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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코쿠키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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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이코쿠키네마는 1920년 설립되어 1931년 신흥 키네마로 개편될 때까지 운영된 일본의 영화 제작사이다. 오사카 미나미의 대화재 이후 오락 센터 라쿠텐치 내 영화 제작을 위해 설립되었으며, 고사카, 아시야, 스가모, 나가세, 우즈마사 등 여러 촬영소를 운영했다. 1920년대 후반 과도한 투자와 경쟁 심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나가세 촬영소 화재 이후 신흥 키네마로 개편되며 소멸했다. 데이코쿠키네마의 촬영소는 현재 도에이 교토 촬영소로 이어지고 있으며, 주요 작품들은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필름 센터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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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코쿠키네마 - [회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회사명제국 키네마 연예 주식회사
영문 회사명Teikoku Kinema Engei Co., Ltd.
약칭제국 키네마
제키네
본사 우편번호해당 없음
본사 소재지오사카부오사카시미나미구히요시바시
본점 우편번호해당 없음
본점 소재지해당 없음
설립1920년 5월
업종서비스업
사업 내용영화의 제작
배급
흥행
실연 흥행
대표자야마카와 기치타로
자본금해당 없음
발행済 주식 총수해당 없음
매출액해당 없음
영업 이익해당 없음
순이익해당 없음
순자산해당 없음
총 자산해당 없음
종업원 수해당 없음
결산기해당 없음
주요 주주해당 없음
주요 자회사해당 없음
관련 인물마쓰이 이스케
다테이시 고마키치
이시이 도라마쓰
외부 링크해당 없음
특기 사항1931년8월 28일 개조 소멸

2. 연혁 및 개요

2. 1. 설립 배경

1912년 (메이지 45년) 오사카 미나미의 대화재로 센니치마에 일대가 소실되면서, 난카이 철도 사장 오쓰카 코이메이의 요청으로 야마카와 키치타로가 1914년 거대한 오락 센터 "라쿠텐치"를 건설했다.[1] 야마카와는 라쿠텐치 내 키네마관에서 상영할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고바야시 키사부로의 "토키와 상회"와 공동으로 "천연색 활동 사진 주식회사"(텐카츠)를 설립하고 오사카 지사장을 맡았다.[1] 1916년에는 히가시오사카시 가와치코사카역 부근에 코사카 촬영소를 건설했다.[1] 1919년 "텐카츠" 해체 후, 야마카와는 1920년 5월 "텐카츠 오사카 지사"와 "텐카츠 코사카 촬영소"를 개편, 마츠이 이스케와 손잡고 "제국 키네마 연예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2. 2. 촬영소

히가시오사카시에 있었던 고사카 촬영소는 1914년 9월 '천연색 활동 사진 고사카 촬영소'로 개소하였다. 1920년 5월부터 '제국 키네마 고사카 촬영소'로 운영되었으며, 1923년 '아시야 촬영소' 개소에 따라 1925년 4월 폐쇄되었다. 같은 회사에서 독립한 다테이시 코마키치가 '도호 영화 제작소'를 설립하여 이 촬영소를 부활시켰지만, '도호 영화'는 2개월 만에 해산되었다. 이후 '제국 키네마 고사카 촬영소'로 다시 부활했다가 1929년에 완전히 폐쇄되었다. NHK 연속 TV 소설 '오초얀'에 등장하는 츠루카메 영화 교토 촬영소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아시야시에 있었던 아시야 촬영소는 1923년, 데이코쿠키네마에 의해 신설되었다. 이토 다이스케에 따르면, 고사카가 시대극, 아시야가 현대극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아시야에는 사무실밖에 없었고, 세트 촬영은 모두 고사카 촬영소에서 했다고 한다.[2] 1925년 초, 회사를 퇴직한 이시이 토라마츠가 이 촬영소를 독립시켜, '아시야 영화 제작소'를 설립, 신체제의 '테키네'에 작품을 공급했다. 1926년 안에 폐쇄되었다.

