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포레 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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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포레 고후는 1965년 츠루시로 클럽을 전신으로 하는 일본의 프로 축구 클럽으로, 1999년 J리그에 가맹하여 J2 리그에서 활동하다가 2006년 J1 리그로 승격했다. 2007년 다시 J2 리그로 강등되었고, 2010년 J1 리그로 재승격, 2012년 J2 리그 우승 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J1 리그에서 활동했다. 2018년 J2 리그로 강등된 후, 2022년 천황배에서 우승하며 J2 리그 팀 최초로 AFC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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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레 고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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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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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네임 | 벤포레 고후 축구 클럽 |
별칭 | 벤포레 |
약칭 | VFK |
창단 | 1965년 (고후 클럽으로 창단) |
홈구장 | JIT 리사이클 잉크 스타디움, 고후시 |
수용 인원 | 17,000명 |
구단주 | 우미노 가즈유키 |
감독 | 시노다 요시유키 |
리그 | J2리그 |
웹사이트 | 벤포레 고후 공식 웹사이트 |
클럽 정보 (일본어) | |
원어 표기 | ヴァンフォーレ甲府 |
명칭 | ヴァンフォーレ甲府 |
애칭 | ヴァンフォーレ, VFK |
색상 | 파랑 |
홈타운 | 고후시, 니라사키시를 중심으로 하는 야마나시현 전역 |
법인명 | 주식회사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 |
대표 | 사쿠마 사토루 |
감독 | 오츠카 신지 |
유니폼 정보 | |
홈 유니폼 | 패턴 상의: _Ventforet Kofu 2024 HOME FP 패턴 하의: _Ventforet Kofu 2024 HOME FP 패턴 양말: _Ventforet Kofu 2024 HOME FP 왼쪽 팔 색상: 0000DC 몸통 색상: 0000DC 오른쪽 팔 색상: 0000DC 반바지 색상: 0000DC 양말 색상: 0000DC |
원정 유니폼 | 패턴 상의: _Ventforet Kofu 2024 AWAY FP 패턴 하의: _Ventforet Kofu 2024 AWAY FP 패턴 양말: _Ventforet Kofu 2024 AWAY FP 왼쪽 팔 색상: FFF 몸통 색상: FFF 오른쪽 팔 색상: FFF 반바지 색상: FFF 양말 색상: FFF |
최근 시즌 정보 | |
시즌 | 2024 시즌 |
리그 순위 | J2 14위 (2024년) |
AFC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장 (2024년까지 한정) | |
경기장 | 도쿄 국립 경기장 |
2. 역사
1965년에 츠루시로 클럽을 확대 개편한 고후 축구 클럽이 전신이다.[3] 1972년부터 JSL 2부, 1992년부터 재팬 풋볼 리그에 참가했다. 1995년에 팀명을 '''반포레 고후'''로 변경했다.[3] 1997년 2월에 운영 법인인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을 설립했다. 1998년에 J리그 가맹이 승인되어, 1999년부터 J리그 디비전 2 (J2) 참가가 결정되었다.
=== J2 리그 (1999-2005) ===
1999년 J리그 가맹 후, 방포레 고후는 J2 리그에서 여러 시즌을 보냈다. 1999년 첫 시즌에는 라이선스 문제[6]로 쓰카다 유지 대신 가쓰마타 스스무가 감독으로 취임[7]했으나, 개막 후 10경기 동안 승리하지 못하는 등 최하위(10위)를 기록했다.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어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00년에는 쓰카다 유지가 감독으로 복귀했지만, 선수 부족으로 피지컬 트레이너였던 쓰루타 미치히로와 급하게 프로 계약을 맺어야 할 정도였다. 리그에서는 2년 연속 최하위(11위)를 기록했고, 특히 19연패(26경기 무승)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8] 이 기록은 J2는 물론 J리그 전체 최다 연패 기록이다.[9][10] 경영 위기까지 겹쳐 팀 존속이 위태로웠다.
2001년, 가미나가요시 에이분이 강화 부장에 취임[12]하고 브라질 SE 파우메이라스와의 제휴를 통해 선수 수급에 나섰지만, 3년 연속 최하위(1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J리그 참가 3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기록하며 팀 존속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2년, 시미즈 에스펄스와의 제휴(상세 내용)와 오키 다케시 감독 취임을 통해 팀 재건에 나섰다. 후지타 겐, 구라누키 가즈키 등의 활약으로 7위를 기록하며 반등의 기미를 보였다.
2003년, 마쓰나가 히데키 감독 체제에서 오구라 다카시 등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 J2 참가 이후 처음으로 시즌 승점을 획득하고 모든 팀에게 승리하는 등 5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04년에는 바론이 복귀하며 공격력을 강화했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7위에 그쳤다.
2005년, 오키 다케시 감독이 복귀하고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발레를 영입, 발레는 J2 득점 랭킹 2위를 기록하며 팀을 3위로 이끌었다.
J1·J2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가시와를 꺾고 J1 승격을 확정지었다.
=== J1 리그 (2006-2007) ===
2006년 오오키 감독 체제 2년차에 방포레 고후는 J1리그로 승격했다. 제한된 예산 속에서 전 일본 대표 하야시 켄타로와 JFL 베스트 11의 우루노 쥰, 6년 만에 팀으로 복귀한 호리이 타케야, 삿포로 등에서 활약한 비주 등을 영입했다. J1 첫 경기는 시미즈 에스펄스에 패했지만, J2에서 통했던 달리는 축구가 기능하기 시작한 3차전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에서 J1 첫 승리를 거두었다. 바레와 중간에 영입된 모바라 타케토 등의 활약으로 요코하마 FM과 가시마, G 오사카 등에 승리했지만, 18팀 중 15위를 기록했다. 7위 나고야와의 승점 차는 6점이었고, 9위 요코하마 FM과의 승점 차는 3점이었다.
2007년은 오오키 감독 체제 3년차였다. 바레가 G 오사카로, 쿠라누키 가즈키가 교토로, 아라일이 베라노폴리스 ECRC로 이적했다. 한편, 브라질 쿠리치바 FC에서 FW 알베르토와 FC 도쿄에서 DF 마스시마 타츠야를 각각 임대 영입했다. 오오키 감독이 새롭게 도입한 전술 "클로즈"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개막 4연패를 당하고 4월에는 3연승 등으로 잔류 경쟁에서 벗어났지만, 5월부터 다시 연패를 거듭했다. 16라운드에서는 판정에 불만을 품은 모바라 타케토와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던 하야시 켄타로가 트러블을 일으켜 출장 정지를 받았다.[13] 시즌 후반에 하네지 토시아키와 라돈치치 두 FW를 영입하여, 나비스코컵 득점왕이 된 스도와 함께 후반전 반전을 노렸지만, 33라운드에서 가시와 레이솔에 1-2로 패하여 J2 강등이 결정되었다 (최종 순위는 17위). 시즌 종료 후 오오키 감독이 퇴임했다.
=== J2 리그 (2008-2010) ===
1999년 J리그 가맹 후, 2005년 J2리그 3위를 기록, 리그 교체전에서 가시와 레이솔을 꺾고 J1리그로 처음 승격하였으나 2007년 17위를 기록하여 다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 2008년
안자마 타카요시가 헤드 코치에서 감독으로 취임했다. 모바라 타케토, 마스시마 타츠야, 스도 다이스케 등이 각각 이적한 반면, 조지마르 로드리게스 소자 로베르토(ジョジマール・ロドリゲス・ソウザ・ロベルト, 조지마르), 미오 아츠시가 복귀했고, 마에다 마사후미를 임대 이적으로 영입했다. 리그전은 개막 후 5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등, 전반기 21경기를 마치고 5승에 그쳐 11위에 머물렀다. 7월에 사르스와 루이스 카를로스 도스 산토스 마르틴스(ルイス・カルロス・ドス・サントス・マルチンス, 말라뇽) 두 명의 브라질인 FW를 기간 한정으로 영입했다. 급성장한 오오니시 요헤이와 함께 활약했지만, 상위 팀에 이길 수 없는 승부 약세는 끝까지 개선되지 않았고, 최종 순위는 7위였다. 또한 10월에 전 오미야 아르디자 감독 사쿠마 사토루가 제너럴 매니저로 취임했다.
; 2009년
안자마 체제 2년차. 주력 FW진을 대량 방출하고, 대신 말라뇽의 완전 이적과 김신영, 모리타 히로시의 각 FW를 영입했다. 수비진은 GK 오기 코타, DF 다니엘 두 명을 임대 이적으로 영입했다. 리그전은 제1 쿨을 4위로 마치고, 6월에 기후에서 가타기리 아츠시를, 더 나아가 히로시마에 재적하며 9득점을 올린 가우봉 두 FW를 완전 이적으로 영입했다. 리그전은 최종적으로 쇼난 벨마레와 3위를 다퉜지만, 직접 대결에서 패배하여 쇼난과 승점 1점 차이인 4위로 시즌을 종료했다.
이 해, 성장 부진인 젊은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야마나시 가쿠인 대학과 제휴를 맺고, 선수 간의 상호 교류를 하게 되었다[14]。
; 2010년
안자마 감독이 퇴임하고, 전년에 헤드 코치를 맡았던 우치다 카즈오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하야시 켄타로와 GK 아베 켄사쿠가 은퇴하고, 모리타 히로시와 오랫동안 팀에 재적했던 스기야마 아라타가 퇴단한 한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전년은 사간 도스에 재적)에서 하프나 마이크, 전 교토의 파울리뉴를 완전 이적으로 영입했다. 개막 직전에 전술을 급히 변경했기 때문에 처음 4경기는 1승 1무 2패였지만, 이후 공격진이 기능하게 되어 제13절에서 2위로 부상하여 그대로 순위를 유지했다. 제34절의 토치기 SC전에서 승리하여 4년 만에 J1 복귀를 결정했다. J2 시즌은 지난 번 승격했던 2005년보다 높은 2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하프나 마이크가 20득점을 올려 팀 최초로 J2 득점왕을 획득했다.
