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시는 일본 야마나시현 중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야마나시현의 상업 및 교통의 중심지이다. 고후 분지를 중심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온난 습윤 기후를 보이나 분지 지형의 영향으로 기온 차가 크다. 1519년 다케다 씨의 저택이 옮겨오면서 공식적으로 성립되었으며, 센고쿠 시대에는 다케다 신겐의 근거지였다.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 씨의 지배를 받았으며, 1889년 시로 승격되었다. 주요 산업으로는 식품 가공, 섬유, 수정 제품 생산이 있으며, JR 주오 본선과 미노부선이 지나간다. 주요 관광 명소로는 가이젠코지, 다케다 신사, 승선협 등이 있고, 전통 공예로는 보석 연마, 도장 조각, 인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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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시 - 사카오리 사카오리는 야마나시현 고후시에 위치한 지역으로, 고대 야마토타케루 전승지이자 고슈 가도와 오메 가도가 만나는 교통 요충지였으며, 현재는 교육기관과 FM 고후 방송국, 샤토 사카오리 와이너리 등이 있는 교육 중심지이다.
야마나시현의 도시 - 니라사키시 니라사키시는 야마나시현 북서부에 위치하며, 미나미알프스 국립공원과 인접하고 가마나시 강과 시오 강이 흐르는 평탄지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농업이 중심이며, 활발한 축구 문화와 미국 및 중국과의 자매 도시 관계를 맺고 있는, 1954년에 탄생한 도시이다.
야마나시현의 도시 - 야마나시시 야마나시시는 일본 야마나시현 중앙부 북동쪽, 고후 분지 북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포도, 복숭아 재배 중심의 농업과 관광 산업이 발달했고 후에후키가와 과수공원 등의 명소가 있는 온대 습윤 기후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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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시
지도
기본 정보
사카오리미야에서 본 경치, 가이젠코지, 가쿠에노 가을, 고후 성 해자, 다케다 신겐 축제, 고후 야경, 고후 모쓰니 조림, 고세 스포츠 스타디움
고후 분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형태로, 도쿄 도심에서 서쪽으로 135km 거리에 있어 간토 지방 남부와 관계가 깊고 수도권의 일부로 간주되기도 한다.
고후는 혼슈 중부 야마나시현 중북부에 위치한다. 야마나시현 북쪽의 나가노현과의 경계에서 남쪽 경계 부근까지 뻗어 있으며, 동서 방향으로는 좁다. 도시 면적의 4분의 3은 북쪽의 금봉산 일부이다. 도시 북부의 상당 부분은 지치부다마카이 국립공원 안에 있으며, 남쪽에서는 후지산이 보인다.
시역은 야마나시현 중앙을 남북으로 초승달 모양으로 종단하고 있으며, 야마나시현은 수도권정비법상 수도권에 속한다. 위치상 중부지방의 나고야보다 관동지방의 도쿄에 대한 지향성이 강하다.
쇼센쿄
고후시와 후지산이 보이는 고후 분지
2. 1. 지형
고후 분지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형태로 위치한다. 1939년(쇼와 14년) 한때 시내에 살았던 다자이 오사무는 저서 「신수의 말」에서 “실크햇을 거꾸로 뒤집어 그 모자 바닥에 아주 작은 깃발을 꽂은 것이 코후라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다”고 표현했다.[13]
시가지 중심부의 표고는 약 250m에서 300m이지만, 시역 전체의 표고차는 크다. 최저부는 시역 남부의 후에후키가와 부근의 표고 약 245m, 최고부는 시역 최북단, 나가노현가와카미촌과의 경계에 있는 긴포산의 표고 2,599m로 표고차가 2,350m에 달한다. 시역 북측의 대부분은 지치부다마카이 국립공원에 속하며, 기암과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알려진 미타케쇼센쿄(국의 특별명승)는 야마나시현을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https://www.gsi.go.jp/KOKUJYOHO/center.htm 국토지리원 지리정보]에 따르면 고후시의 동서남북 각 끝은 다음 위치에 있다.
북쪽 끝 ↑
인구 중심
서쪽 끝 ←
시청
동쪽 끝 →
↓ 남쪽 끝
북쪽 끝과 동쪽 끝은 다이시 峠 바로 근처, 남쪽 끝은 여자사카 峠 근처, 서쪽 끝은 카이시립 시키시마키타 소학교 북쪽에 있는 아라카와의 우안이다.
