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라흐티 L-39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라흐티 L-39는 핀란드에서 개발된 20mm 대전차 소총으로, 아이모 라흐티가 설계하여 1940년에 처음 생산되었다.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에서 핀란드군이 사용했으며, T-34와 같은 신형 소련 전차에는 관통력의 한계를 보였지만, 벙커, 장거리 표적, 항공기 등에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L-39/44라는 대공포 파생형도 개발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핀란드군에서 퇴역하여 수집가들의 수집품으로 남게 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핀란드의 소총 - 사코 TRG
    사코 TRG는 핀란드의 사코에서 개발된 볼트 액션 저격 소총 계열이며, .308 윈체스터 탄을 사용하는 TRG-21을 시작으로 다양한 파생형이 개발되었고, 냉간 단조된 수신기, 탈착식 탄창, 조절 가능한 개머리판 등을 특징으로 여러 국가에서 사용된다.
  • 핀란드의 소총 - 사코 Rk 95
    사코 Rk 95는 AK-47 기반의 가스 작동식 핀란드 육군 제식 소총으로, 7.62×39mm M43 탄약을 사용하며 특수 부대에서 FN SCAR-L로 보완되기도 했으나, 가격 대비 성능 및 부품 수급 문제 등으로 논란이 있었다.
  • 20 mm 포 - 2 cm 38호 대공포
    2 cm 38호 대공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한 대공 기관포로, Flak 30의 발사 속도 문제를 개선하여 육군, 해군, 공군, 무장친위대 등 다양한 군에서 운용되었으며, 자주포 탑재 및 2 cm Flakvierling 38 등의 파생형이 존재하고 대공 사격과 지상 목표 제압에 활용되어 여러 영화와 게임에도 등장한다.
  • 20 mm 포 - 비르벨빈트
    비르벨빈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이 4호 전차 차체를 기반으로 제작한 자주대공포이며, 2cm 4연장 기관포를 탑재하고 1944년 초에 개발되어 87대에서 105대 가량 생산되었다.
  • 제2차 세계 대전의 핀란드 화기 - 마우저 C96
    마우저 C96은 피델 페더레 형제가 설계하고 1896년부터 생산된 독일제 반자동 권총으로, 독특한 디자인과 개머리판 장착 기능, 강력한 화력으로 20세기 전반 여러 전쟁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다양한 국가에서 복제 생산되기도 했다.
  • 제2차 세계 대전의 핀란드 화기 - 수오미 기관단총
    수오미 KP/-31은 아이모 라흐티가 개발하여 1931년 핀란드군에 채용된 기관단총으로, 겨울 전쟁과 계속 전쟁에서 활약하며 소련의 PPSh-41 개발에 영향을 주고 여러 나라에서 라이선스 생산되기도 했다.
라흐티 L-39
기본 정보
라흐티 L-39 대전차 소총
라흐티 L-39 대전차 소총
종류반자동 대전차 소총/대물 소총
원산지핀란드
설계일1939년
제조사발티온 키바리테흐다스 (VKT)
생산 기간1939년–1944년
사용 기간1939년–1960년 (–1988년)
사용 국가핀란드
참전겨울 전쟁
계속 전쟁
라플란드 전쟁
파생형L-39/44 대공포
생산량~1,906정
제원
구경20 mm
탄약20×138mmB
급탄10발 들이 박스 탄창
작동 방식가스 작동식
발사 속도최대 30발/분
총구 속도800 m/s
무게49.5 kg
전체 길이2,200 mm
총열 길이1,300.5 mm (51.2 인치)

2. 역사

L-39 대전차 소총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앞두고 핀란드군이 겪고 있던 대전차 화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이모 라흐티의 주도로 개발되었다. 초기에는 13mm 구경도 검토되었으나, 라흐티는 더 강력한 20mm 구경을 주장하여 관철시켰고, 시험 결과 우수한 성능이 입증되어 1939년 '20 pst. kiv /39'라는 제식명으로 채택되었다.[1][2]

겨울 전쟁 (1939-1940) 중에는 시제품 두 정만이 실전에 투입되어 소련군장갑차를 상대로 효과를 보였으나, 본격적인 양산과 배치는 전쟁이 끝난 후에야 이루어졌다. 이어진 계속 전쟁 (1941-1944)에서는 약 1,800정이 생산되어 핀란드군의 주요 대전차 화기로 운용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소련의 구형 전차에 효과적이었지만, T-34나 KV-1과 같은 신형 중(重)장갑 전차가 등장하면서 정면 장갑 관통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L-39는 벙커나 토치카 같은 강화 진지, 장거리 표적, 경전차의 약점을 공격하는 대물 저격총과 유사한 역할로도 활용되었으며, 대공포로 임시 사용되기도 했다. 이러한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완전 자동 사격이 가능한 대공용 개량형 L-39/44가 개발되기도 하였다.

