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 슌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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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즈노 슌페이는 홋카이도 출신의 일본인으로, 한국어학을 전공하고 대한민국에서 유학하며 친한파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전남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강사로 활동하며 방송 출연 등으로 인지도를 높였으나, 필명으로 일본 우익적 역사관을 담은 글을 기고하여 비판을 받았다. 이후 일본으로 귀국하여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혐한 활동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며, 혐한 논란 이후에도 한국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는 등 이중적인 행보를 보였다. 저서로는 한국 관련 서적과 일본어 학습 관련 서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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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노 슌페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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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미즈노 슌페이 |
원어 이름 | 水野俊平 (みずの しゅんぺい) |
다른 이름 | 노히라 슌스이 (野平俊水, のひら しゅんすい) |
출생일 | 1968년 1월 5일 |
출생지 | 일본, 홋카이도무로란시 |
국적 | 일본 |
직업 | 학자 |
학력 | |
학사 | 덴리 대학 |
석사/박사 | 전남대학교 |
연구 분야 | |
분야 | 언어학 |
하위 분야 | 한국어 |
주요 관심사 | 조선어학 |
주요 저작 | 일본인은 깜짝! 한국인의 일본 위사 (2002년) 한국의 젊은이를 알고 싶다 (2003년) 한 vs 일 "위사 월드" (2007년) 한국의 역사 (2007년) |
주목할 만한 아이디어 | 괴상한 책 |
경력 | |
소속 기관 | 홋카이 상과대학 |
소속 학회 | 조선학회 국어학회 (한국) 계량국어학회 지명학회 조선연구회 |
2. 약력
- 1990년 나라현에 있는 덴리 대학 국제문화학부 한국・조선어 코스를 졸업하고, 한국의 전남대학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 이후 전남대에서 일본어과 강사로 재직중 방송을 통해 알려지며 여러 방송사에 고정 출연하던 중 몰래 일본 극우 매체에 일제 식민지 역사를 옹호하고 혐한 글을 기고하는 이중적인 행동을 하고 있던 사실이 밝혀져 도망가듯 일본으로 귀국했고 귀국한 뒤에도 꾸준히 혐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한국인이 가지는 일본인에 대한 편견 중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며 음침한 사람이 많다라는 고정관념을 고착화 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 홋카이도 무로란시 출신.[10] 노보리베츠미나미고등학교를 거쳐, 1990년 덴리 대학 외국어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했다.
- 한국의 국립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유학하여, 1993년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1995년 박사 과정을 수료, 같은 대학의 일본어학과 비상근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10] 2001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11]
- 1998년부터 한국에 있는 일본인 지식인으로서, 종종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 CM에도 출연했다.[10] 전라도 방언으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농담 삼아 하는 것이 안방에 어필하여 "가장 유명한 재한 일본인"이라고 불렸다.[12]
- 2005년 한국에서 인터넷 게시글이 발단이 되어 비판을 받았다.[11] 「노다이라 슌스이」 명의로 일본에서 출판한 책 『일본인은 깜짝! 한국인의 일본 위사』 속에 일본의 우익적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 있다고 보도되었다. 그 때문에 "친한을 가장하여 일본 우익과 손을 잡고 있다"고 한국의 네티즌에게 비판받아,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극우 미즈노'의 정체를 밝힌다!"라고 다루어졌다.
- 같은 해 2월에 전남대학교를 퇴관하고,[14] 2006년 일본으로 귀국, 호쿠카이 상과 대학에서 교수로 취임하여, 조선어를 가르치고 있다.[15]
- 노보리베츠 미나미 고등학교 문예부[16]에 다닐 때, 동급생으로부터 "이제부터는 아시아의 시대다. 아시아로 날아오르는 것은 미즈노, 너밖에 없다"라는 말을 들은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 빠져들었다.[17]
- 대학교 2학년 때 은사의 부탁으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온 경희대학교 여자 하키부 통역을 맡게 되었다. 한국에 유학을 가게 되었고, 우연히 근처에 텐리 대학교에 온 여자 하키 선수 친가가 있어서, 1995년 결혼했다. [10]
- 텔레비전 프로그램 촬영 때문에, 주 2회는 서울과 광주를 왕복하는 생활이 4, 5년 이어졌다. 한국에서 태어난 장남은 일본어를 못해서, 서울의 일본인 학교에 넣으려고 했지만, 학교 근처에 살기 위해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집을 빌리기 위해 5000만원의 빚을 졌고, 텔레비전 출연료는 전부 사라졌다. [11]
- 비난을 받으면서, 텔레비전 출연이 전혀 없어졌다. 대학교 강사만으로는, 서울에서 아이 3명을 키우며 생활할 수 있을 만큼 벌 수 없었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텔레비전에 출연한 것이, 공부에 좋지 않았다. [18]
3. 한국에서의 활동 및 논란
미즈노 슌페이는 전라도 사투리에 능통하고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으로 한국에서 방송 활동을 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그러나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라는 필명으로 일본 잡지에 한국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고, 이를 묶어 책으로 출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여론, 특히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았다.[20][21]
2005년 전남대학교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 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에서 일본어 작문을 가르치기도 했으나, 2006년 일본으로 귀국하여 호쿠카이 상과 대학 교수로 부임했다.
