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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갈베스 로드리게스 데 아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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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이스 갈베스 로드리게스 데 아리아스는 스페인 출신으로, 외교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아마존 지역으로 이주하여 아크레 공화국을 건국하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볼리비아와 외국 자본 간의 고무 무역 협정에 반발하여 1899년 아크레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며, 공화국을 선포하고 사회,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가를 운영하려 했다. 쿠데타로 축출되었다가 복귀했지만, 브라질에 의해 체포되어 추방되었고, 이후 스페인 제2공화국에서 사망했다. 그의 업적은 아크레 주에 그의 이름을 딴 지명과 동상으로 기념되며, 소설, 미니시리즈 등 다양한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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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갈베스 로드리게스 데 아리아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직함아크레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임기 시작1899년 7월 14일
임기 종료1900년 1월 1일
이전사무실 설립
후임안토니우 데 소우사 브라가
직함아크레 공화국의 제3대 대통령
임기 시작1900년 1월 30일
임기 종료1900년 3월 15일
이전안토니우 데 소우사 브라가
후임주아킹 비토르 다 시우바
출생일1864년
출생지스페인 산페르난도, 안달루시아
사망일1935년 (71세)
사망지스페인 마드리드, 마드리드
정당해당 없음
모교세비야 대학교
배우자해당 없음
직업언론인, 외교관

2. 생애

루이스 갈베스 로드리게스 데 아리아스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세비야 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과학을 공부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3] 그는 기자로도 활동했으며, 아크레 주의 독립운동가였다. 1899년 아크레 주의 독립을 선언하고 아크레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1900년 안토니오 데 소우사 브라가의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이후 스페인으로 추방되었다가 브라질로 귀국했으나 체포되어 호라이마로 추방되었다. 1935년 마드리드에서 사망했다.[1]

2. 1. 초기 생애

루이스 갈베스 로드리게스 데 아리아스는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세비야 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과학을 공부하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3] 그는 기자로도 활동했다.[1] 1897년 아마존 열대 우림의 엘도라도를 찾아 남미로 이주했다.[1] 벨렝에서는 Correio do Pará에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고, 마나우스에서는 ''Commercio do Amazonas'' 신문에 기고했다.[1]

2. 2. 아크레 독립 운동과 대통령 재임

갈베스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세비야 대학교에서 사회학과 과학을 공부하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3] 그는 기자로도 활동했으며, 아크레 주의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1899년 아크레 주의 독립을 선언하고 아크레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임시 대통령직을 맡아 공화국의 문장과 국기를 제정하고, 부처, 학교, 병원, 군대, 소방서를 창설했다. 또한 판사로 활동하고 우표를 발행했으며, 사회, 환경 및 도시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당시로서는 현대적인 국가를 구상했다. 그는 칙령을 발행하고 유럽의 모든 국가에 파견을 보냈으며 외교 대표를 임명했다.[2]

1900년 봄 안토니오 데 소우사 브라가의 쿠데타로 축출되었다. 이후 스페인으로 추방되었다. 브라질로 귀국했으나, 체포된 뒤 호라이마로 추방되었다.

그는 189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 습격 110주년에 맞춰 고무 채취업자들과 쿠바 독립 전쟁 참전 용사들을 이끌고 아크레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독립 아크레 공화국을 건국했으며, "브라질인이 아닌 아크레의 고무 채취업자들은 볼리비아인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정당화했다. 그는 미국이 "고무 국가"로 분류한 국가의 정부를 수립했다.[2]

그의 정부는 불과 6개월 만에 쿠데타로 실각되었고, 브라질 고무 채취업자 안토니오 데 소우사 브라가가 그를 대신했지만, 한 달 후 다시 갈베스에게 권력을 돌려주었다.

