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 미술관 (파리)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로댕 미술관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본관은 1908년부터 로댕이 사망할 때까지 아틀리에로 사용했던 비론 저택이며, 1911년 프랑스 정부가 저택을 매입하면서 로댕의 작품과 소장품 기증을 조건으로 미술관으로 지정되었다. 1919년 개관 후, 1926년 역사 기념물로 등재되었으며, 6,600점의 조각, 7,000점의 데생, 로댕이 수집한 회화와 조각, 사진 컬렉션,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 등을 소장하고 있다. 뫼동에도 로댕의 빌라와 작업실이 있으며, 1948년 박물관으로 개관하여 로댕의 창작 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오드센주의 박물관 - 플레잉카드 박물관
- 오귀스트 로댕 - 플라토 (미술관)
- 오귀스트 로댕 - 로댕 미술관 (필라델피아)
로댕 미술관은 영화 재벌 쥘 마스트바움이 기증한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들을 소장한 필라델피아 소재 미술관으로, 《생각하는 사람》,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등 파리 외 최대 규모의 로댕 컬렉션을 자랑하며 로댕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고 현대 미술과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로댕 미술관 (파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위치 | 파리, 프랑스 |
주소 | 77 rue de Varenne |
개관 | 1919년 |
관장 | 아멜리 시미에 |
미술관 정보 | |
유형 | 미술관 |
소장품 |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
웹사이트 | 로댕 미술관 공식 웹사이트 |
2. 연혁
1908년부터 로댕이 사망할 때까지 10년 동안 아틀리에로 사용하며 생활했던 비론 저택(Hôtel Biron)을 미술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1] 비롱 저택은 루이 15세의 섭정위 쿠데타 계획의 중심에 있던 메인 공작 부인이 1753년에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로댕 미술관은 로댕의 조각 6,600여 점, 데생 7,000여 점, 로댕이 수집한 회화와 조각 등을 소장하고 있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로댕의 《지옥의 문》, 《대성당》과 고흐의 《탕기 영감》 등이 있다.
1911년 프랑스 정부가 비론 저택을 매입할 당시, 로댕은 자신의 작품 및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하고 미술관으로 남겨달라고 제안했다. 로댕 사후 1919년에 개관하였고, 2005년에 개수되었다.
파리 근교의 뫼동에 있는 로댕의 아틀리에 겸 자택 역시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3. 주요 소장품
3. 1. 조각
로댕의 조각품은 당대의 규범에 도전하는 예술가의 작품이다. 그의 젊은 시절 작품 중 ''코 부러진 남자''는 동시대의 미적 규범에서 벗어난 듯 보이며, ''청동 시대''는 당대의 육체적 표현 방식을 거부한다. 이러한 인위성의 부재는 ''생각하는 사람''이나 ''아담과 이브''의 누드와 마찬가지로, 로댕 작품의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보증한다.
또한, 이 예술가는 그의 작품 중 일부의 기념비적인 측면으로도 두각을 나타낸다. ''발자크'', ''칼레의 시민'' 또는 인상적인 미완성 작품인 ''지옥의 문''에는 ''생각하는 사람, 우골리노, 키스'' 또는 ''세 개의 그림자''를 포함한 로댕의 주요 작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3. 2. 드로잉
로댕 미술관의 드로잉 컬렉션은 약 7,000점에 달한다. 이 작품들은 다양한 스타일과 시기를 아우르며, 풍경 관찰, 단테 또는 보들레르에게 영감을 받은 판타지 작품, 수많은 에로틱 누드, 초상화 등이 있다.[1]
3. 3. 사진
로댕 미술관은 25,000점에 달하는 사진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이 중 7,000점은 로댕이 직접 수집한 것이다. 로댕은 사진이라는 예술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외젠 드뤼에, 자크-에르네스트 불로, 아돌프 브라운, 에드워드 스타이켄과 같은 여러 사진작가들과 협력했다.