L-39는 성능은 뛰어났지만, 총 무게가 약 50kg에 달하고 탄창 무게도 상당하여 운반과 운용에 큰 어려움이 따랐다. 보통 2인 1조로 운용하거나 순록, 말을 이용해 견인해야 했으며, 특히 1944년 소련군의 대공세 당시 후퇴 과정에서 무거운 무게 때문에 버려지는 경우도 많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 총 1,906정이 생산되었으며, 전쟁 후에도 핀란드군은 상당수의 L-39를 보유하고 있었다. 일부는 베트남 전쟁 이후 부상한 헬리콥터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대공 화기로 예비 물자로 보관되다가 1988년에 최종적으로 퇴역하였다. 이후 많은 L-39가 민간 시장에 매각되었으며, 특히 미국의 총기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2. 1. 개발

아이모 라흐티는 초기에 제기되었던 13mm 대전차 기관총 개발 계획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더 강력한 20mm 구경의 대전차 소총 설계를 추진했다.[1] 당시 핀란드 군 장교들은 20mm 포탄의 포구 속도가 장갑을 관통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며, 발사 속도가 더 빠른 소구경 무기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1] 이러한 배경에서 라흐티는 13.2mm 기관총과 20mm 소총, 두 가지 시제품을 설계했다.[1] 그는 3주 만에 설계 도안을 완성하여 1939년 5월 5일에 제출했으며, 곧이어 두 구경의 프로토타입에 대한 시험이 진행되었다.[2]

핀란드의 국영 총기 공장인 Valtion Kivääritehdas|발티온 키배리테흐다스fi(VKT) 측에서도 처음에는 20mm 구경이 너무 커서 연사 속도가 느리고 실용성이 떨어질 것이라 우려했지만, 라흐티의 주장을 받아들여 두 종류의 시제총을 제작했다.[1] 1939년 진행된 비교 시험 및 겨울 전쟁(제1차 소·핀 전쟁)에서의 실전 테스트 결과, 예상과 달리 20mm 소총이 13.2mm 기관총보다 더 우수한 관통력을 보였으며, 연사 속도도 충분하고 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1][2]

결과적으로 20mm 구경 안이 채택되었고, 사용 탄약을 20×138mmB탄으로 변경한 후 1939년에 '''20 pst. kiv /39''' (20mm 대전차 소총 1939년형)이라는 제식명으로 채택되었다.[1] 이 총은 라흐티의 이름을 따 L-39로 명명되었으며, 최초 양산형 10정은 1940년 4월 10일 VKT에서 생산되었다.[2]

2. 2. 겨울 전쟁 (1939-1940)

겨울 전쟁 (1939–1940) 발발 당시 핀란드는 대전차 화기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때 전선에는 아이모 라흐티가 설계한 20mm 대전차 소총 시제품 단 두 정과 소수의 13.2mm 기관총만이 배치될 수 있었다. 함께 배치된 13.2mm 기관총은 비효율적이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았으나, 20mm L-39 시제품은 소련군의 장갑 차량을 상대로 성공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핀란드는 20mm 구경 설계를 최종적으로 채택하고 L-39라는 제식명으로 생산을 결정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양산은 겨울 전쟁이 끝난 1940년 4월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겨울 전쟁 중에는 시제품 두 정만이 운용되었다.

