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 위성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미다스 위성은 1960년대 미국이 개발한 최초의 탄도 미사일 조기 경보 위성 시스템으로, 소련의 ICBM 공격에 대한 조기 경보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1957년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은 레이더 기반의 탄도 미사일 조기 경보 시스템(BMEWS)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미다스 위성을 개발했다. 1960년부터 1966년까지 총 12기의 미다스 위성이 발사되었으나, 초기에는 기술적 문제로 인해 실패를 겪었다. 미다스 위성은 적외선 센서를 사용하여 미사일 발사를 감지하려 했지만, 구름에서 반사된 햇빛을 오인하거나 배터리 문제, 센서의 성능 부족 등의 문제점을 보였다. 미다스 프로그램은 방위 지원 프로그램(DSP) 위성 시스템과 SBIRS 위성 시스템 개발의 기반이 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조기 경보 위성 - DSP 위성
DSP 위성은 미국의 탄도 미사일 조기 경보 시스템의 핵심으로, 전략 및 전술 미사일 발사를 감지하는 정찰 위성이며, 우주 기반 적외선 시스템(SBIRS) 위성으로 대체되기 전까지 걸프 전쟁 등 주요 작전에서 활용되었다. - 조기 경보 위성 - EKS 위성
EKS 위성은 러시아의 3세대 조기 경보 위성 시스템으로, 2020년까지 6기 발사 계획 하에 2015년 첫 위성이 발사되었고, 몰니야 궤도를 따라 2022년 11월에 6기로 초기 위성군이 완성되었다. - 미사일 방어 - 전략방위구상
전략방위구상(SDI)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발표한 소련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방어하기 위한 다층 미사일 방어 시스템 구축 계획이었으나, 기술적·재정적 문제, 윤리적 문제 등으로 비판받으며 냉전 종식과 함께 사실상 종료되었지만 미사일 방어 기술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 미사일 방어 - 미사일 발사대
미사일 발사대는 고정식, 지하식, 이동식 등 다양한 형태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설비이며, 이동식 발사대는 기동성과 은폐성을 제공하고, 함정 및 육상 배치 발사대는 다양한 시스템을 포함하며, 포와 미사일 복합 체계도 존재한다.
미다스 위성 | |
---|---|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 | |
![]() | |
유형 | 조기 경보 시스템 |
개발 | 1950년대 후반 |
제작자 | 미국 공군 |
운용자 | 미국 공군 |
발사체 | 아틀라스 토르-에이블 |
위성 수 | 12개 |
궤도 | 고고도 |
임무 기간 | 1960년 ~ 1966년 |
성공률 | 83% |
비용 | 5억 달러 (1960년대) |
대체 시스템 | 방어 지원 프로그램 |
개요 | |
목적 | 소련의 ICBM 발사 조기 경보 |
기술적 접근 | 적외선 센서를 이용한 로켓 배기 감지 |
주요 성과 | 최초의 위성 기반 미사일 조기 경보 시스템 |
역사 | |
배경 | 스푸트니크 쇼크 ICBM 위협 증가 |
개발 목표 | ICBM 발사 후 15분 이내 경보 제공 미사일 갭 해소 |
프로그램 시작 | 1958년 |
첫 시험 발사 | 1960년 |
초기 어려움 | 기술적 문제, 자금 부족 |
위성 궤도 진입 실패 | 다수 발생 |
기술적 문제 해결 | 1960년대 초 |
완전 가동 | 1966년 |
프로그램 종료 | 1966년 |
프로그램 종료 이유 | 방어 지원 프로그램 (DSP)으로 대체 |
기술적 특징 | |
적외선 센서 | 로켓 배기 플룸 감지 |
통신 시스템 | 지상 기지로 데이터 전송 |
데이터 처리 | 미사일 발사 여부 판단 |
시스템 한계 | 구름에 의한 감지 방해 지구 복사열로 인한 오류 |
정치적 영향 | |
미사일 갭 논쟁 종식 | 소련의 ICBM 위협 과장 해소 |
미국 핵 억지력 강화 | 조기 경보 능력 확보 |
유산 | |
방어 지원 프로그램 (DSP) 개발 기반 | 기술적 토대 제공 운용 경험 축적 |
현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시초 | 위성 기반 감시 시스템의 가능성 입증 |
논란 | |
기술적 신뢰성 문제 | 초기 시스템의 낮은 성공률 |
예산 낭비 논란 | 높은 개발 비용 대비 효과 미흡 |
군비 경쟁 심화 우려 | 소련의 대응 시스템 개발 촉발 |
