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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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상륭은 1940년 전라북도 장수군 출생으로, 1963년 단편 소설 "아겔다마"로 등단한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을 받아 환상적이고 문명 비판적인 소설을 주로 썼으며, 작품 세계는 권력욕 비판, 동양 사상, 중세 연금술, 분석 심리학 등을 포괄한다. 1969년 캐나다로 이민을 갔으며, 2017년 캐나다에서 사망했다. 주요 저서로는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산해기》, 《평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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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승은 일제강점기 국어학자로서 국어사전 편찬에 기여하고, 해방 후에는 여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으며,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건국훈장과 국민훈장을 수훈받았다. - 장수군 출신 -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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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은 1966년 영화 '육체의 산하'로 데뷔한 대한민국의 배우로,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으며 특히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전문 배우로 알려졌으나, 2006년 아들 관련 사건으로 방송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다. - 서라벌예술대학 동문 - 이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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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민석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5년 "내가 사랑한 캔디"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대한민국의 소설가로,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기괴소설'을 통해 권력과 '정상성'에 대한 비판, 일상 속 공포를 탐구하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으며, 대표작으로는 《목화밭 기이한 이야기》, 《죽은 올빼미를 위한 농장》 등이 있다.
박상륭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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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박상륭 |
한글 | 박상륭 |
한자 | 朴常隆 |
로마자 표기 | Bak Sang-nyung |
출생일 | 1940년 8월 26일 |
출생지 | 전라북도 장수군 |
사망일 | 2017년 7월 1일 (76세) |
직업 | 소설가 |
국적 | 대한민국 |
언어 | 한국어 |
작품 활동 | |
활동 기간 | 1963년 - 2017년 |
장르 | 소설 |
데뷔 작품 | '아켈다마' |
대표 작품 | '사출의 여행' |
2. 생애
박상륭은 1940년 8월 26일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여덟 명의 생존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4] 그의 형제 중 한 명은 그가 네 살 때 사망했으며, 어머니는 그가 태어났을 때 마흔다섯 살이었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4] 이는 그가 열여섯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더욱 분명해졌다.[4] 그는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소설가가 되었다. 1961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여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1963년, 사상계에 단편 소설 "아겔다마"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4] 이 소설의 성공으로 그는 이 잡지에 더 많은 단편 소설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는 1965년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전과했지만, 1967년 ''사상계''에서 자리를 제안받아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4] 같은 해에 배유자와 결혼했다.[4] 1969년에 캐나다로 이주했으며, 2017년 7월 1일 캐나다에서 사망했다.[14] 그 후 1969년 아내의 권유로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갔다.[4] 이 기간 동안 세 딸(크리스티나, 온딘, 어거스틴)이 태어났다.[4] 한편, 그는 한국어로 계속 글을 쓰고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정착할 목적으로 1998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여행을 계속했다.[4]
