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조번 (데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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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혼조번은 센고쿠 시대부터 메이지 시대까지 데와국(오늘날의 아키타현)을 지배한 번이다. 로쿠고 마사노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에 참전하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히타치국 후추에 1만 석 영지를 받았다. 이후 모가미 씨가 개역된 후 혼조에 2만 석으로 이봉되어 혼조번을 세웠다. 마지막 번주 로쿠고 마사카네는 보신 전쟁에서 오우에쓰 열반 동맹에 가담했으나 삿초 동맹 군대에 의해 혼조성이 파괴되었고, 폐번치현으로 아키타현에 흡수되었다. 로쿠고 가문은 도자마 다이묘로 11대 번주를 거쳐 메이지 유신까지 2만 석의 영지를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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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마번은 에도 시대 데와국 유리군에 존재했던 번으로, 이코마 다카토시가 1만 석으로 시작되었으나 다이묘 지위를 잃고 고타이요리아이가 되었다가 보신 전쟁 후 잠시 다이묘로 복귀했으나 폐번치현으로 폐지되었다. - 우고국의 번 - 구보타번 (데와국)
구보타번은 1602년 사타케 씨가 데와국 아키타 지역을 다스리기 시작한 번으로, 농업 위기 속에서도 문화 및 교육 사업을 추진했으며, 메이지 유신 시기에는 신정부 측에 가담하여 아키타 전쟁을 치르고 1871년 폐번치현으로 아키타현에 흡수되었다. - 로쿠고씨 - 로쿠고 마사나가
로쿠고 마사나가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형의 폐적 후 가독을 상속받았으며, 49세에 사망하여 장남이 어렸기에 조카가 가문을 이었다. - 로쿠고씨 - 로쿠고 마사카네
로쿠고 마사카네는 혼조 번의 번주 로쿠고 마사토요의 장남으로 가독을 상속받아 번주가 되었고, 보신 전쟁에서 신정부군에 가담하여 쇼나이 번을 공격했으나 패배 후 혼조 성을 탈환하여 영세 1만 석을 하사받았으며, 판적봉환으로 지번사가 되었다가 폐번치현으로 해임된 후 자작 작위를 받고 고향에서 사망하여 정3위로 추증되었다.
혼조번 (데와국) | |
---|---|
개요 | |
이름 | 혼조 번 (本荘藩) |
위치 | 데와국 유리군 혼조 (현재의 아키타현 유리혼조시) |
역사 | |
존속 기간 | 1623년 ~ 1868년 |
번주 | 로쿠고 씨 |
등급 | 후다이 다이묘 |
석고 | 2만 석 |
지리 | |
현재 위치 | 아키타현 일부 |
정치 | |
봉건 체제 | 번 |
통치 형태 | 다이묘 |
통치자 | |
다이묘 가문 | 로쿠고 씨 |
역사적 사건 | |
시작 | 1623년 |
종료 | 1868년 |
지도 |
2. 번의 역사
로쿠고 가문은 센고쿠 시대에 데와국 로쿠고를 지배한 고쿠진 영주였다. 당주 로쿠고 마사노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에 종군하였고,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에 가담하여 오노데라 가문을 공격하였다. 그 전공으로 로쿠고 4500석의 영주가 되었고, 사타케 요시노부가 전봉된 후에는 히타치국 니하리군 후추 1만 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1623년, 모가미 가문이 영지를 몰수당한 뒤, 마사노리는 그 옛 영지인 혼조 2만 석으로 옮겨와 혼조 번의 시조가 되었다. 이후 로쿠고 번은 11대까지 이어져 메이지 시대까지 계속되었다.
데와국의 상당 부분은 센고쿠 시대 동안 강력한 모가미 씨족에 의해 통제되었다. 1610년 모가미 씨족은 데와국 중앙의 유리 지역 중심부에 혼조성(本庄城)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지를 세웠으나, 1622년 도쿠가와 막부에 의해 재산을 몰수당했고, 대부분의 영지는 히타치국에서 구보타번으로 이봉된 사타케 씨족에게 넘어갔다.
분카 원년 (1804년)에 일어난 분카 대지진에서는, 그전까지 석호였던 기사카타가 융기하여 육지화되었기 때문에 칸만지와의 사이에 그 토지를 둘러싼 분쟁이 일어났다.
