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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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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지 예술은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된 미술의 한 형태로, 미술관과 같은 전시 공간에 대한 반발과 모더니즘에 대한 환멸을 배경으로 자연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다. 초기에는 마이클 하이저, 월터 드 마리아, 로버트 스미스슨 등이 대표적이며, 1968년 드웬 화랑의 '어스워크' 전시는 대지 예술의 등장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대지 예술은 미니멀리즘, 개념 미술 등과 관련 있으며, 자연을 훼손한다는 비판과 함께 환경 윤리 문제, 공공성과 접근성, 상업화 및 제도화에 대한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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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예술

2. 역사

1960년대 중반, 미국의 일부 작가들은 모더니즘 예술에 회의를 느끼고,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제도적인 전시 공간(화이트 큐브 White Cube영어)을 벗어나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26]. 이들은 기존의 상업적인 틀과 갤러리 공간에 갇혀 있던 예술을 광활한 자연 속으로 이끌어냈으며, 단순히 자연 경관을 그리는 것을 넘어 자연 그 자체를 예술 작품의 재료이자 무대로 삼았다[27]. 이러한 흐름은 '대지 예술' 또는 '랜드 아트'로 불리게 되었다. 초기 대지 예술을 이끈 대표적인 작가로는 마이클 하이저, 월터 드 마리아, 로버트 스미스슨, 로버트 모리스 등이 있다. 이사무 노구치는 이미 1933년고분이나 일본 정원 등에서 영감을 받아 흙을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는 구상을 했으며[19], 1941년 뉴욕에 설계한 ''윤곽 놀이터''는 중요한 초기 대지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기도 한다[10]. 헤르베르트 바이어 역시 1955년 콜로라도주 아스펜에 잔디 언덕을 만든 바 있다[9][2].

대지 예술 운동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1968년 10월, 로버트 스미스슨이 뉴욕 드웬 화랑에서 기획한 '어스워크'(''Earthworks'') 전시였다. 이 전시에는 스미스슨을 비롯해 로버트 모리스, 마이클 하이저, 데니스 오펜하임, 월터 드 마리아, 클래스 올덴버그 등 14명의 작가가 참여했다[28][13].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거대한 규모 때문에 직접 옮겨오지 못하고 사진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기존의 전시 방식과 작품 소유 개념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다[29]. 예를 들어 스미스슨의 《넌-사이트》(''Non-site'')는 알루미늄 상자 안에 돌덩어리를 채운 작품이었고, 모리스의 《어스워크》는 흙, 기름, 토탄, 펠트 등을 쌓아 올린 형태였다[28]. 일부 미술사에서는 이 전시를 미니멀리즘의 연장선으로 보기도 하지만, 공간에 대한 탐구를 확장한 독자적인 시도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30]. 앨런 선피스트는 뉴욕 도심에 토종 숲을 조성한 ''타임 랜드스케이프''와 같은 작업을 통해 생태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다[10][11].

1969년 2월에는 코넬 대학교의 허버트 F. 존슨 미술관에서 《어스 아트》(''Earth Art'') 전시가 열렸다. 윌러비 샤프가 기획한 이 전시는 미국 미술관 최초의 대지 예술 전시로, 작품들이 미술관 내부뿐 아니라 코넬 대학교 캠퍼스 곳곳에 설치되었다[31][13]. 참여 작가로는 월터 드 마리아, 얀 디베츠, 한스 하케, 마이클 하이저, 닐 제니, 리처드 롱, 데이비드 메달라, 로버트 모리스, 데니스 오펜하임, 로버트 스미스슨, 군터 위커 등이 있었다. 이 전시는 예술의 상품화에 의문을 제기하며 대지 예술을 제도적으로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32].

대지 예술은 미니멀 아트와 개념 미술뿐만 아니라 데 스틸, 입체주의, 콘스탄틴 브랑쿠시, 요제프 보이스 등 다양한 현대 미술 운동에서 영향을 받았다[10]. 특히 로버트 스미스슨은 1968년 발표한 에세이 "마음의 퇴적: 지구 프로젝트"를 통해 모더니즘이 사회 문제와 단절되었다고 비판하며 대지 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14]. 그의 대표작이자 가장 유명한 대지 예술 작품 중 하나는 ''나선형 방파제''(1970)이다. 미국 유타주 그레이트 솔트 호에 바위, 흙, 조류 등을 이용해 약 457.20m 길이의 나선형 방파제를 만든 이 작품은 호수의 수위에 따라 모습이 변하며, 현재 디아 재단과 유타 미술관이 관리하고 있다[15][16]. 스미스슨의 또 다른 작품 ''균열과 먼지가 있는 자갈 거울''(1968)은 미술관 내부에 자갈 더미와 거울을 설치한 것으로, 단순한 형태와 재료 자체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과 유사성을 보이며, 일상적이거나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아르테 포베라와도 연결된다[17].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 불황으로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후원이 급감했고, 1973년 로버트 스미스슨이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대지 예술은 큰 전환점을 맞았다[33][17]. 후원 확보가 어려워지자 작가들은 다시 미술관이나 갤러리 공간에 맞는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월터 드 마리아는 1977년 《뉴욕 어스 룸》(''The New York Earth Room'')을 전시했고, 마이클 하이저 역시 갤러리 전시용 작품을 선보였다[33].