그의 작품은 도스토옙스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러시아풍의 돌발적인 행위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환상적이면서도 문명 비판적인 소설 공간을 만들어냈다. 소설의 배경은 대부분 완전히 폐쇄된 섬, 방, 마을 등이며, 그의 환상적인 이미지와 숙명적인 정조를 띠고 있다. 특히, 「여름의 햇살」은 현대인의 소외 의식과 언어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으며, 「죽음의 여행」 역시 권력의 희극적인 발버둥을 암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의 소설적 탐구의 중심 중 하나는 권력욕을 비판하는 것이다. 작가는 아편과 종교로 민중을 완전히 권력에 종속시키는 정치 체제와, 권력을 잡기 위해 민중의 심리를 조작하는 정치인을 집요하게 폭로했다. 절대 권력이란, 지식인과 대중의 비판 의식 마비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우주관은 중세 연금술의 영향을 받은 작가의 분석 심리학, 주역, 그리고 무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2. 1. 유년 시절과 등단
박상륭은 1940년 8월 26일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여덟 명의 생존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4] 그의 형제 중 한 명은 그가 네 살 때 사망했으며, 어머니는 그가 태어났을 때 마흔다섯 살이었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4] 이는 그가 열여섯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더욱 분명해졌다.[4] 그는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시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소설가가 되었다. 1961년에는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여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1963년, 사상계에 단편 소설 "아겔다마"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4] 이 소설의 성공으로 그는 이 잡지에 더 많은 단편 소설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는 1965년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전과했지만, 1967년 ''사상계''에서 자리를 제안받아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4] 같은 해에 배유자와 결혼했다.[4] 그 후 1969년 아내의 권유로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갔다.[4] 이 기간 동안 세 딸(크리스티나, 온딘, 어거스틴)이 태어났다.[4] 한편, 그는 한국어로 계속 글을 쓰고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정착할 목적으로 1998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여행을 계속했다.[4]그의 작품은 도스토옙스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러시아풍의 돌발적인 행위를 과감하게 도입하여 환상적이면서도 문명 비판적인 소설 공간을 만들어냈다. 소설의 배경은 대부분 완전히 폐쇄된 섬, 방, 마을 등이며, 그의 환상적인 이미지와 숙명적인 정조를 띠고 있다. 특히, 「여름의 햇살」은 현대인의 소외 의식과 언어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으며, 「죽음의 여행」 역시 권력의 희극적인 발버둥을 암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의 소설적 탐구의 중심 중 하나는 권력욕을 비판하는 것이다. 작가는 아편과 종교로 민중을 완전히 권력에 종속시키는 정치 체제와, 권력을 잡기 위해 민중의 심리를 조작하는 정치인을 집요하게 폭로했다. 절대 권력이란, 지식인과 대중의 비판 의식 마비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우주관은 중세 연금술의 영향을 받은 작가의 분석 심리학, 주역, 그리고 무가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박상륭은 2017년 7월 1일 캐나다에서 사망했다.[14]
2. 2. 결혼과 이민
박상륭은 1967년 배유자와 결혼했다.[4] 1969년 아내의 권유로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갔다.[4] 이 기간 동안 세 딸(크리스티나, 온딘, 어거스틴)이 태어났다.[4] 그는 정착할 목적으로 1998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여행을 계속했다.[4]2. 3. 한국 귀국과 사망
박상륭은 1969년 아내의 권유로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갔다.[4] 이 기간 동안 세 딸(크리스티나, 온딘, 어거스틴)이 태어났다. 그는 한국어로 계속 글을 쓰고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 영향을 미쳤다. 1998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여행을 계속했다. 2017년 7월 1일 캐나다에서 사망했다.[14]3. 작품 세계
3. 1. 주제 의식
박상륭은 자신의 작품을 소설과 종교 텍스트의 중간 지점에 있는 것으로 여긴다.[5] 그의 작품은 육체적, 정신적 진화를 통해 어떻게 삶이 해탈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실현하려 하기 때문이다.[5]그는 자신의 작품을 몸, 말, 마음을 합쳐서 만든 단어인 "뫎"에 대한 논문이라고 묘사한다.[6] "뫎"은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인데, 몸의 세계에서 말의 세계를 거쳐 마음의 세계에 도달하는 여정을 의미한다. 인간만이 이 세 개의 세계에 속할 수 있기 때문에, 생과 죽음의 순환에서 벗어나 고통을 끝낼 수 있다.[7] 이 세계들을 통과하는 것이 바로 해탈을 향한 육체적, 정신적 진화로 구성된다.
