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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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난한은 후연의 장군으로, 모용수가 거병할 때부터 활약하여 양성왕과 돈구왕에 봉해졌다. 398년, 반란을 틈타 모용보를 살해하고 창려왕을 자칭하며 후연의 정권을 장악했다. 그는 모용씨 일족을 살려두는 관대한 모습을 보였으나, 모용성과의 갈등으로 인해 아들 난목이 살해당하고 자신 또한 모용성에게 살해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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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한 | |
---|---|
인물 정보 | |
이름 | 난한 |
한자 표기 | 蘭汗 |
가문 | 난씨 |
즉위 및 퇴위 | |
즉위 | 398년 5월 27일 |
퇴위 | 398년 8월 15일 |
재위 기간 | 398년 5월 27일 - 398년 8월 15일 |
계승자 | 모용성 |
생몰 | |
사망일 | 398년 8월 15일 |
가족 관계 | |
성씨 | 난(蘭) |
후연 황제 (찬탈) | |
연호 | 청룡(青龍) |
연호 기간 | 398년 5월 27일 - 398년 8월 19일 |
이전 | 모용보 |
이후 | 모용성 |
2. 생애
384년 모용수가 거병할 때부터 후연의 장군으로 활약한 난한은 양성왕(陽城王), 돈구왕(頓丘王)에 책봉되었다.
398년 2월, 후연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난한은 은밀하게 반란군에 동조하여 모용보가 축출되도록 방관하였으며, 모용농이 배신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반란군이 모용보를 축출하고 용성(지금의 랴오닝성 차오양시)을 점령한 뒤 내분을 일으키자, 난한은 이를 기회로 반란군을 일소하고 태자 모용책을 받들었다.
난한은 모용보에게 사신을 보내 돌아올 것을 청하였으나 모용보는 의심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난한은 용성에서 모용책을 모시고 종묘에 제사를 올리는 등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4월 경에 다시 돌아온 모용보는 이러한 난한의 모습을 보고 의심을 거두었다. 모용보가 용성으로 입성하자 난한은 모용보를 살해하고 스스로 창려왕(昌黎王)을 자칭하면서 후연의 정권을 잡았다.
난한은 대부분의 모용씨 일족을 살려두었으며, 모용보와 함께 떠돌면서 자신을 항상 의심하였던 모용성도 부인과 딸의 부탁을 받고 죽이지 않았다. 형인 난제(蘭堤)·난가난(蘭加難) 등이 모용성을 죽일 것을 계속 청하였으나 난한은 이를 거부하였으며, 오히려 모용성을 시중(侍中)에 임명하여 가까이 두었다.
이에 모용성은 난제와 난가난을 참소하여 난한과 사이가 벌어지도록 만들었다. 6월 경에 모용성은 모용기(慕容奇)를 사주하여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였고, 난한은 난제 등에게 토벌을 명하였다. 그러나 모용성이 다시 참소하여 난한은 사령관을 교체하였는데, 이로 인해 난제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난한은 아들 난목(蘭穆)을 파견하여 이들을 진압하게 하였다. 반란을 진압하고 귀환한 난목은 모용성에게 암살당했고, 난한도 모용성을 따르는 군대에 의해 살해되었다.
2. 1. 초기 생애와 후연에서의 활약
384년 모용수가 거병할 때부터 후연의 장군으로 각지에서 활약하였고, 양성왕(陽城王), 돈구왕(頓丘王)에 책봉되었다.[5] 387년 동진의 공격에 참여했고,[6] 391년 선비 하란부의 하염간을 우천에서 격파했다.[6] 모용수 시기, 모용성의 딸과 결혼했다. 395년 태자 모용보의 참합비 대패 이후, 반격 임명을 할 때 양성왕이 되었고 북중랑장이 되었다.[7]398년 봄, 부장 단속골이 후연에 반란을 일으켜 황제 모용보를 용성에서 포위하자, 상서·돈구왕이 된 난한은 단속골과 통모했다.[8] 이 틈을 타 모용농은 단속골에게 항복했고, 성 안의 사기가 떨어져 용성은 함락되었다. 모용보는 도망갔다.[8]
2. 2. 모용보 살해와 왕위 찬탈
398년 2월, 후연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난한은 은밀하게 반란군에 동조하여 모용보가 축출되도록 방관하였으며, 모용농이 배신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반란군이 모용보를 축출하고 용성(지금의 요녕성 조양시)을 점령한 뒤에 내분을 일으키자 이를 기회로 반란군을 일소하고 태자 모용책을 받들었다.[4]난한은 모용보에게 사신을 보내 돌아올 것을 청하였으나 모용보가 의심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난한은 용성에서 모용책을 모시고 종묘에 제사를 올리는 등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4월 경에 다시 돌아온 모용보는 이러한 난한의 모습을 보고 의심을 거두었다. 모용보가 용성으로 입성하자 난한은 모용보를 살해하고 스스로 창려왕을 자칭하면서 후연의 정권을 잡았다.[4]
난한은 모용책과 모용씨 황족을 많이 살해하고, 대선우와 '''창려왕'''을 자칭하며 즉위했다.[4] 또한, 연호를 청룡으로 고쳤다.