강등 후 2008년 7위, 2009년 4위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내던 중 2010 시즌 2위를 확정, 자력으로 J1 승격을 확정하여 4년 만에 J1로 복귀하였다.
=== J1 리그 (2011) ===
1965년 설립된 고후 사커 클럽이 전신이다. 1999년 J리그에 가맹, 2005년 J2리그 3위를 기록, 리그 교체전에서 가시와 레이솔을 꺾고 J1리그로 처음 승격하였으나 2007년 17위를 기록하여 다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10 시즌 2위를 확정, 자력으로 J1 승격을 확정하여 4년 만에 J1로 복귀하였으나 이듬해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마지막까지 강등 경쟁을 벌이다 16위를 기록하여 다시 강등되었다.
2011시즌에는 종합적인 이유로 우치다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수비 강화를 목적으로 미우라 토시야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후지타 켄, 아키모토 미치타카 등이 퇴단한 한편, 시미즈 에스펄스에서 이토 테루요시와 이치카와 다이스케 등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러나, 존 디펜스로 이루어진 수비 중시 전술은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연패와 대량 실점을 거듭해 7월에 미우라가 해임[15]되었다. 하프너 마이크, 파울리뉴, 이자와 아츠시 등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하고, 다비, 김진규를 영입했다. 하프너가 득점을 양산했지만, 최종전에서 오미야 아르디자에게 패배하여 강등이 결정되었다.
시즌 종료 후, 하프너는 후지타 켄, 아키모토 미치타카 등의 방출과 미우라 전 감독의 영입과 같은 팀 구성 방침을 비판받았으며[16], 보강한 선수들의 질에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되었다.[17]。한편, 하프너가 8월에 클럽 최초로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어, 10월 11일 2014 FIFA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타지키스탄전에서 2득점을 올려 클럽 최초의 A대표팀 경기 득점자가 되었다.
=== J2 리그 (2012) ===
2012년 시즌에는 좋은 경기력으로 10월 14일 일치감찌 재승격을 확정짓고 10월 21일에는 1승을 추가하여 J2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제18절 홈 지바전에서 패배한 후, 제19절 원정 미토전에서의 승리부터 최종절 원정 교토전까지 J2 기록인 24경기 무패(16승 8무)로 시즌을 마쳤다.
우승 | 준우승 | 3위 | 승격 | 강등 |
리그 | J리그 컵 | 천황배 전일본 선수권 대회 | AFC 챔피언스 리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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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디비전 | 티어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평균 관중 | ||
2012 | J2 | 2 | 1위 | 42 | 24 | 4 | 14 | 63 | 35 | 28 | 86 | 10,407 | 2라운드 |
=== J1 리그 (2013-2017) ===
2012 시즌 J2리그 우승으로 J1으로 승격한 방포레 고후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J1 리그에 참가했다.
; 2013년
: 팀 슬로건: '''MOVE - 프로빈치아의 도전 -'''
조후 체제 2년차.
다비, 페르난지뉴, 타카사키 히로유키, 나가사토 겐키, 카타기리 아츠시 등이 퇴단했다. 츠치야 유키오, 아오야마 나오아키, 미즈노 코키를 완전 이적으로, 하뉴 나오타케, 히라모토 카즈키를 임대 영입했다. 레니, 우고와 계약했지만, 레니는 개막 전, 도우글라스는 4월, 우고는 7월까지 계약 해지되었다.[18] 3월에 오르티고사를 영입했지만 6월에 해지되었다.[19] 5월에 마르키뉴스 파라나, 7월에 지우시뉴를, 가와사키에서 패트릭을 임대 영입했다.
개막 10라운드까지 3승 5무 2패였으나, 11라운드 시미즈전 패배 이후 8연패, 18라운드 종료 시점 16위까지 추락했다. 19라운드 이후 패트릭, 지우시뉴의 가입과 3백 시스템으로 수비가 안정되어 5승 8무 3패로 회복, 최종 15위로 J1 잔류를 달성했다. 나비스코컵은 예선 리그 탈락. 천황배는 8강에서 히로시마에 승부차기로 패했다.
; 2014년
: 팀 슬로건: '''비약 - 프로빈치아의 도전 -'''
조후 체제 3년차.
카시와바라 요시후미가 히로시마, 이토 테루요시가 나가노로 이적했다. 패트릭, 히라모토 카즈키, 하뉴 나오타케, 카와타 코헤이와 임대 계약을 종료했다. 아베 쇼헤이, 크리스티아노를 영입, 아베 타쿠마, 키리노[20]를 보강했다.
헤이세이 26년 폭설로 개막전을 국립 카스가오카 경기장으로 변경했다. 브라질 월드컵 전에는 잔류권이었지만, 재개 후 15라운드부터 8경기 무승(5무 3패)으로 강등권까지 추락했다. 9월 23라운드 토스전 승리 후 29라운드까지 2승 3무 2패로 회복, 30라운드 가와사키전 승리로 강등권 탈출, C오사카와 히로시마에도 승리하여 32라운드 종료 시점 J1 잔류, 최종 13위. 27득점(리그 최저 2위), 31실점(리그 2위 타이)이었다. 나비스코컵 예선 리그 탈락, 천황배 16강에서 J2 기타큐슈에 승부차기 패배.
; 2015년
: 팀 슬로건: '''일체 - 프로빈치아의 도전 -'''
J1 3시즌 연속. 히구치 야스히로 감독 취임.[21]
크리스티아노 가시와 레이솔 임대 이적, 사사키 쇼, 미즈노 코키, 아오야마 나오아키 이적. 키리노, 마르키뉴스 파라나 퇴단. 아드리아누, 노다 히로시 영입, 카와타 코헤이 완전 이적.
지바우, 엔리케 퇴단. 히구치 감독 전술 실패, 11라운드 종료 시점 2승 9패, 득점 및 실점 리그 최하위. 5월 13일 히구치 감독 사임, 사쿠마 GM 감독 취임. 4월 마르키뉴스 파라나 재영입, 5월 발레 복귀. 아드리아누, 노다 퇴단, 이후 4승 2무로 강등권 탈출, 1st 스테이지 12위. 2nd 스테이지 14위, 종합 13위로 J1 잔류. 나비스코컵 예선 탈락, 천황배 16강 가시와에 패배.
이토 준야 가나가와 대학에서 가입, 30경기 4득점.
; 2016년
: 팀 슬로건: '''총력 - 프로빈치아의 도전 -'''
사쿠마 체제 2년차, 부사장 겸임.
아베 쇼헤이, 아베 타쿠마, 오기 코타 등 주력, 이토 준야, 호리코메 유우키, 시모다 홋토 등 이적. 발레, 마르키뉴스 파라나 퇴단. 크리스티아노 복귀. 지우톤 (계약 해지), 빌리 세레스키, 니우손, 츄카, 타나카 유스케, 쿠로키 세이지 등 영입.
개막전 승리 J1 선두, 선수 부상으로 순위 저조, 6월 크리스티아노 가시와 이적, 1st 스테이지 17위. 2nd 스테이지 개막 전 두두 보강, 마르키뉴스 파라나, 다비 복귀. 니우손, 츄카 계약 해지. 2nd 스테이지 13위, 연간 14위 잔류. 연간 승점 31점(잔류 최저), 연간 7승(J1 재적 최저), 32득점(리그 최저 3위), 58실점(리그 최저 2위 타이).
나비스코컵 4년 연속 예선 리그 탈락, 천황배 첫 경기 J3 오이타에 패배.
; 2017년
: 팀 슬로건: '''진화 - 프로빈치아의 도전 -'''
J1 5시즌. 요시다 타츠마 감독 취임.[22]
이나가키 쇼 히로시마 이적, 후쿠다 켄스케 (나가사키 이적), 요시노 슌코, 모리타 고헤이 (군마 이적), 시바무라 나오야, 와타나베 마사키 (요코하마 FC 이적), 다비, 빌리 세레스키, 마르키뉴스 파라나 계약 만료. 윌슨, 시마카와 토시로, 헤이도 히로아키, 에데르 리마 영입, 가브리엘 임대, 와카스기 요시테루 복귀, 호리코메 유우키 복귀.
3월 아베 쇼헤이 복귀, 올리버 보자니치 영입, 6월 주니오르 바호스 영입, 가브리엘 등록 말소, 8월 린스 영입, 주니오르 바호스 등록 말소, 9월 빌리 영입, 윌슨 등록 말소.
오카 타이세이 활약 수비 개선, 윌슨 부진, 두두 회복 부진으로 득점력 부족. 린스 활약 득점력 개선, 역전패. 최종 라운드 센다이전 승리, 시미즈 승리로 J2 강등.
이시하라 카츠야 현역 은퇴.