2. 역사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 사건은 미국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이는 소련이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ICBM 능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로 알려진 이 사건 이후, 미국은 소련의 ICBM 공격을 조기에 탐지하고 경보하기 위한 시스템 개발에 나서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Missile Defense Alarm System, MIDAS) 위성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1960년 5월 24일, 소련 ICBM의 조기 경보를 목적으로 하는 첫 번째 미다스 위성이 발사되었다. 이후 1966년까지 총 12개의 미다스 위성이 발사되었으며, 이는 미국의 초기 우주 기반 미사일 조기 경보 체계 구축 시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 1. 스푸트니크 쇼크와 미국의 대응
1957년 10월 4일, 소련은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튜라탐 발사 기지에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과학적 성과를 넘어, 소련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이용해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는 이른바 스푸트니크 쇼크로 불리게 되었다. 스푸트니크 1호와 이후 발사된 스푸트니크 2호에 사용된 R-7 세묘르카 로켓은 수소 폭탄을 탑재할 수 있었으며, 이는 미국과 캐나다에게 진주만 공습과 같은 기습적인 핵 공격의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1]소련의 기습 ICBM 공격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 캐나다, 그리고 그린란드에 대한 권한을 가진 덴마크 정부는 탄도 미사일 조기 경보 시스템(BMEWS) 구축에 합의했다. BMEWS는 레이더를 이용해 날아오는 ICBM 탄두를 탐지하여 약 20분의 조기 경보 시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주요 레이더 기지는 그린란드의 툴레 공군 기지, 알래스카의 클리어 공군 기지, 그리고 이후 잉글랜드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BMEWS는 레이더 시스템의 본질적인 한계와 지구 곡률 문제에 직면했다. 소련의 잠재적 ICBM 발사 지점은 BMEWS 레이더 기지에서 수천 마일 떨어져 있었고, 레이더는 ICBM 탄두가 수평선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는 이를 감지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BMEWS가 제공할 수 있는 실제 경고 시간은 10분에서 최대 25분에 불과할 것으로 계산되었다. 이는 미국 공군의 전략 공군 사령부 소속 핵무기 탑재 중폭격기들이 기습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이륙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다.[1]
이러한 BMEWS의 한계를 보완하고 보다 신뢰성 있는 조기 경보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Missile Defense Alarm System, MIDAS) 개발이 추진되었다. MIDAS는 적외선 센서를 탑재한 위성을 이용해 ICBM 발사 시 발생하는 열을 탐지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이를 통해 BMEWS보다 빠른, 약 30분의 조기 경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늘어난 경고 시간은 미국의 핵 폭격기들이 소련의 기습 공격 이전에 안전하게 이륙할 시간을 벌어줌으로써, 소련이 미국의 대규모 보복 능력을 무력화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질 것으로 기대되었다.[1] 또한, MIDAS는 BMEWS 레이더가 탐지한 위협이 실제 핵 공격인지 교차 확인하여 레이더 시스템의 오경보 가능성을 줄이는 역할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되었다.[1]
MIDAS 프로그램의 기원은 1955년 3월 16일 미국 공군이 잠재적 적국의 전쟁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특정 지역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첨단 정찰 위성 개발을 명령하면서 시작된 비밀 프로그램 WS-117L로 거슬러 올라간다.[2]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초기 첩보 위성인 코로나 시리즈와 SAMOS 위성 개발을 포함했다. 이들 위성의 개발을 맡은 록히드 마틴은 적외선 센서와 망원경을 이용해 폭격기나 ICBM의 열 신호를 감지하는 지원 위성 개념을 제안하기도 했다.[3]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ICBM 위협이 현실화되자, 같은 해 말 WS-117L 프로그램에 하위 시스템 G(Subsystem G)가 추가되었고, 이는 이후 고등 연구 계획국(ARPA)으로 이관되어 1958년 11월 'MiDAS'라는 암호명을 부여받았다.[3][4]
