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신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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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신탁청은 1990년 동독의 국유 재산을 관리하고 시장 경제 원칙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동독 선거 이후 사유화 중심으로 업무가 변경되었으며, 1994년 해체 시까지 15,000개 이상의 기업을 매각하고 4,358개의 기업을 재사유화했다. 신탁청은 666억 마르크의 매각 수익을 올렸지만, 초기 추산 기업 가치에 비해 낮은 수익을 기록했고,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되면서 비판을 받았다. 신탁청 해체 후에는 연방신탁후속특별관리청, 베를린경영합자회사, 신탁부동산회사, 농림지매각관리회사 등의 후속 기관이 설립되어 남은 업무를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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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신탁청 | |
---|---|
개요 | |
기관 종류 | 신탁 기관 |
설립 | 1990년 7월 1일 |
해산 | 1994년 12월 31일 |
본부 위치 | 베를린 |
임무 | |
목표 | 동독 국유 재산의 민영화 |
감독 기관 | 독일 연방 재무부 |
책임자 | 동독 정부, 이후 독일 연방 정부 |
조직 | |
직원 수 | 1991년 1월 기준 약 3,000명 |
활동 | |
민영화 기업 수 | 약 14,000개 기업 |
수입 | 약 2,700억 독일 마르크 |
논란 | 민영화 과정에서의 비판 및 논란 존재 |
기타 | |
후신 기관 | Bundesanstalt für vereinigungsbedingte Sonderaufgaben (BvS) (통합 관련 특별 과제 연방 기관) Bodenverwertungs- und -verwaltungs GmbH (BVVG) (토지 활용 및 관리 유한회사) |
2. 역사
1990년 3월 1일, 동독 개혁을 주도하던 '원탁회의'는 '신탁청'법을 제정하여 동독 '인민재산'을 관리하고 시장경제 원칙에 따른 기업경영을 달성하고자 했다. 이는 동독 시민단체와 모드로우 정부의 경제개혁 논의와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1990년 3월 18일 동독 선거에서 보수정당 연합세력인 '독일연맹'이 승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독 집권당인 기민/기사련과의 통일 협상이 구체화되면서, 신탁청의 업무는 '신탁 관리'에서 '사유화'로 변질되었다.[11]
새로 구성된 동독인민의회는 1990년 6월 17일 '국유재산의 사유화 및 재편성을 위한 법'(약칭 Treuhandgesetz(THG), '신탁법')을 제정(7월 1일 발효)하여 공유재산의 사유화 및 매각 임무를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서독 정치인들과 경제계의 입장이 크게 반영되었다.[11]
1990년 7월 1일, 모든 기업은 주식회사로 전환되었고, 신탁청은 45,000개의 공장을 가진 7,894개의 인민소유기업(VEBs) 주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는 동독 전체 일자리의 40% 이상에 해당했다.[11]
신탁청 초대 청장으로 라이너 골케(Rainer Gohlke)가 취임했으나 2개월 만에 사임했고, 1990년 8월 20일 데틀레프 카르스텐 로베더(Detlev K. Rohwedder)가 취임했으나 8개월 후 암살당했다. 1991년 4월, 비르기트 브로이엘(Birgit Breuel)이 3대 청장으로 취임하여 1994년 말 신탁청 폐지 시까지 역임했다.[11]
업무 특성에 따라 신탁청은 자회사를 설립했다. 1990년 10월에는 상업부문 사유화를 위한 유한회사(GPH)를 설립하여 국영상점, 음식점, 약국, 호텔 등의 사유화를 담당했고, 1991년 여름 해체되었다. 1991년 3월에는 신탁청부동산회사(TLG)를 설립하여 비업무용 부동산과 국가보위부(Stasi), 인민군, 정당 및 사회단체 부동산을 매각·관리했다. 1992년 중반에는 농림업과 수산업용 토지를 분리하여 농림지매각관리회사(BVVG)가 담당했다.[11]
신탁청 직원 수는 1990년 여름 300여 명에서 1993년 말 최대 4,800명까지 증가했다가, 1994년 말에는 2,500여 명으로 감소했다.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신탁청 직원의 친인척은 기업 인수를 금지했다.[11]
