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모에 고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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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모에 고젠은 《헤이케 이야기》와 《겐페이 성쇠기》에 등장하는 일본의 여자 무사이다. 미나모토노 요시나카 휘하의 장수로, 뛰어난 무예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인물로 묘사된다.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가마쿠라 막부의 공식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도모에 고젠을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하며, 소설, 영화, 드라마, 만화, 게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재해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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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에 고젠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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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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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칭 | 고젠/여사 |
출생 | 1157년 |
사망 | 1247년 |
국적 | 일본인 |
직업 (아와즈 전투 이전) | 온나-무샤 |
직업 (아와즈 전투 이후) | 불교 수녀 |
상관 | 미나모토노 요시나카 (지휘관) |
군사 정보 | |
소속 | 미나모토 씨 (특히 미나모토노 요시나카) |
복무 기간 | 1년 (1182년) |
참전 전투 | 아와즈 전투 |
2. 약력
도모에 고젠은 미나모토노 요시나카를 섬긴 여자 무사였다. 《헤이케 이야기》에 따르면, 흰 피부에 긴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용모의 소유자로, 강한 활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 혼자서 천 명을 상대할 수 있다고 묘사되었다.[12] 요시나카는 그녀를 총애하여, 시나노에서부터 도모에와 야마부키라는 두 명의 여성을 거느리고 왔다고 한다.
도모에 고젠의 역사적 실존 여부는 불분명하다. 그녀에 대한 기록은 주로 군담 소설인 《헤이케 이야기》와 《겐페이 성쇠기》에 등장하며, 당시의 1차 사료나 가마쿠라 막부의 공식 역사서인 《아즈마카가미》에는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다.[16]
《헤이케 이야기》에는 ‘기소의 최후[木曾最期]’에서만 도모에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녀는 평생의 주인이자 낭군으로 섬겼던 미나모토노 요시나카(源義仲)의 휘하 장수였던 히쿠치 가네미쓰, 이마이 가네히라, 네노이 유키치카(根井行親), 다테 지카타다(楯親忠) 등 ‘기소 사천왕’과 함께 요시나카를 따라 헤이케 타도에 종군해, 큰 칼과 억센 활을 들고 싸웠던 여자 무사로 묘사되고 있다. “요시나카 공은 시나노에서 도모에와 야마부키(山吹), 두 명의 편녀(便女)를 거느리고 왔다. 야마부키는 병이 있어 수도에 머물렀다. 도모에는 흰 피부에 머리는 길었으며, 용모가 몹시 아름다웠다. 강궁의 정병으로 혼자서 능히 천 명을 맞섰다.”라고 되어 있다.[19]
요시나카가 교토에서 헤이케를 몰아낸 후, 세력이 약해져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에게 쫓기게 되었을 때, 도모에는 요시나카의 곁을 지켰다. 요시나카는 도모에에게 도망갈 것을 권했지만, 도모에는 마지막까지 요시나카를 위해 싸우고자 했다. 30기의 무사를 거느린 온다 모로시게를 힘으로 제압하고 목을 베어 던진 후, 갑옷을 벗고 동쪽으로 달아났다.[12]
《겐페이 성쇠기》에서는 도모에가 구리카라 고개 전투에서 대장 중 한 명으로 등장하며, 28세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시나카는 사나운 말을 잘 다루고 험한 길도 잘 다니는 도모에에게 갑옷을 입히고 큰 칼과 활을 주어 지휘관으로 삼았다고 한다. 세타가와라 전투에서는 7기를 죽이는 공을 세웠다.[12]
아와즈 전투(1184년)에서 도모에는 우치다 이에요시를 죽이고, 하타케야마 시게타다에게 사로잡히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14] 또한, 무사시 씨족의 지도자 혼다노 모리시게의 목을 베어 요시나카에게 바쳤다고도 한다.[15]
훗날, 도모에는 와다 요시모리의 아내가 되어 아사히나노 요시히데를 낳았다. 와다 전투 이후에는 에치고국 후쿠미쓰의 이시구로 씨에게 의탁하여 출가, 요시나카와 가족들의 명복을 빌며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나가노현 기소 군 기소마치, 니가타현 조에쓰 시 등에는 도모에 고젠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들이 있지만,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소행성 4896호는 도모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3. 역사적 실존 여부
