부의장으로, 판사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여야를 거치며 주요 당직을 수행했으나, 세금 탈루, 가족 편법 증여, 세월호 관련 발언 등 여러 논란이 있다. - 울진군 출신 - 안교덕
안교덕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 후 대령으로 예편, 윤필용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고, 기업인으로서 여러 공기업 사장을 거쳐 제11대 국회의원과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정치인, 기업인이다. - 춘천고등학교 동문 - 홍남기
홍남기는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출신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주도했고,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 춘천고등학교 동문 - 장승태
장승태는 일제강점기 강원도 영월군 출신의 정치인으로, 제7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4선 의원, 체신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9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김진세 - [인물]에 관한 문서 |
---|
2. 생애
김진세는 1942년 강원도 울진군에서 태어나 울진중학교와 춘천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제7회 사법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하였다.[1] 사법시험 합격자가 제6회에서 17명, 제8회에서 80명이었던 것과 달리 5명만 합격했던 제7회에서 원정일, 심재륜과 함께 검찰에 지원하여 부산지검과 서울지검을 거치며 1970년대 소매치기 전문검사로 이름을 알렸다.[1] 사법시험에서 수석 합격한 사람이 판사를 지원하던 관례를 깨고 처음으로 검사를 지원했다.[2] 7회 동기생 중에서 검사장 승진 때까지는 선두주자였으나 검찰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에서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내려갔으며 1997년 8월 인사에선 동기생 중에 유일하게 고등검찰청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3]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하던 1987년 7월 13일에 이한열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수사를 맡았다.[11] 1970년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할 때 검거한 소매치기인 김성준 (권투 선수)을 선도해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9]
김진세는 2003년 1월 '사법연수원'에 기고한 ‘검찰 개혁’논문에서 "프랑스 등 서구 국가와 일본의 경우 고검장에게 관내 검사의 보직권 등 일정 범위의 인사권을 주고 있다"며 "중앙집권식 인사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하면서 "검찰인사권을 고검장과 검사장 등 하부로 위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
1999년에 법무법인 율촌 대표 변호사를 맡다가 2005년 3월 1일에 서울시 종로구 내수동 용비어천가 오피스텔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활동하면서[6]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사소송법 초빙교수로 재임하던 2005년 3월에 김진세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보람을 느끼고, 춘천고 동문 등 지인들을 만나 옛 얘기를 하는 재미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7]
재경춘천고동창회(회장 손선규ㆍ한국부동산연구원장)로부터 2007년 12월 7일에 '재경 춘천고 송년의 밤' 행사에서 모교를 빛낸 자랑스런 동문에게 수여하는 ‘2007년도 상록대상’ 특별공로부문상을 받았다.[5]
여성 월간지 레이디 경향에서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을 연재했다.[8]
2. 1. 검사 시절
김진세는 1942년 강원도 울진군에서 태어나 울진중학교와 춘천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제7회 사법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하였다.[1] 당시 사법시험 합격자는 제6회에서 17명, 제8회에서 80명이었지만, 제7회에서는 5명만이 합격하였다. 김진세는 원정일, 심재륜과 함께 검찰에 지원하여 부산지검과 서울지검을 거치며 1970년대 소매치기 전문검사로 이름을 알렸다.[1] 사법시험에서 수석 합격한 사람이 판사를 지원하던 관례를 깨고 처음으로 검사를 지원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2]7회 동기생 중에서 검사장 승진 때까지는 선두주자였으나, 검찰 요직인 법무부 검찰국장에서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내려갔다. 1997년 8월 인사에서는 동기생 중 유일하게 고등검찰청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3]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하던 1987년 7월 13일에는 이한열 사망 사건 수사를 맡았다.[11] 1970년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할 당시에는 검거한 소매치기인 김성준 (권투 선수)을 선도하여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9]
2. 2. 퇴임 이후
김진세는 1999년 법무법인 율촌 대표 변호사를 맡다가 2005년 3월 1일에 서울시 종로구 내수동 용비어천가 오피스텔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활동하였다.[6]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사소송법 초빙교수로 재임하던 2005년 3월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보람을 느끼고, 춘천고 동문 등 지인들을 만나 옛 얘기를 하는 재미로 지내고 있다"고 했다.[7]2003년 1월 '사법연수원'에 기고한 ‘검찰 개혁’논문에서 "프랑스 등 서구 국가와 일본의 경우 고검장에게 관내 검사의 보직권 등 일정 범위의 인사권을 주고 있다"며 "중앙집권식 인사는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하면서 "검찰인사권을 고검장과 검사장 등 하부로 위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
재경춘천고동창회로부터 2007년 12월 7일에 '재경 춘천고 송년의 밤' 행사에서 모교를 빛낸 자랑스런 동문에게 수여하는 ‘2007년도 상록대상’ 특별공로부문상을 받았다.[5] 여성 월간지 레이디 경향에서 김진세의 인터뷰_긍정의 힘을 연재했다.[8]
1970년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할 때 검거한 소매치기인 김성준 (권투 선수)을 선도해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으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9]
3. 경력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법무부 법무과장을 역임했다. 서울지방검찰청 형사2부 부장검사, 부산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 및 울산지청 지청장을 지냈다. 1993년 9월 21일부터 1994년 9월 15일까지 제37대 춘천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했다. 대검찰청 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 국장을 거쳐 1997년 1월 23일부터 1998년 3월 22일까지 제39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을, 1998년 3월 19일부터 1999년 6월 3일까지 제7대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법무법인 율촌 대표 변호사,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초빙 교수, 법무법인 송백 변호사를 역임하였다.
4. 저서
- 1999년 《한국사회 무엇이 문제인가》를 출간하였다.
- 2003년 《미완성의 토론》을 출간하였다.
참조
[1]
뉴스
경향신문
1995-09-18
[2]
웹사이트
https://www.lawtimes[...]
[3]
뉴스
경향신문
1998-03-17
[4]
웹사이트
https://news.naver.c[...]
[5]
웹사이트
https://news.naver.c[...]
[6]
웹사이트
https://news.naver.c[...]
[7]
웹사이트
https://news.naver.c[...]
[8]
웹사이트
http://lady.khan.co.[...]
[9]
뉴스
한겨레
1998-03-17
[10]
뉴스
경향신문
1998-03-17
[11]
뉴스
경향신문
1987-07-14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