그의 작품은 "뫎"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시간, 신과 인간의 관계, 꿈, 자연과 같은 주제들을 탐구한다. 그중에서도 Pravritti(프라브리티)와 Nivritti(니브리티)가 가장 두드러진 주제이다. 박상륭은 Pravritti(프라브리티)와 Nivritti(니브리티)를 진보와 퇴각으로 정의하며, 더 구체적으로는 윤회에 구현된 생각과 열반을 구현하는 틀이다.[8] Pravritti(프라브리티) 또는 루파에서는 시간의 끝이 없으므로 윤회의 폭력적이고 욕망에 가득 찬 순환을 제어할 수 없다. 반면에 Nivritti(니브리티) 또는 공은 영혼의 해방이 일어나는 변함없는 세계이다.[9]
3. 2. 영향
그의 영향은 광범위하며, 구원을 찾는 그의 탐구는 그와 관련된 많은 철학적, 종교적, 신화적, 문학적 사상을 인식하게 했다. 그의 작품들은 니체, 융, 노자, 장자, 주역, 티베트 사자의 서, 육조단경, 반야경, 금강경, 리그 베다, 성경, 천도교, 자이나교, 샤머니즘, 우파니샤드, 무문관, 그리스 신화, 수메르 신화, 인도 신화, 한국 민속 (단군 포함), ''산해경'', 고대 한국 시, 이상, 김소월, 한국 판소리, 알베르 카뮈, 헤르만 헤세, T.S. 엘리엇, 단테, 도스토예프스키, 제시 웨스턴의 저서 ''의례에서 로맨스로'', 미르체아 엘리아데, 그리고 ''황금 가지''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10] 그의 작품들은 인용구를 직접 삽입하거나 (출처 포함) 대화 형식의 해설에서 그 내용을 바꿔 말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영향들을 인정한다. 박상륭은 또한 자신의 정신적 스승으로 밀라레파, 용수, 파드마삼바바를 언급했다.[11]3. 3. 문체적 특징
박상륭은 쉼표로만 구분된 길고 복잡한 문장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문장은 6행에서 10행에 이르기까지 하며, 이는 한국 문학에서는 드문 특징이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전라 방언의 변형된 형태를 사용하고, 특히 종결 어미에서 문법을 가지고 논다. 종종 설명되지 않은 한자, 고어 또는 난해한 용어가 그의 작품에 등장한다.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작가가 한국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4. 비판
5. 수상 경력
- 1963년 《사상계》 신인 문학상을 수상했다.
- 1999년 제2회 김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6. 저서 및 작품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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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은 1963년 단편 〈아겔다마〉로 《사상계》 신인상에 가작 입선하였고,[16] 1964년 〈장세전(傳)〉이 《현대문학》에 추천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16] 1975년 《죽음의 한 연구》를 출간했고,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칠조어론》 4권을 출간했다.[16] 1998년에는 산문집 《산해기》, 1999년에는 중단편집 《평심》을 출간했다.[16]
주요 작품으로는 1971년 출간된 『전집』, 1973년작 『열명길』(단편 소설), 1975년작 『죽음의 한 연구』(1986년, 1997년에 2권으로 재출간),[16] 1986년작 『열명길』(『전집』 및 『열명길』 재출간),[16] 1990-1994년작 『칠조어론』(4권),[16] 1997년작 『아겔다마』(미수록 단편),[16] 1999년작 『평심』(단편 소설),[16] 1999년작 『산해기』(에세이),[16] 2002년작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단편 소설),[16] 2003년작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었다』,[16] 2005년작 『소설법』,[16] 2008년작 『잡설품』[16] 등이 있다.
1964년 《장끼전한국어》(암탉 노래),[16] 1965년 《이월 삼십일한국어》(2월 30일)과 《뙤약볕한국어》(작열하는 태양),[16] 1967년 《시인 일가네 겨울한국어》(시인 일가의 겨울)과 《각설이 일기한국어》(걸인의 일기),[16] 1968년 《열명길한국어》(죽음의 길),[16] 1969년 《7일과 꿰미한국어》(7일과 꿸 끈),[16] 1970년 《천야일화한국어》(천야일화),[16] 1973년 《심청이한국어》(심청이),[16] 1975년 《박상륭 소설집한국어》(박상륭 소설집),[16] 1986년 《죽음의 한 연구한국어》(죽음에 관한 한 연구),[16] 1992년 《칠조어록한국어》(칠조어록),[16] 1997년 《아겔다마한국어》(아겔다마),[16] 1999년 《평심한국어》(평심),[16] 2002년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한국어》(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16] 2003년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한국어》(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16] 등을 발표했다.