미즈노는 최진실 자살 사건, 인터넷 악플, 미네르바 열풍 등 한국 사회의 이슈를 분석하고 강연하기도 했다.[22][23][24] 2008년 홋카이도 방송(HBC) 대담 프로그램에서는 한일 양국 네티즌들이 인터넷상에서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충돌하는 현상을 우려하며, 이를 제어하는 것이 양국 우호 관계에 중요하다고 주장했다.[25]
2015년 홋카이도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반일의 원인을 일본이 제공한 것은 틀림없다"고 지적하며, 일본 젊은 세대에게 한국을 알리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26]
하지만 미즈노는 한국에서 활동할 때부터 한국을 저평가했으며,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한 적은 있어도 한국 자체를 높이 평가한 적은 없다는 비판을 받는다. 2013년 발표한 글에서는 자신의 혐한 활동에 대한 반성 없이 한국 정권 교체의 희생양으로만 여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일본 귀국 후에는 노골적인 혐한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산케이 신문 기고문 등에서 한국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그는 한국 언론이 자신을 부당하게 공격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는데, 이는 대한민국의 언론을 불신하는 혐한 세력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3. 1. 친한파 이미지와 방송 활동
미즈노 슌페이는 전라도 사투리에 능통하고, 유학 중 한국 여성과 결혼했으며, 대한민국의 신문과 TV에 자주 출연하여 친한파 인사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여나갔다.[19] 2000년부터 2년간 방송 출연료 11800000KRW을 전남대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19]홋카이도 무로란시 출신으로 1990년 텐리 대학 외국어학부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1993년 한국의 국립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5년에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전남대학교 일본어학과 비상근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10] 2001년에는 박사 학위를 받았다.[11]
1998년부터 한국에 있는 일본인 지식인으로서,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CM에 출연했다.[10] 전라도 방언으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농담 삼아 하는 것이 안방에 어필하여 "가장 유명한 재한 일본인"이라고 불렸다.[12] 이 모습은 2005년 2월 6일에 방송된 일본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꿈의 문 ~NEXT DOOR~』 (제18회)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다.[13]
미즈노 슌페이는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으로 대한민국에서 널리 알려졌으며, 텔레비전 출연과 강연을 자주 하며, 종종 한일 관계와 고대 일본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외국인 중 한 명으로 묘사되었다.[5][3][4]
하지만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20]라는 필명으로 일본 잡지 ‘사피오(SAPIO)’, ‘쇼쿤(諸君)’, ‘겐다이코리아(現代コリァ)’ 등에 한국인들의 대일 인식 및 일본인에 대한 편견, 역사 유적[21]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고, 이를 묶은 서적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한국에 알려져 한국 여론, 특히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았다.
