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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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은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민주노동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치러졌다. 권영길, 심상정, 노회찬 의원이 후보로 출마했으며,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피선거권 문제로 후보 등록이 거부되었다. 경선은 권영길 후보가 최종 결선 투표에서 승리하며 마무리되었다. 경선 과정에서 당내 계파 갈등이 심화되었으며, 이는 이후 민주노동당 분당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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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 경선은 2007년 6월부터 8월까지 이명박, 박근혜, 원희룡, 홍준표, 고진화 후보를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명박 후보가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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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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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명 |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 |
선거일 | 2007년 9월 15일 |
선거전 | 권영길 |
선거후 | 권영길 |
유형 | 대통령 |
직책 | 대통령 후보 |
이전 선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 민주노동당 후보 선출 |
이전 선거 연도 | 2002년 |
차기 선거 |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통합진보당 후보 경선 |
차기 선거 연도 | 2012년 |
투표 결과 | |
투표율 | 73.6% |
1차 득표 | 권영길: 19,053 심상정: 10,064 노회찬: 9,478 |
1차 득표율 | 권영길: 49.4% 심상정: 26.1% 노회찬: 24.6% |
득표 | 권영길: 19,109 심상정: 17,122 |
득표율 | 권영길: 52.7% 심상정: 47.3% |
정당 | 민주노동당 민주노동당 |
2. 후보
민주노동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는 권영길 전 대표, 심상정 의원, 노회찬 의원이 후보로 출마하였다. 한편,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피선거권 문제로 후보 등록이 거부되었다.
2. 1. 주요 후보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당의 후보였던 권영길 전 대표와 2004년 총선을 계기로 대권 주자로 부상한 심상정 의원, 노회찬 의원이 주요 후보로 나섰다.그 외에도 PD 계열의 당내 그룹인 해방연대에서 6월 30일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후보로 추대했으나, 이 전 위원장은 대통령 피선거권이 없어 당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 등록을 거부했다. 이 전 위원장 측은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해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것이므로 후보 등록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 1. 1. 권영길
민주노동당의 전 대표인 권영길은 지난 두 차례의 대선에서 당의 후보로 나섰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경선에 출마했다.[1] 그는 2004년 총선 이후 당내 대권 주자로 떠오른 심상정 의원, 노회찬 의원과 함께 경쟁 구도를 이루었다.[1]2. 1. 2. 심상정
2004년 총선을 계기로 민주노동당 내에서 유력한 대권 주자로 부상하였다. 이전 두 차례 대선에서 당의 후보였던 권영길 전 대표, 그리고 노회찬 의원과 함께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에 출마하여 3자 구도를 형성했다.2. 1. 3. 노회찬
2004년 총선을 계기로 대권 주자로 부상한 노회찬 의원은 민주노동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다. 이 경선에는 지난 두 차례 대선에서 당의 후보였던 권영길 전 대표와 심상정 의원도 함께 출마하여 3자 구도를 형성하였다.2. 2. 이갑용 후보 등록 거부
PD 계열의 당내 그룹인 해방연대는 6월 30일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추대했다.[1] 그러나 이갑용 전 위원장은 대통령 피선거권이 없다는 이유로 당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후보 등록을 거부당했다.[1] 이갑용 전 위원장 측은 노조원들을 위해 투쟁하다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상황임을 강조하며 후보 등록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후보 등록이 무산되었다.[1]3. 계파 갈등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당내 주요 계파인 NL와 PD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경선 후보는 모두 PD계로 분류되었으나, 당내 최대 계파인 NL계가 특정 후보를 조직적으로 지지하면서 PD계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러한 계파 갈등은 과거부터 누적된 불신과 맞물려 경선 과정에서 더욱 증폭되었으며, 결국 대통령 선거 이후 민주노동당이 분당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3]
3. 1. 자주파(NL)의 권영길 지지
경선에 나선 후보들은 모두 PD계로 분류되었으나, 당내 최대 계파인 NL계는 다른 선택을 했다. 민주노총 내 국민파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NL 성향의 조직들은 권영길 전 대표를 지지할 것을 선언했다. NL계가 조직적으로 권영길 전 대표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자, PD계는 이를 NL계가 당을 독점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이고 강력하게 반발했다.이러한 갈등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더욱 증폭되었다. 2006년 당 대표 선거 당시, PD계의 조승수 후보가 높은 인지도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NL계가 문성현 후보를 조직적으로 지원하면서 패배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NL계에 대한 PD계의 불신과 반발이 높은 상황에서 시작된 경선 갈등은 결국 대선 이후 민주노동당이 분당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3]
3. 2. 평등파(PD)의 반발
경선에 나선 세 후보는 모두 PD계로 분류되었으나, 민주노총 내 국민파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NL계는 권영길 전 대표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당내 최대 계파인 NL계가 조직적으로 권영길 전 대표를 지원하자, PD계는 이를 NL계의 당 독점 시도로 규정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이러한 갈등은 이전부터 누적된 측면이 있었다. 2006년 당 대표 선거 당시, PD계의 조승수 후보가 높은 인지도와 지지에도 불구하고 NL계가 조직적으로 문성현 후보를 지원하면서 패배한 사례가 있었다. 이로 인해 PD 내에서는 NL계에 대한 불신과 반발이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다.