=== J2 리그 (2018-2022) ===
2018년 시즌, 방포레 고후는 6시즌 만에 J2 리그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요시다 다쓰마 감독이 유임되었고, 오미야 아르디자의 감독이었던 이토 아키라가 헤드 코치로 초빙되었다. 이시하라 나오키, 쓰다 다쿠마, 호사카 가즈나리, 쓰치야 마사오 등 베테랑 선수들이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구로키 세이지는 V·파렌 나가사키로, 하바타키 아키히로는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했고, 아라사토 료는 주빌로 이와타로, 두두는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임대 이적했다.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고즈카 가즈키, 알비렉스 니가타 싱가포르에서 아키야마 다쿠야, 가시와 레이솔에서 유자와 마사토, 가타레 도야마에서 구보다 료, 쇼난 벨마레에서 지네이를 영입했고,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에서 가네조노 히데타카를 임대 영입했다. 주니오르 바호스와 재계약했다. 시즌 초반 부진으로 요시다 감독은 4월 30일에 해임되었고,[23] 우에노 노부히로가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J1 승격에는 실패했다. 리그전에서는 9위를 기록했지만, 르방컵과 천황배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시즌 종료 후 우에노 감독은 계약 만료로 퇴임했다.
2019년 시즌에는 헤드 코치였던 이토 아키라가 감독으로 승진했고, 우치다 가즈오가 헤드 코치로 복귀했다. 아베 쇼헤이, 구보다 료, 세토 다카유키, 페푸진, 지에고, 린스가 팀을 떠났다. 다카노 료는 요코하마M으로 복귀했고, 시미즈 고헤이는 히로시마로 이적했다. 고즈카 가즈키와 시마카와 도시로는 오이타로, 아키야마 다쿠야는 도쿠시마로, 미치부치 료헤이는 센다이로, 호리코메 유키는 지바로 이적했다. 나카야마 리쿠, 미야자키 준마가 새로 입단했고, 두두가 임대에서 복귀, 가네조노 히데타카가 완전 이적했다. 도쿠시마에서 피터 우타카,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요코야 시게루, 가와사키F에서 다케오카 유토, 나고야에서 우치다 겐타, 가나자와에서 고야나기 다쓰시와 사토 고이치, YS요코하마에서 고토 교스케를 영입했고, 다나카 유사쿠와 재계약했다. 여름에는 아라노, 고이즈미 하야토가 임대로 합류했고, 고토 교스케, 주니오르 바호스, 이리마가와 게이타는 임대 이적했다. 시즌 초반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여름에 주춤하며 플레이오프 진출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시즌 막판 10경기에서 6승 3무 1패를 기록하며 5위로 J1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1회전에서 도쿠시마 보르티스와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대회 규정에 따라 패배하여 J1 승격이 좌절되었다. 마쓰하시 유와 오구라 쇼헤이가 은퇴했다. 천황배에서는 2년 연속 8강에 진출했다.
2020년 시즌, 이토 감독 체제 2년차에 시부야 히로키가 헤드 코치로 복귀했고, 우치다 가즈오는 코치로 배치 전환되었다. 마쓰하시 유, 오구라 쇼헤이, 에데르 리마, 요코야 시게루, 다케오카 유토, 사토 고이치, 다나카 유사쿠 등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고이데 유타와 사토 가즈히로는 오이타로, 피터 우타카와 소네다 조는 교토로, 유자와 마사토는 후쿠오카로, 모리 고타는 야마구치로 이적했다. 나카무라 료타로, 나카시오 다이키가 새로 입단했고, 바호스와 이리마가와 게이타가 임대에서 복귀했다. 고이즈미 하야토가 완전 이적했고, 요코하마M에서 이즈미사와 히토시, 오카야마에서 다케다 쇼헤이,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야마다 리쿠를 임대 영입, 사가에서 후지타 유토, FC 도쿄에서 노자와 히데유키, 후쿠오카에서 마쓰다 리키, 피게이렌세 FC에서 라파엘을 영입했다. 코로나19 범유행으로 리그가 중단되었고, 하프너 마이크가 복귀했으며, 멘데스를 영입했다. 리그 재개 후, 강등이 없어지고 승격은 2팀으로 좁혀졌다. 천황배는 불참하게 되었다. 초과밀 일정 속에서 로테이션을 통해 젊은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늘렸지만, 리그 최다 무승부(17무)를 기록하며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21년 시즌, 이토 감독 체제 3년차에 U-
2. 1. 고후 축구 클럽 (1965-1994)
1965년 고후 제1고등학교의 동창 클럽인 가쿠조 클럽이 일본 사커 리그 승격을 목표로 다른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모집하기 시작하면서 '''고후 클럽'''으로 결성되었다. 당시 일본의 다른 주류 축구 클럽들과는 달리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선수들은 대부분 후원 기업의 직원이었다.[3]고후 클럽은 1972년 신설된 JSL 2부에 참가했다. 1992년 리그가 종료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으며, 구 일본 풋볼 리그의 창립 멤버가 되었다.[3]
2. 2. 방포레 고후 (1995-현재)
1965년에 츠루시로 클럽을 확대 개편한 고후 축구 클럽이 전신이다.[3] 1972년부터 JSL 2부, 1992년부터 재팬 풋볼 리그에 참가했다. 1995년에 팀명을 '''반포레 고후'''로 변경했다.[3] 1997년 2월에 운영 법인인 반포레 야마나시 스포츠 클럽을 설립했다. 1998년에 J리그 가맹이 승인되어, 1999년부터 J리그 디비전 2 (J2) 참가가 결정되었다.=== J2 리그 (1999-2005) ===
1999년 J리그 가맹 후, 방포레 고후는 J2 리그에서 여러 시즌을 보냈다. 1999년 첫 시즌에는 라이선스 문제[6]로 쓰카다 유지 대신 가쓰마타 스스무가 감독으로 취임[7]했으나, 개막 후 10경기 동안 승리하지 못하는 등 최하위(10위)를 기록했다.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어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00년에는 쓰카다 유지가 감독으로 복귀했지만, 선수 부족으로 피지컬 트레이너였던 쓰루타 미치히로와 급하게 프로 계약을 맺어야 할 정도였다. 리그에서는 2년 연속 최하위(11위)를 기록했고, 특히 19연패(26경기 무승)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8] 이 기록은 J2는 물론 J리그 전체 최다 연패 기록이다.[9][10] 경영 위기까지 겹쳐 팀 존속이 위태로웠다.
2001년, 가미나가요시 에이분이 강화 부장에 취임[12]하고 브라질 SE 파우메이라스와의 제휴를 통해 선수 수급에 나섰지만, 3년 연속 최하위(1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J리그 참가 3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기록하며 팀 존속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2년, 시미즈 에스펄스와의 제휴(상세 내용)와 오키 다케시 감독 취임을 통해 팀 재건에 나섰다. 후지타 겐, 구라누키 가즈키 등의 활약으로 7위를 기록하며 반등의 기미를 보였다.
2003년, 마쓰나가 히데키 감독 체제에서 오구라 다카시 등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 J2 참가 이후 처음으로 시즌 승점을 획득하고 모든 팀에게 승리하는 등 5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04년에는 바론이 복귀하며 공격력을 강화했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7위에 그쳤다.
2005년, 오키 다케시 감독이 복귀하고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발레를 영입, 발레는 J2 득점 랭킹 2위를 기록하며 팀을 3위로 이끌었다.
J1·J2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가시와를 꺾고 J1 승격을 확정지었다.
=== J1 리그 (2006-2007) ===
2006년 오오키 감독 체제 2년차에 방포레 고후는 J1리그로 승격했다. 제한된 예산 속에서 전 일본 대표 하야시 켄타로와 JFL 베스트 11의 우루노 쥰, 6년 만에 팀으로 복귀한 호리이 타케야, 삿포로 등에서 활약한 비주 등을 영입했다. J1 첫 경기는 시미즈 에스펄스에 패했지만, J2에서 통했던 달리는 축구가 기능하기 시작한 3차전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에서 J1 첫 승리를 거두었다. 바레와 중간에 영입된 모바라 타케토 등의 활약으로 요코하마 FM과 가시마, G 오사카 등에 승리했지만, 18팀 중 15위를 기록했다. 7위 나고야와의 승점 차는 6점이었고, 9위 요코하마 FM과의 승점 차는 3점이었다.
2007년은 오오키 감독 체제 3년차였다. 바레가 G 오사카로, 쿠라누키 카즈키가 교토로, 아라일이 베라노폴리스 ECRC로 이적했다. 한편, 브라질 쿠리치바 FC에서 FW 알베르토와 FC 도쿄에서 DF 마스시마 타츠야를 각각 임대 영입했다. 오오키 감독이 새롭게 도입한 전술 "클로즈"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개막 4연패를 당하고 4월에는 3연승 등으로 잔류 경쟁에서 벗어났지만, 5월부터 다시 연패를 거듭했다. 16라운드에서는 판정에 불만을 품은 모바라 타케토와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던 하야시 켄타로가 트러블을 일으켜 출장 정지를 받았다.[13] 시즌 후반에 하네지 토시아키와 라돈치치 두 FW를 영입하여, 나비스코컵 득점왕이 된 스도와 함께 후반전 반전을 노렸지만, 33라운드에서 가시와 레이솔에 1-2로 패하여 J2 강등이 결정되었다 (최종 순위는 17위). 시즌 종료 후 오오키 감독이 퇴임했다.