2005년 2월 강사로 재직 중이던 전남대학교에서 계약이 종료되자, 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에서 일어 작문을 가르치기도 했으나, 2006년 일본에 귀국하여 고향에 있는 호쿠카이 상과 대학에서 교수로 부임해 한국어와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저술의 목표가 일본인과 한국인 모두가 역사적 갈등을 극복하고 더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5]
3. 2. 혐한 활동 논란과 비판
미즈노 슌페이는 1990년 나라현 덴리 대학 국제문화학부 한국・조선어 코스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10][11] 이후 전남대에서 일본어과 강사로 재직하며 방송을 통해 알려져 여러 방송사에 고정 출연했다. 그러나 몰래 일본 극우 매체에 일제 식민지 역사를 옹호하고 혐한 글을 기고하는 이중적인 행동을 한 사실이 밝혀져 도망가듯 일본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에도 꾸준히 혐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20][21] 그는 한국인이 일본인에 대해 가지는 '겉과 속이 다르고 음침하다'는 편견을 고착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전라도 사투리에 능하고 한국 여성과 결혼했으며, 한국 신문과 TV에 자주 출연하여 친한파 인사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2000년부터 2년간 방송 출연료 1,180만 원을 전남대에 기부하기도 했다.[19] 그러나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라는 필명으로 일본 잡지 ‘사피오(SAPIO)’, ‘쇼쿤(諸君)’, ‘겐다이코리아(現代コリァ)’ 등에 한국인의 대일 인식 및 일본인에 대한 편견, 역사 유적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고, 이를 묶은 서적을 발간했다. 이러한 사실이 한국에 알려져 한국 여론, 특히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았다.[5][3][4]
2005년 2월, 전남대학교에서 계약이 종료되자 가톨릭대학교/성심교정에서 일본어 작문을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일본에 귀국하여 고향에 있는 홋카이 상과대학에서 교수로 부임해 한국어와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미즈노 교수는 일본의 고질적인 이지메 문제와 엽기적인 사건, 일본 여성들의 낮은 인권, 성폭력 사회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한국 사회를 극단적인 사회인 것처럼 보는 시각이 있다. 최진실 자살 사건과 인터넷 악플[22], 미네르바 열풍[23], 미녀를 선호하는 사회 풍조[24] 등 한국 사회의 최근 이슈를 분석하고 강연했다.
2008년 5월 홋카이도 방송(HBC)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 양국의 정치, 외교 노력과는 별도로 경제나 민간 교류에서는 정치적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접어두고, 최근 양국 간 특히 우려되는 문제인 인터넷상에서 한국과 일본 네티즌들이 민족주의적 감정을 갖고 서로 충돌하는 현상을 양국 개개인이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한일 양국의 우호 관계를 쌓는 중요한 관건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내에서는 한일 관계와 한국 역사를 배울 기회가 적어 일본의 젊은 세대가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고,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역사적 배경까지 포함해 한국에 대해 제대로 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25]
2015년 6월 홋카이도신문의 취재에서는 "반일의 원인을 일본이 제공한 것은 틀림없으며 일본인의 다수가 '전쟁은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식민지배는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다"고 지적하고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국을 알리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26] 익명으로 혐한 활동을 했다가 호되게 당해서인지 일본에 돌아간 이후로는 노골적인 혐한 활동은 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을 재방문했을 때는 우호적인 언플도 간간히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즈노의 전공은 한국학이고, 한국에 혐한이나 반한 인사로 찍히는 것은 한국학 전공자로서는 치명적이기에 미즈노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립서비스를 한다고 해서 이상할 건 아니다.
대체로 어느 나라이든지 한국학 교수들은 한국에 우호적이며 한국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에 관심이나 애정이 없으면 굳이 전공할 이유가 없다. 만일 한국학 전공 교수가 완전히 한국과 척을 지게 되면 당장 밥줄이 끊어지는 건 둘째치고 한국 정부 주관의 학회 참석같은 것도 어려워지기 때문에 어쨌든 한국과 사이가 좋을 필요가 있다. 그러니 미즈노가 한국 관계자들 앞에서 한국 칭찬 몇마디 했다고 그의 성향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즈노는 한국에서 활동할 때부터 일관되게 한국을 저평가했다. '''미즈노가 마녀사냥 당했다고 옹호하는 사람들조차도 확실히 인정하는 것은 미즈노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친한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미즈노가 출연한 TV 프로나 언론 기고문을 봐도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나 익숙함을 표시한 적은 있지만, 한국이나 한국인 자체를 높이 평가한 적은 전혀 없다. 이는 미즈노와 비슷한 성향의 구로다 가쓰히로에게도 보이는 성향으로 우익적인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한국관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2013년에 한국 생활에 대해 발표한 글을 보면, 자신이 아무 잘못이 없으며 그저 한국 정권 교체의 희생양으로만 여기는 듯하다. 자신이 쓴 극우 의혹 글들에 대한 해명은 하나도 없고 '왜 몇 년이나 지난 후에 이게 터졌나'란 반응만 서술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다는 것이다.