도쿄 스가모에 있었던 스가모 촬영소는 1919년, '천연색 활동 사진 스가모 촬영소'로 개소하였다. 같은 해 '텐카츠' 해체와 함께 '국제 활영 스가모 촬영소'가 되었다. 1923년 6월, 국제 활영을 퇴사한 키야마 노리오가 영화 예술 협회로서의 활동을 재개, 제국 키네마 흥행부가 배급하는 것을 전제로 ''''테키네 도쿄파''''''로서 영화를 제작, 그 때 대여한 스튜디오가 이 촬영소였다.[3] '테키네 도쿄파'는 같은 해 9월 1일 간토 대지진으로 와해된다.[3] 1925년 초 '국활' 도산을 받아 '제국 키네마 스가모 촬영소'가 되었다. 1928년, 카와이 도쿠사부로의 '카와이 영화'가 매수, '카와이 영화 스가모 촬영소', 1933년, '다이토 영화 스가모 촬영소'를 거쳐, 1942년의 전시 통합으로 '다이에이'의 소유가 될 때 폐쇄되었다.

히가시오사카시에 있었던 나가세 촬영소는 1928년 개소, 1930년 9월 소실되었다. 단명에 끝난 '동양의 할리우드'이다.

교토시 우즈마사에 있었던 우즈마사 촬영소는 1925년, '반도 츠마사부로 프로덕션 우즈마사 촬영소'로 개소하였다. 1930년, 쇼치쿠에 양도된 것을 데이코쿠키네마가 빌려 '데이코쿠키네마 우즈마사 촬영소'로 운영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31년 데이코쿠키네마가 신흥 키네마로 개편되면서 '신코 키네마 교토 우즈마사 촬영소'가 되었다. 1942년 전시 통합으로 다이에이 제2촬영소가 되었고, 전후 1947년 도요코 영화 촬영소를 거쳐, 1951년부터 도에이 교토 촬영소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데이코쿠키네마의 5개 촬영소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촬영소이다.

2. 2. 1. 고사카 촬영소 (1920년 - 1929년)

1914년 9월, '천연색 활동 사진 고사카 촬영소'로 개소하였다. 1920년 5월부터 '제국 키네마 고사카 촬영소'로 운영되었으며, 1923년 '아시야 촬영소' 개소에 따라 1925년 4월 폐쇄되었다. 같은 회사에서 독립한 다테이시 코마키치가 '도호 영화 제작소'를 설립하여 이 촬영소를 부활시켰지만, '도호 영화'는 2개월 만에 해산되었다. 이후 '제국 키네마 고사카 촬영소'로 다시 부활했다가 1929년에 완전히 폐쇄되었다. NHK 연속 TV 소설 '오초얀'에 등장하는 츠루카메 영화 교토 촬영소의 모델로 알려져 있다.

2. 2. 2. 아시야 촬영소 (1923년 - 1925년)

1923년, 데이코쿠키네마는 아시야시에 아시야 촬영소를 신설했다. 이토 다이스케에 따르면, 고사카 촬영소가 시대극, 아시야 촬영소가 현대극 제작을 담당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제로는 아시야 촬영소에는 사무실밖에 없었고, 세트 촬영은 모두 고사카 촬영소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2]

1925년 초, 데이코쿠키네마에서 퇴사한 이시이 토라마츠는 아시야 촬영소를 독립시켜 아시야 영화 제작소를 설립하고, 새로운 체제의 '데이코쿠키네마'에 작품을 공급했다. 그러나 아시야 영화 제작소는 1926년에 폐쇄되었다.

2. 2. 3. 스가모 촬영소 (1925년 - 1928년)

1919년, '천연색 활동 사진 스가모 촬영소'로 개소하였다. 같은 해 '텐카츠' 해체와 함께 '국제 활영 스가모 촬영소'가 되었다. 1923년 6월, 국제 활영을 퇴사한 키야마 노리오가 영화 예술 협회로서의 활동을 재개, 제국 키네마 흥행부가 배급하는 것을 전제로 ''''테키네 도쿄파''''''로서 영화를 제작, 그 때 대여한 스튜디오가 동 촬영소였다[3]。'테키네 도쿄파'는 같은 해 9월 1일 간토 대지진으로 와해된다[3]1925년 초 '국활' 도산을 받아 '제국 키네마 스가모 촬영소'가 되었다.

1928년, 카와이 도쿠사부로의 '카와이 영화'가 매수, '카와이 영화 스가모 촬영소', 1933년, '다이토 영화 스가모 촬영소'를 거쳐, 1942년의 전시 통합으로 '다이에이'의 소유가 될 때 폐쇄되었다.

2. 2. 4. 나가세 촬영소 (1928년 - 1930년)

1928년 (쇼와 3년), 히가시오사카시나가세역 근처 나가세가와 강변에 부지 면적 약 30,000제곱미터, 그리고 3,000제곱미터의 실내 스테이지 2동을 갖춘 "동양의 할리우드"라고 불린 광대한 "나가세 촬영소"를 신설했다. 그러나 토키 및 촬영소·촬영 기재에 대한 투자가 경영을 압박하고, 같은 해 9월에 스튜디오가 소실되었다. 나가세 촬영소는 불과 2년 만에 모습을 감추었다.

