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트 사모일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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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비트 사모일로프는 1920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990년 사망한 러시아의 시인이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붉은 별 훈장을 받았으며, 전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사모일로프는 전쟁의 비극을 묘사하는 동시에 인간의 강인함과 생명력을 노래했으며,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도 개인의 정체성과 자유를 옹호하는 시를 썼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두 번째 출생》, 《거리》, 《시와 번역》 등이 있으며, 1980년 에스토니아의 페르누로 이주하여 말년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러시아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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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트 사모일로프 | |
---|---|
기본 정보 | |
원어 이름 | Давид Самуилович Самойлов (러시아어) Кауфман (본명) |
출생 | 1920년 6월 1일, 모스크바 |
사망 | 1990년 2월 23일 (향년 69세), 탈린 |
국적 | 소비에트 연방 |
직업 | 시인, 번역가 |
장르 | 서정시 |
경력 | |
종군 |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
소속 | 소련 작가 동맹 |
수상 | |
수상 내역 | 소비에트 연방 국가상 (1975년) 노동 적기 훈장 인민 우정 훈장 |
기타 | |
서명 | 파일:DSamojlov Signature.svg |
2. 생애
다비트 사모일로프는 1920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전후에는 창작 활동을 하였으며, 말년에는 페르누로 이주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의 생애는 초기, 전쟁, 전후, 그리고 말년으로 나눌 수 있다. 1939년에 쓴 시 <매머드 사냥>이 '다비트 카우프만'이라는 본명으로 ≪시월≫지(1941, No. 3)에 실리면서 첫 시 발표를 했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20년 6월 1일 모스크바의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저명한 의사였고, 어머니는 은행에서 근무하는 통·번역가였다.[1] 일곱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열네 살 때에는 “시는 나를 위로해 준다. 내가 시를 쓸 때는 모든 나쁜 일들이 떠나가고 편안하고 좋은 것만 남는다고 느낀다”고 말할 정도로 시에 매료되었다.1938년, 블라고이, 구지, 우샤코프 등 유명한 인문학자들이 강의를 하고 있었던 모스크바 철학, 문학 및 역사 연구소Московский институт философии, литературы и историиru에 입학해 불문학 전공자가 되려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 코간을 따라 문학연구소로 학교를 옮겼다. 그즈음 국영 예술문학출판사에서 주관하던 일리야 셀빈스키의 시 세미나에 참석했으며, 훗날 소위 ‘전쟁 세대’ 혹은 ‘40년 세대’의 대표자들로 불리게 된 나롭차토프, 슬루츠키 등과 함께 습작 시절을 보냈다.
2. 2. 제2차 세계대전 참전
Московский институт философии, литературы и истории|ko|모스크바 철학, 문학 및 역사 연구소ru에 재학했던 사모일로프는 핀란드와의 전쟁이 발발하자 자원 입대를 시도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거절당했다.[2][3][4][5] 바르바로사 작전이 발발했을 때에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다시 거절당했다.[2][3][4][5] 대신 그는 참호 굴착 여단에서 복무했다.[2][3][4][5] 그곳에서 장티푸스에 걸려 사마르칸트로 대피했고, 회복 후 교육 대학에서 공부했다.[2][3][4][5] 그 후 보병 장교 학교에 입학하여 1942년에 졸업하고 볼호프 전선으로 파견되었다.[2][3][4][5]제2차 세계 대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큰 사건이자 창작 전체의 주요 테마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로 인해 사모일로프의 청춘은 전쟁터에서 흘러갔다. 1943년 3월 전투에서 팔에 중상을 입었지만, 회복 후 전선으로 돌아가 정찰병으로 복무했다.[2][3][4][5]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현역으로 복무했으며 여러 번 부상을 입었다.[2][3][4][5] 베를린에서 종전을 맞이했고, 붉은 별 훈장과 메달들을 수여받았다.
2. 3. 전후 창작 활동
1958년, 전쟁 시절과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 등에 관한 시들로 엮인 첫 번째 시집 ≪이웃 나라들≫을 펴냈지만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후 시집 ≪두 번째 고개≫(1963), ≪나날들≫(1970)을 출간했고, 이 시집들에 담긴 대조국 전쟁에 관한 훌륭한 시들로 인해 독자들에게 ‘참전 시인’, ‘전쟁 세대의 대표 시인’으로 각인되었다. 시인은 평생 이 타이틀을 지니게 되었다. 1972년에는 이전에 출판된 시집들에 실린 시들 중에서 선별한 시들로 선집 ≪분점≫을 구성해 펴냈고, 1974년에는 비평가들로부터 가장 ‘푸시킨적인’ 시집이라고 평가받게 된 ≪파도와 바위≫를 출간했다. 이후 ≪소식≫(1978), ≪만≫(1981), ≪언덕 너머 목소리≫(1985), ≪한 줌≫(1989) 등의 시집을 출간했다.이 밖에도 ≪신호등≫(1962), ≪아기 코끼리가 공부하러 갔어요≫(1982) 같은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들을 발표하기도 했고, 전문적인 시 이론서인 ≪러시아 압운≫(1973)을 펴내기도 했다. 그의 사후에는 1962년부터 시인이 써 온 일기를 바탕으로 한 ≪기억할 만한 메모들≫(1995)이 출판되었고, 시인의 유머 감각이 그대로 배어 있는 패러디, 경구, 서간체 소설들을 담은 ≪제 범위 안에서≫(2001)가 출판되었다.