1959년 2월, ARPA는 공군에 MIDAS의 초기 개발 계획을 제출했다. 이 계획은 소련 상공을 비행하는 위성에 탑재된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 ICBM 발사를 탐지하고 조기 경보를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5] 초기 계획은 1959년 11월부터 1961년 5월까지 10개의 연구 개발용 위성을 발사하고, 이후 본격적인 운영 시스템을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6]
MIDAS가 수집하는 정보는 시간 민감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기존의 코로나나 SAMOS 위성처럼 사진 필름이 담긴 캡슐을 대기 재진입 시켜 항공기로 회수하는 필름 통 투하 방식은 사용할 수 없었다. 대신, MIDAS 위성은 탐지된 미사일 발사 정보(시간 및 위치)를 전파를 이용해 지상 기지로 즉시 전송해야 했다. 당시 기술적 한계로 인해 실제 적외선 이미지를 전송하는 것은 어려웠고, 발사 감지 여부와 기본 정보만 전송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소련의 광대한 영토를 24시간 감시하기 위해서는 여러 대의 위성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위성을 정지 궤도에 올릴 수 있는 강력한 부스터 로켓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북극권 근처의 발사 기지까지 감시하기 위해서는 극궤도를 도는 위성 여러 대를 배치해야 했다. 극궤도 위성은 지구 자전에 따라 주기적으로 소련 상공을 지나가게 된다. 초기 계획은 고도 약 1609.34km (약 1600km) 궤도에 20개의 위성을 배치하는 것이었으나, 1959년 말 수정된 계획에서는 고도 약 3218.68km (약 3200km) 궤도에 12개의 위성을 배치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7]
1959년 당시 추정된 MIDAS 시스템 전체 구축 비용은 2억달러에서 6억달러 사이였다.[8] 막대한 비용과 해결되지 않은 기술적 문제들 때문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과학 자문 위원회는 우선 연구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하되, 완전한 시스템 구축에 대한 최종 결정은 최소 1년 이상 보류할 것을 권고했다.[8] 1959 회계연도에 ARPA는 MIDAS 개발에 2280만달러를 지출했으며, 1960 회계연도에는 ARPA와 공군이 합쳐 총 9490만달러를 투입했다.[9]
2. 2. MIDAS 개발 과정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는 소련이 미국 본토까지 핵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능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스푸트니크 1호와 스푸트니크 2호 발사에 사용된 R-7 세묘르카 부스터 로켓은 수소 폭탄 탑재가 가능하여, 미국과 캐나다는 진주만 공습과 같은 기습 핵 공격의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이에 대응하여 미국, 캐나다, 덴마크(그린란드의 툴레 공군 기지에 주요 레이더 기지 건설) 정부는 탄도 미사일 조기 경보 시스템(BMEWS) 구축에 합의했다. BMEWS는 레이더를 이용해 접근하는 ICBM 탄두를 탐지하여 약 20분의 경보 시간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레이더 시스템의 본질적인 한계와 지구 곡률 문제로 인해, 북반구 반대편에 위치한 소련의 ICBM 발사 지점을 발사 직후 탐지하기 어려웠다. 탄두가 수평선 위로 떠올라야만 탐지가 가능했으며, 이로 인해 실제 경보 시간은 10분에서 25분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러한 BMEWS의 한계를 보완하고 조기 경보 시간을 약 30분으로 늘리기 위해 MIDAS(Missile Defense Alarm System) 위성 프로그램이 추진되었다. 늘어난 경보 시간은 전략 공군 사령부의 핵무기 탑재 중폭격기들이 기습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이륙할 시간을 확보해주어, 소련의 공격 의지를 억제하는 핵 억제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1] 또한 MIDAS는 BMEWS의 레이더 탐지 정보를 교차 확인하여 오경보 가능성을 줄이는 역할도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1]
MIDAS의 개발은 1955년 3월 16일, 미국 공군이 진보된 정찰 위성 개발을 명령하면서 시작된 WS-117L 프로그램의 일부로 거슬러 올라간다.[2]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초기 첩보 위성인 코로나 시리즈와 SAMOS 위성 개발을 포함했다. 위성 개발을 맡은 록히드 마틴사는 적외선 센서와 망원경을 이용해 미사일 발사 시 발생하는 열을 감지하는 조기 경보 위성 개념을 제안했다.[3]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ICBM 위협이 현실화되자, 1957년 말 WS-117L 프로그램에 조기 경보 임무(하위 시스템 G)가 추가되었다.[4] 이후 고등 연구 계획국(ARPA)이 창설되면서 이 임무는 ARPA로 이관되었고, 1958년 11월 'MiDAS'라는 암호명이 부여되었다.[3]