일본에 돌아간 이후에는 노골적인 혐한 성향의 글을 쓰지는 않고 있으나, 산케이 신문 기고문을 보면 노골적인 표현만 없을 뿐이지 한국에 대한 혐오감이 알게 모르게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한국에 대한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가진 일본 우익이나 혐한의 사고를 뼛속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면 마치 자신은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고 모든 한국 언론들이 자신을 공격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혐한들의 대표적인 논조 중 하나가 모든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좌우를 떠나 그저 정부의 철저한 어용 언론들이며 오직 정부의 명령에 따라 반일 교육만을 일삼으며 많은 국제 뉴스들이 정부의 입맛에 따라 필터링되어 미개한 춍들을 세뇌시킨다고 여긴다.
즉, 혐한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들이 언론의 자유나 자정 능력 따윈 갖추고 있지 않으며 중국, 북한의 폐쇄적인 기관지들과 똑같은 저질이라고 여긴다. 미즈노 역시 정권이 바뀐 후 모든 한국 언론들이 바뀐 한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일괄적으로 자신을 이지메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데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당시 그를 우호적으로 서술한 YTN 스타 뉴스 등이 있었고, 불순한 의도가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해명을 들으러 직접 찾아가기까지 한 XTM 등도 있었다. 해명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혐한들의 망상과는 달리 한국 또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잘못하면 기자들이 단체로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때리는 것은 한국 언론도 똑같다.
그의 혐한 활동이 드러난 후 우파 언론들이 그를 때릴 때 많은 좌파 언론들이나 일본 관련 단체들이 침묵하거나 오히려 동조한 것은 결코 이들이 정부의 앞잡이여서가 아니라, 애초에 정권의 성향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그가 정권에 위협적인 정치인이나 북한 고위 군인 같은 존재도 아닌데, 고작 바뀐 성향 하나 때문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유명세 있던 친근한 일본인 예능인을 공격할 수는 없고, 굳이 위험을 자초해 공격할 필요도 없다. 하물며 한국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해서 정부가 함부로 애먼 사람 하나 잡으려고 들다간 제대로 역풍을 맞아 두들겨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즈노 슌페이는 자신이 마치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남한이 북한처럼 모든 언론을 동원해 자신을 따돌림하는 바람에 해명조차 못한 채 모든 것을 버리고 나온 가련한 희생양인 것마냥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다.
3. 3.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
미즈노 슌페이는 전라도 사투리에 능통하고, 한국 여성과 결혼했으며, 대한민국의 신문과 TV에 자주 출연하여 친한파 인사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19] 2000년부터 2년간 방송 출연료 11800000KRW을 전남대에 기부하기도 했다.[19] 그러나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20]라는 필명으로 일본 잡지에 한국인의 대일 인식 및 일본인에 대한 편견, 역사 유적[21]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고, 이를 묶은 서적을 발간하여 한국 여론, 특히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았다.미즈노는 최진실 자살 사건과 인터넷 악플[22], 미네르바 열풍[23], 미녀를 선호하는 사회 풍조[24] 등 한국 사회의 최근 이슈를 분석하고 강연했다. 2008년 5월 홋카이도 방송(HBC) 대담 프로그램에서 인터넷상에서 한국과 일본 네티즌들이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충돌하는 현상을 양국 개개인이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한일 양국의 우호 관계를 쌓는 중요한 관건이라고 주장했다.[25] 또한 2015년 6월 홋카이도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반일의 원인을 일본이 제공한 것은 틀림없으며 일본인의 다수가 '전쟁은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식민지배는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적다"고 지적하고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국을 알리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26]
미즈노는 한국에서 활동할 때부터 일관되게 한국을 저평가했다. 미즈노가 출연한 TV 프로그램이나 언론 기고문에서 한국에 대한 친근감이나 익숙함을 표시한 적은 있지만, 한국이나 한국인 자체를 높이 평가한 적은 전혀 없다. 이는 미즈노와 비슷한 성향의 구로다 가쓰히로에게도 보이는 성향으로 우익적인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한국관이라고 볼 수 있다.
2013년에 한국 생활에 대해 발표한 글을 보면, 미즈노는 자신이 아무 잘못이 없으며 한국 정권 교체의 희생양으로만 여기는 듯하다. 자신의 극우 의혹 글들에 대한 해명은 없고 '왜 몇 년이나 지난 후에 이게 터졌나'라는 반응만 서술하고 있다.