침체기 이후 대지 예술은 초기처럼 외딴 장소를 고집하기보다는 특정 장소의 맥락과 환경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34]. 점차 공공장소나 도시 공간에서도 대지 예술 프로젝트가 시도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예술가의 미적 목표와 공공의 실용적 목적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공공 미술로 발전하고 있다. 일부 작가들은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환경 프로젝트 성격의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낸시 홀트의 《다크 스타 파크》(''Dark Star Park'')나 이사무 노구치의 《필립 A. 하트 플라자》(''Philip A. Hart Plaza'')가 대표적인 예이다[35]. 이사무 노구치삿포로시의 모에레누마 공원에 구현한 "플레이 마운틴" 역시 이러한 공공적 성격을 보여준다[19].

제임스 터렐은 1972년부터 애리조나의 사화산 분화구인 로든 크레이터를 변형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마이클 하이저는 2022년 ''City''를 완성했다. 찰스 로스는 1971년부터 ''스타 액시스''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20][21]. 앤드류 로저스의 "생명의 리듬" 프로젝트는 전 세계 12곳에 거대한 지형 조형물을 설치하는 대규모 작업이다.

대지 예술은 그 특성상 설치 장소에 고유한(사이트 스페시픽 아트) 성격을 지니며, 때로는 환경 미술과 유사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처럼 자신의 작업을 대지 예술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작가들도 있다[19]. 작품의 영구성 역시 작가의 의도나 재료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며, 월터 드 마리아의 《마일 롱 드로잉》처럼 기록으로만 남은 작품도 있고, 《번개의 평원》처럼 영구 보존을 전제로 만들어진 작품도 있다.

강가에 4일 동안 놓아둔 박물관 종이 보드. Jacek Tylicki의 작품, 스웨덴 룬드 남서부, 473 x 354 mm, 1981


앤드류 로저스의 작품, You Yangs, 호주 라라에 있는 지형 조형물인 ''번질''. 생물체의 날개 길이는 이고, 1,500톤의 암석이 이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 외곽에 있는 제임스 터렐의 진행 중인 대지 미술 작품인 로든 크레이터의 위성 사진


밀턴 베세라의 작품인 ''유성'', 브라질 상파울루 제18회 비엔날레, 이비라푸에라 공원 (1985)


에버하르트 보슬렛의 작품인 ''부작용 XI'', 라스팔마스, 티아스, (2008)


알베르토 부리의 작품인 ''거대한 크레토'', 지벨리나, (1984–1989)


뉴멕시코 찰스 로스의 작품인 ''스타 액시스'', 스타 터널 입구 북쪽 방향: (1971년–진행 중)


로버트 스미슨 작 "스파이럴 제티"

3. 유형

대지 예술 작품들은 위치, 규모, 형태, 재료, 작가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경관과 작품이 하나의 통합된 예술 작품으로 이루어진 유형이다.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장 클로드의 Running Fence영어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작품은 캘리포니아의 아름다운 경치 속에 총 약 39.43km (약 39.4km) 길이의 인공적인 울타리를 설치한 것으로, 인공적인 구조물과 주변 경관이 하나로 어우러져 새롭고 극적인 경관을 만들어낸다.[36]

둘째는 자연 재료를 이용하여 작품을 구성하는 유형이다. 마이클 하이저의 Double Negative영어는 미국 네바다 주의 암층 대지를 인공적으로 깎아 만든 작품으로, 푹 파인 빈 공간 자체가 작품이 된다. 로버트 스미스슨의 Amarillo Lamp영어 역시 이 유형에 속하는데, 흙, 물, 돌을 이용하여 약 45.72m (약 45.72m) 직경의 불완전한 원형 램프 형태로 만들어졌다.[37]

셋째는 일시적인 자연 현상과 상호작용하여 작품이 완성되는 유형이다. 월터 드 마리아의 ''라이트닝 필드''(The Lightening Field영어)는 400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기둥을 멕시코 사막의 평탄한 지역에 격자 형식으로 배치하여, 번개가 칠 때마다 기둥과 번개가 어우러져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도록 의도된 작품이다.[38]

4. 관련 사조

대지 예술은 미국아방가르드(전위 예술) 운동이 활발했던 1960년대에 함께 등장했다.[39] 이는 모더니즘 예술에 대한 환멸과 당시 미술계를 지배하던 상업주의, 그리고 미술관이나 화랑이라는 제도적 공간(화이트 큐브)을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시작되었다.[26][27][11][12]

대지 예술은 동시대의 여러 미술 사조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특히 미니멀 아트의 형식적 단순성과 공간에 대한 관심, 개념 미술처럼 아이디어나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42], 그리고 작품이 설치된 특정 장소와 분리될 수 없는 장소 특정적 미술의 성격은 대지 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맥락이다.[10] 또한, 흙, 돌 등 자연 재료를 최소한으로 가공하거나 비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아르테 포베라와 유사점을 보인다.[17] 이 외에도 데 스틸, 입체주의, 브랑쿠시, 요제프 보이스 등 다양한 현대 미술 운동과 작가들이 대지 예술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10]