1959년 2월, ARPA는 공군에 초기 개발 계획을 제출했다. 계획에 따르면 MIDAS는 소련 상공에서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 ICBM 발사를 감지하고 조기 경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5] 1959년 11월부터 1961년 5월까지 10개의 위성을 이용한 연구 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본격적인 운영 시스템을 배치할 계획이었다.[6]
MIDAS가 수집할 정보는 시간적 민감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기존 첩보 위성처럼 필름 통 투하 방식을 사용할 수 없었다. 대신 위성은 탐지한 미사일 발사 정보(시간, 위치)를 전파를 통해 지상으로 전송해야 했다. 당시 기술적 한계로 RF 채널 용량이 제한적이어서 실제 적외선 이미지를 전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소련의 광대한 영토를 24시간 감시하기 위해서는 여러 대의 위성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위성을 정지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부스터 로켓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북극권 근처를 포함한 모든 발사 가능 지점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극궤도를 도는 다수의 위성이 필요했다. 극궤도의 특성상 각 위성은 소련 상공에 짧은 시간 동안만 머무를 수 있었다. 초기 계획은 약 1609.34km 고도에 20개의 위성을 배치하는 것이었으나, 이후 약 3218.68km 고도에 12개의 위성을 배치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7]
1959년에 추정된 완전한 시스템 구현 비용은 2억달러에서 6억달러 사이였다.[8] 막대한 비용과 해결되지 않은 기술적 문제들 때문에,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과학 자문 위원회는 연구 프로그램을 우선 진행하되, 완전한 시스템 구축 결정은 최소 1년 유보할 것을 권고했다.[8] 1959 회계 연도에 ARPA는 MIDAS에 2280만달러를 지출했고,[9] 1960 회계 연도에는 ARPA와 공군이 총 9490만달러를 투입했다.[9]
MIDAS 프로그램의 첫 발사는 1960년 2월 26일 MIDAS 1호로 시작되었으나, 아틀라스-아제나 A 부스터의 아제나 단 분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실패했다. 조사 결과 아제나 단의 자폭 시스템(ISDS) 오작동이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이후 ISDS 시스템이 재설계되었다.[10]
1960년 5월 24일 발사된 MIDAS 2호는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했지만, 자세 제어 시스템과 텔레메트리 시스템 고장으로 제한적인 데이터만 전송하는 데 그쳤다. 이후 1년 이상 발사가 중단되었고, 프로그램 운영 기지는 서부 해안의 포인트 아르겔로 SLC-3 1-2로 이전되었다. 이 기간 동안 두 기의 코로나 위성에 MIDAS 센서를 탑재하여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1961년 7월 24일 발사된 첫 운영 모델인 MIDAS 3호는 궤도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태양광 패널 하나가 전개되지 않아 전력 부족으로 몇 번의 궤도 비행 후 작동을 멈췄다. 같은 해 10월 21일 발사된 MIDAS 4호는 발사체인 아틀라스 로켓의 롤 제어 상실로 잘못된 궤도에 진입했고, 자세 제어 가스 소진과 태양광 패널 고장으로 임무 시작 일주일 만에 작동을 중단했다. 다만 작동 중단 전에 케이프 커내버럴에서 발사된 타이탄 I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감지하기도 했다. 연이은 실패 원인 조사 결과, 아틀라스 로켓 후퇴 로켓 패키지의 열 차폐 손상으로 인한 자이로스코프 과열 및 트랜지스터 결함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잇따른 실패와 기술적 문제로 인해, 1961년 말 ARPA 국장 잭 루이나가 이끄는 위원회는 공군이 MIDAS의 개념 증명에 성공할 때까지 운영 시스템 구축 시도를 보류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당시 MIDAS 센서는 액체 연료 로켓 감지에 맞춰져 있었는데, 고체 연료 로켓이 미래의 주력으로 여겨지던 상황(비록 소련은 고체 연료 개발에서 뒤처져 있었지만)에서 센서의 한계도 지적되었다. 