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수 (법조인)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박용수는 1950년 마산 출생으로, 1973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계에 입문했다. 부산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대구고등법원, 부산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재직했으며, 1989년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역임했다. 2005년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울산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대구고등법원장, 부산고등법원장을 역임했고, 부산고등법원장 재직 중에는 부산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했다. 2009년 부산고등법원장을 마지막으로 33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감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부산법원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재판장으로 재직하며 여러 주요 판결을 내렸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 박흥대
박흥대는 1954년생으로 부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 법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로 활동한다. - 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 최진갑
최진갑은 1976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대구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부산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를 지냈고,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 창원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 등에서 법원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 마산고등학교 동문 - 허남식
허남식은 1976년 고등고시 합격 후 부산광역시 기획관리실장과 정무부시장을 거쳐 제31·32·33대 부산광역시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을 지냈으나 엘시티 비리 연루 의혹으로 논란이 있었다. - 마산고등학교 동문 - 박성호 (1957년)
박성호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학자로, 창원대학교 교수와 총장을 거쳐 제1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국립 창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신영철 (법조인)
신영철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장과 대법관을 역임했으며, 촛불 시위 관련 재판 관여 의혹으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으나 부결된 후 현재는 변호사로 활동한다. - 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박흥대
박흥대는 1954년생으로 부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 법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로 활동한다.
박용수 (법조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개인 정보 | |
이름 | 박용수 |
원어명 | 朴鏞秀 |
출생일 | 1950년 1월 8일 () |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마산 |
정당 | 무소속 |
배우자 | 조외자(1954년생) |
자녀 | 3남 |
학력 | 서울대학교 법학과 학사 |
경력 | |
직책 | 제35대 대구고등법원장 |
임기 | 2007년 2월 12일 ~ 2008년 2월 12일 |
전임 | 김진기 |
후임 | 손용근 |
직책 | 제17대 부산고등법원장 |
임기 | 2008년 2월 13일 ~ 2009년 2월 6일 |
전임 | 권남혁 |
후임 | 이기중 |
2. 생애
박용수는 등산을 즐겨하는 법조인이다. 경상남도 마산 출신으로, 마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5기를 수료했다.[1]
2. 1. 출생 및 학창 시절
박용수는 1950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나 1968년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1]2. 2. 법조 경력
1973년 제1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5기를 수료했다. 육군 법무관으로 군 복무를 마친 후,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에 임용되었다.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원, 마산지방법원 밀양지원, 대구고등법원, 부산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재직했으며, 1989년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역임했다. 1991년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에 임명된 후, 부산지법 울산지원장, 동부지원장,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 부산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에는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장을, 2004년에는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역임했다. 2005년에는 법원장으로 승진하여 울산지방법원장, 부산지방법원장, 대구고등법원장, 부산고등법원장을 역임했다. 부산고등법원장 재직 중에는 제31대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겸직했다. 2009년 부산고등법원장을 끝으로 33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감했다.[1]2. 3. 퇴임 이후
2009년 2월 6일 부산고등법원장 퇴임식으로 33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치고 법무법인 국제에서 변호사로 활동하였으며, 2014년 6월부터 부산법원조정센터에서 상임조정위원으로 활동했다.[1]부산지방법원장 재직 당시 민원부서 모니터제, 일반 시민들이 재판을 지켜본 후 이를 평가하는 시민사법 모니터제를 실시했고, 부산지역 법관과 대학교수들이 주축이 된 부산판례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1]
3. 주요 판결
박용수는 부산지방법원,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 부산고등법원 등에서 재판장을 역임하며 다양한 사건을 판결했다. 주요 판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건 종류 | 내용 | 연도 | 비고 |