일본에 돌아간 이후에는 노골적인 혐한 성향의 글을 쓰지는 않고 있으나, 산케이 기고문을 보면 한국에 대한 혐오감이 담겨 있다. 미즈노는 마치 자신은 해명할 기회조차 없었고 모든 한국 언론들이 자신을 공격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혐한들의 대표적인 논조 중 하나이다. 혐한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들이 언론의 자유나 자정 능력 따윈 갖추고 있지 않으며 중국, 북한의 폐쇄적인 기관지들과 똑같은 저질이라고 여긴다. 미즈노 역시 정권이 바뀐 후 모든 한국 언론들이 바뀐 한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일괄적으로 자신을 이지메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4. 일본 귀국 후 활동
2005년 미즈노 슌페이는 한국에서 인터넷 게시글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11] '노다이라 슌스이'라는 필명으로 일본에서 출판한 책 『일본인은 깜짝! 한국인의 일본 위사』에 일본 우익적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기술이 있다는 보도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친한(親韓)을 가장하여 일본 우익과 손을 잡고 있다"고 한국 네티즌에게 비판받았고,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도 "'극우 미즈노'의 정체를 밝힌다!"라고 다루어졌다. 같은 해 2월 전남대학교를 퇴관하고,[14] 2006년 일본으로 귀국하여 호쿠카이 상과 대학 교수로 취임, 조선어를 가르치고 있다.[15]
비판으로 인해 텔레비전 출연은 없어졌다. 대학교 강사 수입만으로는 서울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생활하기 어려웠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학자는 논문을 쓰는 것이 본분인데, 텔레비전 출연은 공부에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또 텔레비전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를 받으면 "다른 사람에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며 거절하고 있다.[18]
4. 1. 일본 언론 기고 활동
2005년 6월, 대한민국 신문 동아일보는 미즈노 슌페이가 필명 노히라로 투고한 책과 에세이에 대해 보도했다.[1] 여기에는 우익 잡지에 게재된 출판물도 포함되었다. 그의 필명으로 쓴 작품들은, 그의 본명으로 쓴 작품들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을 "폄하"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1] 비판의 주된 대상 중 하나는 그의 2002년 저서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거짓 역사》였다.[1][6]5. 저서
제목 | 출판사 | 출판일 | ISBN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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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쓴 반일이야기 | 오늘예감 | 1997년 |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 필명 | |
속 터지는 일본인 | 역락 | 2000년 | ISBN 89-950571-5-7 | |
다테마에를 넘어 일본인 속으로 | 좋은책만들기 | 2000년 | ISBN 89-89222-07-9 | |
韓国人の日本偽史―日本人はビックリ!|한국인의 일본위사일본어 | 小學館|쇼가쿠칸일본어 문고 | 2002년 | ISBN 4-09-402716-5 |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 필명 |
한국인을 바보로 만드는 엉터리 책 비판 | 아이디오 | 2003년 | ISBN 89-90001-08-0 | |
韓国の若者を知りたい|한국의 젊은이를 알고 싶다일본어 | 岩波書店|이와나미 쇼텐일본어 | 2003년 | ISBN 4-00-500433-4 | |
ソウルで学ぼう|서울에서 배우자일본어 | 岩波書店|이와나미 쇼텐일본어 | 2006년 | ISBN 4-00-500528-4 | |
韓 vs 日「偽史ワールド」|한 vs 일「위사 월드」일본어 | 小学館|쇼가쿠칸일본어 | 2007년 | ISBN 978-4-09-387703-9 | |
韓国・反日小説の書き方|한국・반일 소설의 쓰는 법일본어 | アキ書房|아키 쇼보일본어 | 1996년 6월 | ISBN 4-7505-9608-6 |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 필명 |
韓日戦争勃発!?―韓国けったい本の世界|한일 전쟁 발발!? - 한국 괴상한 책의 세계일본어 | 文藝春秋|분게이슌주일본어 | 2001년 11월 | ISBN 4-16-357900-1 |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 필명, 오키타 쇼지(Shōji Okita)와 공저 |
なぜだか韓国でいちばん有名な日本人―私がTVで人気者になった深ーい理由|어째서인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 - 내가 TV에서 인기인이 된 깊은 이유일본어 | アキ書房|아키 쇼보일본어 | 2003년 7월 | ISBN 4-7505-0303-7 |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 필명 |
韓国のなかのトンデモ日本人—日本では絶対に見られない、韓国ドラマ・映画・AVの世界|한국 속의 터무니없는 일본인 - 일본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한국 드라마·영화·AV의 세계일본어 | 双葉社|후타바샤일본어 | 2004년 5월 | ISBN 4-575-29679-1 |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 필명, 오키타 쇼지(Shōji Okita)와 공저, 도쿄 |
『日本書紀』에 나타난 한반도 고유명사 표기자의 특이성에 대한 小考|『일본서기』에 나타난 한반도 고유명사 표기자의 특이성에 대한 소고한국어 | 일본어문학 | 1999년 9월 | 7권, 97–116쪽 | |