더 나아가 대지 예술은 1960년대 후반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미술관 중심의 기성 체제와 예술의 상품화에 대한 비판[14][11], 자연으로의 회귀, 과학 기술 문명에 대한 불신 등은 당시 히피 문화나 베트남 반전 운동과 같은 반문화적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대지 예술의 등장은 당시 고조되던 정치적 활동과 부상하는 자연 환경 보호 운동, 여성 해방 운동 등 사회 운동에 대한 예술가들의 반응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한편으로 대지 예술은 스톤헨지, 피라미드, 나스카 라인, 아메리카 원주민의 거대한 무덤 등 인류 역사의 오래된 대지 작업들을 연상시키며, 이러한 고고학적 유적지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다.[8][3]

4. 1. 미니멀리즘

대지 예술이 시작된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는 서양 미술에서 여러 스타일이 동시에 나타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시기의 미술 작품을 하나의 특정 스타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지 미술 역시 당시 유행했던 미니멀리즘과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공유한다. 예를 들어, 사물이 공간을 차지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이나 작가와 작품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점 등이 그렇다. 일부 전통적인 미술사에서는 1968년의 '어스워크' 전시와 같은 대지 예술의 출현을 미니멀리즘의 부수적인 흐름 정도로 기록하기도 하지만, 이를 공간에 대한 고찰을 확장한 표현 방식으로 보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

미니멀리즘의 미적인 분위기가 대지 예술의 핵심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지 예술가들은 작품의 생산 과정과 그것을 기록하는 데 직접 참여했으며, 그 방법에는 수행적인 측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대지 예술은 미니멀리즘보다는 후기 미니멀리즘에 더 가깝다고 여겨진다[41].

4. 2. 개념주의

개념 미술이 작품의 최종 결과물보다는 아이디어나 제작 과정 자체를 예술로 간주했던 것처럼[42], 대지 예술가들 역시 작품이 주는 단순한 미적 만족감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작품의 아이디어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며, 실제 제작 과정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개념 미술과 맞닿아 있다. 많은 대지 예술가들은 미니멀 아트와 개념 미술에 직접 참여하거나 영향을 받았다.[10]

대부분의 대지 예술가들은 당시 미술계를 지배하던 상업주의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미술관이나 화랑 같은 기존의 권위적인 전시 공간을 거부했다.[40][2] 이들은 미술관에 전시되고 판매될 수 있는 전통적인 조각품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2], 화랑 시스템의 폐쇄성과 예술의 상품화에 환멸을 느꼈다.[11] 이러한 생각은 대지 예술이 정형화된 전시 공간을 벗어나 광활한 자연을 무대로 삼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40]

대지 예술은 미니멀 아트의 단순한 형태, 개념 미술의 아이디어 중시 경향과 더불어, 최소한의 가공으로 자연 재료를 선호했다는 점에서 아르테 포베라와도 유사점을 가진다.[17]

더 나아가 대지 예술은 1960년대 후반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연결된다. 작품을 미술관에 전시하거나 판매하기 어렵게 만듦으로써 기존 미술 제도의 권위와 상업주의에 도전하는 태도는[14]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 기성 질서에 대한 반항 등 당시 히피 문화나 베트남 반전 운동과 같은 사회 운동의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실제로 뉴욕 드웬 화랑의 '어스워크'(''Earthworks'') 전시는 젊은이들의 베트남 반전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기획되었으며, 당시 부상하던 자연 환경 보호 운동이나 여성 해방 운동과 같은 사회적 흐름도 대지 예술의 등장 배경으로 작용했다.

4. 3. 장소 특정적 미술

1960년대에 등장한 대지 예술은 어느 장소에 전시되어도 동일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여겨졌던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다.[43] 이는 예술 작품이 미술관이나 화랑 같은 특정 공간이나 상업적 틀에 갇히는 것에 대한 비판 의식과 연결된다.[26][27] 대지 예술가들은 미술관이나 화랑이라는 제도적 공간을 벗어나, 전통적인 이동 가능한 조각품과 상업 미술 시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작업을 추구했다.[2]

대지 예술은 본질적으로 작품이 설치된 장소와 분리될 수 없는 장소 특정성(Site-specific Art|사이트 스페시픽 아트영어)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작품이 놓인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그 의미를 형성한다는 생각에 기반한다. 이러한 장소 특정성은 미니멀리즘 조각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넓게는 공공미술의 개념과도 연결된다.

장소 특정성이라는 특징은 환경 미술과도 공유되어 때로는 두 용어가 혼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환경 미술은 홋카이도의 모에레누마 공원처럼 도시 공간의 특정 장소가 미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계획되거나, 태양의 탑처럼 건축과 디자인 요소가 통합된 경우를 가리키는 경향이 있다. 앤디 골즈워디나 크리스토의 작품처럼 두 영역의 경계에 있는 경우도 있어 엄밀한 구분은 어렵다. (크리스토 부부는 자신들의 작업을 대지 예술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했다.[19])

5. 특징

나스카의 지상화나 피라미드 같은 고대 유적에서도 대지 예술의 원형을 찾을 수 있지만[8][3], 현대적 의미의 대지 예술을 처음 구상한 인물로는 이사무 노구치가 꼽힌다. 그는 1933년에 이미 고분이나 일본 정원 등에서 영감을 받아 '지구' 자체를 조각의 재료로 삼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뉴욕의 이사무 노구치 미술관에는 그가 1947년에 구상한 '화성에서 보이는 조각'의 모형이 남아있는데, 이는 흙을 쌓아 거대한 얼굴을 만드는 계획이었다.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의 구상 중 하나인 인공 산 '플레이 마운틴'은 그의 사후 삿포로시의 모에레누마 공원에 실제로 만들어졌다.