1994년 12월 31일, 신탁청은 해체되고 몇 개의 후속기구가 생겼다. 연방신탁후속특별관리청(BVS)은 신탁청 업무를 인수했고, 베를린경영합자회사(BMG)는 사유화되지 않은 기업을 관리·매각했으며, 신탁부동산회사(TLG)와 농림지매각관리회사(BVVG)는 부동산 사유화를 담당했다.[11]
신탁청은 해체될 때까지 15,102개의 기업체를 매각하고, 4,358개의 기업체를 재사유화했으며, 25,030개의 소규모 사업장을 사유화하고, 46,552건의 부동산을 매각했다. 총 91,042건의 사유화를 통해 의 매각수익을 올리고, 의 투자와 150만 개의 일자리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는 초기에 추산되었던 기업가치 약 의 1/10 수준에 불과했다. 사유화된 기업 중 구동독인에 의한 매입은 6%, 외국인 투자자 매입은 9% 정도였다.[11]
2. 1. 설립 배경
1990년 3월 1일, 동독의 민주화 과정에서 '원탁회의'가 발의한 '신탁청'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동독 '인민재산'을 신탁 관리하고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기업을 경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동독의 정당 DJ(Demokratie Jetzt, Democracy Now) 대표 볼프강 울만(Uhlmann)은 '원탁회의'에서 국유재산 처리 방안을 처음 제시했고, 이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3월 1일 각료회의는 울만의 제안을 반영한 모드로우 정부의 안에 따라 '인민재산의 신실한 관리를 위한 관청', 즉 신탁청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11]그러나 1990년 3월 18일 동독 선거에서 보수정당 연합세력인 '독일연맹'이 승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독 집권당인 기민/기사련과의 통일 협상 과정에서 신탁청의 업무는 '신탁 관리'에서 '사유화'로 변질되었다. 1990년 6월 17일 제정된 '국유재산의 사유화 및 재편성을 위한 법'(약칭 Treuhandgesetz(THG), 신탁법)은 공유재산의 사유화 및 매각을 규정하고, "신속하고 광범위한 사유화"를 통한 기업 경영 정상화를 최우선 목표로 설정했다. 이 과정에서 서독 정치인들과 경제계 대표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했다.[11]
1990년 7월 1일, '화폐・경제・사회통합'(WWSU)과 함께 시행된 '신탁법'에 따라 신탁청이 설립되었다. 모든 기업들은 주식회사로 전환되었고, 인민소유기업(VEBs)의 주식은 신탁청이 소유하게 되었다. 신탁청은 45,000개의 공장을 가진 7,894개의 인민소유기업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는 동독 전체 일자리의 40% 이상을 차지했다.[11]
2. 2. 역할 변화
1990년 3월 1일, 동독 개혁을 주도하던 '원탁회의'는 '신탁청'법을 제정하여 동독 '인민재산'을 관리하고 시장경제 원칙에 따른 기업경영을 달성하고자 했다. 이는 동독 시민단체와 모드로우 정부의 경제개혁 논의와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1990년 3월 18일 동독 선거에서 보수정당 연합세력인 '독일연맹'이 승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서독 집권당인 기민/기사련과의 통일 협상이 구체화되면서, 신탁청의 업무는 '신탁 관리'에서 '사유화'로 변질되었다.[11]새로 구성된 동독인민의회는 1990년 6월 17일 '국유재산의 사유화 및 재편성을 위한 법'(약칭 Treuhandgesetz(THG), '신탁법')을 제정(7월 1일 발효)하여 공유재산의 사유화 및 매각 임무를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서독 정치인들과 경제계의 입장이 크게 반영되었다.[11]
1990년 7월 1일, 모든 기업은 주식회사로 전환되었고, 신탁청은 45,000개의 공장을 가진 7,894개의 인민소유기업(VEBs) 주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는 동독 전체 일자리의 40% 이상에 해당했다.[11]
신탁청 초대 청장으로 라이너 골케(Rainer Gohlke)가 취임했으나 2개월 만에 사임했고, 1990년 8월 20일 데틀레프 카르스텐 로베더(Detlev K. Rohwedder)가 취임했으나 8개월 후 암살당했다. 1991년 4월, 비르기트 브로이엘(Birgit Breuel)이 3대 청장으로 취임하여 1994년 말 신탁청 폐지 시까지 역임했다.[11]