6. 1. 저서
박상륭은 1963년 단편 〈아겔다마〉로 《사상계》 신인상에 가작 입선하며 등단했다. 1964년에는 〈장세전(傳)〉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었다.주요 저서로는 1975년 《죽음의 한 연구》,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출간된 《칠조어론》(4권), 1998년 산문집 《산해기》, 1999년 중단편집 《평심》 등이 있다.
1971년에는 『전집』, 1973년에는 단편 소설 『열명길』을 출간했다. 1975년 출간된 『죽음의 한 연구』는 1986년과 1997년(2권)에 재출간되었다. 1986년에는 『전집』 및 『열명길』이 재출간되었다. 1997년에는 미수록 단편들을 모은 『아겔다마』가 출간되었다.
2002년에는 단편 소설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 2003년에는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었다』, 2005년에는 『소설법』, 2008년에는 『잡설품』을 출간했다.
그 외 작품으로는 〈장끼전한국어〉(1964),[16] 〈이월 삼십일한국어〉(1965), 〈뙤약볕한국어〉(1965), 〈시인 일가네 겨울한국어〉(1967), 〈각설이 일기한국어〉(1967), 〈열명길한국어〉(1968), 〈7일과 꿰미한국어〉(1969), 〈천야일화한국어〉(1970), 〈심청이한국어〉(1973) 등이 있다.
6. 2. 작품 목록
박상륭은 1963년 단편 〈아겔다마〉로 《사상계》 신인상에 가작 입선하였고,[16] 1964년 〈장세전(傳)〉이 《현대문학》에 추천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16] 1975년 《죽음의 한 연구》를 출간했고,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칠조어론》 4권을 출간했다.[16] 1998년에는 산문집 《산해기》, 1999년에는 중단편집 《평심》을 출간했다.[16]주요 작품으로는 1971년 출간된 『전집』, 1973년작 『열명길』(단편 소설), 1975년작 『죽음의 한 연구』(1986년, 1997년에 2권으로 재출간),[16] 1986년작 『열명길』(『전집』 및 『열명길』 재출간),[16] 1990-1994년작 『칠조어론』(4권),[16] 1997년작 『아겔다마』(미수록 단편),[16] 1999년작 『평심』(단편 소설),[16] 1999년작 『산해기』(에세이),[16] 2002년작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단편 소설),[16] 2003년작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었다』,[16] 2005년작 『소설법』,[16] 2008년작 『잡설품』[16] 등이 있다.
1964년 《장끼전한국어》(암탉 노래),[16] 1965년 《이월 삼십일한국어》(2월 30일)과 《뙤약볕한국어》(작열하는 태양),[16] 1967년 《시인 일가네 겨울한국어》(시인 일가의 겨울)과 《각설이 일기한국어》(걸인의 일기),[16] 1968년 《열명길한국어》(죽음의 길),[16] 1969년 《7일과 꿰미한국어》(7일과 꿸 끈),[16] 1970년 《천야일화한국어》(천야일화),[16] 1973년 《심청이한국어》(심청이),[16] 1975년 《박상륭 소설집한국어》(박상륭 소설집),[16] 1986년 《죽음의 한 연구한국어》(죽음에 관한 한 연구),[16] 1992년 《칠조어록한국어》(칠조어록),[16] 1997년 《아겔다마한국어》(아겔다마),[16] 1999년 《평심한국어》(평심),[16] 2002년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한국어》(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16] 2003년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한국어》(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16] 등을 발표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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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Interview with Park Sang-r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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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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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 연구' 소설가 박상륭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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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대장암 투병' 소설가 박상륭 별세, 향년 77
http://www.newsis.co[...]
201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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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죽음의 한 연구' 소설가 박상륭 별세
http://www.yonhapnew[...]
2017-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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