부지에는 쇼인 학원의 초대 이사장인 모리 헤이조의 사저가 세워졌고, 현재는 "쇼토쿠칸"이라는 명칭으로 가정학 실습 등에 사용되고 있다. 2000년에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쇼토쿠칸 앞을 흐르는 나가세가와에는 "데이키네 다리"가 놓여 있다.

2. 2. 5. 우즈마사 촬영소 (1930년 - 1931년)

1925년, '반도 츠마사부로 프로덕션 우즈마사 촬영소'로 개소하였다. 1930년, 쇼치쿠에 양도된 것을 데이코쿠키네마가 빌려 '데이코쿠키네마 우즈마사 촬영소'로 운영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31년 데이코쿠키네마가 신흥 키네마로 개편되면서 '신코 키네마 교토 우즈마사 촬영소'가 되었다. 1942년 전시 통합으로 다이에이 제2촬영소가 되었고, 전후 1947년 도요코 영화 촬영소를 거쳐, 1951년부터 도에이 교토 촬영소가 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데이코쿠키네마의 5개 촬영소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촬영소이다.

2. 3. 나가세 촬영소와 몰락

1923년, 효고현 아시야시 산기슭에 영화 촬영소를 개설하고(후에 아시야 영화 제작소로 독립), 신인 감독 이토 다이스케구니키다 돗포 원작의 주중일기로 감독 데뷔를 했다. 1924년에는 다카라즈카 가극단 출신의 사와 란코 주연 새장 속의 새가 전국 개봉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주제가도 함께 유행했다.

새장 속의 새의 성공으로 얻은 막대한 흥행 수입을 바탕으로 1928년, 히가시오사카시 나가세역 근처 나가세가와 강변에 30,000제곱미터 부지와 3,000제곱미터 규모의 실내 스테이지 2동을 갖춘 "동양의 할리우드"라 불린 "나가세 촬영소"를 신설했다. 그러나 토키 및 촬영 장비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경영을 압박했고, 닛카쓰와 쇼치쿠가 관동 대지진으로부터 부흥하여 데이키네 이상의 자본 투자로 세련된 영화를 제작하면서, 데이키네는 영화 흥행에 어려움을 겪고 궁지에 몰렸다. 1929년부터 쇼치쿠와 제휴하여 영화를 제작했다. 1930년 2월, 프롤레타리아 영화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가가 대히트하여 학생과 지식인층 사이에서 평판이 높아졌지만, 같은 해 9월 촬영소 화재로 큰 타격을 입고 나가세 촬영소는 불과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데이코쿠키네마의 영화는 교토 우즈마사의 쇼치쿠 우즈마사 촬영소를 빌려 촬영되었다. 촬영소 부지에는 쇼인 학원의 초대 이사장 모리 헤이조의 사저가 세워졌고, 현재는 "쇼토쿠칸"이라는 이름으로 가정학 실습 등에 사용되고 있다. 2000년, 쇼토쿠칸은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쇼토쿠칸 앞을 흐르는 나가세가와에는 "데이키네 다리"가 놓여 있다.

2. 4. 종말

나가세 촬영소 소실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라쿠텐치"도 폐쇄되었고, 그 부지에는 쇼치쿠 운영의 오사카 가부키좌가 건설되었다. 1931년 8월 28일에 데이코쿠 키네마는 "신흥 키네마"로 개조되어 소멸[4]되었고, 야마카와는 경영에서 손을 떼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34년에 사망했다. 그 후 전시 통합으로 다이토 영화, 닛카츠의 제작 부문과 합병하여 다이에이 (현재의 카도카와 영화)가 되었다. 촬영소는 다이에이 시대에 분리되어 현재의 도에이 교토 촬영소가 되었다.

3. 주요 작품

다음은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필름 센터(NFC)에 소장되어 있는 주요 작품들이다[5].