=== J2 리그 (2008-2010) ===
1999년 J리그 가맹 후, 2005년 J2리그 3위를 기록, 리그 교체전에서 가시와 레이솔을 꺾고 J1리그로 처음 승격하였으나 2007년 17위를 기록하여 다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 2008년
안자마 타카요시가 헤드 코치에서 감독으로 취임했다. 모바라 타케토, 마스시마 타츠야, 스도 다이스케 등이 각각 이적한 반면, 조지마르 로드리게스 소자 로베르토(ジョジマール・ロドリゲス・ソウザ・ロベルト, 조지마르), 미오 아츠시가 복귀했고, 마에다 마사후미를 임대 이적으로 영입했다. 리그전은 개막 후 5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등, 전반기 21경기를 마치고 5승에 그쳐 11위에 머물렀다. 7월에 사르스와 루이스 카를로스 도스 산토스 마르틴스(ルイス・カルロス・ドス・サントス・マルチンス, 말라뇽) 두 명의 브라질인 FW를 기간 한정으로 영입했다. 급성장한 오오니시 요헤이와 함께 활약했지만, 상위 팀에 이길 수 없는 승부 약세는 끝까지 개선되지 않았고, 최종 순위는 7위였다. 또한 10월에 전 오미야 아르디자 감독 사쿠마 사토루가 제너럴 매니저로 취임했다.
; 2009년
안자마 체제 2년차. 주력 FW진을 대량 방출하고, 대신 말라뇽의 완전 이적과 김신영, 모리타 히로시의 각 FW를 영입했다. 수비진은 GK 오기 코타, DF 다니엘 두 명을 임대 이적으로 영입했다. 리그전은 제1 쿨을 4위로 마치고, 6월에 기후에서 가타기리 아츠시를, 더 나아가 히로시마에 재적하며 9득점을 올린 가우봉 두 FW를 완전 이적으로 영입했다. 리그전은 최종적으로 쇼난 벨마레와 3위를 다퉜지만, 직접 대결에서 패배하여 쇼난과 승점 1점 차이인 4위로 시즌을 종료했다.
이 해, 성장 부진인 젊은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야마나시 가쿠인 대학과 제휴를 맺고, 선수 간의 상호 교류를 하게 되었다[14]。
; 2010년
|thumb|220px|하프나 마이크]]
안자마 감독이 퇴임하고, 전년에 헤드 코치를 맡았던 우치다 카즈오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하야시 켄타로와 GK 아베 켄사쿠가 은퇴하고, 모리타 히로시와 오랫동안 팀에 재적했던 스기야마 아라타가 퇴단한 한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전년은 사간 도스에 재적)에서 하프나 마이크, 전 교토의 파울리뉴를 완전 이적으로 영입했다. 개막 직전에 전술을 급히 변경했기 때문에 처음 4경기는 1승 1무 2패였지만, 이후 공격진이 기능하게 되어 제13절에서 2위로 부상하여 그대로 순위를 유지했다. 제34절의 토치기 SC전에서 승리하여 4년 만에 J1 복귀를 결정했다. J2 시즌은 지난 번 승격했던 2005년보다 높은 2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하프나 마이크가 20득점을 올려 팀 최초로 J2 득점왕을 획득했다.
강등 후 2008년 7위, 2009년 4위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내던 중 2010 시즌 2위를 확정, 자력으로 J1 승격을 확정하여 4년 만에 J1로 복귀하였다.
=== J1 리그 (2011) ===
1965년 설립된 고후 사커 클럽이 전신이다. 1999년 J리그에 가맹, 2005년 J2리그 3위를 기록, 리그 교체전에서 가시와 레이솔을 꺾고 J1리그로 처음 승격하였으나 2007년 17위를 기록하여 다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10 시즌 2위를 확정, 자력으로 J1 승격을 확정하여 4년 만에 J1로 복귀하였으나 이듬해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마지막까지 강등 경쟁을 벌이다 16위를 기록하여 다시 강등되었다.
2011시즌에는 종합적인 이유로 우치다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수비 강화를 목적으로 미우라 토시야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후지타 켄, 아키모토 미치타카 등이 퇴단한 한편, 시미즈 에스펄스에서 이토 테루요시와 이치카와 다이스케 등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러나, 존 디펜스로 이루어진 수비 중시 전술은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연패와 대량 실점을 거듭해 7월에 미우라가 해임[15]되었다. 하프너 마이크, 파울리뉴, 이자와 아츠시 등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하고, 다비, 김진규를 영입했다. 하프너가 득점을 양산했지만, 최종전에서 오미야 아르디자에게 패배하여 강등이 결정되었다.
시즌 종료 후, 하프너는 후지타 켄, 아키모토 미치타카 등의 방출과 미우라 전 감독의 영입과 같은 팀 구성 방침을 비판받았으며[16], 보강한 선수들의 질에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되었다.[17]。한편, 하프너가 8월에 클럽 최초로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어, 10월 11일 2014 FIFA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타지키스탄전에서 2득점을 올려 클럽 최초의 A대표팀 경기 득점자가 되었다.
=== J2 리그 (2012) ===
2012년 시즌에는 좋은 경기력으로 10월 14일 일치감찌 재승격을 확정짓고 10월 21일에는 1승을 추가하여 J2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제18절 홈 지바전에서 패배한 후, 제19절 원정 미토전에서의 승리부터 최종절 원정 교토전까지 J2 기록인 24경기 무패(16승 8무)로 시즌을 마쳤다.
우승 | 준우승 | 3위 | 승격 | 강등 |
리그 | J리그 컵 | 천황배 전일본 선수권 대회 | AFC 챔피언스 리그 | |||||||||||
---|---|---|---|---|---|---|---|---|---|---|---|---|---|---|
연도 | 디비전 | 티어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평균 관중 | ||
2012 | J2 | 2 | 1위 | 42 | 24 | 4 | 14 | 63 | 35 | 28 | 86 | 10,407 | 2라운드 |
=== J1 리그 (2013-2017) ===
2012 시즌 J2리그 우승으로 J1으로 승격한 방포레 고후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J1 리그에 참가했다.
; 2013년
: 팀 슬로건: '''MOVE - 프로빈치아의 도전 -'''
조후 체제 2년차.
다비, 페르난지뉴, 타카사키 히로유키, 나가사토 겐키, 카타기리 아츠시 등이 퇴단했다. 츠치야 유키오, 아오야마 나오아키, 미즈노 코키를 완전 이적으로, 하뉴 나오타케, 히라모토 카즈키를 임대 영입했다. 레니, 우고와 계약했지만, 레니는 개막 전, 도우글라스는 4월, 우고는 7월까지 계약 해지되었다.[18] 3월에 오르티고사를 영입했지만 6월에 해지되었다.[19] 5월에 마르키뉴스 파라나, 7월에 지우시뉴를, 가와사키에서 패트릭을 임대 영입했다.
개막 10라운드까지 3승 5무 2패였으나, 11라운드 시미즈전 패배 이후 8연패, 18라운드 종료 시점 16위까지 추락했다. 19라운드 이후 패트릭, 지우시뉴의 가입과 3백 시스템으로 수비가 안정되어 5승 8무 3패로 회복, 최종 15위로 J1 잔류를 달성했다. 나비스코컵은 예선 리그 탈락. 천황배는 8강에서 히로시마에 승부차기로 패했다.
; 2014년
: 팀 슬로건: '''비약 - 프로빈치아의 도전 -'''
조후 체제 3년차.
카시와바라 요시후미가 히로시마, 이토 테루요시가 나가노로 이적했다. 패트릭, 히라모토 카즈키, 하뉴 나오타케, 카와타 코헤이와 임대 계약을 종료했다. 아베 쇼헤이, 크리스티아노를 영입, 아베 타쿠마, 키리노[20]를 보강했다.
헤이세이 26년 폭설로 개막전을 국립 카스가오카 경기장으로 변경했다. 브라질 월드컵 전에는 잔류권이었지만, 재개 후 15라운드부터 8경기 무승(5무 3패)으로 강등권까지 추락했다. 9월 23라운드 토스전 승리 후 29라운드까지 2승 3무 2패로 회복, 30라운드 가와사키전 승리로 강등권 탈출, C오사카와 히로시마에도 승리하여 32라운드 종료 시점 J1 잔류, 최종 13위. 27득점(리그 최저 2위), 31실점(리그 2위 타이)이었다. 나비스코컵 예선 리그 탈락, 천황배 16강에서 J2 기타큐슈에 승부차기 패배.
; 2015년
: 팀 슬로건: '''일체 - 프로빈치아의 도전 -'''
J1 3시즌 연속. 히구치 야스히로 감독 취임.[21]
크리스티아노 가시와 레이솔 임대 이적, 사사키 쇼, 미즈노 코키, 아오야마 나오아키 이적. 키리노, 마르키뉴스 파라나 퇴단. 아드리아누, 노다 히로시 영입, 카와타 코헤이 완전 이적.
지바우, 엔리케 퇴단. 히구치 감독 전술 실패, 11라운드 종료 시점 2승 9패, 득점 및 실점 리그 최하위. 5월 13일 히구치 감독 사임, 사쿠마 GM 감독 취임. 4월 마르키뉴스 파라나 재영입, 5월 발레 복귀. 아드리아누, 노다 퇴단, 이후 4승 2무로 강등권 탈출, 1st 스테이지 12위. 2nd 스테이지 14위, 종합 13위로 J1 잔류. 나비스코컵 예선 탈락, 천황배 16강 가시와에 패배.
이토 준야 가나가와 대학에서 가입, 30경기 4득점.
; 2016년
: 팀 슬로건: '''총력 - 프로빈치아의 도전 -'''
사쿠마 체제 2년차, 부사장 겸임.