위원회는 프로그램 관리가 미흡하며 현재 성공률로는 운영 시스템 개발에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해 11월, 국방부는 모든 국방 우주 프로그램을 기밀로 분류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MIDAS는 "프로그램 461"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문제 해결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개발 기간이 연장되었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실패는 계속되었다. 1962년 4월 9일 발사된 MIDAS 5호는 아틀라스 자동 조종 장치 문제로 계획된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고, 배터리 고장으로 작동을 멈췄다.[11] 1962년 12월 17일 발사된 MIDAS 6호는 발사 77초 만에 비행 제어 상실 후 80초에 자폭했다. 조사 결과, 부스터 유압 상승 분리 장치의 열 차폐가 발사 중 파손되어 유압 유체가 누출되었고, 이로 인해 부스터 엔진의 짐벌 제어 기능을 상실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12]
마침내 1963년 5월 9일 발사된 MIDAS 7호가 최초의 성공을 거두었다.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한 MIDAS 7호는 6주간의 임무 동안 10차례의 미국 ICBM 시험 발사를 성공적으로 감지하여, 우주 공간에서 미사일 발사를 탐지하는 능력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그러나 한 달 뒤인 6월 12일 발사된 MIDAS 8호는 MIDAS 6호와 동일하게 상승 열 차폐 파손으로 인한 유압 시스템 고장으로 발사에 실패했다.[13] 이 실패 이후 상승 열 차폐가 재설계되었고, 아틀라스 발사체의 유압 시스템에 체크 밸브가 추가되었다. 원래 시리즈의 마지막 위성인 MIDAS 9호는 1963년 7월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이후 MIDAS 10호부터 12호까지는 1966년 중반 5개월 동안 발사되었으며, 이를 끝으로 MIDAS 프로그램은 공식적으로 종료되고 후속 프로그램인 방위 지원 프로그램(DSP)으로 이어졌다. MIDAS 관련 정보는 1998년에 기밀 해제되었다.
결론적으로 MIDAS 프로그램은 당시 기술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나치게 야심 찬 목표 설정으로 인해 제한적인 성공에 그쳤다.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미사일 발사로 오인하는 문제, 초기 W-17 센서의 성능 부족(대기권 통과 미사일 감지 불가), 잦은 발사 실패, 배터리 수명 제한으로 인한 지속적인 전력 공급 문제 등이 주요 어려움이었다. W-37 센서가 도입된 후에야 비로소 궤도에서 미사일 발사 감지에 성공했지만, 프로그램 전반의 성공률은 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IDAS는 비록 자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후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미사일 조기 경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방위 지원 프로그램(DSP) 위성 시스템 개발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2. 3. MIDAS 발사 및 운영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는 소련이 미국 본토까지 핵탄두를 탑재한 ICBM을 운용할 능력을 갖추었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은 소련의 ICBM 발사를 조기에 탐지하기 위한 위성 개발에 착수했다.MIDAS(Missile Defense Alarm System) 프로그램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 2월 26일, 첫 번째 위성인 MIDAS 1호가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의 LC-14 발사대에서 아틀라스-아제나 A 로켓에 실려 발사되었다. 아틀라스 로켓의 연소는 성공적이었으나, 상단부인 아제나 단 분리 과정에서 압력 이상과 기체 회전이 발생하며 통신이 두절되었다. 조사 결과, 아제나 단의 자폭 시스템(ISDS) 오작동이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이후 ISDS 시스템은 재설계되었다.[10]
1960년 5월 24일 발사된 MIDAS 2호는 성공적으로 궤도에 진입했으나, 자세 제어 시스템과 통신 시스템 고장으로 일부 적외선 센서 데이터만 수신하는 데 그쳤다. 이 위성은 1974년까지 궤도에 머물렀다. 이후 프로그램은 서부 해안의 포인트 아르겔로 기지로 이전되었고, 이 기간 동안 두 기의 CORONA 위성에 MIDAS 센서를 탑재하여 시험하기도 했다.