또한, [https://www.stat.go.jp/data/kokusei/topics/topi61.html 2010년 국세조사] 기준으로 한 인구 중심은 아이오이 3초메 부근에 있다.
; 주요 산
금봉산
구로후지
다치오카야마
야사부로다케
미즈가모리
오비나산
아이타쿠산
다이조쿄지산
; 주요 호수
치요다호(千代田湖)
노센호(能泉湖)
; 주요 연못
류케이케(竜ヶ池)
2. 2. 하천
후에후키 강
아라카와
곤가와 강
아이가와 강
다쿠가와
아시가와 강
2. 3. 기후
고후시는 고후 분지 중앙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형태로 위치하며, 중앙 고지대 기후를 보인다. 1939년에 다자이 오사무는 고후를 "실크햇을 거꾸로 뒤집어 그 모자 바닥에 아주 작은 깃발을 꽂은 것"이라고 묘사했다.[13]
고후는 온난 습윤 기후(''Cfa'')를 가지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해 있어 일본해 연안보다 강수량이 적다. 기온 차는 해안 지역보다 크다.
분지에 위치하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 그리고 하루 동안의 기온 차가 매우 심한 내륙성 기후를 보인다. 연간 강수량은 일본 내에서는 적은 편이다. 기후는 중앙고원식 기후로 분류되지만, 여름에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혹서를 기록하며, 자주 폭염을 경험하고 최고 기온이 뉴스에 보도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2013년8월 10일에는 최고 기온 40.7°C를 기록했다.[14] 그러나 2010년 이후로는 인근 고후시 가쓰누마(아메다스)의 기온이 더 높은 날이 증가하고 있다. 최저 기온도 표고에 비해 높은 편이며, 최근에는 열대야가 관측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겨울에는 주변의 높은 산맥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한랭기류의 유입을 막아 비교적 따뜻하다. 아침저녁으로는 복사냉각 현상의 영향으로 기온이 떨어지지만, 평균 최저 기온은 높다. 1921년1월 16일에 관측된 -19.5°C가 고후에서의 최저 기온이지만, 최근에는 지구온난화와 도시화에 따라 겨울철 최저 기온이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10°C 이하는 1986년 이후 관측되지 않고 있다. 낮에는 일조시간도 많기 때문에 비교적 기온이 올라 따뜻하며, 2월 평균 최고 기온은 오사카시보다 높다. 기본적으로 눈이 적지만, 드물게 남해 저기압에 의한 돌발적인 폭설이 발생하기도 하며, 2014년2월 15일에는 114cm의 폭설을 기록했다.
다음은 고후시 이이다(고후 지방 기상대, 표고 273m)의 기후 데이터이다(평균값: 1991년~2020년, 극값: 1894년~현재).[15][16]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연간
최고 기온 기록 (°C)
20.2°C
25.4°C
28.8°C
33.1°C
35.2°C
38.3°C
40.4°C
40.7°C
38°C
33.8°C
29.6°C
24.9°C
40.7°C
평균 최고 기온 (°C)
9.1°C
10.9°C
15°C
20.7°C
25.3°C
27.8°C
31.6°C
33°C
28.6°C
22.5°C
16.7°C
11.4°C
21°C
평균 기온 (°C)
3.1°C
4.7°C
8.6°C
14°C
18.8°C
22.3°C
26°C
27.1°C
23.2°C
17.1°C
10.8°C
5.4°C
15.1°C
평균 최저 기온 (°C)
-2.1°C
-0.7°C
3.1°C
8.4°C