《헤이케 이야기》에서는 도모에 고젠이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의 부하로서 겐페이 전쟁에서 활약한 용맹한 여전사로 묘사되지만, 이는 문학적 각색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있다.[16] 《겐페이 성쇠기》에서는 도모에 고젠의 인물상이 더욱 부각되어, 요시나카와의 관계, 외모, 무예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아즈마카가미》에는 겐린(建仁) 원년(1201년) 에치고(越後)에서 일어난 반란에서 한가쿠 고젠이라는 여성이 막부 토벌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무사 가문에서는 여성도 전투 훈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소설가 가이온지 쥬고로는 도모에와 야마부키가 요시나카를 지원하던 나카하라 씨와 긴지(金刺) 집안에서 파견한 여성 부관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24]
메이지 시대의 자유 민권 운동가인 타케스에 요쇼는 도모에가 요시나카의 측근이자 측실이었으며, 요시나카의 아들 요시타카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군담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제시했다.[16]
4. 전설
《헤이케 이야기》에 따르면, 교토에서 헤이케를 몰아냈지만 교토의 치안 회복은 물론 법황과의 관계 회복에도 실패하고, 요시쓰네에 쫓겨 달아나던 미나모토노 요시나카는 300기를 가지고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군사들에 맞서 싸웠지만, 다 싸워 이기고 보니 남은 것은 다섯 기밖에 되지 않았다. 다섯 기 가운데는 도모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시나카는 자신의 불리함을 깨닫고 도모에에게 “너는 여자니 어디로든 피해라. 나는 전사할 각오를 한 몸, 붙잡히게 된다면 자결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여자나 끼고 있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라며 도모에를 피신시키려 했다. 도모에는 떠나려 하지 않았지만, 요시나카가 끝까지 도망칠 것을 권하자 “마지막 봉공(奉公)으로 제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마침 30기를 거느리고 나타난 무사시의 장사 온다 모로시게에게 달려가, 모로시게 옆에 말을 대고 힘껏 잡아채서 자신이 타고 있던 안장 앞가리개에 밀어붙인 다음 목을 비틀어 베고 집어던져 버렸다. 그리고 갑주를 벗어 던지고 동쪽을 향해 달아났다.
이것은 가쿠이치본(覺一本)이고, 야사카본(八坂本) 《헤이케 이야기》에서는 도모에를 쫓아온 적장을 거꾸로 공격해 쓰러뜨린 뒤 다시 요시나카에게 왔다. 자신을 떠나지 않으려는 도모에에게 “너의 후사를 잇는 것이 네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봉공이다.”라는 말을 듣고서야 동쪽을 향해 사라졌다고 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고본으로 알려진 엔쿄본(延慶本)에는 어린 시절부터 요시나카와 함께 자라고 힘도 무예도 서로 비등한 사이였던 요시나카에게 도모에는 큰 힘이 되었고, 요시나카의 거병에도 종군하였으며, 교토에서 쫓겨난 요시나카를 따라온 군사가 7기만 남았을 때도 도모에는 좌우에서 오는 무사들을 좌우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졸라 머리를 떼어 죽였다고 한다. 아와즈 전투에 도착한 뒤에는 요시나카에게 다섯 기밖에 남아있지 않았는데, 그때 이미 도모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겐페이 성쇠기》에서는 구리카라 고개의 전투에서 도모에가 대장의 한 명으로서 등장하는데, 이때 나이가 28세였다고 한다. 요시나카는 사나운 말을 잘 다루고 험난한 비탈길도 잘 다니는 도모에를 전투 때마다 항상 갑옷을 입히고 큰 칼과 센 활을 들려 지휘관으로 명해 내보냈다고 하니 여기에서도 충분히 활약했을 것이다. 요코타가와라의 전투에서도 7기를 죽이고 이름을 떨쳤다(나가토본長門本과도 비슷한 서술이 있다). 우지 강 전투에서는 하타케야마 시게타다와의 싸움이 그려져 있는데, 도모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시게타다에게 한자와 로쿠로(半沢六郎)가 “기소 나리(木曾殿)의 유모 나카미노곤노카미(中三権頭)의 딸 도모에입니다. 강궁을 잘 다루고 사나운 말로 능히 길들이며, 유모자(乳母子)이자 첩으로써, 집안에서는 아이를 기르고, 군에서는 대장군을 맡아, 이마이·히구치와는 형제로서, 두려움의 대상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훗날 와다 요시모리의 아내가 되어 아사히나 요시히데를 낳았다.[21] 와다 전투 이후 에치고국(越中国) 후쿠미쓰(福光)의 이시구로 씨에게 의탁해 출가하여 죽은 주군과 부친, 형제와 아들의 명복을 빌며 나날을 보냈고 91세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현재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나가노현 기소 군 기소마치, 니가타현 조에쓰시 등 각지에 도모에 고젠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것이 전하고 있지만, 어느 것도 도모에 고젠의 진짜 무덤이라고 밝혀진 것은 없다.