2. 4. 페르누 이주 및 말년
그는 생애 후반에 휴양 도시로 알려진 페르누로 이주했다. 그는 페르누에서 계속 글을 썼고, 페르누에 헌정된 시를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투민가 거리에서 살았다.[1]그는 리디아 코이둘라, 얀 크로스, 엘렌 니이트, 폴-에에릭 룸모 등 에스토니아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폴란드어, 체코어, 헝가리어 등 다른 언어들의 작품도 번역했으며, 젊은 작가들을 위한 워크숍을 운영했다.[1]
3. 작품 세계
사모일로프는 제2차 세계 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를 썼다. 초기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후 전쟁의 참상과 그 속에서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내며 '참전 시인', '전쟁 세대의 대표 시인'으로 불렸다.[6] 푸시킨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며,[6] 시 이론과 유머 감각 또한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부분이다.[6]
- 경기병의 노래[6]
- 우리가 전쟁에 있었을 때[6]
- Стихи, терпите боль|시여 고통을 감내하라ru[6]
- Волна и камень|파도와 돌ru[6]
- Голоса за холмами|언덕 너머의 목소리ru[6]
- Поедем в город|도시로 가자ru[6]
3. 1. 주요 작품
3. 2. 문학적 특징 및 평가
사모일로프의 시 세계는 제2차 세계 대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1943년 전투에서 팔에 중상을 입고 회복 후 정찰병으로 복무하며 베를린에서 종전을 맞이한 그의 경험은 시의 주요 테마가 되었다. 초기 시집 ≪이웃 나라들≫(1958)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후 ≪두 번째 고개≫(1963), ≪나날들≫(1970) 등을 통해 '참전 시인', '전쟁 세대의 대표 시인'으로 불리게 되었다.비평가들은 그의 시집 ≪파도와 바위≫(1974)를 가장 '푸시킨적인' 시집으로 평가했다. 사모일로프는 시 이론에도 관심을 가져 ≪러시아 압운≫(1973)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유머 감각 또한 드러나는데, 사후 출판된 ≪제 범위 안에서≫(2001)에는 패러디, 경구, 서간체 소설 등이 담겨 있다.
4. 죽음과 유산
다비트 사모일로프는 '전쟁 세대' 혹은 '40년 세대'를 대표하는 러시아 시인으로, 그의 작품은 전쟁의 경험과 그로 인한 상처, 삶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어 문학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4. 1. 사망
1990년 2월 23일 탈린에서 사망했다. 페르누(에스토니아)의 숲 묘지에 안장되었다.4. 2. 유산
다비트 사모일로프는 여러 시집과 작품을 통해 러시아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전쟁 세대' 혹은 '40년 세대'의 대표 시인으로 불리며, 전쟁의 경험과 그로 인한 상처, 삶에 대한 성찰을 시에 담아냈다. 1958년 첫 시집 <<이웃 나라들>>을 시작으로, <<두 번째 고개>>(1963), <<나날들>>(1970) 등을 통해 '참전 시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1974년 출간된 <<파도와 바위>>는 비평가들로부터 '푸시킨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그는 시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과 시 이론서도 남겼다. <<신호등>>(1962), <<아기 코끼리가 공부하러 갔어요>>(1982)와 같은 동시집을 발표했고, 전문적인 시 이론서 <<러시아 압운>>(1973)을 펴내기도 했다. 사후에는 그의 일기를 바탕으로 한 <<기억할 만한 메모들>>(1995)과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패러디, 경구 등을 담은 <<제 범위 안에서>>(2001)가 출판되었다.
참조
[1]
서적
David Samoylov. Memorial Notes
[2]
웹사이트
Еврейская энциклопедия
null
2010-01-20
[3]
서적
Александр Давыдов. Два моих деда.
[4]
서적
Лексикон рус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XX века = Lexikon der russischen Literatur ab 1917
РИК «Культура»
1996
[5]
서적
Переписка: 1971-1990
Новое литературное обозрение
2004
[6]
Youtube
Зиновий Гердт читает стихотворение Давида Самойлова «Давай поедем в город…»
https://www.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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