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쿠고 마사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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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쿠고 마사하루는 혼조 번의 4대 번주이다. 1675년에 로쿠고 마사노부의 장남으로 태어나 1685년 부친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았다. 재임 기간 동안 인접한 하타모토 니가호 아게마사, 가메다 번과의 영지 분쟁을 겪었다. 1726년 장남을 폐적하고 1735년 차남에게 가독을 양위한 후 은거했으며, 1741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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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고 마사하루 | |
---|---|
기본 정보 | |
씨족 | 육향 씨 |
직책 | |
번 | 데와 국혼조 번 번주 |
대수 | 4 |
임기 | 1685년 ~ 1735년 |
개인 정보 | |
시대 | 에도 시대 전기 - 중기 |
출생 | 엔포 3년 (1675년) |
사망 | 간포 원년 3월 27일 (1741년 5월 12일) |
어린 시절 이름 | 쇼노스케 |
이름 | 마사하루 |
계명 | 젠쇼인 호요소렌 |
묘소 | 도쿄 도다이토 구 니시아사쿠사의 만류지 |
관위 | 종5위 하, 이가노카미, 아와노카미 |
주군 | 도쿠가와 쓰나요시 → 이에노부 → 이에쓰구 → 요시무네 |
가족 관계 | |
아버지 | 로쿠고 마사노부 |
어머니 | 마키노 야스시게의 딸 |
배우자 | 정실: 마키노 나리사다의 양녀 측실: 사사세 씨 |
자녀 | 마사히데, 마사나가, 마사카게, 타마코, 마리, 이코마 지카카타 약혼자, 고보리 마사야스 정실 등 |
기타 정보 | |
관련 인물 | 도우시산 (직참) 마키야마 |
전임자 | 로쿠고 마사노부 |
후임자 | 로쿠고 마사나가 |
2. 생애
로쿠고 마사하루는 치세 중 인접한 하타모토 니가호 아게마사와 영지 분쟁을 겪었다. 혼조 번 영민이 니가호씨 영지 후유시 산의 나무를 벌채하면서 영민끼리 다투었고, 이는 번과 니가호씨 간 다툼으로 번졌다. 하타모토인 니가호씨는 막부에 재정을 요청했고, 7년 간 다툼 끝에 혼조 번에 유리한 결정이 내려졌다. 쇼토쿠 2년(1712년)에는 인접한 가메다 번과 마키야마 권익을 둘러싼 다툼이 시작되었지만, 100여 년 후에 해결되었다.
2. 1. 가독 상속과 초기 활동
엔포 3년(1675년), 로쿠고 마사노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조쿄 2년(1685년) 9월 22일, 아버지 마사노부가 사망하여 가독을 상속받아 혼조 번의 4대 번주가 되었다. 겐로쿠 3년(1691년) 12월 26일, 종5위하 이가노카미에 서임되었다. 겐로쿠 4년(1691년) 5월 28일, 오쿠니이리의 허가를 받았다. 겐로쿠 6년(1693년) 1월 28일, 오쿠즈메에 취임했다. 겐로쿠 7년(1694년) 11월 11일, 오쿠즈메에서 퇴임했다.
2. 2. 영지 분쟁
로쿠고 마사하루는 재임 기간 동안 인접한 영지와 두 차례 분쟁을 겪었다. 하타모토 니가호 아게마사와의 영지 분쟁, 가메다 번과의 마키야마 권익 분쟁이 그것이다.2. 2. 1. 니가호 아게마사와의 분쟁
로쿠고 마사하루의 치세 중, 인접한 하타모토인 니가호 아게마사와 영지 백성 간의 분쟁이 발생했다. 혼조 번의 백성이 니가호 씨 영지의 후유시 산의 나무를 벌채한 것이 발단이 되어 백성 간 다툼이 벌어졌고, 이는 번과 니가호 씨 간의 분쟁으로 확대되었다. 쇼군 직속 하타모토였던 니가호 씨는 막부에 재정을 요청했고, 7년간의 다툼 끝에 혼조 번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졌다.2. 2. 2. 가메다 번과의 분쟁
쇼토쿠 2년(1712년), 인접한 가메다 번과의 사이에서 마키야마(牧山)의 권익을 둘러싼 분쟁이 시작되었으나, 이 분쟁은 100여 년 후 로쿠고 마사쓰라 대에 가서야 해결되었다.2. 3. 가독 양위와 사망
교호 11년(1726년), 장남 마사히데가 병약하다는 이유로 폐적되었다. 교호 20년(1735년) 윤3월 2일, 차남 마사나가에게 가독을 양위하고 은거했다.간포 원년(1741년) 3월 27일, 6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계보
로쿠고 마사하루의 가계는 다음과 같다.
- 부친: 로쿠고 마사노부
- 모친: 마키노 야스나리의 딸
- 정실: 마키노 나리사다의 양녀, 오토 요시카츠의 딸 (즈이슌인의 여동생 오마츠와 기하타 모토야스의 딸이며, 엔도 타네치카의 자매이기도 함)[1]
- 측실: 사사세 씨
3. 1.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
아버지 | 로쿠고 마사노부 |
어머니 | 마키노 야스나리의 딸 |
정실 | 마키노 나리사다의 양녀, 오토 요시카츠의 딸 (즈이슌인의 여동생 오마츠와 기하타 모토야스 딸이며, 엔도 타네치카의 자매이기도 함)[1] |
측실 | 사사세 씨 |
3. 2. 자녀
이름 | 출생 순서 | 생모 | 비고 |
---|---|---|---|
로쿠고 마사히데 | 장남 | 폐적 후 혼조로 이주했다. | |
로쿠고 마사나가 | 차남 | 사사세 씨 | |
로쿠고 마사카게 | 삼남 | 장남 로쿠고 마사하야시가 마사나가의 양자가 되어 가독을 이었다. | |
타마코 | 장녀 | 마키노 야스치카 정실 | |
마리 | 차녀 | 오제키 마스오키 정실 | |
이코마 치카카타와 약혼했으나, 정식 혼인 전에 병사했다. | |||
코보리 마사야스 정실, 혼인 후 마사야스는 26세에 요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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