본격적인 대지 예술은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상업주의적 미술 경향에 반발한 조각가들에 의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1968년 뉴욕 드완 갤러리(Dwan Gallery)에서 열린 '''"Earthworks"''' 전시는 이러한 움직임을 확산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작가들은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벗어나 광활한 자연, 특히 사막과 같은 장소를 캔버스로 삼아 거대한 규모의 작품을 제작했다.

대지 예술은 몇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가진다. 첫째, 작품의 거대한 스케일은 종종 항공사진으로만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이다. 둘째, 작품이 놓인 특정 장소의 자연환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장소 특정적 성격(Site-specific Art|사이트 스페시픽 아트영어)을 지닌다. 셋째, 자연 재료를 사용하고 자연 속에 놓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거나 붕괴(엔트로피)하는 과정을 겪으며, 작품의 영구성이 반드시 전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지 예술 작품은 특정 장소에 직접 만들어지지만, 때로는 축소된 규모로 실내에 설치되기도 한다. 이 경우 일반적인 설치 미술과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또한, 장소 특정적 성격을 공유하는 환경 미술(엔바이로멘탈 아트, environmental art|엔바이로멘탈 아트영어)과 혼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환경 미술은 특정 공간 전체를 미적으로 구성하거나 여러 요소가 통합적으로 설계된 경우를 주로 지칭한다. 다만 앤디 골즈워디나 크리스토의 작업처럼 두 영역에 모두 해당될 수 있는 경우도 있어 엄밀한 구분은 어렵다. 크리스토 자신은 자신의 작품을 랜드 아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대지 예술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윤리적 성찰도 이루어지고 있다. 아만다 보츠케스의 저서 "어스 아트의 윤리"는 지난 60여 년간의 '자연과 예술'의 역사를 조명하며 "지구에 윤리적으로 마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대지 예술의 특이한 사례로는 1998년 호주에서 발견된 「'''마리 맨'''」이 있다. 신장 2.6k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지상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알려지지 않아 큰 주목을 받았다.

5. 1. 거대한 스케일

대지 예술 작품들은 대체로 웅장한 스케일을 보여 준다. 이런 거대한 크기 때문에 일반적인 그림이나 조각은 약 1.83m 정도 떨어져서 관람하지만, 대지 미술 작품들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거나 항공 망원경을 통해서만 전체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44]. 로버트 스미스슨은 이러한 감상 방식을 두고 “이것은 마치 접근하기 어려운 결정상의 평평한 성운의 단편을 보는 것과 유사하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새로운 종류의 방식임에 틀림없다”라고 언급했다[45].

이처럼 거대한 규모는 페루의 나스카 라인, 북아메리카 선사시대 마운더 빌더족의 분묘, 스톤헨지, 피라미드, 카르나크 돌 등 고대 유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지 예술은 이러한 선사 시대의 거석 문화나 대규모 토목 작업과 연결되기도 한다[8][3]. 캘리포니아와 멕시코 경계선 부근의 거대한 지상 그림 등도 유사한 사례로 꼽힌다. 이 고대 유적들 역시 공중에서 보아야만 그 형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다. 학자들은 비행기가 없던 시절 만들어진 이 거대 유적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정령'과의 교류를 희망했던 당시 사람들의 믿음과 경외심, 혹은 두려움이 반영되어 있다고 해석한다[46].

대지 예술 작품의 거대한 스케일 역시 단순히 미적인 만족을 넘어, 이러한 고대 유적처럼 인간과 광활한 자연, 나아가 우주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46]. 예를 들어 월터 드 마리아의 《라이트닝 필드》(''The Lightening Field'', 1977)는 뉴멕시코 사막의 번개가 잦은 지역에 400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봉을 67m 간격으로 격자 모양으로 설치한 작품이다. 평균 높이 6m의 이 봉들은 번개를 유도하여, 인간이 쉽게 감지하기 어려운 대지와 하늘의 무한함, 그리고 그 사이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강력한 힘과 인간의 상대적인 나약함을 동시에 경험하게 한다. 이를 통해 감상자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게 된다[47].

5. 2. 장소 특정적 성격

야외의 대지 예술 작품들은 장소 특정적 성격을 지닌다. 그 지역의 자연 환경을 이루는 요소들을 제거하거나, 그 위치를 옮기거나, 그 자체에 새로운 재료를 첨가하여 조각을 형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지 예술 작품들은 그것들이 위치한 넓게 트인 공간의 성질을 관람자가 강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장소가 애초부터 갖고 있던 특징들과 인간이 개입한 흔적 사이의 관계를 이끌어낸다[48]. 이렇듯 대지 예술은 그 작품이 설치된 공간에서만 의미를 갖게 되므로 설치 장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여겨진다. 즉, 장소 특정적인 성격을 가진다.

