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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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무야정은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부터 개발되어 긴키 지방과 교통이 편리했던 지역이다. 733년의 풍토기에 "무야"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하며, 토사 일기에서는 "무야(牟野)"로 표기되었다. 무로마치 시대에는 미요시 씨의 조카마치였고, 에도 시대에는 "사이타 소금"의 제염업과 소금, 남색 등의 출항 항구로 번성하며 시코쿠의 관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항구 입구의 암초와 1934년의 무로토 태풍으로 인해 쇠퇴하였고, 1947년 나루토시에 합병되어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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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야정 | |
---|---|
일반 정보 | |
자치체명 | 撫養町 (무야정) |
한자 표기 | 撫養町 |
가나 표기 | むやちょう |
区分 (구분) | 町 (정) |
도도부현 | 도쿠시마현 |
군 | 이타노군 |
인구 | 17,228명 (1940년) |
폐지일 | 1947년 3월 15일 |
폐지 이유 | 신설 합병 |
폐지 상세 | 撫養町 (무야정)、나루토정、세토정、사토우라무라 → 나루토시 |
현재의 자치체 | 나루토시 |
인접 자치체 | 나루토정, 세토정, 기타나다무라, 호리에무라, 오쓰무라, 사토우라무라 |
좌표 | 34°11′N 134°36′E |
위치 정보 |
2. 역사
긴키 지방과의 교통이 편리하여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1] 덴표 5년(733년)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풍토기에 '무야'라는 지명이 기록된 것이 가장 오래된 사료이다.[1] 무로마치 시대에는 미요시 씨의 조카마치였으며, 이후 하치스카 이에마사가 성을 축성한 뒤 아와와 아와지 섬을 잇는 길목으로 발전했다.[2] 에도 시대에는 제염업과 남색 무역으로 번성한 항구 도시였으나,[2] 쇼와 시대에 들어 항구 기능이 쇠퇴하고 1934년 무로토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1][3]
2. 1. 초기 역사
긴키 지방과의 교통이 편리하여 나라 시대와 헤이안 시대부터 개발되기 시작했다.[1] 덴표 5년(733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풍토기의 이문에는 '무야'라는 지명이 등장하는데, 이는 사료상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1] 또한, 『토사 일기』에는 '무야(牟野)'라는 표기로 기록되어 있다.무로마치 시대에는 미요시 씨의 조카마치(성 아랫마을)였으나, 덴쇼 13년(1585년) 하치스카 이에마사가 아와 구성 중 하나인 오카자키성(무야 성)을 축성한 이후, 아와에서 아와지 섬으로 건너가는 중요한 길목으로 발전하였다.[2] 에도 시대에는 '사이타 소금'이라 불리는 제염업이 발달했으며, 소금과 남색 등을 실어 나르는 항구로서 번성했다.[2] 시코쿠의 관문 역할을 하며 일본 각지에서 회선(정기 화물선)이 모여드는 주요 항구 도시였으나, 항구 입구 부근에 암초가 많아 대형 선박의 운항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로 인해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항구 도시로서의 기능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1] 더불어 1934년(쇼와 9년)에는 무로토 태풍으로 인한 폭풍우로 염전이 완전히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3]
2. 2. 무로마치 시대
무로마치 시대에는 미요시 씨의 조카마치였지만, 덴쇼 13년 (1585년)에 하치스카 이에마사가 아와 구성 중 하나인 오카자키성(무야 성)을 축성한 이후 아와에서 아와지 섬으로 건너가는 길목으로 특히 발전했다.[2]2. 3. 에도 시대
에도 시대에는 '사이타 소금'으로 알려진 제염업이 발달했으며, 소금과 남색 등을 수출하는 항구로서 번성했다.[2] 시코쿠의 관문 역할을 하며 일본 각지에서 회선(상선)이 모여들어,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항구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항구 입구 부근에 암초가 많아 대형 선박이 드나들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1]2. 4. 쇼와 시대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항구 입구 부근에 암초가 많아 대형 선박의 항행에 지장이 있었기 때문에 점차 항구 도시로서의 기능은 쇠퇴해갔다.[1] 또한 1934년 (쇼와 9년)에는 무로토 태풍으로 인한 폭풍우로 염전이 전멸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3]3. 연혁
참조
[1]
간행물
撫養港のみなと文化
http://www.wave.or.j[...]
みなと総合研究財団
[2]
웹사이트
撫養
https://kotobank.jp/[...]
[3]
뉴스
風速実に六十五メートル、室戸で観測
大阪毎日新聞
193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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