13.7°C
18.3°C
22.3°C
23.3°C
19.4°C
13°C
5.9°C
0.3°C
10.4°C
최저 기온 기록 (°C)
-19.5°C
-17.2°C
-11.4°C
-4.6°C
-0.6°C
5.4°C
12.6°C
13.2°C
6°C
-1.8°C
-6°C
-11.7°C
-19.5°C
강수량 (mm)
42.7mm
44.1mm
86.2mm
79.5mm
85.4mm
113.4mm
148.8mm
133.1mm
178.7mm
158.5mm
52.7mm
37.6mm
1160.7mm
적설량 (cm)
9cm
11cm
1cm
0cm
0cm
0cm
0cm
0cm
0cm
0cm
0cm
1cm
23cm
상대 습도 (%)
55
52
55
57
62
69
72
70
71
71
67
60
64
강수 일수 (≥ 0.5 mm)
4.7
5.2
9.0
8.3
8.9
12.0
12.3
10.4
10.8
9.7
6.1
4.9
102.2
적설 일수
5.9
5.9
3.6
0.3
0.0
0.0
0.0
0.0
0.0
0.0
0.1
3.5
19.4
일조 시간
209.1
195.4
206.3
206.1
203.9
149.9
168.2
197.0
150.9
159.6
178.6
200.9
2225.8
3. 역사
고후는 도쿄 도심에서 서쪽으로 135km 거리에 있어 간토 지방 남부와의 관계가 깊고, 수도권의 일부로 간주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대 야마나시현에 상당하는 가이노쿠니에 고쿠후(国府일본어, 지방 정부)가 설치되면서 '가이 후추'(甲斐府中)라고 불렸으며, '고후'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나라 시대에는 가이국의 국분사(国分寺)가 현재 고후시에 세워져 당시 가이국의 지방 중심지가 근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헤이안 시대에는 미나모토 씨의 한 분파인 "가이겐지(甲斐源氏)"가 광대한 장원(荘園) 영지를 지배하며 기병(騎兵)으로 유명한 군사력을 발전시켰다.
에도 시대 동안, 가이 현은 도쿠가와 막부가 직접 통치하는 덴료(天領) 영토였으며, 고후 성(甲府城)이 행정 중심지로 남아 있었다. 1705년, 5대 쇼군의 총애를 받던 야나기사와 요시야스에게 특별한 영예로 가이 현이 하사되었다. 그는 11세기에 가이 현에 영지를 받았던 미나모토 씨(源氏)의 분파인 "가이-겐지"의 후손인 야나기사와씨의 일원이었다. 그의 아들 요시야스는 1724년 고리야마 성(郡山城)으로 이봉된 후, 고후 성은 다시 막부가 직접 관리하게 되었다.
센고쿠 시대에는 다케다씨의 본거지가 되었고, 다케다씨 멸망 후에는 도쿠가와씨나 도요토미 계다이묘아사노씨의 가이국 경영의 중심이 되어, 고쿠츄 지역이나 가이국의 정치적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에도 시대에는 에도의 서쪽 방어 요충지로 중요시되었고, 고슈 가도의 역참 마을로서도 번영했다.
3. 4. 근대
1519년다케다씨가 저택을 옮기면서 고후가 공식적으로 성립되었다. 센고쿠 시대에는 다케다 신겐의 근거지였다.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 종가의 근친인 신판 다이묘(오와리가, 스루가가, 고후가)와 쇼군 쓰나요시의 측근인 야나기사와 종가 2대의 지배를 받다가 폐번되어 에도 막부의 직할령(천령)이 되었다. 1705년, 5대 쇼군의 총애를 받던 야나기사와 요시야스(柳沢吉保)에게 특별한 영예로 가이 현이 하사되었다. 그는 11세기에 가이 현에 영지를 받았던 미나모토 씨(源氏)의 분파인 "가이-겐지"의 후손인 야나기사와 씨(柳沢氏)의 일원이었다. 그의 아들 요시야스는 1724년 고리야마 성(郡山城)으로 이봉된 후, 고후 성은 다시 막부가 직접 관리하게 되었다.
