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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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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등충은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의 무장으로, 등애의 아들이다. 256년 아버지의 공적으로 정후에 봉해졌으며, 263년 등애를 따라 촉나라 정벌에 참여했다. 사찬과 함께 제갈첨을 공격하여 승리했으나, 종회의 모함으로 등애와 함께 체포되었다. 종회가 죽은 후 위관의 사주를 받은 전속에게 암살당했다. 서진 시대에 등애의 명예가 회복되었지만, 등충의 존재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미남으로 묘사되며, 아버지 등애를 도와 촉한과의 싸움에서 활약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2. 생애

감로 원년(256년), 단곡의 싸움에서 공을 세운 아버지 등애 덕분에 영읍 500호를 받아 정후[2]에 봉해졌다. 263년에는 촉한 정벌에 아버지와 함께 참전하여, 사찬과 함께 면죽관(綿竹關)을 지키던 제갈첨을 공격했다. 처음에는 촉군의 저항에 밀려 후퇴했으나, 등애의 질책을 받고 다시 공격하여 면죽관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촉나라 멸망 후, 종회사마소에게 등애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모함했다. 사마소의 명으로 종회는 부하 위관을 시켜 등애 부자를 체포했다. 종회가 모반을 꾀하다 죽자, 진상이 밝혀질 것을 우려한 위관등애에게 원한을 품었던 전속을 보내 등애와 등충을 암살했다.

서진 시대에 등애의 명예가 회복되면서, 그의 적손인 등랑이 등용되었으나, 등랑의 아버지가 등충이라고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흰 얼굴의 미남이자 등애 못지않은 무략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젊어서부터 등애를 따라 촉한과의 전투에서 큰 활약을 펼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2. 1. 촉한 정벌

263년 촉한 정벌에 아버지 등애를 따라 참전했다. 사찬과 함께 면죽관(綿竹關)을 지키는 제갈첨을 공격했으나, 촉군의 저항에 밀려 후퇴했다. 그러나 등애의 질책을 받고 다시 공격하여 면죽관을 점령하였다.[1] 같은 해 11월, 촉한의 황제 유선이 항복하여 등애 군은 촉을 제압하는 큰 공을 세웠다.

2. 2. 모함과 죽음

263년 촉한을 정벌할 때 아버지를 따라 참전했다. 사찬과 함께 면죽관(綿竹關)을 지키는 제갈첨을 공격할 때 촉군의 저항에 밀려 후퇴했으나, 등애의 질책을 받고 다시 공격하여 면죽관을 점령하였다.[2]

촉나라가 멸망한 후 종회사마소에게 등애가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모함했다. 사마소등애를 잡아들이라 하자 종회는 부하 위관을 보내 등애 부자를 잡아들였다.[1]

하지만 종회가 모반을 꾀하다 죽고 이에 진상이 밝혀질 것을 우려한 위관등애에게 원한을 품었던 부하 전속을 보내 등애와 등충을 암살했다.[1]

2. 3. 사후

감로 원년(256년)에 아버지 등애가 단곡의 싸움에서 공적을 인정받아, 그 영읍에서 500호를 나누어 등충은 정후[2]에 봉해졌다.

경원 4년(263년), 등애의 부하로 촉한 토벌에 종군하였다. 면죽에서 사찬과 함께 제갈첨과 교전했지만, 초전에 패배하여 등애에게 참수형을 당할 뻔했다. 등충과 사찬은 다시 달려가 싸움을 벌여, 제갈첨 등의 목을 베는 대승을 거두었다. 같은 해 11월[1], 촉한의 황제 유선이 항복하여 등애군은 촉을 제압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후 등애는 "이대로 도 정벌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종회 등에게 반란 계획으로 고발당해, 경원 5년(264년) 정월[1], 등애·등충 부자는 체포되었다. 그 신병은 수도로 송환될 예정이었지만, 반란을 꾀한 종회도 살해되는 혼란 속에서 등애는 그에게 원한을 품은 전속에게 살해되고, 등충 또한 아버지와 함께 죽었다.

서진 시대에 등애의 명예가 회복되었고, 적손인 등랑이 등용되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등충이라고 명언되지는 않았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삼국지연의》에서 등충은 얼굴이 희고 붉은 입술을 가진 소년 장군으로 등장하며, 강유와의 1대 1 싸움에서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인다. 이후 계속해서 아버지가 촉군과 싸우는 것을 도왔다. 면죽관을 공격할 때, 나무로 만든 제갈량의 모습에 놀라 황급히 후퇴했다.

이후 전속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사서의 기록과 큰 차이가 없다.

참조

[1] 서적 三国志/卷04#陳留王 s:zh:三國志/卷04#陳留王
[2] 서적 恵唐亭侯の鄧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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