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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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마예식은 교회 일치를 위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노력으로, 기독교 성례전 중 성찬에 대한 신학적 차이를 좁히고 일치된 실천을 위해 채택된 예식이다. 1983년 밴쿠버에서 열린 WCC 총회에서 처음 거행되었으며, '리마 문서'를 바탕으로 1982년 리마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 위원회' 총회에서 최종 채택되었다.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1986년 《리마예식서》를 번역 출간했다. 리마예식은 기념, 임재, 희생의 세 가지 성찬 신학적 요소를 에큐메니컬 정신으로 이해하려 했으나,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 내 보수 진영에서 비판과 논란이 제기되었다. 리마예식은 신학적 일치를 예배에 표현하는 하나의 형태로, 세계 교회가 성찬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시작점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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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예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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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 예식 | |
![]() | |
개요 | |
종류 | 교회 일치 운동 문서 |
상세 정보 | |
이름 | 영어: Baptism, Eucharist and Ministry 한국어: 세례, 성찬례, 사역 |
작성 | 세계 교회 협의회 신앙과 직제 위원회 |
발표 | 1982년 |
내용 | |
주제 | 세례, 성찬례, 사역에 대한 일치된 이해 추구 |
목표 | 교회 분열 극복 및 완전한 친교 회복 |
2. 발자취
세계교회협의회(WCC)에 참석한 교단 대표들은 교회 일치를 위한 회의와 예배에서 기독교 성례전(성사) 중 가장 중요한 성찬에 대한 신학적 견해와 예전의 차이로 함께 성찬을 하기 어려웠다.[1] 교회 연합 운동에서 기독교 핵심 성례전인 성찬조차 함께하기 어렵자, 이에 대한 반성으로 성찬에 대한 신학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선적으로 성찬의 일치된 실천을 위해 이 예식이 채택되었다.[1]
1983년 제6차 WCC 총회가 열린 캐나다 밴쿠버에서 최초로 리마 예식에 따라 성찬식이 베풀어졌다.[1] 첫 예식에서는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가 기도를, 서독 천주교회 주교가 성서 봉독을, 남인도교회 감독이 설교를, 영국 성공회 대주교가 성찬 기도를, 덴마크 루터교회, 인도네시아 개혁교회(장로교회), 베닝 감리교회, 헝가리 침례교회, 자메이카 모라비안 교회, 캐나다 연합교회 목사들이 순서를 맡아 성찬을 거행하였다.[1]
'리마 예식'이 포함된 '리마 문서'는 1975년 나이로비 대회 결의를 거쳐 세계 140여 개 교단의 응답(17개 지역 천주교 신학교의 반응 포함)과 의견을 수렴했고, 40여 명의 전문가가 응답과 질의, 수렴과 결정 과정을 거쳐 1977년부터 1982년 채택될 때까지 공식적으로 12회 수정, 보완되었다. 1982년 리마에서 개최한 '신앙과 직제 위원회' 총회에서 이의 없이 채택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1986년 《리마예식서》로 해설 부분과 함께 번역 출간하였고, 2005년부터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전자책 형태로 무상 제공하고 있다.
리마 예식은 성찬에 관한 신학 논쟁의 주요 쟁점인 '''기념''', '''임재''', '''희생'''이라는 세 가지 신학적 요소를 성경과 전통적 신학 요소를 종합하고, 에큐메니컬 정신을 바탕으로 이해하려 했던 결과물이다. 1983년 제6차 WCC 총회에서 거행되었을 때 총회에서는 이의 없이 채택되었으나, 이후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 내 보수 진영에서는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리마예식'은 1982년에 신학적으로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세계 교회가 성찬례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지속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 리마 예식서에서 "리마예식서가 리마 문서의 정신을 반영한 유일한 예전적 표현일 수 없다. 다만 리마에서 이룩된 신학적 일치의 수렴을 우리의 예배에 표현할 수 있는 가능한 형태 내지 실례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1]라고 밝히고 있듯이, 리마 예식은 성찬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1. 성례전의 일치를 위하여
WCC 참석 교단 대표들은 교회 일치를 위한 회의와 예배에서 기독교 성례전(성사) 중 가장 중요한 성찬(Eucharist)에 대한 신학적 견해와 예전의 차이로 함께 성찬을 하기 어려웠다.[1] 교회 연합 운동에서 기독교 핵심 성례전인 성찬조차 함께하기 어렵자, 이에 대한 반성으로 성찬에 대한 신학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선적으로 성찬의 일치된 실천을 위해 이 예식이 채택되었다.[1] 1983년 제6차 WCC 총회가 열린 캐나다 밴쿠버에서 최초로 리마 예식에 따라 성찬식이 베풀어졌다.[1] 첫 예식에서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의 기도, 서독 천주교회 주교의 성서 봉독, 남인도교회 감독의 설교, 영국 성공회 대주교의 성찬 기도, 덴마크 루터교회, 인도네시아 개혁교회(장로교회), 베닝 감리교회, 헝가리 침례교회, 자메이카 모라비안 교회, 캐나다 연합교회 목사들이 순서를 맡아 성찬을 거행하였다.[1]2. 2. 리마 문서
'리마 예식'이 포함된 '리마 문서'는 1975년 나이로비 대회 결의를 거쳐 세계 140여 개 교단의 응답(17개 지역 천주교 신학교의 반응 포함)과 의견을 수렴했고, 40여 명의 전문가가 응답과 질의, 수렴과 결정 과정을 거쳐 1977년부터 1982년 채택될 때까지 공식적으로 12회 수정, 보완되었다. 1982년까지도 세밀한 부분을 수정, 보완했으며, 1982년 리마에서 개최한 '신앙과 직제 위원회' 총회에서 이의 없이 채택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1986년 《리마예식서》로 해설 부분과 함께 번역 출간하였고, 2005년부터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전자책 형태로 무상 제공하고 있다.2. 3. 논란
리마 예식은 성찬에 관한 신학 논쟁의 주요 쟁점인 '''기념''', '''임재''', '''희생'''이라는 세 가지 신학적 요소를 성경과 전통적 신학 요소를 종합하고, 에큐메니컬 정신을 바탕으로 이해하려 했던 결과물이다. 1983년 제6차 WCC 총회에서 거행되었을 때 총회에서는 이의 없이 채택되었으나, 이후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 내 보수 진영에서는 이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개신교와 정교회 보수 신학자들은 에큐메니컬 운동의 근간이 되는 개신교와 정교회의 일치 노력에 천주교의 입장이 반영되었으며, 이는 성찬의 라틴 예식 수용으로 이어진 순수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천주교 보수 신학자들은 개신교와 정교회의 활동인 에큐메니컬 활동에 천주교가 참여하여 개신교의 신학적 방향을 수용하고 동의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2. 4. 의미
'리마예식'은 1982년에 신학적으로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세계 교회가 성찬례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지속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보아야 한다. 리마 예식서에서 "리마예식서가 리마 문서의 정신을 반영한 유일한 예전적 표현일 수 없다. 다만 리마에서 이룩된 신학적 일치의 수렴을 우리의 예배에 표현할 수 있는 가능한 형태 내지 실례를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1]라고 밝히고 있듯이, 리마 예식은 성찬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공유하고 논의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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