1907년에는 태풍으로 인한 폭우와 증기 기관차 연료용 목재 수요 증가로 인한 야마나시 현(山梨県)의 산림 벌채 가속화로 인해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발생하였다. 1907년 8월 23일부터 10월 10일까지 경찰관이 피해 지역을 조사하였는데, 츠카사 카사부로 마사키(塚司 笠二郎 正樹)의 순찰 일지에는 "이 폭우로 인해 하천이 범람하고, 산사태와 제방 붕괴, 교각 파괴 등이 발생하여 가옥과 마을이 파괴되고, 마을이 고립되며, 범람과 교통 두절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5] 이 홍수로 233명이 사망하고, 5757채의 가옥이 유실되었으며, 650헥타르의 토지가 매몰되거나 유실되었고, 3353건의 산사태가 발생하였으며, 약 140km의 제방이 붕괴되거나 손상되었다. 또한 도로가 유실되거나 매몰되는 등 피해 길이는 약 500km에 달했고, 전주 393개가 붕괴되는 등 야마나시 현 근대사 최대의 자연재해였다.[6]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1945년7월 6일 밤 미국 육군 항공대의 B-29 슈퍼포트리스 폭격기들에 의한 대규모 공습으로 도시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7] 이 공습으로 740명이 사망하고 1248명이 부상당했으며 시가지의 70%가 파괴되었다.
3. 5. 현대
1519년다케다씨가 저택을 옮기면서 고후가 공식적으로 성립되었다. 센고쿠 시대에는 다케다 신겐의 근거지였다.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 종가의 근친인 신판 다이묘(오와리가, 스루가가, 고후가)와 쇼군 쓰나요시의 측근인 야나기사와 종가 2대의 지배를 받다가 폐번되어 에도 막부의 직할령(천령)이 되었다. 1889년7월 1일에 고후 시가 성립하였고, 1945년7월 1일 고후 공습으로 740명이 사망하고 1248명이 부상당했으며 시가지의 70%가 파괴되었다.
1889년7월 1일,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적인 시정(市政) 제도가 확립되면서 고후 시가 선포되었다.
1907년에는 태풍으로 인한 폭우와 증기 기관차 연료용 목재 수요 증가로 야마나시 현의 산림 벌채가 가속화되면서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는 후지무라 현청의 성장하는 산업 정책의 결과였다. 1907년8월 23일부터 10월 10일까지 경찰관이 피해 지역을 조사한 결과, 233명이 사망하고, 5757채의 가옥이 유실되었으며, 650ha의 토지가 매몰되거나 유실되었고, 3353건의 산사태가 발생하였으며, 약 140km의 제방이 붕괴되거나 손상되었고, 도로가 유실되거나 매몰되는 등 피해 길이는 약 500km에 달했고, 전주 393개가 붕괴되었다. 이는 야마나시 현 근대사 최대의 자연재해였다.[5][6]
고후는 2000년4월 1일 일본의 특별시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2006년3월 1일, 인구 193,795명의 고후는 나카미치정(나카미치, 야마나시현)(히가시야쓰시로군, 야마나시현)과 가미쿠이시키촌(가미쿠이시키, 야마나시현)(니시야쓰시로군, 야마나시현)의 북부 지역을 합병하여 인구가 201,184명으로 증가했다.
2015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현청 소재지 중에서는 돗토리현돗토리시를 웃도는 46위의 인구를 기록하고 있다.
4. 행정
고후 시청
고후시는 시장과 시의회 의원 32명으로 구성된 단원제 시의회를 통해 시장-의회(mayor-council) 형태의 행정부를 직접 선출한다. 고후시는 야마나시현 의회에 9명의 의원을 파견한다. 국정에서는 일본 국회의 하원인 중의원 선거에서 야마나시 제1선거구와 야마나시 제2선거구로 나뉜다.
메이지 시대에는 초대 민선 시장으로 부임한 후지무라 시로(藤村紫朗)가 근대화 산업 정책과 병행하여 고후 시가지 개발을 진행하여, 칸교 세이토장(勧業製糸場)을 비롯한 "후지무라식 건축(藤村式建築)"이라 불리는 서양식 건축으로 통일된 여러 시설이 정비되었다.[19]
전후에는 시역에도 공업단지 조성이 진행되어, 고도 경제 성장기에는 기계 공업 도시로서도 발전하였다. 또한, 교통기관 정비에 따라 관광이 주요 산업이 되어, 자연과 역사적 자원 등 관광 자원에 주목한 마을 만들기를 실시하고 있다.
; 주요 사업장을 둔 제조업체
파이오니아 마이크로 테크놀로지
샤트레즈홀딩스
텐요다케다
액세스
5. 3. 3차 산업
야마나시현 고후시의 중심 시가지는 고후역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남쪽 출구의 마루노우치와 주오 지역에는 야마나시현청과 고후시청 등 행정 시설과 백화점, 오피스 빌딩, 상점가가 밀집해 있다.