---|---|---|---|
강도강간 | 대낮에 가정집에 들어가 90여 차례 강도강간을 한 피고인들에게 사형 또는 무기징역 등을 선고[2] | 1992년 | |
강도상해 |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선고[3] | 1992년 | |
임금지급청구 소송 | 효성금속 노동자가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법정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통상임금 산출 기준 변경을 인정하여 원고 일부 승소 판결[4] | 1994년 | |
절도 (폐지폐) | 한국은행 부산지점 폐지폐를 훔친 직원에 대해 징역 3년 선고, 관련자들에게는 선고유예 판결[5] | 1995년 | |
뇌물수수 |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전직 세무 공무원 등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함께 양로원 봉사활동 명령[6] | 1997년 | |
이적단체 가입 등 (동아대 자주대오 사건) | 동아대 자주대오 사건 피고인들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일부 피고인에게는 이적단체 가입 등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7] | 1998년 | |
황령산 스키돔 건설 관련 소송 | 황령산 스키돔 건설 사업 인가를 반려한 부산시의 처분이 위법하다며 부산시의 항소를 기각[8] | 2003년 | |
해임처분 취소 소송 | 음주운전으로 해임된 예비군 중대장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해임 처분이 가혹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9] | 2004년 |
3. 1. 부산지방법원 재판장 시절
1992년 4월 7일, 부산지방법원 제3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박용수는 대낮에 가정집에 침입하여 90여 차례 강도강간을 저지른 4명의 피고인 중 2명(이상수(23세), 전장호(20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명(노경태(20세))에게 무기징역, 나머지 1명(황모(17세)군)에게 장기 12년, 단기 7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2]같은 해 7월 2일에는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7년이 선고된 20대 피의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이 수사 단계에서부터 일관되게 알리바이를 주장했고, 피해자와 공동 피고인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으며, 다른 증거도 불충분하다는 이유였다.[3] 또한, 무죄 판결 요지를 공시했다.[3]
1994년 4월 6일, 부산지방법원 제4민사부 재판장으로서 박용수는 효성금속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지급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정 근로시간이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됨에 따라 통상임금(시급) 산출 기준도 240시간에서 225.9시간으로 변경되어야 한다는 노동자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4]
1995년 12월 29일, 부산지방법원 형사1부 재판장으로서 박용수는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 폐지폐를 훔친 서무과 직원에게 절도죄를 적용하여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또한, 이 사건과 관련하여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본점 인사부장과 부산지점장에게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5]
3. 2.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 재판장 시절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원 제2형사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2월 10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전 중부지방국세청 소비세과장 김태호에게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양로원 봉사활동 100시간을 명령했다. 같은 혐의로 구속된 전 광화문세무서 소득세계장, 세무사 등에게는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2년을, 이들에게 돈을 건넨 부동산 임대업자에게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이들 3명에게도 양로원 봉사활동 100시간을 명령했다.[6]3. 3. 부산고등법원 재판장 시절
부산고등법원 형사2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1998년 7월 2일, 동아대 자주대오 사건으로 구속된 동아대 학생 4명에 대해 "강압적인 수사과정에서 이뤄진 피고인의 자백은 증거로 삼을 수 없다"며 "조선로동당에 가입해 간첩활동을 할 만한 뚜렷한 동기를 찾기 힘들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3명에 대해서는 이적단체 가입,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월~2년 6월, 집행유예 2~4년을 선고했다.[7]부산고등법원 제2특별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12월 13일, 스포츠랜드 부산㈜의 황령산 스키돔 건설공사와 관련하여 부산시가 제기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환경영향평가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신청한 사업인가에 대해 부산시가 뚜렷한 이유없이 이를 반려한 것은 위법하다"며 부산시의 항소를 기각했다.[8]
부산고등법원 제1특별부 재판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10월 11일, 제39사단 소속 예비군 중대장인 박모(56), 정모(53)씨 등 2명이 각각 39사단장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예비군 중대장이 사단장의 지시를 어기고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하더라도 근무시간에 음주를 한 것이 아닌 점 등을 고려할 때 해임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9]
참조
[1]
뉴스
http://news.naver.co[...]
[2]
뉴스
한겨레
1992-04-09
[3]
뉴스
경향신문
1992-07-03
[4]
뉴스
한겨레
1994-04-07
[5]
뉴스
동아일보
1995-12-30
[6]
뉴스
한겨레
1997-02-11
[7]
뉴스
동아일보
1998-07-03
[8]
뉴스
http://news.naver.co[...]
[9]
뉴스
http://news.naver.co[...]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