로댕의 개인적인 앨범은 그의 관심사와 예술적 영감을 보여주며, 초상 사진과 신문 사진은 그의 작품과 삶을 보여준다. 이 사진들은 1877년부터 로댕이 사망한 1917년까지 스튜디오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 수 있는 훌륭한 자료이다.
3. 4. 카미유 클로델
카미유 클로델 방에는 카미유 클로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성숙한 시대(1898, 1913년 주조), 파도(1897), 왈츠, 사쿤탈라(1905), 1892년 주조된 로댕의 흉상(1888–89) 등이 있다.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이자 모델이었고, 곧 그의 협력자, 동료, 연인이 되어 1884년부터 1890년대 초까지 로댕과 함께 작업했다. 그들은 1899년까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3. 5. 로댕의 수집품
로댕은 말년 20년 동안 뫼동에서 살면서 이집트, 그리스, 로마 시대의 고대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극동 지역의 미술품도 수집했다. 컬렉션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작품들이 그의 작업실과 집을 채웠고, 고대 조각상들의 석고 모형을 대체했다. 로댕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받은 의뢰 덕분에 1917년에는 6,000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는 컬렉션을 계속 확장할 수 있었다.[1]
또한, 로댕은 자신의 친분과 취향에 따라 테오뒬 리보, 알프레드 롤 같은 자연주의 화가들과 외젠 카리에르, 샤를 코테 같은 상징주의 화가들의 작품들을 곁에 두었다. 예술가 친구들과의 교환을 통해 로댕은 쥘 달루, 알렉상드르 팔기에르, 장폴 로랑스 등의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다. 그는 또한 중요한 작품들을 구매했는데, 반 고흐의 그림 3점(1887년 말작인 탕기 영감 포함), 르누아르의 ''햇빛 속의 누드'', 모네의 ''벨일'' 등이 그것이다.[1]
4. 미술관 위치
로댕 미술관은 프랑스 파리와 뫼동 두 곳에 위치하고 있다.
4. 1. 파리, 비롱 저택 (Hôtel Biron)
1911년 프랑스 정부가 비론 저택을 매입하였고, 로댕은 자신의 작품과 소장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박물관으로 남겨달라고 제안했다. 로댕 사후 1919년에 개관하였고, 2005년에 개수되었다.1919년 8월 4일 일반에 처음 공개된 로댕 미술관 본관은 고전 건축 양식으로 설계되고 로카유 장식으로 꾸며진 저택이다.[1] 1727년에서 1732년 사이에 바렌느 거리에 지어졌다.[1] 1788년부터 여러 소유주와 세입자가 있었으며, 1820년 샤로스트 공작 부인이 예수 성심회 수녀들에게 매각했다.[1] 여자 기숙 학교가 문을 열었고, 1876년에는 장 쥐스트 구스타브 리쉬가 설계한 예배당이 건설되었다.[1]
1904년 종교 단체가 교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으로 인해 수녀들이 퇴거되었고, 부동산은 매물로 나왔다.[1] 장 콕토, 앙리 마티스, 이사도라 덩컨,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이 세입자로 거주했으며, 릴케의 아내 클라라 베스토프가 로댕에게 이 부동산을 처음 소개했다.[1] 1908년 로댕은 1층의 방 4개를 스튜디오로 임대했고,[1] 1911년부터 건물 전체를 사용했다.[1]
1911년 프랑스 정부가 비롱 저택을 구매하기로 하면서 로댕은 정부와 협상, 자신의 모든 작품, 드로잉, 골동품 컬렉션을 기증하고, 정부는 이를 비롱 저택에 보관하여 로댕 미술관으로 만들고, 로댕에게 평생 거주권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1] 1916년 프랑스 의회는 기증을 수락하고 저택과 정원을 미술관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1] 레옹 베네디트가 로댕의 유언 집행자로 임명되어 예술 유산을 관리하고 미술관 구성을 감독했다.[1]