1961년 7월 24일 발사된 MIDAS 3호는 재점화가 가능한 아제나 B 단계를 사용한 첫 운영 모델이었으나, 발사 중 아틀라스 로켓의 프로그래머 오작동과 태양 전지판 미전개 문제로 인해 몇 번의 궤도 비행 후 작동을 멈췄다. 같은 해 10월 21일 발사된 MIDAS 4호는 아틀라스 로켓의 롤 제어 상실로 잘못된 궤도에 진입했으며, 자세 제어 가스 소진과 태양 전지판 고장으로 일주일 만에 작동이 중단되었다. 다만, 작동 중단 전에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된 타이탄 I 미사일을 탐지하는 데 성공했다. 연이은 실패의 원인으로는 아틀라스 로켓의 후퇴 로켓 열 차폐 손상과 트랜지스터 결함 등이 지목되었다.
잇따른 실패로 인해 MIDAS 프로그램은 잠시 중단되었다. ARPA(현 DARPA) 국장 잭 루이나가 이끄는 위원회는 공군이 개념 증명에 성공할 때까지 운영 시스템 개발을 보류할 것을 권고했다. 또한, 당시 MIDAS 센서는 액체 연료 로켓 감지에 맞춰져 있었으나, 탄도 미사일의 주류는 고체 연료로 옮겨가는 추세였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었다(소련은 고체 연료 로켓 개발에서 미국보다 뒤처져 있었다). 위원회는 프로그램 관리가 미흡하며 현재 성공률로는 운영 시스템 개발에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1961년 11월, 미국 국방부는 모든 국방 우주 프로그램을 기밀로 분류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MIDAS는 "프로그램 461"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1962년 4월 9일 발사된 MIDAS 5호는 궤도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아틀라스 자동 조종 장치 문제로 계획된 고도와 속도에 미치지 못했고, 배터리 고장으로 7번째 궤도 비행 이후 작동을 멈췄다.[11] 같은 해 12월 17일 발사된 MIDAS 6호는 발사 77초 만에 비행 제어 시스템 이상으로 아틀라스 로켓이 파괴되어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조사 결과, 발사 시 부스터 유압 시스템의 열 차폐가 파손되어 유압 유체가 누출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12]
1963년 5월 9일 발사된 MIDAS 7호는 마침내 중요한 성공을 거두었다. 6주간의 임무 동안 10개의 미국 ICBM 시험 발사를 성공적으로 감지했으며, 이는 우주 공간에서 미사일 발사를 탐지한 최초의 사례였다. 하지만 한 달 뒤인 6월 12일 발사된 MIDAS 8호는 MIDAS 6호와 동일한 열 차폐 문제로 발사 93초 만에 파괴되었다. 이 문제는 1963년 3월 아틀라스 D ICBM 시험 비행 실패의 원인이기도 했으며, 잇따른 실패 이후 열 차폐는 재설계되었다.[13] MIDAS 8호 발사 한 달 후인 7월 19일, MIDAS 9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이후 MIDAS 10, 11, 12호가 1966년 중반 5개월 동안 발사되었고, 이를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어 후속 프로그램인 방위 지원 프로그램(DSP)으로 이어졌다.
MIDAS 프로그램과 그 후속 위성 정보는 1998년에 기밀 해제되었다.