『日本書紀』 고대 한국어 차자 표기의 특징에 대한 고찰 - 특히 音假名의 聲母 分布를 중심으로|『일본서기』 고대 한국어 차자 표기의 특징에 대한 고찰 - 특히 음가명의 성모 분포를 중심으로한국어 | 일본어문학 | 2001년 9월 | 11권, 45–68쪽 | |
『古事記』의 音假名 小考 - ‘カ’, ‘ニ’의 표기에 쓰인 音假名 분포에 대해|『고사기』의 음가명 소고 - 카, 니의 표기에 쓰인 음가명 분포에 대해한국어 | 일본어문학 | 2005년 3월 | 24권, 3–16쪽 | |
미즈노 선생님과 함께 일본어 급소찌르기 | 문예림 | 2002년 3월 | ISBN 89-7482-191-5 | |
미즈노 선생의 액션 일본어 회화 2 | 제이플러스 | 2002년 8월 | ISBN 89-92215-20-7 | |
미즈노 선생의 동시통역 일본어회화사전 | 제이플러스 | 2002년 8월 | ISBN 89-88701-31-3 | |
일본어작문 플러스 | 제이플러스 | 2000년 3월 | ISBN 89-88701-10-0 | |
Action Japanese | 제이플러스 | 2004년 9월 | ISBN 89-88701-65-8 | |
미즈노의 120분 일문법 | 넥서스 일본어 | 2005년 8월 | ISBN 89-91795-01-3 | |
현지에서 바로 통하는 일본어 회화표현 500 | 넥서스 일본어 | 2006년 10월 | ISBN 89-91795-77-3 | |
한국의 젊은이를 알고 싶다일본어 | 이와나미 서점 | 2003년 5월 | ISBN 4-00-500433-4 | |
서울에서 배우자일본어 | 이와나미 서점 | 2006년 2월 | ISBN 4-00-500528-4 | |
한 vs 일 위사 월드일본어 | 쇼가쿠칸 | 2007년 3월 | ISBN 978-4-09-387703-9 | |
한국의 역사일본어 | 가와데 서방 신사 | 2007년 9월 | ISBN 978-4-309-22471-8 | 이경민 감수 |
한국의 역사일본어 (증보 개정판) | 가와데 서방 신사 | 2017년 1월 | ISBN 978-4-309-22693-4 | 이경민 감수 |
조선 왕조를 살았던 사람들 그 숨겨진 에피소드일본어 | 가와데 서방 신사 | 2012년 9월 | ISBN 978-4-309-22581-4 | |
서민들의 조선 왕조일본어 | 카도카와 가쿠게이 출판(출판) 카도카와 그룹 홀딩스(발매) | 2013년 6월 | ISBN 978-4-04-703527-0 | |
웃는 날한론 | 포레스트 출판 | 2014년 7월 6일 | ISBN 978-4-89451-952-7 | |
한국·반일 소설의 집필법일본어 | 아키 서방 | 1996년 6월 | ISBN 4-7505-9608-6 | 노다이라 명의 |
일본인은 깜짝! 한국인의 일본 위사일본어 | 쇼가쿠칸 문고 | 2002년 5월 | ISBN 4-09-402716-5 | 노다이라 명의 |
왠지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일본인 내가 TV에서 인기인이 된 깊~은 이유일본어 | 아키 서방 | 2003년 7월 | ISBN 4-7505-0303-7 | 노다이라 명의 |
확실한 초급 한국어일본어 | 백수사 | 2008년 4월 | ISBN 978-4-560-01782-1 | 김정애, 하경희, 코타니 마사히코 공저, CD 포함 교과서 |
검증 음모론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퍼센트로 판정일본어 | 문예사 | 2011년 1월 | ISBN 978-4-286-10304-4 | ASIOS, 오쿠나 히데츠구 공저 |
일・한・중 황당무계한 책의 세계일본어 | 사이조 | 2014년 9월 | ISBN 978-4-904209-55-4 | 토학회, 백원롱양 공저 |
증보판 음모론은 어디까지가 진실인가일본어 | 문예사 | 2021년 7월 | ASIOS 편저 | |
한일전쟁 발발!? 한국 괴상한 책의 세계일본어 | 문예춘추 | 2001년 11월 | ISBN 4-16-357900-1 | 노다이라 명의, 오키타 쇼지 공저 |
한국 안의 황당무계한 일본인 일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한국 드라마・영화・AV의 세계일본어 | 후타바샤 | 2004년 5월 | ISBN 4-575-29679-1 | 노다이라 명의, 오키타 쇼지 공저 |
한국 드라마로 배우는 한국의 역사 대특집 한국의 역사 초해설 『이산』 『바람의 나라』 『일지매』 『선덕여왕』 인기작 만재!일본어 | 키네마 쥰보사 | 2009년 7월 | ISBN 978-4-87376-686-7 | 키네준 무크, 미즈노 슌페이 역사 해설 |
여기가 제일 재밌다! 조선 왕조의 왕과 여자들일본어 | 청춘출판사 | 2011년 12월 20일 | ISBN 978-4-413-09526-6 | 청춘 문고, 미즈노 슌페이 해설 |
조선 왕조 101가지 수수께끼 27대 왕을 둘러싼 영광과 비극일본어 | PHP 편집자 그룹 | 2012년 5월 | ISBN 978-4-569-80399-9 | 미즈노 슌페이 감수 |
한류 시대극에 빠져서일본어 | 쇼가쿠칸 | 2012년 7월 | ISBN 978-4-09-388241-5 | 니시가 히바리 저, 미즈노 슌페이 감수 |
6. 출연 광고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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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파’미즈노 교수, 日 극우잡지에 수차례 한국 비하 글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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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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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光州の人気者 方言巧み「面白い日本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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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3
[3]
뉴스
全羅道なまりで有名な水野俊平教授、近く日本帰国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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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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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Writer Exposes Anti-Japanese Prejudices