아베 쇼헤이, 아베 타쿠마, 오기 코타 등 주력, 이토 준야, 호리코메 유우키, 시모다 홋토 등 이적. 발레, 마르키뉴스 파라나 퇴단. 크리스티아노 복귀. 지우톤 (계약 해지), 빌리 세레스키, 니우손, 츄카, 타나카 유스케, 쿠로키 세이지 등 영입.
개막전 승리 J1 선두, 선수 부상으로 순위 저조, 6월 크리스티아노 가시와 이적, 1st 스테이지 17위. 2nd 스테이지 개막 전 두두 보강, 마르키뉴스 파라나, 다비 복귀. 니우손, 츄카 계약 해지. 2nd 스테이지 13위, 연간 14위 잔류. 연간 승점 31점(잔류 최저), 연간 7승(J1 재적 최저), 32득점(리그 최저 3위), 58실점(리그 최저 2위 타이).
나비스코컵 4년 연속 예선 리그 탈락, 천황배 첫 경기 J3 오이타에 패배.
; 2017년
: 팀 슬로건: '''진화 - 프로빈치아의 도전 -'''
J1 5시즌. 요시다 타츠마 감독 취임.[22]
이나가키 쇼 히로시마 이적, 후쿠다 켄스케 (나가사키 이적), 요시노 슌코, 모리타 고헤이 (군마 이적), 시바무라 나오야, 와타나베 마사키 (요코하마 FC 이적), 다비, 빌리 세레스키, 마르키뉴스 파라나 계약 만료. 윌슨, 시마카와 토시로, 헤이도 히로아키, 에데르 리마 영입, 가브리엘 임대, 와카스기 요시테루 복귀, 호리코메 유우키 복귀.
3월 아베 쇼헤이 복귀, 올리버 보자니치 영입, 6월 주니오르 바호스 영입, 가브리엘 등록 말소, 8월 린스 영입, 주니오르 바호스 등록 말소, 9월 빌리 영입, 윌슨 등록 말소.
오카 타이세이 활약 수비 개선, 윌슨 부진, 두두 회복 부진으로 득점력 부족. 린스 활약 득점력 개선, 역전패. 최종 라운드 센다이전 승리, 시미즈 승리로 J2 강등.
이시하라 카츠야 현역 은퇴.
=== J2 리그 (2018-2022) ===
2018년 시즌, 방포레 고후는 6시즌 만에 J2 리그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요시다 다쓰마 감독이 유임되었고, 오미야 아르디자의 감독이었던 이토 아키라가 헤드 코치로 초빙되었다. 이시하라 나오키, 쓰다 다쿠마, 호사카 가즈나리, 쓰치야 마사오 등 베테랑 선수들이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구로키 세이지는 V·파렌 나가사키로, 하바타키 아키히로는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했고, 아라사토 료는 주빌로 이와타로, 두두는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임대 이적했다.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고즈카 가즈키, 알비렉스 니가타 싱가포르에서 아키야마 다쿠야, 가시와 레이솔에서 유자와 마사토, 가타레 도야마에서 구보다 료, 쇼난 벨마레에서 지네이를 영입했고,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에서 가네조노 히데타카를 임대 영입했다. 주니오르 바호스와 재계약했다. 시즌 초반 부진으로 요시다 감독은 4월 30일에 해임되었고,[23] 우에노 노부히로가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J1 승격에는 실패했다. 리그전에서는 9위를 기록했지만, 르방컵과 천황배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시즌 종료 후 우에노 감독은 계약 만료로 퇴임했다.
2019년 시즌에는 헤드 코치였던 이토 아키라가 감독으로 승진했고, 우치다 가즈오가 헤드 코치로 복귀했다. 아베 쇼헤이, 구보다 료, 세토 다카유키, 페푸진, 지에고, 린스가 팀을 떠났다. 다카노 료는 요코하마M으로 복귀했고, 시미즈 고헤이는 히로시마로 이적했다. 고즈카 가즈키와 시마카와 도시로는 오이타로, 아키야마 다쿠야는 도쿠시마로, 미치부치 료헤이는 센다이로, 호리코메 유키는 지바로 이적했다. 나카야마 리쿠, 미야자키 준마가 새로 입단했고, 두두가 임대에서 복귀, 가네조노 히데타카가 완전 이적했다. 도쿠시마에서 피터 우타카,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요코야 시게루, 가와사키F에서 다케오카 유토, 나고야에서 우치다 겐타, 가나자와에서 고야나기 다쓰시와 사토 고이치, YS요코하마에서 고토 교스케를 영입했고, 다나카 유사쿠와 재계약했다. 여름에는 아라노, 고이즈미 하야토가 임대로 합류했고, 고토 교스케, 주니오르 바호스, 이리마가와 게이타는 임대 이적했다. 시즌 초반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여름에 주춤하며 플레이오프 진출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시즌 막판 10경기에서 6승 3무 1패를 기록하며 5위로 J1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1회전에서 도쿠시마 보르티스와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대회 규정에 따라 패배하여 J1 승격이 좌절되었다. 마쓰하시 유와 오구라 쇼헤이가 은퇴했다. 천황배에서는 2년 연속 8강에 진출했다.
2020년 시즌, 이토 감독 체제 2년차에 시부야 히로키가 헤드 코치로 복귀했고, 우치다 가즈오는 코치로 배치 전환되었다. 마쓰하시 유, 오구라 쇼헤이, 에데르 리마, 요코야 시게루, 다케오카 유토, 사토 고이치, 다나카 유사쿠 등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고이데 유타와 사토 가즈히로는 오이타로, 피터 우타카와 소네다 조는 교토로, 유자와 마사토는 후쿠오카로, 모리 고타는 야마구치로 이적했다. 나카무라 료타로, 나카시오 다이키가 새로 입단했고, 바호스와 이리마가와 게이타가 임대에서 복귀했다. 고이즈미 하야토가 완전 이적했고, 요코하마M에서 이즈미사와 히토시, 오카야마에서 다케다 쇼헤이,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야마다 리쿠를 임대 영입, 사가에서 후지타 유토, FC 도쿄에서 노자와 히데유키, 후쿠오카에서 마쓰다 리키, 피게이렌세 FC에서 라파엘을 영입했다. 코로나19 범유행으로 리그가 중단되었고, 하프너 마이크가 복귀했으며, 멘데스를 영입했다. 리그 재개 후, 강등이 없어지고 승격은 2팀으로 좁혀졌다. 천황배는 불참하게 되었다. 초과밀 일정 속에서 로테이션을 통해 젊은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늘렸지만, 리그 최다 무승부(17무)를 기록하며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21년 시즌, 이토 감독 체제 3년차에 U-15 감독이었던 오시바 가쓰토가 코치로 취임했고, 우치다 가즈오는 U-18 감독으로 취임했다.
2. 2. 1. J2 리그 (1999-2005)
1999년 J리그 가맹 후, 방포레 고후는 J2 리그에서 여러 시즌을 보냈다. 1999년 첫 시즌에는 라이선스 문제[6]로 쓰카다 유지 대신 가쓰마타 스스무가 감독으로 취임[7]했으나, 개막 후 10경기 동안 승리하지 못하는 등 최하위(10위)를 기록했다. 재정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어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2000년에는 쓰카다 유지가 감독으로 복귀했지만, 선수 부족으로 피지컬 트레이너였던 쓰루타 미치히로와 급하게 프로 계약을 맺어야 할 정도였다. 리그에서는 2년 연속 최하위(11위)를 기록했고, 특히 19연패(26경기 무승)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8] 이 기록은 J2는 물론 J리그 전체 최다 연패 기록이다.[9][10] 경영 위기까지 겹쳐 팀 존속이 위태로웠다.
2001년, 가미나가요시 에이분이 강화 부장에 취임[12]하고 브라질 SE 파우메이라스와의 제휴를 통해 선수 수급에 나섰지만, 3년 연속 최하위(1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J리그 참가 3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기록하며 팀 존속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2년, 시미즈 에스펄스와의 제휴(상세 내용)와 오키 다케시 감독 취임을 통해 팀 재건에 나섰다. 후지타 겐, 구라누키 가즈키 등의 활약으로 7위를 기록하며 반등의 기미를 보였다.
2003년, 마쓰나가 히데키 감독 체제에서 오구라 다카시 등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하며 전력을 강화, J2 참가 이후 처음으로 시즌 승점을 획득하고 모든 팀에게 승리하는 등 5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04년에는 바론이 복귀하며 공격력을 강화했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으로 7위에 그쳤다.
2005년, 오키 다케시 감독이 복귀하고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발레를 영입, 발레는 J2 득점 랭킹 2위를 기록하며 팀을 3위로 이끌었다.
J1·J2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가시와를 꺾고 J1 승격을 확정지었다.