  • 『료벤스기』: 감독 나카가와 시로, 주연 아라시 리토쿠, 1922년 10월 20일 시사・1923년 공개 - 68분 분량으로 현존[5]
  • 『젊은 날의 츄지』: 감독 나가오 시로쿠, 주연 이치카와 모모노스케, 제작 아시야 영화 제작소, 1925년 6월 18일 공개 - 1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 『코자쿠라 긴지』: 감독 가라사와 히로미쓰, 주연 마쓰모토 덴자부로, 제작 제국 키네마 연예 아시야 촬영소, 1926년 10월 22일 공개 - 9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 『핏빛 벚꽃』: 감독 오시모토 시치노스케, 주연 이치카와 모모노스케, 1927년 2월 9일 공개 - 1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 『덴포 진흙 그림 책』: 감독 야마시타 슈이치, 주연 아카시 로쿠로, 1928년 공개 - 59분 분량으로 현존[5]
  • 『괴흉인』(『쾌흉인 제1편 어둠의 소리』): 감독 오구니 쿄지, 주연 이치카와 모모노스케, 1928년 공개 - 1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 『아라시야마 하나고로』: 감독 에고 각스이, 주연 이치카와 모모노스케, 1929년 12월 31일 공개 - 1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감독 스즈키 쥬키치, 주연 다카츠 게이코, 1930년 2월 6일 공개 - 50분 분량으로 현존[5]
  • 『아시가루 키치에몬』(『아시가루 키치에몬』): 감독 사토 키이치로, 주연 마쓰모토 덴자부로, 1930년 1월 5일 공개 - 76분 분량으로 현존[5]
  • 도겐 선사』: 감독 사토 키이치로, 주연 아라시 리토쿠, 제작 제국 키네마 연예 나가세 촬영소, 1930년 4월 29일 공개 - 95분 분량으로 현존[5]
  • 『해원대장 사카모토 료마 에도 편』(『해원대장 사카모토 료마』): 감독 코이시 에이이치, 주연 이치카와 모모노스케, 1931년 1월 5일 공개 - 1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3. 1. 현존하는 필름 목록

원본 네거 필름, 상영용 프린트 등이 현존하는 것을 아래에 열거한다. 모두 도쿄 국립 근대 미술관 필름 센터(NFC) 소장 작품이다[5]

  • 『료벤스기』: 감독 나카가와 시로, 주연 아라시 리토쿠, 1922년 10월 20일 시사・1923년 공개 - 68분 분량으로 현존[5]
  • 『젊은 날의 츄지』: 감독 나가오 시로쿠, 주연 이치카와 모모노스케, 제작 아시야 영화 제작소, 1925년 6월 18일 공개 - 1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 『코자쿠라 긴지』: 감독 가라사와 히로미쓰, 주연 마쓰모토 덴자부로, 제작 제국 키네마 연예 아시야 촬영소, 1926년 10월 22일 공개 - 9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 『핏빛 벚꽃』: 감독 오시모토 시치노스케, 주연 이치카와 모모노스케, 1927년 2월 9일 공개 - 1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 『덴포 진흙 그림 책』: 감독 야마시타 슈이치, 주연 아카시 로쿠로, 1928년 공개 - 59분 분량으로 현존[5]
  • 『괴흉인』(『쾌흉인 제1편 어둠의 소리』): 감독 오구니 쿄지, 주연 이치카와 모모노스케, 1928년 공개 - 1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 『아라시야마 하나고로』: 감독 에고 각스이, 주연 이치카와 모모노스케, 1929년 12월 31일 공개 - 1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감독 스즈키 쥬키치, 주연 다카츠 게이코, 1930년 2월 6일 공개 - 50분 분량으로 현존[5]
  • 『아시가루 키치에몬』(『아시가루 키치에몬』): 감독 사토 키이치로, 주연 마쓰모토 덴자부로, 1930년 1월 5일 공개 - 76분 분량으로 현존[5]
  • 도겐 선사』: 감독 사토 키이치로, 주연 아라시 리토쿠, 제작 제국 키네마 연예 나가세 촬영소, 1930년 4월 29일 공개 - 95분 분량으로 현존[5]
  • 『해원대장 사카모토 료마 에도 편』(『해원대장 사카모토 료마』): 감독 코이시 에이이치, 주연 이치카와 모모노스케, 1931년 1월 5일 공개 - 1분 분량의 단편이 현존[5]

참조

[1] 웹사이트 ミナミまち物語 シネマ・ヒストリー http://www.minami-ne[...]
[2] 서적
[3] 서적
[4] 웹사이트 わが町八丁堀 歴年表 http://homepage2.nif[...] 中央区八丁堀二丁目東町会 2010-01-25
[5] 웹사이트 所蔵映画フィルム検索システム http://nfcd.momat.go[...] 東京国立近代美術館フィルムセンター 201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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