1926년 역사 기념물로 등재된 후 대대적인 개보수 및 복원 공사를 거쳤다.[1] 2012년 시작된 복원 작업은 2015년 11월 12일 로댕 탄생 175주년에 맞춰 완료되었으며,[1]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이를 "도덕적 의무"라고 칭찬했다.[1] 복원 비용은 1600만유로 (1739.9999999999998만달러)였다.[1]
4. 2. 뫼동 (Meudon)
1895년 12월 19일, 로댕은 뫼동 언덕에 세워진 루이 13세 양식의 집 "라 빌라 데 브리앙"(La Villa des Brillants)을 구입했다. 1900년에는 조각가 조수, 노동자, 주조공 등 약 50명의 사람들이 로댕에게 고용되었으며, 파리 작업실에 매일 출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창작 활동은 뫼동에서 이루어졌다. 이곳은 프랑스 또는 해외의 친구, 숭배자, 유명 인사들에게 주요한 매력적인 장소가 되었다. 로댕과 그의 아내 로즈 뵈레가 묻힌 곳도 바로 뫼동이다.로댕 사후, 이 빌라와 작업실은 박물관이 되었다. 1948년에 개관하였으며, 방문객들은 로댕이 살고 일하는 것을 좋아했던 작업실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 박물관에서는 ''칼레의 시민''과 ''지옥의 문''과 같은 로댕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의 석고 모형을 포함하여 창작 과정의 다양한 단계를 엿볼 수 있다.
5. 기획 전시
로댕 미술관은 로댕 관련 기획 전시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 전시회도 개최하고 있다. 1949년 젊은 조각 살롱이 처음 열린 이래 앤서니 카로, 외젠 도데뉴, 에티엔 보소 등 여러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빌 비올라, 아델 압데세메드, 미르체아 칸토르는 "박물관의 밤" 행사에 초청되어 공원에서 비디오 상영을 진행했다. 2010년에는 벨기에 예술가 Wim Delvoye의 작품이 전시되었고, 비토 아콘치, 산자 이베코비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모나 하툼 등의 비디오 퍼포먼스 프로그램도 마련되었다. 2010년 10월부터 2011년 2월까지는 헨리 무어의 작업실과 소규모 조각품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렸다.
5. 1. 로댕 관련 기획 전시
전시명 | 기간 | 방문객 수 |
---|---|---|
공간 속의 조각, 로댕, 브란쿠시, 자코메티 | 2005년 11월~2006년 2월 | 82,000명 |
로댕과 캄보디아 무용수들, 그의 마지막 열정 | 2006년 6월~2006년 9월 | 91,000명 |
로댕, 에로스의 형상들 | 2006년 11월~2007년 3월 | 84,000명 |
카미유 클로델, 한 여성, 한 예술가 | 2008년 4월~2008년 7월 | 150,000명 |
작품 속의 열정, 로댕과 프로이트, 수집가들 | 2008년 10월~2009년 2월 | |
몸과 장식. 로댕과 장식 미술 | 2010년 4월~2010년 8월 | |
로댕. 창조의 실험실 | 2014년 11월~2015년 9월 |
5. 2. 현대 미술 전시회
젊은 조각 살롱이 처음 열렸던 1949년부터 현대 미술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앤서니 카로, 외젠 도데뉴, 에티엔 보소와 같은 예술가들이 이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빌 비올라, 아델 압데세메드, 미르체아 칸토르는 "박물관의 밤" 행사를 위해 공원에서 비디오 상영에 초청되었다.
2010년에는 벨기에 예술가 Wim Delvoye의 작품이 전시되었으며, 비토 아콘치, 산자 이베코비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모나 하툼과 같은 예술가들의 비디오 퍼포먼스 프로그램도 진행되었다. 2010년 10월부터 2011년 2월까지는 그의 작업실과 소규모 조각품을 주제로 한 헨리 무어 전시회가 열렸다.
참조
[1]
웹사이트
Musee Rodin
https://www.travelss[...]
[2]
뉴스
Rodin Museum in Paris Reopens After 3-Year Facelift
https://www.nytimes.[...]
2015-11-0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