업무 특성에 따라 신탁청은 자회사를 설립했다. 1990년 10월에는 상업부문 사유화를 위한 유한회사(GPH)를 설립하여 국영상점, 음식점, 약국, 호텔 등의 사유화를 담당했고, 1991년 여름 해체되었다. 1991년 3월에는 신탁청부동산회사(TLG)를 설립하여 비업무용 부동산과 국가보위부(Stasi), 인민군, 정당 및 사회단체 부동산을 매각·관리했다. 1992년 중반에는 농림업과 수산업용 토지를 분리하여 농림지매각관리회사(BVVG)가 담당했다.[11]
신탁청 직원 수는 1990년 여름 300여 명에서 1993년 말 최대 4,800명까지 증가했다가, 1994년 말에는 2,500여 명으로 감소했다.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신탁청 직원의 친인척은 기업 인수를 금지했다.[11]
1994년 12월 31일, 신탁청은 해체되고 몇 개의 후속기구가 생겼다. 연방신탁후속특별관리청(BVS)은 신탁청 업무를 인수했고, 베를린경영합자회사(BMG)는 사유화되지 않은 기업을 관리·매각했으며, 신탁부동산회사(TLG)와 농림지매각관리회사(BVVG)는 부동산 사유화를 담당했다.[11]
신탁청은 해체될 때까지 15,102개의 기업체를 매각하고, 4,358개의 기업체를 재사유화했으며, 25,030개의 소규모 사업장을 사유화하고, 46,552건의 부동산을 매각했다. 총 91,042건의 사유화를 통해 의 매각수익을 올리고, 의 투자와 150만 개의 일자리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이는 초기에 추산되었던 기업가치 약 의 1/10 수준에 불과했다. 사유화된 기업 중 구동독인에 의한 매입은 6%, 외국인 투자자 매입은 9% 정도였다.[11]
2. 3. 조직 확대 및 운영
1990년 3월 1일, 동독 개혁을 주도하던 '원탁회의'의 발의로 '신탁청'법이 제정되어 '인민재산'의 신탁 관리와 시장경제 원칙에 따른 기업 경영을 목표로 신탁청(원신탁청: Ur-Treuhandanstalt)이 설립되었다. 동독의 정당 DJ(Demokratie Jetzt; Democracy Now)의 대표 볼프강 울만(Uhlmann)은 '원탁회의'에서 국유재산 처리에 관한 의견을 처음 제시하였고, 이는 큰 반향을 일으켜 3월 1일 각료회의에서 신탁청 설립으로 이어졌다.[11]그러나 1990년 3월 18일 동독 선거에서 보수정당 연합세력인 '독일연맹'이 승리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서독 집권당인 기민/기사련과의 통일 협상 과정에서 6월 17일 제정된 '신탁법'(Treuhandgesetz(THG))은 공유재산의 사유화 및 매각을 규정하며, '신속하고 광범위한 사유화'를 통한 기업 경영 정상화를 목표로 하였다. 이는 '신탁 관리'에서 '사유화'로의 변질을 의미했다. 서독 정치인들의 '본(Bonn) 구상'과 서독 경제계의 '빌레펠트(Bielefeld) 구상'이 '신탁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11]
1990년 7월 1일, 모든 기업은 주식회사로 전환되었고, 신탁청은 7,894개의 인민소유기업(VEBs)과 45,000개의 공장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는 동독 전체 일자리의 40% 이상에 해당했다.[11]
초대 청장 라이너 골케(Rainer Gohlke)는 2개월 만에 사임했고, 1990년 8월 20일에 취임한 데틀레프 카르스텐 로베더(Detlev K. Rohwedder)는 8개월 후 암살당했다. 1991년 4월, 비르기트 브로이엘(Birgit Breuel)이 3대 청장으로 취임하여 1994년 말 신탁청 폐지 시까지 역임했다.[11]
업무 특성에 따라 자회사도 설립되었다. 1990년 10월에는 상업 부문 사유화를 위한 유한회사(GPH)가 설립되어 국영상점, 음식점, 약국, 호텔 등의 사유화를 전담했고, 1991년 여름 해체되었다. 1991년 3월에는 신탁청부동산회사(TLG)가 설립되어 비업무용 부동산과 국가보위부(Stasi), 인민군, 정당 및 사회단체의 부동산을 매각, 관리했다. 1992년 중반에는 농림업과 수산업용 토지를 분리하여 농림지매각관리회사(BVVG)가 담당했다.[11]
직원 수도 증가하여 1990년 여름 300여 명에서 1993년 말 최대 4,800명까지 근무했다. 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신탁청 직원의 친인척은 기업 인수가 금지되었다. 1994년 12월 31일 신탁청은 해체되고 몇 개의 후속기구가 생겼다. 연방신탁후속특별관리청(BVS)은 신탁청의 업무를 인수했고, 베를린경영합자회사(BMG)는 남은 기업의 관리 및 매각을, TLG와 BVVG는 부동산 사유화를 계속 담당했다.[11]