한편, L-39는 "콜드 찰리"(Cold Charlie)라고 불리는 독특한 대저격수 전술에도 활용되었다. 이 전술은 핀란드군이 일부러 마네킹소련군 저격수의 표적이 되도록 노출시킨 뒤, 마네킹을 쏜 저격수의 위치를 파악하여 L-39로 응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1]

2. 3. 계속 전쟁 (1941-1944)

계속 전쟁(1941년 6월 25일 – 1944년 9월 19일) 동안 핀란드군은 약 1,800정의 L-39를 운용하였다. 전쟁 초기에는 구식 소련군 장갑차를 상대로 유용했으나, 1941년부터 등장한 T-34나 KV-1과 같은 신형 소련 전차의 장갑은 관통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L-39는 대전차 임무 외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벙커의 사격구나 토치카, 기관총 진지, 장거리 표적을 공격하는 대물 저격총과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또한, 경전차의 측면이나 궤도, 연료 탱크 등 약점을 노리거나, 인광탄(phosphorus ammunition)을 사용하여 전차 상부의 열린 해치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전차 포탑을 손상시켜 회전을 방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총기의 우수한 정확성을 활용하여 숙련된 저격수가 운용하기도 했는데, 1943년부터는 저공 비행하는 IL-2 슈투르모비크 공격기의 조종사나 후방 기관총수를 사살하는 사례도 있었으나 흔한 경우는 아니었다.

1942년, 대공 무기로 사용된 L-39


일선 부대에서는 정식 대공 개량형이 나오기 전까지 L-39를 임시방편으로 대공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대공 성능이 인정되어 1944년 여름에는 완전 자동 사격이 가능하도록 개조된 '''L-39/44''' 대공포 300정이 생산되었다. 이 모델은 "'''20 it. kiv (ilmatorjuntakivääri)/39-44'''" (20mm 대공총 1939년형·개량 1944년형)라는 제식명으로 채택되었으며, 대공 조준기, 15발들이 대형 탄창, 나무 그루터기 등에 설치할 수 있는 특수 대공 총좌(마운트)와 서치라이트가 함께 보급되었다.

한편, 1940년 12월경에는 핀란드군의 L-182 장갑차에 탑재된 기존 13.2mm L-35/36 기관총을 L-39로 교체하는 개조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1941년 제1사단의 장갑 부대에서 운용되었다.[2]

그러나 L-39는 약 50kg에 달하는 무게와 6.2kg의 탄창 무게 때문에 운용에 어려움이 많았다. 전장에서는 순록이나 말을 이용해 끌거나 2인 1조로 운반해야 했으며, 고장이 나거나 급히 후퇴해야 할 경우(특히 1944년 여름 소련군의 대공세 시기)에는 무거운 무게 때문에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1944년 소련군 공격 직전 핀란드군은 1,789정의 L-39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전쟁 말기에는 상당수가 유기되었다.

2. 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도 핀란드군은 약 1,650정의 L-39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1951년까지 1,333정이 남아 있었다. 핀란드군은 베트남 전쟁을 통해 헬리콥터가 중요한 전장 요소가 될 것을 인식하고, 예비 물자였던 L-39의 일부를 대헬리콥터 및 대공 화기로 활용했다. 이 용도로 L-39는 1988년까지 사용되다가 이후 폐기되어 수집품이나 박물관 전시용으로 남게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전차 및 대공 화기로서의 역할이 줄어든 L-39/44를 포함한 L-39는 점차 일선에서 물러났고, 생산된 총기의 절반 이상인 약 1,000정이 주로 미국의 민간 수집가들에게 판매되었다. 당시 핀란드 국방부를 통해 미국으로 수출될 때, 총기 자체는 99USD, 목재 운송 상자, 도구 및 수리 키트, 총열 덮개, 8개의 탄창(4상자), 100발의 20mm 탄약을 모두 포함한 가격은 84.99USD였다고 한다. 약 20만 발의 20mm 탄약도 함께 수출되었다.

오늘날 L-39는 희귀 총기로 취급되며, 특히 작동 가능한 상태의 것은 매우 드물어 높은 가치를 지닌다. 시장에 나오는 물건들의 평균 가격은 1만달러 수준이다. 일부 비활성화된 무기(약실에 강철 막대가 용접된 것)는 그 가치 때문에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복원되기도 한다. 탄약이 희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사용 비용을 줄이기 위해 .50 BMG 탄을 사용하도록 개조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주 및 연방법에 따라 민간인이 L-39를 소유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50 구경보다 큰 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파괴적 장치(Destructive Device)로 분류되어 1934년 제정된 국가 화기법(National Firearms Act)의 규제를 받는다. 따라서 민간 소유는 이 법률과 각 주에서 파괴적 장치 소유를 허용하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3. 구조 및 특징