랜드 아트는 그 본질상 설치 장소에 고유한, 즉 Site-specific Art|사이트 스페시픽 아트영어라는 특징을 가진다. 한편, 이 특징을 공유하는 것으로서 환경 미술(environmental art|엔바이로멘탈 아트영어)이라고 불리는 것도 있다. 이는 랜드 아트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어 혼란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환경 미술은 홋카이도의 모에레누마 공원이나 기후현의 요로 텐메이 한텐치처럼 도시 공간의 한 구석이 "미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만들어진 "작품", 또는 태양의 탑처럼 내부와 조명 등 모든 요소가 일체로 설계·건축된 작품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앤디 골즈워디나 크리스토의 작품처럼 두 가지 모두에 해당되는 경우도 있어, 둘을 엄밀히 구별하기는 어렵다. 크리스토 자신은 자신의 작품을 랜드 아트로 생각하지 않는다.

5. 3. 붕괴 (엔트로피)

마이클 하이저와 로버트 스미스슨은 물질계의 무질서 정도는 항상 증가한다는 엔트로피 법칙(열역학 제2법칙)과 대지 예술의 연관성을 발견했고, 이를 대지 예술의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들의 야외 작품들은 구성 재료 자체의 파괴를 통해 작품 전체의 파괴에 자연적으로 노출되었다. 작품의 자연스러운 파괴는 '보존'이라는 것이 인간의 허영 또는 자만이라고 비판하는, 대지 예술이 주는 또 하나의 의미를 나타낸다.[31]

일반적인 미술 작품과 달리, 대지 예술에서는 작품의 영구성이 반드시 전제되지 않는다. 이는 작품의 소재, 작가의 의지, 때로는 제3자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월터 드 마리아의 《마일 롱 드로잉》(Mile Long Drawing|마일 롱 드로잉영어)은 초크를 사용했기 때문에 현재는 기록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반면, 같은 작가의 《번개의 평원》(The Lightning Field|더 라이트닝 필드영어)은 설계 단계부터 보존을 전제한 작품이다. 로버트 스미스슨의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스파이럴 제티영어)는 1999년 작가의 유족으로부터 디아 미술 재단에 양도되었지만, 그 후에도 보존 방침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다.

6. 비판

대지 예술은 자연 환경 자체를 작품의 재료이자 전시 공간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환경을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특히 대지 예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시기는 환경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던 때와 맞물려, 자연에 직접적인 변형을 가하는 작업 방식은 논란을 빚었다.[49]

대표적인 사례로 로버트 스미스슨이 1970년 캐나다 밴쿠버 인근 섬에 계획했던 《깨진 유리의 섬》(Island of Broken Glass영어)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2ton 가량의 유리 조각을 헬리콥터로 섬에 뿌리는 방식으로 구상되었으나, 이 과정이 섬에 서식하는 새와 바다표범의 서식지를 파괴할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를 낳았고, 결국 환경 단체의 반대로 작품 제작은 무산되었다.[50]

마이클 하이저의 《이중 부정》(Double Negative영어) 역시 환경 파괴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네바다주 사막에 거대한 도랑 두 개를 파내는 이 작업은 그 과정에서 토양 생태계를 교란하고 파괴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술 비평가 마이클 아우핑은 "아주 적은 예외를 빼고는, 대지 예술은 자연 환경을 보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괴한다"고 지적하며 대지 예술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51] 이러한 비판들은 대지 예술이 예술적 표현과 환경 보존 사이의 긴장 관계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7. 주요 작가 및 작품

마이클 하이저 (en)는 네바다 주 사막 등지에서 거대한 규모의 작업을 진행했다. 대표작으로는 메사의 가장자리를 파낸 《이중 부정》(''Double Negative'', 1969-1970)이 있으며, 오랜 기간 작업해온 《시티》(''City'')를 2022년 완성했다.[37][10]

로버트 스미스슨 (en)은 대지 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활발히 활동했으나 1973년 비행기 사고로 요절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유타 주 그레이트솔트호에 약 457.20m 길이로 만든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 1970)이다. 이 작품은 호수 수위에 따라 모습이 드러나거나 잠기기를 반복한다.[14][15] 그의 다른 작품으로는 흙, 물, 돌로 만든 직경 약 45.72m의 불완전한 원형 램프인 《아마릴로 램프》(''Amarillo Ramp'', 1973), 미술관 내부에 자갈과 거울을 설치한 《균열과 먼지가 있는 자갈 거울》(1968) 등이 있다.[37]