신탁청은 해체될 때까지 15,102개의 기업체를 매각하고, 4,358개의 기업체를 재사유화했으며, 소규모 사업장 25,030개를 사유화하고, 부동산 46,552건을 매각하여 총 91,042건의 사유화를 기록했다. 매각 수익은 이었고, 의 투자와 150만 개의 일자리가 보장되었다. 초기 기업 가치 추산액인 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사유화된 기업 중 구동독인에 의한 매입은 6%, 외국인 투자자 매입은 9%에 불과했다.[11]
2. 4. 해체 및 후속 기구
1990년 3월 1일, 동독 '인민재산'의 신탁 관리와 시장경제 원칙에 따른 기업 경영을 목표로 '원탁회의'의 발의로 '신탁청'법이 제정되어 신탁청(原신탁청: Ur-Treuhandanstalt)이 설립되었다.[11] 그러나 1990년 3월 18일 동독 선거에서 보수정당 연합세력인 '독일연맹'이 승리하면서, 6월 17일 제정된 '국유재산의 사유화 및 재편성을 위한 법'(약칭 Treuhandgesetz(THG), 이하 '신탁법')에 따라 "사회적 시장경제 원칙 아래 공유재산의 사유화 및 매각"을 주요 임무로 하게 되었다.[11] 이로써 신탁청의 핵심 업무는 '신탁 관리'에서 '사유화'로 변질되었다.[11]1990년 7월 1일, 모든 기업들은 주식회사로 전환되었고, 모든 인민소유기업(VEBs)의 주식은 신탁청이 소유하게 되었다.[11] 신탁청은 45,000개의 공장을 가진 7,894개의 인민소유기업을 소유하게 되었고, 1990년 중반 기준 410만 명의 종사자가 신탁청 소유 기업에서 일하며 동독 전체 일자리의 40% 이상을 차지했다.[11]
신탁청은 업무 특성에 따라 자회사를 설립했다.[11] 1990년 10월에는 상업 부문 사유화를 위한 유한회사(GPH)를 설립하여 국영상점, 음식점, 약국, 호텔 등의 사유화를 전담했고, 1991년 여름 임무 완수 후 해체되었다.[11] 1991년 3월에는 신탁청부동산회사(TLG)를 설립하여 비업무용 부동산과 국가보위부(Stasi), 인민군, 정당 및 사회단체의 부동산을 매각·관리하도록 했다.[11] 1992년 중반에는 농림업과 수산업용 토지를 분리하여 농림지매각관리회사(BVVG)가 담당하게 했다.[11]
1994년 12월 31일, 신탁청은 해체되고 몇 개의 후속 기구가 설립되었다.[11]
신탁청은 해체될 때까지 15,102개의 기업체를 매각하고, 4,358개의 기업체를 재사유화했으며, 소규모 사업장 25,030개를 사유화하고, 46,552건의 부동산을 매각하여 총 91,042건의 사유화를 기록했다.[11] 이를 통해 의 매각 수익을 올리고, 의 투자와 150만 개의 일자리를 보장받았다.[11] 그러나 초기 추산된 기업 가치(약 )의 1/10 수준에 불과한 낮은 매각 수익이었다.[11] 사유화된 기업 중 구동독인에 의한 매입은 6%, 외국인 투자자 매입은 9% 정도였다.[11]
트루핸드는 1994년에 운영을 중단했지만, 여러 재산과 법적 책임은 세 개의 승계 기관으로 이전되었다.[7]
메지에르 정부 하의 동독 국민의회가 신탁청에 부여한 주요 임무는 다음과 같다.[12]
BvS는 2000년 말에 운영을 중단했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존재하며, 나머지 업무는 다른 기관에 위임되었다.[7] TLG와 BVVG는 신 연방주에서 여전히 가장 큰 부동산 소유주이다.[7] 2000년, TLG는 자산 매각에서 독일 연방 정부의 수익 창출을 위한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관리"로 방향을 전환했다.[7] 2007년까지 6년 동안 45,000개의 부동산을 매각하고 15억유로를 재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14억유로 상당의 1,500개의 부동산을 여전히 관리하고 있었다.[7] TLG 자체의 매각 계획은 2008년 7월에 보류되었다.[8] 2020년 1월, TLG Immobilien은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부동산 회사 Aroundtown SA에 인수되었다.[9]
2008년 7월, BVVG는 1992년 설립 이후 약 525000ha의 농지, 비슷한 면적의 산림, 소량의 기타 토지를 매각하여 총 35억유로의 매각 수입을 올렸다고 발표했다.[10] 총 토지 판매량은 작센안할트 주 면적의 약 절반에 달했다.[10] 2007년 말, 여전히 500000ha 이상의 농지와 100000ha 미만의 산림을 소유하고 있었다.[10]
3. 주요 임무 및 활동
이 중 중심 업무는 1991년 4월에 암살된 2대 청장 로베더(독일어:Detler Rohwedder)가 말한 "신속한 사유화, 확고한 경영정상화, 신중한 청산"으로 요약할 수 있다.