라흐티 L-39는 핀란드에서 개발된 반자동 가스 작동 방식의 대전차 소총으로, 20x138mmB 탄약을 사용한다. 이 탄약은 철갑 탄두를 사용할 경우 300m 거리에서 60° 경사각을 가진 20mm 두께의 장갑판을, 500m 거리에서는 같은 조건에서 16mm 두께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총의 전체 무게는 약 50kg에 달하고, 10발들이 탄창조차 무게가 거의 2kg이나 되어 사용자들이 전장에서 이동시키기에는 매우 무겁고 어려운 무기였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에 의해 견인되거나, 혹은 총을 분해하여 여러 병사가 나누어 운반해야 했다. 현장에서는 2인 1조가 총의 운반과 사격을 담당했다. 전쟁 말까지 VKT(Valtion Kivääritehdas, 국영 소총 공장)에서 1,900정 이상의 L-39가 제조되어 실전에 배치되었다.

L-39는 여러 독특한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강력한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5개의 구멍이 뚫린 소염기와 가죽 또는 고무 재질의 반동판(완충 패드)이 개머리판에 적용되었다. 총열은 발사 후 뜨거워졌을 때 운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나무 덮개로 덮여 있었다. 또한, 매우 강력한 복좌 스프링 때문에 일반적인 장전 손잡이 대신 크랭크 레버를 돌려 노리쇠를 후퇴시키는 방식을 사용하며, 발사 후 노리쇠가 후퇴 고정되었다가 사수가 그립 안전 장치를 겸하는 레버를 조작해야만 전진하여 재장전되는 독특한 작동 방식을 가졌다. 탄창이 총 상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가늠쇠와 가늠자는 총의 좌측에 배치되었으며, 200m에서 1400m까지 거리 조절이 가능했다. 지형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스파이크 달린 다리와 스키 형태의 썰매를 모두 갖춘 특이한 이중 양각대 역시 L-39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3. 1. 작동 방식

총신 선단부에서 매달려 있는 것은 총구 덮개]]

L-39의 독특한 특징은 "수동 닫힘 방식"의 작동 구조이다. 방아쇠를 당기면 약실이 닫힌 상태(클로즈 볼트)에서 발사되지만, 한 발을 사격할 때마다 노리쇠(볼트)는 후퇴한 상태로 고정된다. 사수가 권총 손잡이 앞쪽 아래에 있는 누름식 레버를 쥐어야만 노리쇠가 풀려 전진하고 다음 탄을 약실에 장전하며 약실을 닫아 사격 가능 상태가 된다. 이 방식은 사격 후 약실을 개방하여 총열 내부와 약실, 노리쇠의 통풍을 확보하고 과열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따라서 노리쇠 개방 레버는 안전 장치 역할도 겸한다. 별도의 수동식 안전 장치 조작 레버는 기관부 좌측면, 방아쇠 뭉치 대각선 위에 있다.

사격 후 탄피는 기관부 하부에서 자동으로 배출된다. 이때 탄피는 바로 아래가 아닌 방아쇠울 쪽을 향해 배출되므로, 방아쇠울 앞부분에는 배출되는 탄피의 충격을 줄이기 위한 롤러 형태의 버퍼가 장착되어 있다. 따라서 방아쇠울 앞쪽에 손가락을 두면 배출되는 탄피에 맞을 위험이 있다.

복좌 스프링(리코일 스프링)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손잡이를 당기는 방식 대신 대형 크랭크 핸들이 조작 기관부에 달려 있다. 이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체인을 통해 노리쇠가 뒤로 당겨져 후퇴 위치에서 고정된다. 노리쇠가 고정되면 크랭크 핸들을 다시 왼쪽으로 돌려 원위치시켜야 한다.

20mm 탄 10발을 장탄하는 거대한 탄창은 기관부 상부에 있는 장탄구에 장착되며, 장탄구 후방의 탄창 멈치에 의해 고정된다. 탄창을 장착하지 않았을 때 기관부에 먼지나 이물질이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탄구에는 앞으로 열리는 덮개가 장착되어 있다.

총신은 65 구경장으로 길며, 총구부에는 다공식 소염기(머즐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있다. 총구부는 사용하지 않을 때 덮기 위한 덮개가 있으며, 덮개는 가는 쇠사슬로 총신과 연결되어 있다. 총신부의 상당 부분은 나무로 된 방열 덮개(피통)로 덮여 있으며, 피통에는 냉각 구멍들이 뚫려 있다. 가스 튜브는 총신 아래에 있으며, 가스 튜브 선단에는 가스 조절기를 갖추고 있다.