결국, 대통령 후보 경선을 둘러싼 계파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고, 이는 대통령 선거 이후 민주노동당이 분당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3]
4. 경선 과정
민주노동당 제17대 대통령 후보 경선은 전국 순회 경선 방식의 1차 투표와, 1차 투표 결과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상위 2명의 후보가 맞붙는 결선 투표로 진행되었다. 경선 과정에서는 당초 예상과 다른 후보 간 경쟁 구도가 나타나기도 했다.[4][5] 1차 투표 결과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상위 득표자인 권영길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결선 투표에 진출하였다.[12][13]
4. 1. 1차 투표: 순회 경선
경선 시작 전 예측과 달리 심상정 후보가 예상 밖의 선전을 보이며 권영길, 노회찬 후보와 함께 3자 구도를 형성했고, 결국 결선투표까지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4][5] 이는 노회찬 후보가 정파 구도에 집중한 반면, 심상정 후보는 정책 제시에 주력하며 평당원들의 지지를 얻고 탄탄한 당내 기반을 활용한 것이 효과를 본 것으로 평가된다.[6][7]전국 순회 경선은 지역별로 후보 간의 득표율 차이를 보이며 진행되었다.[8][9][10][11] 총 38,856명이 투표하여 77.8%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으나, 과반을 득표한 후보는 나오지 않았다. 최종 집계 결과, 권영길 후보가 49.4%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고, 심상정 후보가 26.1%로 2위에 오르며 두 후보가 결선 투표에 진출하게 되었다. 노회찬 후보는 24.6%를 얻어 3위에 머물러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12][13]
4. 1. 1. 지역별 경선 결과
경선 전 예측과 달리 심상정 후보가 예상 밖의 선전을 보이며 권영길, 노회찬 후보와 함께 3자 구도를 형성했고, 결국 결선투표까지 진출하는 돌풍을 일으켰다.[5] 이는 노회찬 후보가 NL 대 PD의 정파 대결 구도에 집중한 반면, 심상정 후보는 정책 제시에 주력하며 평당원들의 지지를 얻은 것이 효과를 본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민주노총 중앙파 등 당내 기반이 탄탄했던 점도 심상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6][7]첫 경선지인 제주에서는 세 후보가 비슷한 득표율을 보였다. 전통적으로 NL계의 영향력이 강한 광주·전남에서는 권영길 후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반면, 공단 지역이 많은 대구·경북에서는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금속노조의 지원을 받은 심상정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졌다.[8][9] 권영길 후보는 농민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전북에서도 승리하고, 노동 운동의 중심지인 부울경(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도 압승하며 다시 '대세론'에 힘을 실었다. 노회찬 후보는 상대적으로 계파색이 옅은 대전·충남과 자신의 고향인 부산에서 반전을 노렸으나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었고, 울산 경선부터는 심상정 후보에게 2위 자리를 내주었다.[10][11]
심상정 후보는 충청·강원·서울 등 계파색이 옅은 지역에서 눈에 띄는 선전을 펼치며 권영길 후보의 득표율을 잠식했다. 특히 충북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수도권 경선 전날까지 50.02%의 누적 득표율을 기록하던 권영길 후보는, NL계의 세가 강한 경기·인천에서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최종 득표율이 49.37%로 하락하여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총 38,856명이 투표하여 77.8%의 투표율을 기록한 전국 순회 경선 결과,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1위 권영길 후보와 2위 심상정 후보가 결선 투표에 진출하게 되었다. 노회찬 후보는 자신의 텃밭으로 여겨지던 서울에서의 막판 역전을 기대했으나, 심상정 후보의 상승세를 넘지 못하고 3위에 머물러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12][13]