월터 드 마리아 (en)는 뉴멕시코 주 사막에 400개의 스테인리스 스틸 기둥을 약 67.06m 간격으로 격자 모양으로 배열하여 번개가 칠 때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라이트닝 필드》(''The Lightening Field'', 1977)가 대표적이다.[38] 그는 또한 뉴욕의 갤러리 공간에 흙을 채운 《뉴욕 어스 룸》(''New York Earth Room'', 1977)과 같은 실내 작품도 선보였다.[33]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en)는 직물을 사용하여 건물이나 자연환경을 감싸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유명하다.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약 39.43km 길이의 천 울타리를 설치한 《러닝 펜스》(''Running Fence'', 1972-1976)나 일본미국에 동시에 수천 개의 우산을 설치한 《우산》(''The Umbrellas, Japan-USA'', 1984-1991) 등이 있다. 다만 작가 본인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대지 예술로 분류하는 것을 거부했다.[36][19]

낸시 홀트 (en)는 유타 주 사막에 거대한 콘크리트 관을 설치하여 해와 별의 움직임을 포착하도록 설계한 《태양 터널》(''Sun Tunnels'', 1973-1976)이 유명하다. 또한 도시 공공장소에 설치된 《다크 스타 파크》(''Dark Star Park'', 1979-1984)처럼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공공미술 작업도 진행했다.[35]

앤디 골드워시 (en)는 주로 자연에서 발견되는 재료(나뭇잎, 돌, 얼음 등)를 사용하여 일시적이거나 영구적인 조각 작품을 만든다. 영국 컴브리아 지역의 양 목장에 돌담 구조물을 복원하고 새로 만든 《Sheepfolds》(1996-2003) 등이 있다.

리처드 롱 (en)은 자연 속을 걷는 행위 자체나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흔적(돌을 옮겨 만든 선이나 원 등)을 작품으로 제시한다. 대표작으로 《걷기로 만들어진 선》(''A Line Made by Walking'', 1967)이 있다.[18]

제임스 터렐 (en)은 애리조나 주의 사화산 분화구인 로든 크레이터(''Roden Crater'')를 거대한 천체 관측 공간이자 빛과 공간을 체험하는 장소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1977년부터 진행 중이다.[10][21]

이사무 노구치 (en)는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로, 현대적 의미의 대지 예술을 일찍이 구상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는 1933년부터 지구를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는 구상을 발전시켜 1947년에는 "화성에서 보이는 조각"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구상은 사후 일본 삿포로시의 모에레누마 공원에 "플레이 마운틴" 등으로 실현되었다. 그는 1941년 뉴욕에 《윤곽 놀이터》를 설계하기도 했다.[10]

아래는 주요 대지 예술 작가와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 목록이다.

작가 이름대표 작품설치 장소연도
마이클 하이저Double Negative미국 네바다주 오버톤, 몰몬 메사1969-1970
City미국 네바다주 가든 밸리1972-2022
로버트 스미스슨Spiral Jetty미국 유타주, 그레이트솔트호1970
Amarillo Ramp미국 텍사스주 테코바스 호수1973
데니스 오펜하임Time Line미국 메인주 켄트 항구와 캐나다 뉴브런즈윅주 클레어 경계, 세인트 존 강 위1968
월터 드 마리아The Lightening Field미국 뉴멕시코주 퀘마도 사막1977
New York Earth Room미국 뉴욕주 소호1977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Running Fence미국 캘리포니아주, 소노마와 마린 카운티1972-1976
The Umbrellas, Japan-USA일본 이바라키현미국 캘리포니아주1984-1991
앤디 골드워시Sheepfolds영국 컴브리아1996-2003
낸시 홀트Sun Tunnels미국 유타주, 그레이트베이슨 사막1973-1976
Dark Star Park미국 버지니아주, 로슬린1979-1984
리처드 롱A Line Made by Walking영국1967
제임스 터렐로든 크레이터미국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 외곽 (진행 중)1977-현재
이사무 노구치모에레누마 공원 (플레이 마운틴 포함)일본 삿포로시1988년 설계 시작, 2005년 완공



이 외에도 로버트 모리스, 앨런 선피스트, 칼 안드레, 애나 멘디에타, 앤드류 로저스, 찰스 로스, Jacek Tylicki, 알베르토 부리, 에버하르트 보슬렛, 밀턴 베세라 등 많은 작가들이 대지 예술 분야에서 활동했다.[10][18] 일본의 카즈오 시라가는 1955년 진흙 속에서 퍼포먼스를 벌인 《진흙에 도전하다》(''Challenging Mud'')를 선보였다. 호주에서는 1998년 작가 미상의 거대한 지상 그림인 《마리 맨》이 발견되기도 했다.

8. 대지예술의 영향

1970년대 경제 불황과 로버트 스미스슨의 사망 이후 대지 예술은 변화를 맞이했다. 이전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외딴 장소를 찾기보다는, 점차 특정 부지에 어울리는 규모와 그 환경을 고려한 형태로 작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34]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지 예술은 공공장소와 도시 공간에서도 실현되었으며, 오늘날에는 미술가의 미적 목표와 공공의 목적(공리성, 실용성)이 결합된 새로운 유형의 공공 미술로서 기능하고 있다. 낸시 홀트의 《다크 스타 파크》(Dark Star Parkeng)와 이사무 노구치의 《필립 A. 하트 플라자》(Philip A. Hart Plazaeng) 등이 그 예이다.[35]

마야 린의 《베트남 전쟁 기념비》는 대지 예술의 영향을 받아 공간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공공 미술 작품이다.