탄창이 상부에 장착되기 때문에, 가늠쇠와 가늠자는 총의 좌측 측면에 있으며, 오른손잡이 사격을 전제로 한다. 가늠쇠는 방열 덮개 후단의 가스 튜브 지지대에, 가늠자는 탄창 장착부 옆에 있다. 가늠자는 사거리 200m에서 1400m 범위에서 조절 가능하다.

총구 부분. 다공식의 소염기가 장착되어 있다.


오른쪽에서 본 기관부. 중앙에 크랭크 핸들이 보인다.

3. 2. 반동 제어

이 소총은 강력한 20mm 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반동을 줄이기 위한 여러 장치가 적용되었다. 총구에는 5개의 구멍이 뚫린 다공식 소염기(머즐 브레이크)가 장착되어 발사 시 발생하는 가스를 분산시켜 반동을 억제한다.[1] 또한, 사수가 어깨에 견착하는 개머리판에는 가죽이나 고무로 된 쿠션 패드가 부착되어 충격을 흡수한다. 개머리판 하부에도 가죽 쿠션 패드를 추가로 장착할 수 있었다.[1] 양각대와 총 본체가 연결되는 부분에도 발사 시의 반동과 총의 무게가 양각대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완충 기구가 내장되어 있다.[1]

치크 패드와 개머리판 하부 쿠션 패드를 장착한 L-39
총신 선단부에서 매달려 있는 것은 총구 덮개


한편, 탄의 위력만큼이나 내부의 복좌 스프링(리코일 스프링) 역시 매우 강력하여, 일반적인 소총처럼 손으로 당기는 장전 손잡이(코킹 레버) 대신 큰 크랭크 핸들을 사용한다. 이 크랭크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체인이 움직여 노리쇠를 뒤로 당겨 장전 준비 상태로 만들 수 있다.[1]

3. 3. 탄창

라흐티 L-39는 분리 가능한 상자형 탄창을 사용하며, 기관부 상부에 장착한다. 기본 탄창은 20mm 탄 10발을 장탄할 수 있었고, 무게는 거의 2kg에 달했다. 이 무게 때문에 사용자들은 총기 운반에 어려움을 겪었다.

탄창 오른쪽에는 덮개가 있는 관측 슬릿이 있어 남은 탄약 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대공포 용도로 15발들이 탄창도 나중에 개발되었다.

탄창은 기관부 상부의 장탄구에 삽입되어 후방의 탄창 멈치로 고정되었다. 탄창을 장착하지 않았을 때는 먼지나 이물질 유입을 막기 위해 앞으로 열리는 덮개가 장탄구를 보호했다.

수송용 케이스에 담긴 L-39 탄창과 20mm 탄약

3. 4. 조준경 및 양각대

탄창이 상부에 장착되는 구조 때문에, 가늠쇠와 가늠자는 총의 좌측 측면에 위치한다. 이는 오른손잡이 사수를 기준으로 설계된 것이다. 가늠쇠는 탄창 장착부 옆에, 가늠자는 방열 피통 후단의 가스 튜브 지주에 있다. 가늠자는 사거리 200m에서 1400m 범위에서 조절이 가능했다.

기관부 앞쪽 하단에는 독특한 "이중" 양각대가 장착되어 있다. 이 양각대는 딱딱한 지면용 스파이크가 달린 두 개의 다리와, 부드러운 지면이나 눈 위에서 사용하기 위한 나무로 된 썰매(스키드)로 구성된다. 두 다리는 사용하지 않을 때 앞으로 접을 수 있으며, 주로 사격 시에 사용되었다. 썰매는 특히 겨울철 눈 위에서 총을 옮길 때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양각대와 총 본체의 연결 부위에는 발사 시의 반동과 무게 부담을 줄이기 위한 완충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4. 운용

L-39는 일반적으로 사수와 관측수 겸 탄약수로 구성된 2인 1조로 운용되었으나, 때로는 사수 혼자서도 사용되었다. 총 자체의 무게가 약 50kg에 달하고 탄창 무게도 거의 2kg이나 되어 전장에서 이동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주로 말에 의해 견인되었지만, 분해하여 여러 사람이 운반하는 것도 가능했다.