1867년 브라질과 볼리비아 간에 체결된 아야쿠초 조약은 아크레를 볼리비아 영토로 인정했다. 따라서 브라질은 루이스 갈베스를 체포하고 아크레 공화국을 종식시키며 이 지역을 볼리비아 통치로 되돌리기 위해 4척의 군함과 보병 부대로 구성된 군사 원정대를 파견했다. 1900년 3월 11일, 루이스 갈베스는 아크레 강 유역의 Caquetá 고무 농장 본부에서 브라질 해군의 태스크 포스에 항복했고, 이후 페르남부쿠 주 헤시피로 추방되었다. 그는 나중에 유럽으로 추방되었다.[2]

2. 3. 실각과 추방

1900년 봄, 안토니오 데 소우사 브라가(포르투갈어명 안토니우 지 소우사 브라가)의 쿠데타로 축출되었다.[3] 브라질 고무 채취업자 안토니우 지 소우사 브라가가 그를 대신했지만, 한 달 후 다시 갈베스에게 권력을 돌려주었다.

1867년 브라질볼리비아 간에 체결된 아야쿠초 조약은 아크레 주를 볼리비아 영토로 인정했다. 따라서 브라질은 루이스 갈베스를 체포하고 아크레 공화국을 종식시키며 이 지역을 볼리비아 통치로 되돌리기 위해 4척의 군함과 보병 부대로 구성된 군사 원정대를 파견했다. 1900년 3월 11일, 루이스 갈베스는 아크레 강 유역의 Caquetá 고무 농장 본부에서 브라질 해군의 태스크 포스에 항복했고, 이후 페르남부쿠 주 헤시피로 추방되었다.[2] 그는 나중에 유럽으로 추방되었다.

갈베스는 몇 년 후 브라질로 돌아왔지만, 아마조나스 주 정부는 그를 체포하여 오늘날 로라이마 주에 있는 상 조아킴 두 히우 브랑쿠 요새로 보냈고, 그곳에서 나중에 탈출했다. 그는 스페인 제2공화국에서 사망했다.[2]

2. 4. 브라질 귀국과 사망

갈베스는 몇 년 후 브라질로 돌아왔지만, 아마조나스 주 정부는 그를 체포하여 오늘날 로라이마 주에 있는 상 조아킴 두 히우 브랑쿠 요새로 보냈고, 그곳에서 나중에 탈출했다. 그는 스페인 제2공화국에서 사망했다.[1]

3. 유산


  • 아크레에는 그의 이름을 딴 강이 있다.
  • 아크레 주 입법 의회(ALEAC) 입구에는 갈베스의 동상이 있고, 그 뒤에는 아크레 독립국의 국기가 있다. 그 안에는 "조국이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조국을 만들 것이다! 아크레 독립국 만세!"라고 쓰여 있는데, 이 문구는 1899년 7월 14일 갈베스가 그곳에 살던 사람들에게 아크레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한 말이다. 이 문구는 "유행어"가 되었고, 갈베스 황제가 이 말을 한 지 1세기가 넘은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아크레 주민들은 이 말을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 아크레의 황제 갈베스는 마르시우 데 소자의 첫 번째 연재 소설로, 1976년에 출간되어 2007년까지 14번의 개정판이 나왔다.
  • 2007년, 헤지 글로부는 아크레 주 지역을 다룬 미니시리즈 아마조니아, 갈베스에서 치코 멘데스까지를 방영했다. 배우 조제 윌커가 루이스 갈베스 로드리게스 아리아스 역을 맡았다.
  • 2003년, 스페인 작가 알폰소 도밍고는 루이스 갈베스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 소설을 출판했다.

참조

[1] 웹사이트 Biography in ''Só Biografias'' http://www.dec.ufcg.[...] 2010-04-14
[2] 문서 ALBUQUERQUE, Ivo de. Treaty of Petrópolis – 100 years – The struggles for the possession of Acre. http://www.ihp.org.b[...]
[3] 웹인용 그의 일생 http://www.dec.ufcg.[...] 201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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