신탁청은 8,500개 이상의 국영 기업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또한 약 2400000ha의 농지 및 산림, 구 슈타지의 재산, 구 국민인민군의 상당 부분, 대규모 공공 주택 재산, 그리고 국영 약국 네트워크의 재산을 인수했다.
독일 재통일의 날인 1990년 10월 3일에는 독일 민주 공화국의 정당 및 대중 조직의 재산을 인수했다.[2][3]
4. 조직 구조
신탁청의 임원은 청장과 최소 4명 이상의 이사진으로 구성되었다.[1]
4. 1. 역대 청장
4. 2. 이사진 구성원
신탁청의 임원은 청장과 최소 4명 이상의 이사진으로 구성되었다.직책 | 이름 | 재임 기간 |
---|---|---|
청장 | Peter Moreth|페터 모레트de | 1990년 3월 1일 |
청장 | Reiner Maria Gohlke|라이너 마리아 골케de | 1990년 6월 16일 |
청장 | Detlev Karsten Rohwedder|데틀레프 카르스텐 로베더de | 1990년 8월 20일 (골케 사임 이후) |
청장 | Birgit Breuel|비르기트 브로이엘de | 1991년 4월 13일 (로베더 암살 이후) |
이사 | Hero Brahms|헤로 브람스de | 1992년 6월 1일 (비르기트 브로이엘 대리) |
이사 | Birgit Breuel|비르기트 브로이엘de | 1990년 8월 19일 - 1991년 4월 13일 (이후 청장으로 임명) |
이사 | Horst Foehr|호르스트 푀르de | |
이사 (재정담당, 1992년 6월 1일부터 부청장) | Heinrich Hornef|하인리히 호르네프de | 1992년 6월 1일 |
이사 | Alexander Koch|알렉산더 코흐de | |
이사 | Hans Kramer|한스 크라머de | |
이사 (1992년 6월 1일까지 재정담당, 이후 동유럽 지부 발령) | Wolfram Krause|볼프람 크라우제de | 1992년 6월 1일 |
이사 | Wolf Klinz|볼프 클린츠de | |
이사 | Gunter Rexrodt|귄터 렉스로트de | 1991년 9월 1일 - 1993년 3월 31일 |
이사 | Klaus Schucht|클라우스 슈흐트de | |
이사 | Klaus-Peter Wild|클라우스페터 빌트de | 1990년 8월 9일 |
5. 비판과 논란
독일 신탁청의 운영은 불필요하게 수익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기업을 폐쇄하고, 자금을 오용 및 낭비하며, 불필요하다고 주장되는 해고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90년대 초 국영 기업 직원 250만 명(총 400만 명 중)이 해고되면서,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로부터 상당한 항의를 받았다.[4] 다만, 지지자들은 이전의 국영 기업을 민간에 넘기지 않으면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잃고 경제 회복이 늦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5]
1991년 4월 1일, 독일 신탁청의 회장 데틀레프 카르스텐 로베더가 미상의 암살자(아마도 적군파)에 의해 살해되었다.[6] 그의 뒤를 이어 비르기트 브로이엘이 회장이 되었다.
1994년 운영이 종료되었을 때, 에서 의 부채가 발생했다.