결론적으로 MIDAS 프로그램은 당시 기술 수준을 넘어서는 야심 찬 목표를 가졌기에 제한적인 성공에 그쳤다. 구름에 반사된 햇빛을 미사일 발사로 오인하는 문제, 초기 센서(W-17)의 성능 부족, 잦은 발사 실패, 태양 전지판 등 지속적인 전력 공급 장치 부재로 인한 짧은 운용 기간 등의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실패와 경험은 1970년대부터 발사되어 현재까지 미사일 조기 경보 임무를 수행하는 방위 지원 프로그램(DSP) 위성 시스템 개발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다음은 MIDAS 위성 발사 목록이다. Astronautix에서 가져온 미션 차트[14]와 [15]
이름 | 발사 날짜 | 질량 (kg) | 발사 기지 | 발사체 | 경사각 (도) | NSSDC ID | 비고 |
---|---|---|---|---|---|---|---|
Midas 1 | 1960년 2월 26일 | 2,025 | 케이프 커내버럴 | LV-3A 아틀라스-아제나 A | -------- | MIDAS1 | 실패: 아틀라스 성능은 정상이었으나, 아제나 분리 중 전기적 오작동으로 자폭 시스템이 작동하여 아제나와 아틀라스 LOX 탱크 파열. 대서양 추락. |
Midas 2 | 1960년 5월 24일 | 2,300 | 케이프 커내버럴[16] | LV-3A 아틀라스-아제나 A | 33.00 | 1960-006A |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 W-17 센서 시험 탑재. 자세 제어 및 통신 시스템 고장. |
디스커버러 19 (RM-1) | 1960년 12월 20일 | 1,060 | 반덴버그 | 토르-아제나 | 83.40 | 1960-019A | 미다스 프로그램용 IR 센서 테스트; 카메라 또는 필름 캡슐 미탑재. |
디스커버러 21 (RM-2) | 1961년 2월 18일 | 1,110 | 반덴버그 | 토르-아제나 B | 80.60 | 1961-006A | 미다스 프로그램용 IR 센서 테스트; 카메라 또는 필름 캡슐 미탑재. |
Midas 3 | 1961년 7월 12일 | 1,600 | 포인트 아르겔로 | LV-3A 아틀라스-아제나 B | 91.20 | 1961-018A |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 태양 전지판 미전개로 조기 작동 중단. |
Midas 4 | 1961년 10월 21일 | 1,800 | 포인트 아르겔로 | LV-3A 아틀라스-아제나 B | 86.70 | 1961-028A |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 부스터 오작동으로 잘못된 궤도 진입. 타이탄 I 미사일 감지 성공 후 작동 중단. |
Midas 5 | 1962년 4월 9일 | 1,860 | 포인트 아르겔로 | LV-3A 아틀라스-아제나 B | 86.70 | 1962-010A |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 아틀라스 자동 조종 장치 문제로 계획된 궤도 실패. 배터리 고장. |
ERS 3 | 1962년 12월 17일 | 불명 | 포인트 아르겔로 | LV-3A 아틀라스-아제나 B | -------- | -------- | 발사 실패. 발사 시 유압 이륙 밸브 손상. RSO T+82초. (MIDAS 6호 발사 실패) |
Midas 7 | 1963년 5월 9일 | 2,000 | 포인트 아르겔로 | LV-3A 아틀라스-아제나 B | 87.30 | 1963-030A | 최초의 운영 MIDAS 임무. W-37 센서 탑재. 6주간 미국 ICBM 발사 9건 감지 (우주 최초 미사일 발사 감지). |
ERS 7 | 1963년 6월 12일 | 불명 | 포인트 아르겔로 | LV-3A 아틀라스-아제나 B | -------- | -------- | 발사 실패. (MIDAS 8호 발사 실패와 동일 발사체) |
ERS 8 | 1963년 6월 12일 | 불명 | 포인트 아르겔로 | LV-3A 아틀라스-아제나 B | -------- | -------- | 발사 실패. 아틀라스 부스터 유압 고장 후 제어 불능 및 RSO 파괴. (MIDAS 8호 발사 실패) |
Midas 9 | 1963년 7월 19일 | 2,000 | 포인트 아르겔로 | LV-3A 아틀라스-아제나 B | 88.40 | -------- |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 ERS 10 서브위성 미 발사. |
Midas 10 | 1966년 6월 9일 | 2,000 | 반덴버그 | SLV-3 아틀라스-아제나 D | 90.00 | 1966-051A |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 전이 궤도에 남겨짐. |
Midas 11 | 1966년 8월 19일 | 2,000 | 반덴버그 | SLV-3 아틀라스-아제나 D | 89.70 | 1966-077A |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 |
Midas 12 | 1966년 10월 5일 | 2,000 | 반덴버그 | SLV-3 아틀라스-아제나 D | 89.80 | 1966-089A | 미사일 방어 경보 시스템. |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대포동 1호를 통해 최초의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발사했지만, 한국은 대포동 쇼크 또는 광명성 쇼크에도 불구하고, 미국처럼 조기경보위성을 개발하지는 않았다. 평양에서 서울까지는 195km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2017년 현재 한국은 미국 SBIRS 조기경보위성의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북한 미사일 발사 시, 40초 후에 SBIRS 위성이 탐지할 수 있다고 보도되었다.
