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론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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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배론성지는 조선 순조 1년(1801)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찾는 성지이다. 지형이 배 밑바닥과 같아 '배론'으로 불리며, 황사영 백서가 쓰여진 토굴,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 터, 최양업 신부의 묘 등이 있다. 황사영은 신유박해 당시 이 곳에서 백서를 작성하여 천주교 재건을 호소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최양업 신부는 한국 천주교 전파에 기여했으며,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성립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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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론성지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제천 배론성지 |
한자 표기 | 堤川 舟論聖地 |
영어 표기 | Baeron Holy Ground |
위치 | 충청북도 제천시 배론성지길 296 (봉양읍) |
시대 | 조선 철종(1855) |
관리 | 재단법인천주교원주교구 |
참고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천주교 / 성당 |
수량 | 1곽 |
꼬리표 | 제천 구학리 |
문화재 지정 정보 | |
유형 | 기념물 |
번호 | 118 |
지정일 | 2001년 3월 2일 |
문화재청 | 23,01180000,33 |
이미지 정보 | |
![]() |
2. 배론성지의 역사
배론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 천주교 성지이다. '배론'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지형이 배 밑바닥과 같은 모양이라 해서 붙여졌다. 이곳에는 황사영이 '백서'를 썼던 토굴, 성 요셉 신학교,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다.[1]
황사영은 신유박해 당시 토굴에서 중국 베이징 주교에게 보내는 글을 썼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최양업 신부는 한국 천주교 전파에 큰 공헌을 하였다.[1]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성립 과정에서 중요한 성지이다.[1]
2. 1. 신유박해와 황사영 백서 사건
1801년 신유박해 당시 황사영은 배론성지의 토굴에서 중국 베이징 주교에게 보내는 백서를 작성하였다.[1] 백서에는 조선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1] 그러나 황사영은 백서를 전달하지 못하고 체포되어 처형되었다.[1] 황사영 백서 사건은 조선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2. 2. 성 요셉 신학교
배론성지는 조선 순조 1년(1801)에 있었던 신유박해 때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 천주교의 성지이다.[1] 이곳에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가 설립되었다.[1] 성 요셉 신학교는 성직자를 양성하는 곳이었다.[1]2. 3. 최양업 신부
조선 천주교 역사상 두 번째 신부는 최양업으로, 천주교 교리 번역 등 한국에 천주교가 전파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1]3. 배론성지의 주요 유적
배론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 성지이다. 주요 유적으로는 황사영이 백서를 썼던 황사영 토굴, 한국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 터,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다.[1]
3. 1. 황사영 토굴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배론성지의 토굴에 숨어 지냈다.[1] 황사영은 이 토굴에서 교회를 다시 일으키고 신앙의 자유를 얻고자 중국 베이징의 주교에게 보내는 글(황사영 백서)을 썼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1] '배론'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의 지형이 배 밑바닥과 같은 모양이라 붙여진 것이다.[1]3. 2. 성 요셉 신학교 터
성 요셉 신학교는 한국 최초의 신학교로, 성직자 양성을 위한 곳이었다.[1] 조선 천주교 역사에서 두 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 신부는 천주교 교리 번역 등 한국 천주교 전파에 큰 공헌을 하였다.[1]3. 3. 최양업 신부 묘
최양업 신부는 조선 천주교 사상 두 번째 신부로, 천주교 교리 번역 등 한국 천주교 전파에 큰 공헌을 하였다.[1] 최양업 신부의 묘는 배론성지 내에 있다.[1]관련 사건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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