날짜 | 지역 | 심상정 | 노회찬 | 권영길 | 계 | |||
---|---|---|---|---|---|---|---|---|
8월 20-24일 | 제주 | 196 | 31.3% | 197 | 31.4% | 234 | 37.3% | 627 |
8월 21-25일 | 전남 | 291 | 19.1% | 321 | 21.1% | 912 | 59.8% | 1,524 |
광주 | 217 | 15.6% | 334 | 24.1% | 837 | 60.3% | 1,388 | |
8월 22-26일 | 경북 | 648 | 35.7% | 580 | 32.0% | 586 | 32.3% | 1,814 |
대구 | 342 | 29.3% | 377 | 32.3% | 449 | 38.4% | 1,168 | |
8월 25-29일 | 충남 | 482 | 29.4% | 540 | 32.4% | 618 | 37.7% | 1,640 |
대전 | 270 | 34.9% | 196 | 25.4% | 307 | 39.7% | 773 | |
8월 27-31일 | 전북 | 422 | 16.8% | 660 | 26.3% | 1,429 | 56.9% | 2,511 |
8월 29일-9월 2일 | 경남 | 911 | 21.3% | 677 | 15.8% | 2,686 | 62.9% | 4,274 |
8월 30일-9월 3일 | 부산 | 532 | 24.2% | 592 | 26.9% | 1,076 | 48.9% | 2,200 |
9월 1-5일 | 울산 | 599 | 25.5% | 347 | 14.7% | 1,407 | 59.8% | 2,353 |
9월 3-7일 | 충북 | 497 | 43.1% | 323 | 28.0% | 332 | 28.8% | 1,152 |
9월 4-8일 | 강원 | 392 | 30.1% | 414 | 31.87% | 498 | 38.2% | 1,304 |
9월 5-9일 | 경기 | 1,415 | 22.9% | 1,242 | 20.1% | 3,518 | 57.0% | 6,175 |
인천 | 669 | 23.9% | 553 | 19.75% | 1,578 | 56.4% | 2,800 | |
서울 | 2,172 | 31.6% | 2,122 | 30.9% | 2,578 | 37.5% | 6,872 | |
재외 당원 | 9 | 45.0% | 3 | 15.0% | 8 | 40.0% | 20 | |
최종 결과 | 10,064 | 26.1% | 9,478 | 24.6% | 19,053 | 49.4% | 38,595 |
4. 2. 결선투표: 전국 동시 경선
민주노동당은 9월 10일부터 14일 오후 6시까지 전국 투표소 투표를, 15일 정오까지 온라인 투표를 각각 시행하였다. 투표 결과는 9월 15일 오후 전당대회에서 합산하여 발표되었다.결선 투표에는 총 선거인단 50,119명 중 36,736명이 참여하여 73.6%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개표 결과, 권영길 후보가 과반인 52.7%를 득표하여 심상정 후보를 누르고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다.
5. 결과
민주노동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 결과, 권영길 후보가 최종 후보로 선출되었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 투표가 진행되었으며, 심상정 후보는 결선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으며 선전했으나 권영길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5. 1. 결선 투표 결과
민주노동당은 9월 10일부터 14일 오후 6시까지 전국 투표소 투표와 15일 정오까지 온라인 투표를 시행한 뒤, 그 결과를 9월 15일 오후 전당대회에서 합산하여 발표했다. 발표 결과, 권영길 후보가 과반을 득표하여 당선이 확정되었다.총 선거인단 50,119명 중 36,736명이 투표에 참여하여, 결선 투표율은 73.6%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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