탄창 오른쪽에는 남은 탄약 수를 확인할 수 있는 관측 슬릿이 있었으며, 대공 사격을 위한 15발들이 탄창도 나중에 개발되었다. L-39의 강력한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 반동 스프링이 매우 뻣뻣하게 설계되어, 일반적인 장전 손잡이로는 장전이 불가능했다. 대신 총 오른쪽에 달린 회전식 크랭크 레버를 돌려 랙 앤 피니언 장치를 작동시켜 볼트를 후퇴시키는 방식을 사용했다. 반자동 소총이지만 발사할 때마다 볼트가 후퇴하며, 그립 안전 장치를 눌러야 볼트가 전진하여 다음 발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사수의 손을 보호하기 위해 그립과 방아쇠 앞부분에는 큰 보호 가드와 고무 완충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총 아래쪽으로 배출되는 뜨거운 탄피로부터 손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조준을 위해 200m에서 1400m까지 조절 가능한 가늠자가 장착되었고, 딱딱한 지면용 스파이크가 달린 다리와 부드러운 지면 또는 눈 위에서 사용하기 위한 스키드가 있는 두 세트의 다리를 가진 특이한 "이중" 양각대가 부착되었다.

표준 부속품으로는 탄창 2개씩 들어가는 운반 상자 2개(총 예비 탄창 4개, 탄약 40발 분량), 정비 및 분해용 공구와 탄창 장전 도구, 예비 부품이 들어있는 공구 상자 2개, 그리고 예인용 밧줄이 제공되었다.

겨울 전쟁 당시 시제품 2정이 실전에 투입되어 소련군의 전투 차량을 상대로 효과를 보였다. 이후 계속 전쟁에서는 약 1,800정이 생산되어 배치되었다. 이 시기에는 소련군의 신형 전차인 T-34KV-1 중전차의 장갑을 관통하기는 어려웠지만, 궤도나 연료 탱크 등 취약점을 노려 공격하는 방식으로 전과를 올렸다. 또한 대전차 용도 외에도 토치카나 기관총 진지를 저격하는 등 현대의 대물 저격총과 유사한 방식으로도 활용되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VKT(Valtion Kivääritehdasfi, 국영 소총 공장, 현 파트리아)에서 총 1,900정 이상이 생산되어 전선에 배치되었다. L-39는 크고 무거우며 반동이 심해 운용에 어려움이 많았고, 전차의 장갑이 빠르게 강화되면서 초기만큼의 위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군의 주력 대전차 화기 중 하나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일부 소총은 격렬한 전투 중에 유기되기도 했지만 비교적 쉽게 대체될 수 있었다.

5. 파생형

라흐티 L-39를 기반으로 개량된 주요 파생형으로는 완전 자동 사격이 가능하도록 개조된 대공포 버전인 '''L-39/44'''와 소련군의 Il-2 공격기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연장 대공포좌인 '''20 ITK 40 VKT'''가 있다.

5. 1. L-39/44

계속 전쟁항공기에 대한 방어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기존의 라흐티 L-39를 기반으로 완전 자동 사격이 가능하도록 개조한 대공포 버전인 L-39/44가 개발되었다. 이 모델은 기존 L-39가 T-34나 KV-1 같은 소련의 신형 전차를 관통하지는 못했지만, 벙커의 사격구나 포안구, 장거리 표적, 그리고 항공기와 같은 다른 표적에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던 점에 착안하여 개발된 것이다.

L-39/44는 완전 자동 사격을 위해 개조되었으며, 2각 또는 3각 형태의 대공용 마운트와 특수하게 제작된 조준기(시야계)를 장비했다. 프로토타입은 1944년 1월에서 2월 사이에 제작되었고, 마운트는 비교적 간단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총 325정이 생산되었으며, 1951년에는 약 322정이 남아 있었다.

자동 사격이 가능하도록 개조된 L-39/44. 중앙부 좌우에 복좌 스프링이 추가 장착되었으며, 이각과 썰매의 장착 위치가 변경되었다.


L-39/44의 복좌 스프링 부분 상세 모습.


박물관에 전시된 20 ItKiv 39-44 (L-39/44의 핀란드군 제식명).