2. 2. 2. J1 리그 (2006-2007)
2006년 오오키 감독 체제 2년차에 방포레 고후는 J1리그로 승격했다. 제한된 예산 속에서 전 일본 대표 하야시 켄타로와 JFL 베스트 11의 우루노 쥰, 6년 만에 팀으로 복귀한 호리이 타케야, 삿포로 등에서 활약한 비주 등을 영입했다. J1 첫 경기는 시미즈 에스펄스에 패했지만, J2에서 통했던 달리는 축구가 기능하기 시작한 3차전 가와사키 프론탈레전에서 J1 첫 승리를 거두었다. 바레와 중간에 영입된 모바라 타케토 등의 활약으로 요코하마 FM과 가시마, G 오사카 등에 승리했지만, 18팀 중 15위를 기록했다. 7위 나고야와의 승점 차는 6점이었고, 9위 요코하마 FM과의 승점 차는 3점이었다.2007년은 오오키 감독 체제 3년차였다. 바레가 G 오사카로, 쿠라누키 카즈키가 교토로, 아라일이 베라노폴리스 ECRC로 이적했다. 한편, 브라질 쿠리치바 FC에서 FW 알베르토와 FC 도쿄에서 DF 마스시마 타츠야를 각각 임대 영입했다. 오오키 감독이 새롭게 도입한 전술 "클로즈"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개막 4연패를 당하고 4월에는 3연승 등으로 잔류 경쟁에서 벗어났지만, 5월부터 다시 연패를 거듭했다. 16라운드에서는 판정에 불만을 품은 모바라 타케토와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던 하야시 켄타로가 트러블을 일으켜 출장 정지를 받았다.[13] 시즌 후반에 하네지 토시아키와 라돈치치 두 FW를 영입하여, 나비스코컵 득점왕이 된 스도와 함께 후반전 반전을 노렸지만, 33라운드에서 가시와 레이솔에 1-2로 패하여 J2 강등이 결정되었다 (최종 순위는 17위). 시즌 종료 후 오오키 감독이 퇴임했다.
2. 2. 3. J2 리그 (2008-2010)
1999년 J리그 가맹 후, 2005년 J2리그 3위를 기록, 리그 교체전에서 가시와 레이솔을 꺾고 J1리그로 처음 승격하였으나 2007년 17위를 기록하여 다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08년
안자마 타카요시가 헤드 코치에서 감독으로 취임했다. 모바라 타케토, 마스시마 타츠야, 스도 다이스케 등이 각각 이적한 반면, 조지마르 로드리게스 소자 로베르토(ジョジマール・ロドリゲス・ソウザ・ロベルト, 조지마르), 미오 아츠시가 복귀했고, 마에다 마사후미를 임대 이적으로 영입했다. 리그전은 개막 후 5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는 등, 전반기 21경기를 마치고 5승에 그쳐 11위에 머물렀다. 7월에 사르스와 루이스 카를로스 도스 산토스 마르틴스(ルイス・カルロス・ドス・サントス・マルチンス, 말라뇽) 두 명의 브라질인 FW를 기간 한정으로 영입했다. 급성장한 오오니시 요헤이와 함께 활약했지만, 상위 팀에 이길 수 없는 승부 약세는 끝까지 개선되지 않았고, 최종 순위는 7위였다. 또한 10월에 전 오미야 아르디자 감독 사쿠마 사토루가 제너럴 매니저로 취임했다.
; 2009년
안자마 체제 2년차. 주력 FW진을 대량 방출하고, 대신 말라뇽의 완전 이적과 김신영, 모리타 히로시의 각 FW를 영입했다. 수비진은 GK 오기 코타, DF 다니엘 두 명을 임대 이적으로 영입했다. 리그전은 제1 쿨을 4위로 마치고, 6월에 기후에서 가타기리 아츠시를, 더 나아가 히로시마에 재적하며 9득점을 올린 가우봉 두 FW를 완전 이적으로 영입했다. 리그전은 최종적으로 쇼난 벨마레와 3위를 다퉜지만, 직접 대결에서 패배하여 쇼난과 승점 1점 차이인 4위로 시즌을 종료했다.
이 해, 성장 부진인 젊은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야마나시 가쿠인 대학과 제휴를 맺고, 선수 간의 상호 교류를 하게 되었다[14]。
; 2010년
|thumb|220px|하프나 마이크]]
안자마 감독이 퇴임하고, 전년에 헤드 코치를 맡았던 우치다 카즈오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하야시 켄타로와 GK 아베 켄사쿠가 은퇴하고, 모리타 히로시와 오랫동안 팀에 재적했던 스기야마 아라타가 퇴단한 한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전년은 사간 도스에 재적)에서 하프나 마이크, 전 교토의 파울리뉴를 완전 이적으로 영입했다. 개막 직전에 전술을 급히 변경했기 때문에 처음 4경기는 1승 1무 2패였지만, 이후 공격진이 기능하게 되어 제13절에서 2위로 부상하여 그대로 순위를 유지했다. 제34절의 토치기 SC전에서 승리하여 4년 만에 J1 복귀를 결정했다. J2 시즌은 지난 번 승격했던 2005년보다 높은 2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하프나 마이크가 20득점을 올려 팀 최초로 J2 득점왕을 획득했다.
강등 후 2008년 7위, 2009년 4위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내던 중 2010 시즌 2위를 확정, 자력으로 J1 승격을 확정하여 4년 만에 J1로 복귀하였다.
2. 2. 4. J1 리그 (2011)
1965년 설립된 고후 사커 클럽이 전신이다. 1999년 J리그에 가맹, 2005년 J2리그 3위를 기록, 리그 교체전에서 가시와 레이솔을 꺾고 J1리그로 처음 승격하였으나 2007년 17위를 기록하여 다시 J2리그로 강등되었다. 2010 시즌 2위를 확정, 자력으로 J1 승격을 확정하여 4년 만에 J1로 복귀하였으나 이듬해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마지막까지 강등 경쟁을 벌이다 16위를 기록하여 다시 강등되었다.2011시즌에는 종합적인 이유로 우치다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수비 강화를 목적으로 미우라 토시야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후지타 켄, 아키모토 미치타카 등이 퇴단한 한편, 시미즈 에스펄스에서 이토 테루요시와 이치카와 다이스케 등 베테랑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러나, 존 디펜스로 이루어진 수비 중시 전술은 전혀 기능하지 못하고, 연패와 대량 실점을 거듭해 7월에 미우라가 해임[15]되었다. 하프너 마이크, 파울리뉴, 이자와 아츠시 등을 중심으로 팀을 재건하고, 다비, 김진규를 영입했다. 하프너가 득점을 양산했지만, 최종전에서 오미야 아르디자에게 패배하여 강등이 결정되었다.
시즌 종료 후, 하프너는 후지타 켄, 아키모토 미치타카 등의 방출과 미우라 전 감독의 영입과 같은 팀 구성 방침을 비판받았으며[16], 보강한 선수들의 질에 문제가 있었다고 언급되었다.[17]。한편, 하프너가 8월에 클럽 최초로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어, 10월 11일 2014 FIFA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타지키스탄전에서 2득점을 올려 클럽 최초의 A대표팀 경기 득점자가 되었다.
2. 2. 5. J2 리그 (2012)
2012년 시즌에는 좋은 경기력으로 10월 14일 일치감찌 재승격을 확정짓고 10월 21일에는 1승을 추가하여 J2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제18절 홈 지바전에서 패배한 후, 제19절 원정 미토전에서의 승리부터 최종절 원정 교토전까지 J2 기록인 24경기 무패(16승 8무)로 시즌을 마쳤다.우승 | 준우승 | 3위 | 승격 | 강등 |
리그 | J리그 컵 | 천황배 전일본 선수권 대회 | AFC 챔피언스 리그 | |||||||||||
---|---|---|---|---|---|---|---|---|---|---|---|---|---|---|
연도 | 디비전 | 티어 | 순위 | 경기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평균 관중 | ||
2012 | J2 | 2 | 1위 | 42 | 24 | 4 | 14 | 63 | 35 | 28 | 86 | 10,407 | 2라운드 |
2. 2. 6. J1 리그 (2013-2017)
2012 시즌 J2리그 우승으로 J1으로 승격한 방포레 고후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J1 리그에 참가했다.; 2013년
: 팀 슬로건: '''MOVE - 프로빈치아의 도전 -'''
조후 체제 2년차.
다비, 페르난지뉴, 타카사키 히로유키, 나가사토 겐키, 카타기리 아츠시 등이 퇴단했다. 츠치야 유키오, 아오야마 나오아키, 미즈노 코키를 완전 이적으로, 하뉴 나오타케, 히라모토 카즈키를 임대 영입했다. 레니, 우고와 계약했지만, 레니는 개막 전, 도우글라스는 4월, 우고는 7월까지 계약 해지되었다.[18] 3월에 오르티고사를 영입했지만 6월에 해지되었다.[19] 5월에 마르키뉴스 파라나, 7월에 지우시뉴를, 가와사키에서 패트릭을 임대 영입했다.
개막 10라운드까지 3승 5무 2패였으나, 11라운드 시미즈전 패배 이후 8연패, 18라운드 종료 시점 16위까지 추락했다. 19라운드 이후 패트릭, 지우시뉴의 가입과 3백 시스템으로 수비가 안정되어 5승 8무 3패로 회복, 최종 15위로 J1 잔류를 달성했다. 나비스코컵은 예선 리그 탈락. 천황배는 8강에서 히로시마에 승부차기로 패했다.
; 2014년
: 팀 슬로건: '''비약 - 프로빈치아의 도전 -'''
조후 체제 3년차.
카시와바라 요시후미가 히로시마, 이토 테루요시가 나가노로 이적했다. 패트릭, 히라모토 카즈키, 하뉴 나오타케, 카와타 코헤이와 임대 계약을 종료했다. 아베 쇼헤이, 크리스티아노를 영입, 아베 타쿠마, 키리노[20]를 보강했다.
헤이세이 26년 폭설로 개막전을 국립 카스가오카 경기장으로 변경했다. 브라질 월드컵 전에는 잔류권이었지만, 재개 후 15라운드부터 8경기 무승(5무 3패)으로 강등권까지 추락했다. 9월 23라운드 토스전 승리 후 29라운드까지 2승 3무 2패로 회복, 30라운드 가와사키전 승리로 강등권 탈출, C오사카와 히로시마에도 승리하여 32라운드 종료 시점 J1 잔류, 최종 13위. 27득점(리그 최저 2위), 31실점(리그 2위 타이)이었다. 나비스코컵 예선 리그 탈락, 천황배 16강에서 J2 기타큐슈에 승부차기 패배.
