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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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른의 전투는 1954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헝가리와 브라질의 경기이다. 헝가리는 혁신적인 전술을, 브라질은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경기를 펼쳤다. 경기는 폭우 속에서 진행되었고, 잦은 반칙과 퇴장으로 과열되었다. 4-2로 헝가리가 승리했지만, 경기 후 브라질 선수단과 헝가리 선수단 간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 경기는 심판과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며, 브라질은 다음 월드컵에서 펠레의 등장으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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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FIFA 월드컵 결승전은 1954년 7월 4일 스위스 베른에서 서독과 헝가리가 맞붙어 서독이 3-2로 승리하며 이변을 연출, 축구 역사상 중요한 경기로 기록되었다. - 1954년 FIFA 월드컵 - 1954년 FIFA 월드컵 결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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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FIFA 월드컵 예선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16개국을 가리기 위해 유럽, 남미, 북중미, 아시아 지역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대한민국이 사상 최초로 본선에 진출하고 유럽에서는 제비뽑기로 터키가 진출하는 등의 이변이 있었다.
베른의 전투 | |
---|---|
경기 정보 | |
대회 | 1954년 FIFA 월드컵 |
단계 | 8강 |
팀 1 | 헝가리 |
팀 1 득점 | 4 |
팀 2 | 브라질 |
팀 2 득점 | 2 |
날짜 | 1954년 6월 27일 |
경기장 | 방크도르프슈타디온 |
도시 | 베른 |
심판 | 아서 에리스 (잉글랜드) |
관중수 | 40000 |
기타 명칭 | |
헝가리어 | Berni csata (베르니 처터) |
포르투갈어 | Batalha de Berna (바탈랴 드 베르나) |
독일어 | Schlacht bei Bern (슐라흐트 바이 베른) |
프랑스어 | Bataille de Berne (바타유 드 베른) |
이탈리아어 | Battaglia di Berna (바탈리아 디 베르나) |
로망슈어 | Battaglia da Berna (바탈리아 다 베르나) |
일본어 | ベルンの戦い (베루은노 타타카이) |
2. 배경
1954년 FIFA 월드컵 8강전에서 브라질과 헝가리가 맞붙게 되었다.
1조에 속했던 브라질은 조별 리그에서 멕시코에 5-0 승리, 유고슬라비아와 1-1 무승부를 기록하며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조별 리그 두 경기에서 총 6골을 득점했다.
2조의 헝가리는 대한민국을 9-0, 서독을 8-3으로 꺾으며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헝가리는 조별 리그 두 경기에서 총 17골을 기록했다.
당시 대회 방식에 따라 각 조에서 같은 순위를 기록한 팀끼리 8강에서 대결하게 되어,[1] 1조 1위 브라질과 2조 1위 헝가리의 경기가 성사되었다.
2. 1. 헝가리의 혁신적인 전술
당시 헝가리는 혁신적인 전술과 선수 지도를 통해 유럽 축구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들의 유기적이고 탁 트인 축구 스타일, 혹은 유연하고 열린 스타일의 플레이는 당시 주류였던 맨마크 방식과 달리 상대 수비를 효과적으로 무너뜨리는 방식이었다. 이는 훗날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의 초기 형태 또는 원형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러한 강력함을 바탕으로 헝가리는 1952년 5월 소련에게 패배한 이후[1] 4년 가까이 A매치에서 무패 행진을 이어왔다.1954년 월드컵 조별 리그 2조에 속했던 헝가리는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1차전에서는 대한민국을 상대로 9-0 대승을 거두었고, 2차전에서는 서독을 8-3으로 꺾으며 여유있게 조 1위를 확정했다. 조별 리그 두 경기에서 총 17골을 기록하는 막강한 공격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서독과의 경기에서 팀의 에이스인 페렌츠 푸스카스가 부상을 당해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없게 되는 악재를 맞았다.