2. 1.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센고쿠 시대 데와국 로쿠고를 지배한 고쿠진 영주 로쿠고 마사노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다와라 정벌에 참전했고,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동군에 가담하여 오노데라 가문을 공격했다. 그 공으로 로쿠고 4500석의 영지를 인정받았고, 사타케 요시노부가 전봉된 후에는 히타치국 니하리군 후추 1만 석의 다이묘가 되었다.[1]1623년 모가미 가문이 영지를 몰수당한 뒤, 마사노리는 그 옛 영지인 혼조 2만 석으로 옮겨와 혼조 번의 시조가 되었다. 이는 유리군의 103개 마을을 통합한 형태로, 그의 후손들이 메이지 유신까지 11대 동안 통치했다.[1]
1674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혼조 번에는 3,784가구에 23,911명이 거주했다. 번은 에도에서 11일 거리였으며, 시타야의 기타이나리초에 주요 거주지(가미야시키)를 두었다.[1]
2. 2. 에도 시대 중기 ~ 막부 말기
1623년, 모가미 가문이 영지를 몰수당한 뒤, 그 옛 영지인 혼조 2만 석으로 옮겨온 로쿠고 마사노리는 혼조 번의 시조가 되었다. 이후 로쿠고 번은 11대까지 이어져 메이지 시대까지 계속되었다.[1]1674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이 번에는 3,784가구에 23,911명이 거주했다. 번은 씨족이 시타야의 기타이나리초에 주요 거주지(가미야시키)를 유지했던 에도에서 11일의 여행 거리였다.[1] 씨족의 에도 사찰은 니시아사쿠사에 있는 텟쇼지였다.
분카 원년 (1804년)에 일어난 분카 대지진에서는, 그전까지 석호였던 기사카타가 융기하여 육지화되었기 때문에 칸만지와의 사이에 그 토지를 둘러싼 분쟁이 일어났다.
보신 전쟁 동안 혼조번의 마지막 다이묘인 로쿠고 마사카네는 오우에쓰 열반 동맹 편에 섰지만, 번은 군사 자원이 부족했고, 친 천황파인 삿초 동맹 군대에 의해 빠르게 제압되어 혼조성이 파괴되었다. 새로운 메이지 정부는 1868년 그를 번 지사로 복귀시켰지만, 수입을 10,000석으로 절반으로 줄였다. 1871년 7월 폐번치현과 혼조번이 아키타현에 흡수되면서 로쿠고 마사카네는 도쿄로 이주했다. 1884년 그는 그의 후손들과 함께 화족의 작위인 자작 (시샤쿠)을 받았다.
2. 3. 메이지 유신 이후
1868년 보신 전쟁에서 혼조 번의 마지막 다이묘였던 로쿠고 마사카네는 오우에쓰 열반 동맹에 가담하였으나, 군사력이 부족하여 삿초 동맹 군대에 의해 빠르게 제압되었고 혼조성이 파괴되었다.[1] 메이지 정부는 같은 해 그를 번지사로 복귀시켰으나, 수입은 10,000석으로 절반으로 줄였다. 1871년 7월 폐번치현으로 혼조 번이 아키타현에 흡수되면서, 로쿠고 마사카네는 도쿄로 이주하였다. 1884년에는 화족 제도가 생기면서 자작 작위를 받았다.3. 역대 번주
혼조 번의 역대 번주는 다음과 같다.
# | 이름 | 재임 기간 | 관위 | 조정 품계 | 석고 | 비고 |
---|---|---|---|---|---|---|
1 | 로쿠고 마사노리|六郷政乗일본어 | 1623년 ~ 1634년 | 효고노카미 | 종5위하 | 20,000석 | 로쿠고 미치유키의 아들 |
2 | 로쿠고 마사카쓰|六郷政勝일본어 | 1634년 ~ 1676년 | 이가노카미 | 종5위하 | 20,000석 | 마사노리의 장남 |
3 | 로쿠고 마사노부|六郷政信일본어 | 1676년 ~ 1685년 | 사도노카미 | 종5위하 | 20,000석 | 마사카츠의 장남 |
4 | 로쿠고 마사하루|六郷政晴일본어 | 1685년 ~ 1735년 | 이가노카미 | 종5위하 | 20,000석 | 마사노부의 장남 |
5 | 로쿠고 마사나가|六郷政長일본어 | 1735년 ~ 1754년 | 이가노카미 | 종5위하 | 20,000석 | 마사하루의 차남 |
6 | 로쿠고 마사시게|六郷政林일본어 | 1754년 ~ 1783년 | 효고노카미 | 종5위하 | 20,000석 | 로쿠고 마사나가의 장남 |
7 | 로쿠고 마사치카|六郷政速일본어 | 1783년 ~ 1812년 | 사도노카미 | 종5위하 | 20,000석 | 마사시게의 3남 |
8 | 로쿠고 마사즈미|六郷政純일본어 | 1812년 ~ 1822년 | 아와노카미 | 종5위하 | 20,000석 | 마사치카의 차남 |
9 | 로쿠고 마사쓰네|六郷政恒일본어 | 1822년 ~ 1848년 | 효고노카미 | 종5위하 | 20,000석 | 마사치카의 손자, 장남 마사요시를 통해 |
10 | 로쿠고 마사타다|六郷政殷일본어 | 1848년 ~ 1861년 | 사도노카미 | 종5위하 | 20,000석 | 로쿠고 마사츠네의 차남 |
11 | 로쿠고 마사카네|六郷政鑑일본어 | 1861년 ~ 1871년 | 효고노카미 | 종3위, 자작 | 20,000석 → 10,000석 | 마사타다의 장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