; 2015년
: 팀 슬로건: '''일체 - 프로빈치아의 도전 -'''
J1 3시즌 연속. 히구치 야스히로 감독 취임.[21]
크리스티아노 가시와 레이솔 임대 이적, 사사키 쇼, 미즈노 코키, 아오야마 나오아키 이적. 키리노, 마르키뉴스 파라나 퇴단. 아드리아누, 노다 히로시 영입, 카와타 코헤이 완전 이적.
지바우, 엔리케 퇴단. 히구치 감독 전술 실패, 11라운드 종료 시점 2승 9패, 득점 및 실점 리그 최하위. 5월 13일 히구치 감독 사임, 사쿠마 GM 감독 취임. 4월 마르키뉴스 파라나 재영입, 5월 발레 복귀. 아드리아누, 노다 퇴단, 이후 4승 2무로 강등권 탈출, 1st 스테이지 12위. 2nd 스테이지 14위, 종합 13위로 J1 잔류. 나비스코컵 예선 탈락, 천황배 16강 가시와에 패배.
이토 준야 가나가와 대학에서 가입, 30경기 4득점.
; 2016년
: 팀 슬로건: '''총력 - 프로빈치아의 도전 -'''
사쿠마 체제 2년차, 부사장 겸임.
아베 쇼헤이, 아베 타쿠마, 오기 코타 등 주력, 이토 준야, 호리코메 유우키, 시모다 홋토 등 이적. 발레, 마르키뉴스 파라나 퇴단. 크리스티아노 복귀. 지우톤 (계약 해지), 빌리 세레스키, 니우손, 츄카, 타나카 유스케, 쿠로키 세이지 등 영입.
개막전 승리 J1 선두, 선수 부상으로 순위 저조, 6월 크리스티아노 가시와 이적, 1st 스테이지 17위. 2nd 스테이지 개막 전 두두 보강, 마르키뉴스 파라나, 다비 복귀. 니우손, 츄카 계약 해지. 2nd 스테이지 13위, 연간 14위 잔류. 연간 승점 31점(잔류 최저), 연간 7승(J1 재적 최저), 32득점(리그 최저 3위), 58실점(리그 최저 2위 타이).
나비스코컵 4년 연속 예선 리그 탈락, 천황배 첫 경기 J3 오이타에 패배.
; 2017년
: 팀 슬로건: '''진화 - 프로빈치아의 도전 -'''
J1 5시즌. 요시다 타츠마 감독 취임.[22]
이나가키 쇼 히로시마 이적, 후쿠다 켄스케 (나가사키 이적), 요시노 슌코, 모리타 고헤이 (군마 이적), 시바무라 나오야, 와타나베 마사키 (요코하마 FC 이적), 다비, 빌리 세레스키, 마르키뉴스 파라나 계약 만료. 윌슨, 시마카와 토시로, 헤이도 히로아키, 에데르 리마 영입, 가브리엘 임대, 와카스기 요시테루 복귀, 호리코메 유우키 복귀.
3월 아베 쇼헤이 복귀, 올리버 보자니치 영입, 6월 주니오르 바호스 영입, 가브리엘 등록 말소, 8월 린스 영입, 주니오르 바호스 등록 말소, 9월 빌리 영입, 윌슨 등록 말소.
오카 타이세이 활약 수비 개선, 윌슨 부진, 두두 회복 부진으로 득점력 부족. 린스 활약 득점력 개선, 역전패. 최종 라운드 센다이전 승리, 시미즈 승리로 J2 강등.
이시하라 카츠야 현역 은퇴.
2. 2. 7. J2 리그 (2018-2022)
2018년 시즌, 방포레 고후는 6시즌 만에 J2 리그에서 경쟁하게 되었다. 요시다 다쓰마 감독이 유임되었고, 오미야 아르디자의 감독이었던 이토 아키라가 헤드 코치로 초빙되었다. 이시하라 나오키, 쓰다 다쿠마, 호사카 가즈나리, 쓰치야 마사오 등 베테랑 선수들이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구로키 세이지는 V·파렌 나가사키로, 하바타키 아키히로는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했고, 아라사토 료는 주빌로 이와타로, 두두는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임대 이적했다.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고즈카 가즈키, 알비렉스 니가타 싱가포르에서 아키야마 다쿠야, 가시와 레이솔에서 유자와 마사토, 가타레 도야마에서 구보다 료, 쇼난 벨마레에서 지네이를 영입했고,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에서 가네조노 히데타카를 임대 영입했다. 주니오르 바호스와 재계약했다. 시즌 초반 부진으로 요시다 감독은 4월 30일에 해임되었고,[23] 우에노 노부히로가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J1 승격에는 실패했다. 리그전에서는 9위를 기록했지만, 르방컵과 천황배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시즌 종료 후 우에노 감독은 계약 만료로 퇴임했다.2019년 시즌에는 헤드 코치였던 이토 아키라가 감독으로 승진했고, 우치다 가즈오가 헤드 코치로 복귀했다. 아베 쇼헤이, 구보다 료, 세토 다카유키, 페푸진, 지에고, 린스가 팀을 떠났다. 다카노 료는 요코하마M으로 복귀했고, 시미즈 고헤이는 히로시마로 이적했다. 고즈카 가즈키와 시마카와 도시로는 오이타로, 아키야마 다쿠야는 도쿠시마로, 미치부치 료헤이는 센다이로, 호리코메 유키는 지바로 이적했다. 나카야마 리쿠, 미야자키 준마가 새로 입단했고, 두두가 임대에서 복귀, 가네조노 히데타카가 완전 이적했다. 도쿠시마에서 피터 우타카,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요코야 시게루, 가와사키F에서 다케오카 유토, 나고야에서 우치다 겐타, 가나자와에서 고야나기 다쓰시와 사토 고이치, YS요코하마에서 고토 교스케를 영입했고, 다나카 유사쿠와 재계약했다. 여름에는 아라노, 고이즈미 하야토가 임대로 합류했고, 고토 교스케, 주니오르 바호스, 이리마가와 게이타는 임대 이적했다. 시즌 초반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나, 여름에 주춤하며 플레이오프 진출권 밖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시즌 막판 10경기에서 6승 3무 1패를 기록하며 5위로 J1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 1회전에서 도쿠시마 보르티스와 1-1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대회 규정에 따라 패배하여 J1 승격이 좌절되었다. 마쓰하시 유와 오구라 쇼헤이가 은퇴했다. 천황배에서는 2년 연속 8강에 진출했다.
2020년 시즌, 이토 감독 체제 2년차에 시부야 히로키가 헤드 코치로 복귀했고, 우치다 가즈오는 코치로 배치 전환되었다. 마쓰하시 유, 오구라 쇼헤이, 에데르 리마, 요코야 시게루, 다케오카 유토, 사토 고이치, 다나카 유사쿠 등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고이데 유타와 사토 가즈히로는 오이타로, 피터 우타카와 소네다 조는 교토로, 유자와 마사토는 후쿠오카로, 모리 고타는 야마구치로 이적했다. 나카무라 료타로, 나카시오 다이키가 새로 입단했고, 바호스와 이리마가와 게이타가 임대에서 복귀했다. 고이즈미 하야토가 완전 이적했고, 요코하마M에서 이즈미사와 히토시, 오카야마에서 다케다 쇼헤이, 오미야 아르디자에서 야마다 리쿠를 임대 영입, 사가에서 후지타 유토, FC 도쿄에서 노자와 히데유키, 후쿠오카에서 마쓰다 리키, 피게이렌세 FC에서 라파엘을 영입했다. 코로나19 범유행으로 리그가 중단되었고, 하프너 마이크가 복귀했으며, 멘데스를 영입했다. 리그 재개 후, 강등이 없어지고 승격은 2팀으로 좁혀졌다. 천황배는 불참하게 되었다. 초과밀 일정 속에서 로테이션을 통해 젊은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늘렸지만, 리그 최다 무승부(17무)를 기록하며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21년 시즌, 이토 감독 체제 3년차에 U-15 감독이었던 오시바 가쓰토가 코치로 취임했고, 우치다 가즈오는 U-18 감독으로 취임했다. 윌리안 릴라, 파울루 바이아를 영입했다. 가네조노 히데타카, 후지타 유토, 하시즈메 유키, 이리마가와 게이타, 고토 교스케, 오카 다이세이, 하프너 마이크가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다케다 쇼헤이는 교토로, 이마즈 유타는 히로시마로, 오타 슈스케는 마치다로, 나카시오 다이키는 요코하마 FC로, 마쓰다 리키는 C오사카로, 우치다 겐타는 에히메로 이적했다. 스카이 히데히로, 나가세가와 모토키, 세키구치 마사히로, 노자와 리쿠, 도리우미 요시키가 새로 입단했고, 노즈다 다케토가 임대, 이즈미사와 히토시와 야마다 리쿠가 완전 이적했다. 오이타에서 미와 헤이지, 에히메에서 아리타 미쓰키, 시미즈에서 가나이 고지, 기후에서 기타다니 후미타카, 나가노에서 우라가미 히토키를 영입했다. 2020년 하계 올림픽으로 리그가 중단되었다. 나카야마 리쿠가 도야마로 임대 이적했고, 가나이 고지는 류큐로 이적했다. 다카사키 히로유키가 합류했다. 리그 종반에 승점을 쌓았지만, 최종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22년 시즌, 요시다 다쓰마가 감독으로 복귀했고, 오쓰카 신지가 헤드 코치, 나카가와 유지가 GK 코치로 취임했다. 이즈미사와 히토시, 멘데스, 노즈다 다케토, 나카무라 료타로, 아리타 미쓰키, 고야나기 다쓰시가 이적했고, 파울루 바이아는 임대 만료, 다카사키 히로유키는 은퇴했다. 이이지마 리쿠, 하야시다 고야, 야마우치 고타, 야마토 유키가 새로 입단했고, 마쓰모토 나기, 이시카와 슌키를 임대 영입, 나카야마 리쿠가 임대 복귀, 레나토 비스키, 브루노 파라이바를 영입했다. J1 승강 플레이오프가 부활했다. 리그에서는 개막전에서 오카야마에 1-4로 패배하는 등 부진했고, 7연패를 기록하는 등 18위로 시즌을 마쳤다. 아라이 료헤이와 계약을 해지했다.