가쿠이치본(覚一本)에는 나이가 적혀 있지 않지만, 백이십구본(百二十句本)에는 22~3세, 엔쿄본에는 30세, 나가토본에는 32세, 《겐페이 성쇠기》에는 28세로 되어 있다.
일본 학자가 발견한 소행성 4896호의 이름에도 도모에가 붙어 있다. 여자 무장에 대한 《헤이케 이야기》나 《겐페이 성쇠기》의 기술은 사실로 다 믿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이 있어 문학적 각색일 가능성도 높다. 다만 가마쿠라 막부의 정사인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는 겐린(建仁) 원년(1201년)에 에치고(越後)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에치고 죠씨(越後城氏) 집안의 한가쿠 고젠(坂額御前)이라는 여자의 분투로 막부의 토벌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는 기사가 있다. 당시의 가이ㆍ시나노ㆍ에치고 지방에서는 무사의 집안의 여자들도 제1급에 준하는 전투훈련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일본의 소설가 가이온지 쥬고로(海音寺潮五郞)는 긴지(金刺) 집안이 소유했던 성읍 가운데 ‘야마후키’라는 이름을 가진 성이 있는 점을 들어, 도모에와 야마부키는 요시나카의 지지 세력이던 나카하라(中原)ㆍ긴지 집안의 사람 가운데 무예에 뛰어난 여자를 골라서 부관 내지 비서관으로 삼아 파견했던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다.
나가노 현의 기소 군 히요시무라(日義村)에는 도모에가후치(巴之淵)라는 지명이 남아있는데, 원래 도모에가 이 강에 살던 용의 화신으로서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해 요시나카를 도왔다는 이 지방 전승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헤이케 타도의 영지를 받은 요시나카가 구리카라 고개라는 고갯길로 진군할 때였는데, 인근 마을에 살던 도모에가 강에서 옷감을 말리는데 거기로 요시나카의 말이 지나가는 바람에 물이 튀어서 옷감이 젖어버렸고, 화가 난 도모에는 대번에 요시나카를 말을 탄 그대로 확 들어올려 도이데(戶出) 마을로 던져버렸다. 그대로 수십 매나 되는 논 위로 던져진 요시나카는 그대로 소나무의 가지에 걸려버렸지만, 화내기는커녕 오히려 요시나카는 도모에를 데리고 전쟁에 나아갔다고 한다. 도이데 중심부에는 도모에 정(巴町)이라는 마을이 있고, 해마다 도이데노 신사(戶出野神社)의 가을 마쓰리 때면 마을의 여자아이가 뽑혀 도모에 고젠으로 분장하고 참가한다.
요시나카가 말과 함께 걸린 소나무는 후세에 말걸이 소나무(駒かけの松)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나무가 있었다는 장소조차 기록에 없을 뿐 아니라 도이데에 보관된 자료를 봐도 그런 전설은 없다. 지금의 오시미즈 지역에 마을이 생긴 것은 에도 초기의 일이지 헤이안 시대에는 그 지역에 마을이 있지도 않았고, 있었다 해도 인근 요시즈미(吉住) 마을(지금의 일본 다카오카시 토이데 요시즈미)의 일부에 불과했다. 다이쇼 8년에 간행된 토이데 관련 사료에는 주에이(壽永) 3년(1183년) 5월 11일에 한야노(般若野)에서 구리카라로 향하던 요시나카가 잠깐 쉬느라 말을 매어두었다는 말걸이 소나무(駒繋ぎの松)의 전설만 나온다. 나무는 정작 1894년(메이지 24년) 9월 11일에 서남쪽에서 불어온 폭풍으로 나무의 가지 한 쪽이 꺾였고, 1909년(메이지 42년) 8월에 전부 베여나가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그녀는 요시나카의 지휘 하에, 전쟁 중 300명의 사무라이를 이끌고 2,000명의 적대적인 다이라 씨족의 병사들과 맞서 싸웠다. 1182년 다이라 씨족을 격파하고 서부 지방으로 몰아낸 후, 요시나카는 교토를 점령하고 미나모토 씨족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의 사촌 요리토모는 요시나카를 꺾으려 했고, 그의 형제 요시츠네와 노리요리를 보내 그를 죽이려 했다.