미국은 냉전 시기부터 적국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조기에 탐지하기 위한 위성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왔다.
[1]
문서
Draft of a Report on MIDAS
http://www.gwu.edu/~[...]
DARPA
1961-11-01
3. 대한민국
4. 미국의 조기경보위성 발전
위성 종류 개발 시기 특징 발사 수/궤도 미다스 위성 1960년대 미국 최초의 조기경보위성 12기 발사 DSP 위성 1970년대 미다스 위성 대체 정지 궤도 23기 발사 SBIRS 위성 2000년대 DSP 위성 대체 정지 궤도 4기, 저궤도 24기 구성
1998년 8월 31일, 북한이 대포동 1호 발사체를 이용하여 광명성 1호 위성 발사를 시도하면서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대포동 쇼크 또는 광명성 쇼크로 불리며 안보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위협 증가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독자적인 조기경보위성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았다. 평양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약 195km에 불과하여 미사일 방어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안보상의 취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2017년 기준으로 한국은 미국의 SBIRS 조기경보위성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SBIRS 위성은 약 40초 후에 이를 탐지할 수 있다. 이는 미국의 발전된 위성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독자적인 감시 및 대응 능력 확보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참조
[2]
서적
Into the Unknown Together - The DOD, NASA, and Early Spaceflight
http://aupress.au.af[...]
[3]
간행물
Space-Based Early Warning: From MIDAS to DSP to SBIRS
http://www.gwu.edu/~[...]
National Security Archive Electronic Briefing Book
2007-11-09
[4]
서적
America's Space Sentinels: DSP Satellites and National Security
University Press of Kansas
1999
[5]
웹사이트
W-37 Infrared Early Warning Sensor
https://archive.toda[...]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1999-10-18
[6]
문서
Draft of a Report on MIDAS
http://www.gwu.edu/~[...]
DARPA
1961-11-01
[7]
논문
"The MIDAS Project: Part I Strategic and Technical Origins and Political Evolution 1955-1963"
1997
[8]
문서
Report of the Early Warning Panel
http://www.gwu.edu/~[...]
The President's Science Advisory Committee
1959-03-13
[9]
웹사이트
Chronology of Air Force space activities
https://web.archive.[...]
National Reconnaissance Office
2011-07-13
[10]
문서
Postflight Evaluation Report, Atlas 29D
Convair
1960-03-14
[11]
문서
Flight Evaluation Report, Atlas 110D
Convair
1962-04-28
[12]
문서
Flight Evaluation Report, Atlas 131D
Convair
1963-01-05
[13]
문서
Flight Evaluation Report, Atlas 139D
Convair
1963-06-30
[14]
웹사이트
Midas
http://www.astronaut[...]
[15]
웹사이트
Missile Defense Alarm: The Genesis of Space-based Infrared Early Warning
https://www.webcitat[...]
Space and Missile Systems Center
1988
[16]
Youtube
Video: Cataclysm. Volcano, Tidal Waves, Devastate Pacific Area, 1960/05/27 (1960)
https://archive.org/[...]
Universal Newsreel
2012-02-22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