천황배 JFA 제102회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환태평양대학교를 5-1로 꺾고, 삿포로, 도스, 후쿠오카를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가시마를 1-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 히로시마와 1-1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J2 팀으로는 2011년 FC 도쿄 이후 처음이자, J2 팀이 J1 팀을 꺾고 우승한 최초의 사례이다. 이 우승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및 FUJIFILM SUPER CUP 출전권을 획득했다. 리그 부진으로 요시다 감독은 퇴임했다.
2. 2. 8. J2 리그 & ACL (2023-2024)
2022년 천황배 우승으로 2023-24 AFC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다. J2 리그 팀이 ACL에 출전하는 것은 2011년의 FC 도쿄 이후 역사상 두 번째이며, 2부 리그 챔피언이 아닌 팀으로는 최초이다.[1]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멜버른 시티(호주), 부리람 유나이티드(태국), 저장 FC(중국)와 같은 조에 속하게 되었다.[24] 첫 경기인 멜버른 원정에서는 주전 선수들을 제외하고도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J2 팀 최초로 ACL 승점을 획득했다.[26] 홈에서 열린 부리람과의 경기에서는 하세가와 모토키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J2 클럽 최초의 ACL 승리를 기록했다.[30]

저장 FC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0-2로 패배했지만,[31] 홈에서는 4-1로 승리하며 조 1위로 올라섰다.[32] 멜버른과의 홈 경기에서는 3-3 무승부를 기록하며 선두를 유지했고,[33] 부리람과의 원정 경기에서 3-2로 승리하며 1위로 조별 리그를 통과, 2부 리그 팀으로는 최초로 ACL 16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었다.[34][35]
16강에서는 울산 현대 FC와 맞붙어 원정 1차전에서 0-3으로 패배하고,[36] 홈 2차전에서 1-2로 패배하며 합계 1-5로 탈락했다.[37]
3.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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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임기 |
---|---|
가쓰마타 스스무/勝俣 進일본어 | 1994년 ~ 1995년 |
쓰카다 유지/塚田 雄二일본어 | 1995년 ~ 1999년 |
가쓰마타 스스무/勝俣 進일본어 | 1999년 ~ 2000년 |
쓰카다 유지/塚田 雄二일본어 | 2000년 ~ 2001년 |
루이스 도스 레이스/Luis dos Reispt | 2001년 ~ 2002년 |
오키 다케시/大木 武일본어 | 2002년 ~ 2003년 |
마쓰나가 히데키/松永 英機일본어 | 2003년 ~ 2005년 |
오키 다케시/大木 武일본어 | 2005년 ~ 2008년 |
암마 다카요시/安間 貴義일본어 | 2008년 ~ 2010년 |
우치다 가즈오 | 2010년 ~ 2011년 |
미우라 도시야/三浦 俊也일본어 | 2011년 |
사쿠마 사토루/佐久間 悟일본어 | 2011년 |
조후쿠 히로시/城福 浩일본어 | 2012년 ~ 2015년 |
히구치 야스히로/樋口 靖洋일본어 | 2015년 |
사쿠마 사토루/佐久間 悟일본어 | 2015년 ~ 2016년 |
요시다 다쓰마/吉田 達磨일본어 | 2017년 ~ 2018년 |
우에노 노부히로/上野 展裕일본어 | 2018년 ~ 2019년 |
이토 아키라/伊藤 彰일본어 | 2019년 ~ 2022년 |
요시다 다쓰마/吉田 達磨일본어 | 2022년 ~ 2023년 |
시노다 요시유키 | 2023년 ~ |
4. 선수단
번호 | 포지션 | 이름 | 비고 |
---|---|---|---|
1 | GK | 가와타 고헤이 | |
3 | DF | 손태이 | |
4 | DF | 야마모토 히데오미 | |
6 | MF | 코바야시 이와나 | 부주장 |
7 | MF | 아라키 쇼 | 부주장 |
8 | MF | 타케토미 고스케 | |
9 | FW | 미쓰히라 가즈시 | |
10 | MF | 토리카이 요시키 | |
11 | FW | 마쿨라 | |
13 | FW | 무라카미 유키토 | |
14 | MF | 나카야마 리쿠 | |
15 | FW | 이이시마 리쿠 | |
16 | MF | 하야시다 고야 | |
18 | MF | 미사와 나오토 | |
19 | FW | 미야자키 줌마 | |
21 | MF | 레나투 아우구스투 | |
23 | DF | 세키구치 마사히로 | 주장 |
24 | DF | 이다 타카히로 | 교토 상가에서 임대 |
26 | MF | 사토 가즈히로 | |
29 | DF | 가미야 가이토 | |
30 | FW | 구마쿠라 고타츠 | 특별 지정 선수 |
31 | GK | 미야시타 가케루 | 2종 |
32 | GK | 고봉조 | 사간 도스에서 임대 |
33 | GK | 야마우치 고다이 | |
34 | MF | 기무라 타쿠토 |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임대 |
35 | DF | 이치노세 타이주 | 특별 지정 선수 |
40 | DF | 에두아르두 만차 | |
41 | MF | 이노우에 미키 | |
44 | FW | 나이토 야마토 | |
51 | MF | 아다일통 | |
88 | GK | 시부야 츠바사 | |
99 | FW | 피터 우타카 |
4. 1. 현재 선수
2024년 8월 21일 갱신.[2]번호 | 포지션 | 이름 | 국적 |
---|---|---|---|
1 | GK | 가와타 고헤이 | |
2 | MF | 시마카와 도시오 | |
3 | DF | 손태이 | |
4 | DF | 야마모토 히데오미 (주장) | |
5 | DF | 신자토 료 | |
6 | MF | 코바야시 이와나 (부주장) | |
7 | MF | 아라키 쇼 (부주장) | |
8 | MF | 아라이 료헤이 | |
9 | FW | 미쓰히라 가즈시 | |
10 | MF | 토리카이 요시키 | |
11 | MF | 호리고메 유키 | |
11 | FW | 마쿨라 | |
13 | FW | 가와모토 아키토 | |
13 | FW | 무라카미 유키토 | |
14 | MF | 다나카 유스케 | |
14 | MF | 나카야마 리쿠 | |
15 | MF | 효도 아키히로 | |
15 | FW | 이이시마 리쿠 | |
16 | DF | 마쓰하시 마사루 | |
16 | MF | 하야시다 고야 | |
17 | DF | 쓰다 다쿠마 | |
18 | MF | 미치부치 료헤이 | |
18 | MF | 미사와 나오토 | |
19 | MF | 와카스기 고키 | |
19 | FW | 미야자키 줌마 | |
20 | MF | 구로기 마사토 | |
21 | MF | 레나투 아우구스투 | |
22 | DF | 고이데 유타 | |
23 | GK | 오카 히로키 | |
23 | DF | 세키구치 마사히로 (주장) | |
24 | MF | 소네다 유타카 | |
24 | DF | 이다 타카히로 (교토 상가 FC에서 임대) | |
25 | FW | 모리 고타 | |
26 | DF | 구마가이 슌 | |
26 | MF | 사토 가즈히로 | |
27 | DF | 아베 쇼헤이 | |
28 | MF | 하시즈메 유키 | |
29 | DF | 가미야 가이토 | |
30 | MF | 호사카 가즈나리 | |
30 | FW | 구마쿠라 고타츠 (특별 지정 선수) | |
31 | GK | 오카니시 고스케 | |
31 | GK | 미야시타 가케루 (2종) | |
32 | GK | 고봉조 (사간 도스에서 임대) | |
33 | GK | 야마우치 고다이 | |
34 | MF | 기무라 타쿠토 (요코하마 F. 마리노스에서 임대) | |
35 | DF | 다카노 료 | |
35 | DF | 이치노세 타이주 (특별 지정 선수) | |
40 | MF | 오구라 쇼헤이 | |
40 | DF | 에두아르두 만차 | |
41 | DF | 쓰치야 유키오 | |
41 | MF | 이노우에 미키 | |
44 | FW | 나이토 야마토 | |
51 | MF | 아다일통 | |
88 | GK | 시부야 츠바사 | |
99 | FW | 피터 우타카 |
4. 2. 임대 중인 선수
현재 임대 중인 선수로는 테게바자로 미야자키로 임대된 엔도 히카루, FC 기후로 임대된 노자와 리쿠, 이와테 그루자 모리오카로 임대된 미즈노 하야타가 있다.5. 클럽 스태프
요네쿠라 칸타
히라이 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