요시나카는 1184년 2월 21일 아와즈 전투에서 요리토모의 군대와 싸웠고, 도모에 고젠은 적의 머리 하나 이상을 베었다. 요시나카의 군대는 용감하게 싸웠지만, 수적으로 열세였고 압도당했다. 요시나카가 그곳에서 패배했을 때, 그의 병사 중 몇 명만 남았고, 그는 도모에 고젠에게 양아들과 함께 죽고 싶다며 도망가라고 말했다.
그 뒤의 일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1184년 아와즈 전투에서[12] 그녀는 무사시의 혼다노 모리시게의 목을 베었다고 알려져 있다.[13] 그녀는 또한 우치다 이에요시를 죽이고 하타케야마 시게타다에게 체포되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14] 도모에 고젠은 무사시 씨족의 지도자의 목을 벤 후, 그의 머리를 그녀의 주인인 요시나카에게 바쳤다.[15]
군기물어 『헤이케 이야기』의 『가쿠혼』에만 "기소 최후"의 장에 등장하며, 기소 사천왕과 함께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의 헤이 씨 토벌에 종군하여, 겐페이 전쟁(지쇼・에이겐의 난)에서 싸우는 괴력과 강궁의 여무장으로 그려져 있다. "기소노 도노는 시나노에서, 토모에・야마부키라는 두 명의 측실[19]을 거느렸다. 야마부키는 배려[20]가 있어, 도읍에 머물렀다. 그중에서도 토모에는 피부가 희고 머리카락이 길며, 용모가 정말 뛰어났다. 강궁 정병, 한 사람이 천 명을 당하는 병자(つわもの)였다"라고 기록되어, 우지가와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도망치는 요시나카를 따라, 마지막 7기, 요시나카・이마이 카네히라・도모에 고젠・테즈카 미츠모리・테즈카 벳토 5기가 되어도 쓰러지지 않았다고 한다. 요시나카는 "너는 여자이니 어디든 도망가라. 자신은 전사할 각오이니, 마지막에 여자를 데리고 있었다는 말은 좋지 않다"라며 토모에를 도망시키려 한다. 토모에는 계속해서 도망치려 하지 않았지만, 거듭 말했기에 "마지막 싸움을 보여드리겠습니다(마지막 봉사입니다)"라고 말하고, 괴력으로 평판이 자자한 적장・오다(온다) 하치로 모리시게가 나타나자, 말을 나란히 하여 끌어내리고, 목을 베었다. 그 후 토모에는 갑옷과 투구를 벗어던지고 도고쿠 쪽으로 도망친 곳에서 이야기에서 모습을 감춘다.
야사카류의 『백이십구본』에서는, 토모에를 쫓아온 적장을 물리친 후, 요시나카에게 도망치라는 말을 듣고, 후세를 애도하는 것이 마지막 봉사라고 타이르고 동쪽으로 향하여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하며, 『나가토본』에서는, 도망친 후, 에치고국 토모스기에 살며 비구니가 되었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형태를 나타낸다고 여겨지는 『엔케이본』에서는, 어릴 적부터 요시나카와 함께 자라, 괴력・격투의 무예 훈련 상대로서 요시나카에게 괴력을 인정받아, 성장하여 전쟁에도 징발되었다고 한다. 교토를 떠나는 요시나카 세력이 7기가 되었을 때, 토모에는 좌우에서 덮쳐온 무사를 좌우의 옆구리에 끼워 조여, 두 명의 무사는 머리가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아와즈 전투에서 아와즈에 도착했을 때에는 요시나카 세력이 5기가 되었지만, 이미 그 안에 토모에의 모습은 없고, 전사했는지 도망쳤는지, 그 소식은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겐페이 성쇠기』에서는, 구리카라 고개의 전투에도 대장 중 한 명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요코타가와라의 전투에서도 일곱 기를 베어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나가토본』에도 유사한 기술이 있다). 우지가와의 전투에서는 하타케야마 시게타다와의 싸움도 묘사되어, 시게타다에게 토모에가 누구인지 질문받은 한자와 로쿠로는 "기소노 도노의 유모에, 나카산 곤노의 딸 토모에라는 여자입니다. 강궁의 숙련자, 거친 말 타기의 명수. 유모의 자식이면서 첩(오모이모노)으로 삼고, 안에서는 아이처럼 대하며, 군에서는 일방의 대장군으로, 더 이상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지 않습니다. 이마이・히구치와 형제로, 무서운 자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적장과의 격투와 요시나카와의 이별이 더욱 자세하게 묘사되어 "기소노 도노에게는, 아오이, 토모에라는 두 명의 여장군이 있으며, 아오이는 작년 봄 토라나미 산의 전투에서 죽었다"라고 말한 우치다 사부로 이에요시를 죽인 후, 요시나카는 "내가 작년 봄 시나노국을 떠날 때 처자를 버리고, 다시 보지 못하고, 영원한 이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슬프다. 