대지 예술이 주변 환경의 맥락에 따라 형태와 내용을 결정하는 공공 미술로서의 성격이 강화되면서, 공공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특정 부지를 표현하는 형태의 많은 환경 미술 프로젝트들이 공공장소에 구현되었고, 이는 환경 디자이너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대지 예술은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았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조각가, 조경가, 건축가들은 작품에 상징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52]

마야 린(Maya Lin)이 디자인한 《베트남 전쟁 기념비》(Vietnam Veterans Memorialeng, 1982)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조지 하그리브스는 폐기된 경관을 복원하기 위해 대지 예술의 기법을 응용했다. 그는 《빅스비 공원》(Byxbee Parkeng, 1988-1992)에서 대지 조각 디자인을 통해 해당 부지의 문화적, 자연적 특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53]

8. 1. 한국의 주요 작가 및 작품

(작성할 내용 없음)

9. 논란과 쟁점

대지 예술은 그 규모와 방식, 그리고 예술계의 관습에 도전하는 성격 때문에 여러 논란과 쟁점을 낳았다. 특히 자연 환경을 직접적인 재료나 장소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보존 문제[49], 작품이 설치된 외딴 장소로 인한 대중의 접근성 문제[10][15], 그리고 초기 비상업적 지향점과 달리 점차 미술관이나 화랑, 후원자 시스템에 편입되는 상업화 및 제도화 문제[2][13] 등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논점들은 대지 예술의 본질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을 던진다.

9. 1. 환경 윤리 문제

대지 예술이 발전하던 시기는 환경 보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던 때와 맞물린다. 이로 인해 자연 속에 작품을 만드는 대지 예술가들의 작업이 자연 환경을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49]

대표적인 사례로 1970년 로버트 스미스슨이 캐나다 밴쿠버 인근 암석 지대에 계획했던 《Island of Broken Glass|깨진 유리의 섬eng》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헬리콥터로 약 2톤의 유리 조각을 뿌리는 방식으로 구상되었으나, 암석에 서식하는 새와 바다표범의 서식지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결국 Canadian Society for Pollution and Environmental Control|오염과 환경 규제를 위한 캐나다 사회eng에 의해 작품 제작은 중단되었다.[50]

마이클 하이저의 《이중 부정》 역시 환경 문제로 비판을 받았다. 작품 제작 과정에서 대량의 흙을 파내는 작업이 토양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비평가 마이클 아우핑은 "아주 적은 예외를 빼고는, 대지 예술은 자연 환경을 보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괴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51]

이러한 논란은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환경 보호라는 가치 사이의 긴장 관계를 보여준다. 아만다 보츠케스의 저서 《The Ethics of Earth Art|어스 아트의 윤리eng》는 지난 60여 년간의 대지 예술 역사를 돌아보며 "지구에 윤리적으로 마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대지 예술을 둘러싼 환경 윤리 문제가 지속적인 논의 과제임을 시사한다.

9. 2. 공공성과 접근성 문제

대지 예술은 전통적인 미술관이나 화랑의 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자연 환경 자체를 배경으로 삼거나 재료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10] 이는 예술의 상업화에 대한 비판 의식에서 출발했지만[2], 결과적으로 일반 대중이 작품을 직접 경험하기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많은 주요 대지 예술 작품들은 미국 서부의 외딴 사막이나 특정 자연 환경 속에 자리 잡고 있어 물리적인 접근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로버트 스미스슨의 대표작 ''나선형 방파제''(1970)는 유타 북부의 그레이트 솔트 호에 위치해 있으며, 호수의 수위에 따라 작품의 모습이 변하거나 물에 잠겨 관람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14][15] 제임스 터렐이 애리조나의 사화산 분화구에서 수십 년째 진행 중인 ''로든 크레이터'' 프로젝트나 뉴멕시코에 있는 찰스 로스의 ''스타 액시스'' 역시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적인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작업이다.[18][20][21]

이러한 지리적, 환경적 제약으로 인해 많은 관람객은 실제 작품을 직접 보기보다는 사진이나 영상 기록물을 통해 작품을 접하게 된다. 실제로 작가들이 남긴 사진 자료는 종종 화랑과 같은 전통적인 전시 공간에서 소개되기도 했다.[10]

또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많은 대지 예술의 특성상 상당한 제작 및 유지 비용이 요구된다. 이러한 비용은 주로 부유한 후원자나 사립 재단의 지원을 통해 충당되는 경우가 많았다.[2] 이는 예술 작품의 제작과 향유 기회가 특정 자본에 의존하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질문을 제기한다. 실제로 1970년대 중반의 갑작스러운 경기 침체는 이러한 재정 지원의 흐름을 위축시키기도 했다.