1950년대에 핀란드군은 L-39/44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분당 발사 속도와 내구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L-39/54와 L39/ST-55라는 두 가지 프로토타입이 제작되었다. 실험 결과 발사 속도를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내구성이 매우 약해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1956년에 실시된 테스트에서는 불과 250발을 발사한 후에 볼트 복열 장치가 파손되는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결국 당시 개발 중이던 새로운 20mm 대공포와 비교했을 때 성능상 약점이 많다고 판단되어, 1956년 L-39/44의 추가 개발은 중단되었다. 남아있던 L-39/44는 훈련용으로 잠시 보관되었다가, 다시 원래의 반자동 L-39 사양으로 전환되어 배치되었다.

5. 2. 20 ITK 40 VKT

1940년, 소련군의 Il-2 대지 공격기 (슈투르모비크)에 대응하기 위해 라흐티 L-39의 설계를 발전시킨 대공포가 개발되었다. 이것은 사수가 앉는 자리가 있는 전용 포좌에 기관포 2문을 나란히 장착하고 대형 대공 조준기를 추가한 형태였다. '''20 ITK 40 VKT'''라는 제식 명칭으로 생산되었는데, 이는 20 mm ilmatorjuntakivääri malli 1940 VKTfin의 약자이며, '20mm 대공소총 1940년형 VKT'를 의미한다.

6. 기타

1960년대에 들어 미국 민간 시장에 방출된 L-39는 대형 총기 수집가와 군용 무기 수집가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았으며, 2010년대에도 여전히 작동 가능한 상태로 다수가 소유되고 있다.

1965년 몬트리올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에서는 뉴욕의 총포상에서 도난당한 L-39 두 정이 은행 금고를 파괴하는 데 사용되었다.[3] 이 사건은 마이클 치미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1974년 미국 영화 『썬더볼트』(Thunderbolt and Lightfoot영어)의 소재가 되었다.

7. 대중문화 속 L-39


  • 007 썬더볼 작전 (원제: ''Thunderball'') (1965년): 방패 부착식 총가에 장착된 기관포로 등장한다. 완전 자동 사격을 하는 것으로 보아 L-39/44로 추정되지만, 기관부가 화면에 명확히 보이지 않아 정확한 모델은 알 수 없다.
  • 터미네이터 (원제: ''The Terminator'') (1984년): 영화 초반,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한 터미네이터가 무기를 강탈하는 총포점 장면에 전시되어 있다.
  • 지오 브리더스 (1993년 - 2009년): 이토 아키히로의 일본 만화 작품으로,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우메자키 마키가 사용하는 화기로 자주 등장한다. 1998년에 제작된 OVA판 『지오 브리더스 망량유격대 File-X 꼬마 고양이 탈환』에서는 탄창을 드럼 탄창으로 개조하여 순찰정에 탑재한 형태로 등장한다. 만화 본편에서는 드럼 탄창으로 개조하고 4연장 총가대에 장착하여 함선에 탑재한 모습으로 나오지만, 드럼 탄창과 총가대는 모두 작중 오리지널 디자인이며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 앨리슨과 리리아 (2008년): 시구사와 케이이치라이트 노벨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제11화에서 빌헬름 슐츠가 사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 트리니티 세븐 (2010년 - / 2014년 (애니메이션판)): 사이토 켄지 원작, 나오 아키토시 그림의 만화 및 이를 원작으로 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히로인 중 한 명인 아사미 리리스가 사용하는 대형 라이플은 L-39를 모델로 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형태와 각 부품의 모습이 L-39와 매우 유사하다. 작중 설정에서는 마법의 힘으로 만들어낸 물건으로, L-39 자체라고 명시되지는 않는다.
  • 미지의 병사 - 영웅 없는 전쟁터 (2017년): 핀란드군의 병기로 등장하며, 발포 시 발생하는 L-39 특유의 격렬한 반동이 묘사된다.

참조

[1] 웹사이트 LUKEMATTOMAT KIRJAT: Simo Häyhä, 'Valkoinen kuolema' http://guns.connect.[...] Gunwriters, Guns.connect.fi 1999-10-26
[2] 웹사이트 FINNISH ARMY 1918 - 1945: HEAVY ARMOURED CARS http://www.jaegerpla[...] Jaeger Platoon 2012-05-18
[3] 웹사이트 The Lahti 20mm Anti-tank Gun: The ‘Finnish Boombeast’>Burglary Tool http://www.guns.com/[...] Guns.com 2013-05-2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