그러므로 남은 흔적까지, 이 일을 알려 후세를 애도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마지막 동반자보다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빨리빨리 숨어 도망쳐 시나노로 내려가, 이 모습을 사람들에게 말하라"라고,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사람들에게 전함으로써 그 후세를 애도하도록 말하고 전장을 떠나고 있다. 도망친 후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게서 가마쿠라로 소환되어, 와다 요시모리의 아내가 되어 아사히나 요시히데를 낳았다[21].와다 전투 후에, 엣추국도나미군후쿠미쓰의 이시구로 씨에게 몸을 의탁하여, 출가하여 주・친・자의 보리를 애도하는 나날을 보내며, 91세로 생애를 마쳤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덧붙여, 『가쿠혼』에서는 나이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백이십구본』에서는 22, 3세, 『엔케이본』에서는 30세 정도, 『나가토본』에서는 32세, 『겐페이 성쇠기』에서는 28세로 하고 있다.
5. 묘소
각지에 도모에 고젠의 묘소라고 여겨지는 곳이 현존한다. 주요 장소는 다음과 같다.
그 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도 도모에 고젠의 묘라고 전해지는 오륜탑(동시 이와토)과 즈카(동시 모리자키)가 있다.[29]
6. 대중문화
도모에 고젠은 여러 예술 작품과 대중 매체에서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 '''고전'''
- 노: 바
- 가부키: 여잠
- '''가요곡'''
- 미나미 하루오: 바가오카 환상
- '''소설'''
- 마쓰모토 토시아키: 바고젠
- 스즈키 키이치로: 바고젠
- 토미타 츠네오: 바고젠
- 아사쿠라 타쿠야: 그대의 흔적을
- Tomoe Gozen (제시카 아만다 샐먼슨): 도모에 고젠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세계 배경의 히어로 판타지. 속편으로 The Golden Naginata와 Thousand Shrine Warrior가 있으나, 모두 일본에서는 번역되지 않았다.
- '''드라마'''
- 신·헤이케 이야기 (1972년, NHK대하 드라마): 고시로 미야코 출연
- 무사시보 벤케이 (1986년, NHK): 다이치 마오 출연
- 요시츠네 (2005년, NHK 대하 드라마): 고이케 에이코 출연
- 가마쿠라 시대의 13인 (2022년, NHK 대하 드라마): 아키모토 사야카 출연
- '''만화'''
- 노가미 케이: 무지개처럼
- 후지타 카즈히로: 우시오와 토라 외전 번개의 춤
- 소니시 켄지: 고양이 고양이 일본사
- 카와모토 호무라, 시오즈카 마코토: 마녀 대전 32명의 이재의 마녀는 서로 죽인다

6. 1. 주요 작품
도모에 고젠은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의 지휘 아래 300명의 사무라이를 이끌고 2,000명의 다이라 씨족 병사들과 맞서 싸웠다.[12] 1184년 아와즈 전투에서 무사시의 혼다노 모리시게의 목을 베었다고 알려져 있으며,[13] 우치다 이에요시를 죽이고 하타케야마 시게타다에게 체포되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14] 무사시 씨족 지도자의 목을 벤 후, 그의 머리를 요시나카에게 바쳤다고도 한다.[1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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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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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女の中世:小野小町・巴・その他
日本エディタースクール出版部
1989-08
[24]
문서
[25]
웹사이트
義仲寺(ぎちゅうじ)とは
https://kotobank.jp/[...]
コトバンク
2021-07-30
[26]
웹사이트
巴御前をしのび法要 福光・巴塚公園
https://www.chunichi[...]
中日新聞
2021-07-30
[27]
웹사이트
巴塚・葵塚
https://www.oyabe.in[...]
小矢部市観光協会
2021-07-30
[28]
문서
[29]
서적
三浦半島の口碑伝説百選
横須賀文化協会
1958
[30]
문서
[31]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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