과거에는 "고후 회관"이나 "오카지마 백화점"과 같은 오래된 점포들이 있었고, 1980년대에는 고후역 개선과 함께 "에크란"이 개업하고, "산코 백화점" 신축, "파세오" 개업, "가스가 몰" 정비 등 거품 경제의 영향으로 지가가 상승하며 중심부는 순조롭게 발전했다.
그러나 1990년대 거품 경제가 붕괴하면서 지가와 중심가의 매출이 급격히 하락했다. 교외에 쇼핑 센터들이 개업하면서 중심가의 고객을 빼앗아갔고, 상점가는 셔터 거리로 변했다. 1998년에는 "고후 세이부"가, 1999년에는 "다이에"에서 업태를 전환한 "토포스"가 폐점하는 등 쇠퇴가 이어졌다. 2000년에는 PHP 연구소가 발행하는 THE21의 "전국 지자체 랭킹"에서 최하위 평가를 받았다.
쇠퇴의 원인으로는 주차장 부족과 빨대화 현상이 지적된다. 중심가는 건물 밀집으로 주차 공간 확보가 어렵고, 대부분 유료 주차장이라 무료 주차가 가능한 교외 쇼핑센터에 밀렸다. 또한 도쿄와 가까워 주오 본선 특급열차(아즈사, 가이지)나 주오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단시간에 도쿄(특히 신주쿠)로 갈 수 있어, 도쿄로 쇼핑을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2014년 고후 바이패스변의 그랑파크가 폐쇄되었고, 2019년 9월에는 산코 백화점이 문을 닫았다. 중심부에 있던 고코리는 이온의 지원을 받았지만 2020년 11월에 이온이 철수했다. 2023년 2월에는 오카지마 백화점이 기존 점포를 폐쇄했다. 그러나 그랑파크 부지에는 2015년 10월 케즈덴키가, 산코 백화점 시설은 요도바시 카메라가 구매하여 요도바시 고후로 2022년 4월에 개점했으며, 오카지마 백화점도 2023년 3월부터 고코리에서 영업을 재개하는 등, 폐점 후 대체 시설이 들어서는 상황이다.
조선시대에는 甲州街道일본어의 역참 마을로서 에도와 교토를 잇는 내륙 간선 루트의 한 부분이었다. 또한, 후지산 남쪽 기슭에 해당하는 스루가국으로 가는 교통로로는 순주왕환(미노부가도, 가와치로), 나카미치 왕환, 와카히코로가 있었고, 시나노국으로 가는 길은 이웃한 니라사키시에서 사쿠 왕환·스와 왕환이 갈라져 나갔다.
6. 3. 버스
시스템이나 노선 등에 대해서는 각 운영 회사 및 고후역 버스터미널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산요교통(山梨交通) - 주로 고후 시내 및 그 주변을 향하는 노선을 운행한다.
후지큐 버스(富士急バス) - 후지요시다시 방면 외에, 카미쿠이이시키·나카미치 지역 커뮤니티 버스를 운행한다.[30]
주로 산간 지역 주민들을 위해 쇼핑이나 병원 진료를 위한 이동 편의를 제공하고자 커뮤니티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고후에서 가장 큰 축제는 신겐코 축제이다. 다케다 신겐의 업적을 기념하는 축제로, 매년 4월 첫째 또는 둘째 주말에 열린다. 축제는 사흘 동안 진행되며, 보통 유명한 일본 연예인이 다케다 신겐 역할을 맡는다. 다케다 신사와 고후성을 오가는 여러 행렬이 있는데, 이는 일본에서 가장 큰 공개 역사극이다. 2012년에는 참가자 1061명으로 "가장 많은 사무라이가 모인 행사"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었다.[11]
신겐코 축제
아마츠카사 마이
액막이 지장보살 대제
야마나시 영화제[36]
고후 사랑 축제
9. 3. 전통 공예
고후시의 전통 공예로는 보석 연마와 도장 조각, 인덴이 주를 이룬다. 특히 보석 산업은 고후의 반독점 산업이다. 수정 세공과 인덴은 경제산업성의 전통적 공예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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