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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쓰카사 쓰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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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카쓰카사 쓰나코는 1813년 16세의 나이로 2살 연하의 황태자 닌코 천황에게 입내하였으며, 닌코 천황 즉위 후 뇨고 선하를 받았다. 1820년 첫 아들 야스히토 친왕을 낳았으나 이듬해 요절하였고, 1823년 둘째 아이를 낳다 난산으로 사망했다. 사후 신코카코몬인이라는 여원호를 받았고 황후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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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쓰카사 쓰나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타카츠카사 츠나코
원어 이름鷹司 繋子
츠나코 (繋子)
씨족타카츠카사가
생애
출생일간세이 10년 2월 1일 (1798년 3월 17일)
사망일분세이 6년 4월 4일 (1823년 5월 14일)
능묘교토부 키이군 후시미쵸 (현 교토부 교토시 후시미구) 후시미노모모야마릉, 1914년 (다이쇼 3년) 이장
가족 관계
아버지타카츠카사 마사히로
어머니토요오카 히코
배우자닌코 천황
자녀야스히토 친왕, 황녀
작위 및 지위 (추증)
여원호신코카몬인
여원 추증 시기분세이 6년 4월 6일 (1823년 5월 16일)
황후 추증 시기분세이 7년 7월 10일 (1824년 8월 4일)
경력
신위뇨고
준후분세이 3년 12월 26일 (1821년 1월 29일)

2. 생애

분카 10년(1813년), 16세 때 2살 아래인 황태자 에닌 친왕(후의 닌코 천황)에게 입내했다. 분카 14년(1817년), 에닌 친왕이 즉위하면서 쓰나코는 뇨고 선하를 받았다.

분세이 3년(1820년) 5월 16일, 제1황자 야스히토 친왕을 출산했고, 같은 해 12월 26일, 준삼후가 되었다. 그러나 야스히토 친왕은 이듬해 요절했다.

분세이 6년 4월 2일(1823년 5월 12일)에 제1황녀를 출산했지만, 난산으로 황녀는 당일 사망, 쓰나코는 이틀 뒤인 4월 4일에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게츠린릉에 매장되었다.

사망 이틀 후인 4월 6일, 여원호를 받아 신코가몬인으로 불렸고, 이듬해 분세이 7년(1824년)에는 황후로 추증되었다.

분세이 8년(1825년)에는 쓰나코의 동복 여동생인 기시가 후처로서 닌코 천황에게 입내하여 뇨고 선하를 받았다.

2. 1. 가계

관백 다카쓰카사 마사히로의 딸이다. 생모는 아버지의 측실인 곤츄나곤 도요오카 나오스카의 딸 도요오카 히코이다. 이복형제로는 관백 다카쓰카사 마사미치가 있고, 동복자매로는 닌코 천황의 뇨고 다카쓰카사 야스코 등 형제자매가 다수 있다.

2. 2. 닌코 천황과의 만남과 뇨고 시절

분카 10년 (1813년), 16세의 다카쓰카사 쓰나코는 2살 연하의 황태자 아야히토 친왕에게 입내하였다. 분카 14년 (1817년), 아야히토 친왕이 닌코 천황으로 즉위하자, 쓰나코는 뇨고(女御) 선하를 받았다.

분세이 3년 (1820년) 5월 16일, 쓰나코는 첫 황자인 야스히토 친왕을 출산하였다. 같은 해 12월 26일, 준삼후가 되었다. 그러나 야스히토 친왕은 이듬해 요절하였다.

분세이 6년 4월 2일 (1823년 5월 12일), 쓰나코는 다시 아이를 가졌으나, 난산으로 인해 황녀와 쓰나코 모두 사망하였다. 쓰나코의 향년은 26세였다.

쓰나코가 죽은 지 이틀 만인 4월 6일, 조정에서는 쓰나코에게 신코카코몬인(新皇嘉門院)이라는 여원호를 추증했고, 이듬해인 분세이 7년 (1824년)에는 황후로 추증하였다.

분세이 8년 (1825년)에는 쓰나코의 동복 여동생 야스코닌코 천황의 후궁으로 들어가 뇨고(女御) 선하를 받았다.

2. 3. 황자녀 출산과 이른 죽음

분세이 3년 (1820년) 5월 16일, 쓰나코는 첫째 황자인 야스히토 친왕을 출산하였다. 같은 해 12월 26일, 준삼후가 되었다. 야스히토 친왕은 적처에게서 나온 첫째 황자였으나, 이듬해에 요절하였다.

분세이 6년 4월 2일 (1823년 5월 12일)에 쓰나코는 다시 출산하였다. 첫째 황녀가 태어났지만, 난산이었기 때문에 황녀는 태어난 날에, 쓰나코도 다다음 날인 4월 4일에 숨을 거뒀다. 향년 26세였다.

죽은 지 이틀 만인 4월 6일, 쓰나코는 여원호를 받아 신코카코몬인이라 칭했고, 이듬해인 분세이 7년 (1824년)에는 황후로 추증되었다.

2. 4. 사후

분세이 6년 4월 2일(1823년 5월 12일) 쓰나코는 첫째 황녀를 출산하였으나, 난산으로 인해 황녀와 쓰나코 모두 사망하였다. 황녀는 태어난 당일에, 쓰나코는 그 다음 날인 4월 4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26세였다. 쓰나코는 닌코 천황의 무덤인 고게츠린릉에 묻혔다.

쓰나코가 죽은 지 이틀 만인 4월 6일, 여원호를 받아 신코가몬인(新皇嘉門院)으로 불렸고, 이듬해 분세이 7년(1824년)에는 황후로 추증되었다.

분세이 8년(1825년)에는 쓰나코의 동복 여동생 다카쓰카사 야스코가 뒤를 이어 닌코 천황에게 입내해, 뇨고 선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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