2. 3. 모용성과의 갈등과 최후
398년 2월, 후연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난한은 은밀하게 반란군에 동조하여 모용보가 축출되도록 방관하였으며, 모용농이 배신하도록 종용하기도 했다. 반란군이 모용보를 축출하고 용성(龍城, 지금의 랴오닝성 차오양시)을 점령한 뒤 내분을 일으키자, 이를 기회로 반란군을 일소하고 태자 모용책을 받들었다.[4]모용보에게 사신을 보내 돌아올 것을 청하였으나 모용보는 의심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난한은 용성에서 모용책을 모시고 종묘에 제사를 올리는 등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4월 경에 다시 돌아온 모용보는 이러한 난한의 모습을 보고 의심을 거두었다. 모용보가 용성에 입성하자 난한은 모용보를 살해하고 스스로 창려왕(昌黎王)을 자칭하면서 후연의 정권을 잡았다.[4]
난한은 대부분의 모용씨 일족을 살려두었으며, 모용보와 함께 떠돌면서 자신을 항상 의심하였던 모용성도 부인과 딸의 부탁을 받고 죽이지 않았다. 형인 난제(蘭堤)·난가난(蘭加難) 등이 모용성을 죽일 것을 계속 청하였으나 난한은 이를 거부하였으며, 오히려 모용성을 시중(侍中)에 임명하여 가까이 두었다.[8][10]
이에 모용성은 난제와 난가난을 참소하여 난한과 사이가 벌어지도록 만들었다. 6월 경에 모용성은 모용기(慕容奇)를 사주하여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키도록 하였고, 난한은 난제 등에게 토벌을 명하였다. 그러나 모용성이 다시 참소하여 난한은 사령관을 교체하였는데, 이로 인해 난제 등이 반란을 일으켰다.
난한은 아들 난목(蘭穆)을 파견하여 이들을 진압하게 하였다. 반란을 진압하고 귀환한 난목은 모용성에게 암살당했고, 난한도 모용성을 따르는 군대에 의해 살해되었다.[8]
3. 가계
항목 | 내용 |
---|---|
아버지 | 불명 |
형 | 난제 (? ~ 398년) |
형 | 난가난 (? ~ 398년) |
본인 | 창려왕 난한 |
배우자 | 을(乙)씨 (생몰년 미상) - 본처 |
아들 | 태자 난목(蘭穆, ? ~ 398년) |
아들 | 노공 난화(蘭和, ? ~ 398년) |
아들 | 진공 난양(蘭揚, ? ~ 398년) |
딸 | 난씨 (생몰년 미상) - 제4대 황제 모용성의 처 |
누이 | 난(蘭)숙의 - 초대 황제 모용수의 어머니 |
참조
[1]
웹사이트
Chinese-Western Calendar Converter
http://sinocal.sinic[...]
[2]
서적
Zizhi Tongjian vol. 110
[3]
서적
資治通鑑
[4]
서적
五胡十六国 中国史上の民族大移動
[5]
서적
資治通鑑
[6]
서적
資治通鑑
[7]
서적
資治通鑑
[8]
서적
資治通鑑
[9]
서적
晋書 巻124「慕容宝載記」
[10]
서적
晋書 巻124「慕容盛載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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