9. 3. 상업화와 제도화 문제

대지 미술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대량 생산된 문화적 잔해"와는 다른, 상품화하기 어려운 특성 때문에 주목받았다.[2] 이 시기의 대지 미술가들은 미술관이나 화랑과 같은 전통적인 전시 공간을 거부하고, 상업적인 미술 시장의 틀에서 벗어난 기념비적인 풍경 프로젝트를 지향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을 기록한 사진 자료 등은 종종 일반 화랑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앨런 선피스트와 같은 일부 작가들은 화랑 시스템에 내재된 예술의 상품화와 폐쇄성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11]

하지만 이러한 초기 지향점과 달리, 대지 미술은 점차 제도권 미술 시스템에 편입되는 양상을 보였다. 1968년 뉴욕의 드완 갤러리에서 '대지 미술'이라는 이름의 그룹 전시가 열렸으며,[13] 1969년에는 코넬 대학교의 앤드루 딕슨 화이트 미술관에서도 윌러비 샤프의 기획으로 '대지 미술' 전시가 개최되었다. 로버트 스미스슨의 ''균열과 먼지가 있는 자갈 거울''(1968)처럼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 내부에 설치된 대지 미술 작품도 등장했다.

또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많은 대지 미술의 특성상, 미국의 작가들은 작품 제작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부유한 후원자나 사립 재단의 지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2] 이는 대지 미술이 자본과 후원 시스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의 경기 침체는 이러한 자금 지원의 흐름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대지 미술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류 공공 미술의 한 영역으로 흡수되었으며, 오늘날 '대지 미술'이라는 용어는 때때로 초기 전위 예술로서의 문제의식과 관계없이 자연 속에 설치된 다양한 종류의 예술을 포괄하는 느슨한 명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대지 미술이 가졌던 본래의 비판적 정신이나 급진성이 희석된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다.

10. 결론

대지 예술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미술관이나 화랑과 같은 전통적인 전시 공간과 상업 미술 시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등장했다.[2] 이는 당시 만연했던 "대량 생산된 문화적 잔해"와 달리 상품화하기 어려운 예술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었다.[2] 미니멀 아트와 개념 미술, 그리고 데 스틸, 입체주의 등 다양한 현대 미술 사조와 콘스탄틴 브랑쿠시, 요제프 보이스 같은 작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은[10] 대지 예술은 자연 환경 자체를 작품의 재료이자 전시 공간으로 삼아 예술의 지평을 넓혔다. 로버트 스미스슨은 그의 에세이 "마음의 퇴적: 지구 프로젝트"(1968)를 통해 모더니즘 예술이 사회 문제와 단절된 것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며 대지 예술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14]

그러나 대지 예술은 몇 가지 중요한 과제와 논쟁점을 안고 있다. 작품의 거대한 규모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자본을 요구했고, 이는 부유한 후원자나 사립 재단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실제로 1970년대 중반의 경기 침체는 이러한 자금 지원을 위축시켜 운동의 지속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2] 또한, 외딴 지역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 일반 대중의 접근이 어렵다는 공공성 문제와 자연 환경에 직접 개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 윤리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아만다 보츠케스의 저서 "어스 아트의 윤리"는 이러한 윤리적 측면을 조명하며 "지구에 윤리적으로 마주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973년 로버트 스미스슨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운동의 구심점을 잃게 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찰스 로스의 ''스타 액시스''(1971년 시작)[20][21], 마이클 하이저의 ''City''(2022년 완공), 제임스 터렐의 ''로든 크레이터'' 프로젝트처럼 몇몇 작가들은 여전히 기념비적인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지 예술의 개념은 주류 공공 미술의 일부로 편입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본래의 비판적 문제의식과 무관하게 자연 속에 설치된 모든 종류의 예술을 포괄하는 용어로 오용되는 경향도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대지 예술은 예술과 자연,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현대 미술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비록 상업성, 공공성, 환경 윤리 등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있지만, 자연을 예술의 장으로 끌어들여 새로운 미적 경험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분명하다. 대지 예술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오늘날 지속 가능한 예술과 환경 담론 속에서 여전히 중요한 논의 지점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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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문서 리사 필립스 외, op. cit., 280면
[29] 문서 제프리 카스트너(Jeffrey Kastner)∙브라이언 월리스(Brian Wallis), op. cit.,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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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문서 loc. cit.
[33] 문서 loc. cit.
[34] 문서 김신원, op. cit., 11쪽
[35] 문서 존 비어즐리(John Beardsley), op. cit., 103쪽
[36] 기타 김신원, op. cit., 3~4쪽
[37] 기타 loc. cit.
[38] 기타 loc. 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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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웹사이트 Earth Art http://www.theartsto[...] 2016-01-07
[41] 기타 loc. 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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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기타 원인종, op. cit., 45쪽
[45] 인터뷰 Interview by Maria Mcwilliams 1978
[46] 기타 원인종, op. cit., 44쪽
[47] 논문 숭고미의 표현방식에 관한 연구-풍경식 정원과 대지예술을 중심으로- 2007
[48] 기타 제프리 카스트너(Jeffrey Kastner)∙브라이언 월리스(Brian Wallis), op. cit., 45쪽
[49] 기타 제프리 카스트너(Jeffrey Kastner)∙브라이언 월리스(Brian Wallis), op. cit., 32쪽
[50] 서적 Robert Smithson: Sculpture Cornell University Press 1981
[51] 간행물 ‘Michael Heizer: The Ecology and Economics of ‘Earth Art’ Artweek 1977-06-18
[52] 기타 loc. cit.
[53] 기타 ibid., 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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