6. 후속 기관
트루한트는 1994년에 운영을 중단했지만, 여전히 많은 재산과 기타 법적 책임이 남아 있었다. 이러한 책임은 세 개의 후속 기관으로 이전되었다.[2][3]
- '''Bundesanstalt für vereinigungsbedingte Sonderaufgaben, BvS'''(연방 통일 관련 특별 업무 기관): 남은 국영 기업을 관리.
- '''Treuhandliegenschaftsgesellschaft'''(현재 TLG Immobilien GmbH): 남은 국영 도시 및 산업 부동산을 관리.
- '''Bodenverwertungs- und -verwaltungs GmbH (BVVG)''': 1992년에 트루한트가 설립한 자회사로 국영 농지, 산림 및 관련 부동산을 관리.
BvS는 2000년 말에 운영을 중단했지만 법적으로는 여전히 존재하며, 나머지 업무는 모두 다른 기관에 위임되었다. TLG와 BVVG는 신 연방주에서 여전히 가장 큰 부동산 소유주이다. 2000년, TLG는 자산 매각에서 독일 연방 정부의 수익 창출을 위한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관리"로 방향을 전환했다. 2007년까지 6년 동안 45,000개의 부동산을 매각하고 15억유로를 재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14억유로 상당의 1,500개의 부동산을 여전히 관리하고 있었다.[7] TLG 자체의 매각 계획은 불리한 경제 상황으로 인해 2008년 7월에 보류되었다.[8] 2020년 1월, TLG Immobilien은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부동산 회사 Aroundtown SA에 인수되었다.[9]
2008년 7월, BVVG는 1992년 설립 이후 약 525000ha의 농지, 비슷한 면적의 산림, 소량의 기타 토지를 매각하여 총 35억유로의 매각 수입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총 토지 판매량은 작센안할트 주 면적의 약 절반에 달했다. 2007년 말, 여전히 500000ha 이상의 농지와 100000ha 미만의 산림을 소유하고 있었다.[10]
7. 영향 및 평가
독일 신탁청의 운영은 불필요하게 수익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기업을 폐쇄하고, 자금을 오용 및 낭비하며, 불필요하다고 주장되는 해고를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90년대 초 국영 기업 직원 400만 명 중 250만 명이 해고되면서 영향을 받은 노동자들의 상당한 항의를 받았다.[4] -- 지지자들은 이전의 국영 기업을 민간에 넘기지 않으면 훨씬 더 많은 일자리를 잃고 경제 회복이 늦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5]
1991년 4월 1일, 독일 신탁청의 회장 데틀레프 카르스텐 로베더가 미상의 암살자(아마도 적군파)에 의해 살해되었다.[6] 그의 뒤를 이어 비르기트 브로이엘이 회장이 되었다.
1994년 운영이 종료되었을 때, 에서 의 부채가 발생했다.
참조
[1]
서적
The film studio : film production in the global economy
Rowman & Littlefield
2005
[2]
웹사이트
Die Treuhandanstalt im Kontext der deutschen Einigung
http://www.uni-hilde[...]
Stiftung Universität Hildesheim (University of Hildesheim)
2007-07-02
[3]
웹사이트
Treuhandanstalt: Privatisation, Unemployment, Protests
https://www.orte-der[...]
Haus der Geschichte
2022
[4]
간행물
Anschluss: Die deutsche Vereinigung und die Zukunft Europas
Laika-Verlag
2014
[5]
간행물
Privatization in Developing Countries: A Summary Assessment
http://www.eces.org.[...]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07
[6]
뉴스
Kalenderblatt: 1.4.1991: Todesschuss aus dem Hinterhalt
http://www.spiegel.d[...]
[7]
웹사이트
TLG – History
http://www.tlg.de/ha[...]
2009-05-12
[8]
뉴스
TLG Immobilien: Federal government halts privatization
http://www.thomas-da[...]
Thomas Daily
2008-07-11
[9]
웹사이트
ZEIT ONLINE | Lesen Sie zeit.de mit Werbung oder im PUR-Abo. Sie haben die Wahl
https://www.zeit.de/[...]
[10]
뉴스
BVVG erzielt in 16 Jahren für den Bund über drei Milliarden Euro Überschuss
http://www.bvvg.de/I[...]
BVVG press release
2008-07-24
[11]
논문
독일 통일과정의 사회갈등과 거버넌스 : 신탁청의 구동독 경제재편 문제 고찰
2009
[12]
논문
독일 신탁관리청의 해체와 후속기관
平和問題硏究所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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