http://www.hellopage[...]
2007-07-18
[5]
뉴스
「日本の古典を読めば、韓国語が見えるんです」
http://www.chosunonl[...]
2007-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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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ソウルからヨボセヨ 韓国を去った人
200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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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韓タメ!D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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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話の肖像画】水野俊平・北海商科大学教授(45)(3)ホッケーが取り持つ縁で結婚 韓国人の妻は完全に体育会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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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話の肖像画】水野俊平・北海商科大学教授(45)(4)「水野教授」、韓国で人気絶頂から突然バッシン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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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外信コラム】ソウルからヨボセヨ 韓国を去った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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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話の肖像画】水野俊平・北海商科大学教授(45)(1)「韓国で最も有名な日本人」が書きたかった朝鮮庶民生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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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話の肖像画】水野俊平・北海商科大学教授(45)(2)ベストセラー、AMラジオ…「韓国」にのめり込んだ高校時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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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話の肖像画】水野俊平・北海商科大学教授(45)(5)韓国での壮絶な非難…そして帰国 水野教授「人気は麻薬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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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전남대 미즈노교수 방송출연료 2년간 대학기부 :: 네이버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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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부터 미즈노 슌페이(水野俊平)는 노히라 슌스이(野平俊水)라는 필명을 자주 이용하고 있었으며 이는 원래 이름의 한자(漢字) 순서를 바꾼 것이다. * 미즈노 슌페이가 고의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필명을 사용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미즈노 슌페이는 이미 1995년부터 필명을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저자 약력에 자신의 사진과 함께 출생연도 및 직업(전남대학교 강사)등을 기재한 사실로 판단해볼 때 고의적으로 정체를 숨기기 위해 필명을 사용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21]
문서
미즈노 슌페이는 2002년 일본 잡지 ‘사피오(SAPIO)’에 대한민국 전라남도 장성군의 홍길동 유적과 전라남도 영암군의 왕인 유적, 경상북도 고령군의 고천원(高天原) 유적을 대표적인 날조 유적이라고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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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AS公開セミナー - Puki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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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된 사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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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인용
中村美彦の無頼放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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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홋카이도신문, 2015년 6월 18일
2015-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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