2. 2. 브라질의 공격 축구
브라질은 1954년 FIFA 월드컵 1조에 속해 조별 라운드 두 경기에서 총 6골을 기록했다. 당시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매력적이고 공격적인 축구 스타일을 선보이며 관중을 매료시키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1]브라질은 조별 리그 1차전에서 멕시코를 5-0으로 크게 이겼다. 이어진 2차전에서는 유고슬라비아와 맞붙어 연장전까지 치렀으나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유고슬라비아 역시 1차전에서 프랑스를 1-0으로 꺾어 브라질과 승점 3점으로 동률을 이루었지만, 최종적으로 브라질이 조 1위로 8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한편, 2조에서는 헝가리가 대한민국에 9-0, 서독에 8-3으로 압승하며 두 경기 만에 17골을 몰아넣는 막강한 화력을 과시했다. 헝가리는 당시 유럽 축구계에서 혁신적인 전술과 유기적인 플레이 스타일(토탈 풋볼의 초기 형태로 평가받기도 한다)을 바탕으로 약 4년간 A매치 무패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8강전에서는 각 조의 같은 순위 팀끼리 대결하는 방식에 따라, 혹은 무작위 추첨 결과[1] 조 1위로 진출한 브라질과 헝가리의 경기가 성사되었다.
3. 경기 진행
1954년 6월 27일, 스위스 베른의 방크도르프슈타디온에서 헝가리와 브라질의 1954년 FIFA 월드컵 8강전 경기가 열렸다. 약 6만 명[10](혹은 4만 명[8])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잉글랜드 출신의 아서 에드워드 엘리스 심판이 경기를 주관했다.
경기는 폭우 속에서 진행되어 선수들이 공을 다루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헝가리는 경기 시작 초반부터 기세를 올렸다. 전반 4분 히데그쿠티 난도르가 선제골을 기록했고, 불과 3분 뒤인 전반 7분에는 코치시 샨도르가 헤딩으로 추가 골을 넣어 순식간에 2-0으로 앞서 나갔다. 브라질은 전반 18분 자우마 산투스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한 골을 만회했고, 전반전은 헝가리가 2-1로 앞선 채 마무리되었다.
후반전에도 득점 공방이 이어졌다. 후반 15분(60분), 헝가리의 런토시 미하이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3-1로 다시 점수 차를 벌렸다. 그러나 5분 뒤인 후반 20분(65분), 브라질의 줄리뉴가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흔들며 3-2로 따라붙었다.
이후 경기는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후반 26분(71분) 양 팀 선수 간의 충돌 후 주먹다짐으로 번져 보지크 요제프와 니우통 산투스가 퇴장당했다. 경기 막판인 후반 34분(79분)에는 브라질의 움베르투 토치가 상대 선수를 발로 차 퇴장당했다. 수적 우위를 점한 헝가리는 후반 43분(88분), 코치시 샨도르가 헤딩으로 자신의 두 번째 골이자 팀의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경기는 결국 헝가리의 4-2 승리로 끝났으며, 총 42번의 프리킥과 2번의 페널티킥이 주어졌고, 3명의 선수가 퇴장당하는 등 매우 격렬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다.[11][2][8]
3. 1. 잦은 반칙과 퇴장
경기는 폭우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미끄러운 경기장 상태로 인해 선수들이 공을 다루기 어려웠다. 경기 시작 단 3분 만에 헝가리의 히데그쿠티 난도르가 선제골을 넣는 과정에서 브라질 수비수가 그의 유니폼 하의를 찢는 일이 발생하며 경기 과열의 빌미를 제공했다.[10] 4분 뒤에는 코치시 샨도르가 추가 골을 넣어 헝가리가 2-0으로 앞서 나갔다. 브라질은 전반 18분 자우마 산투스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2-1로 따라붙은 채 전반전을 마쳤다.후반전 들어 경기는 더욱 거칠어졌다. 후반 15분(60분), 헝가리의 런토시 미하이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3-1로 점수 차를 벌렸다. 이 판정에 항의하던 브라질 측 기자들과 축구협회 임원들이 경기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에 의해 쫓겨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경기는 노골적인 반칙과 신경전으로 얼룩졌다. 후반 20분(65분) 브라질의 줄리뉴가 중거리 슛으로 한 골을 만회하며 3-2로 추격했다. 그러나 곧이어 헝가리의 보지크 요제프와 브라질의 니우통 산투스가 서로에게 거친 파울을 주고받은 뒤 주먹다짐까지 벌여 결국 두 선수 모두 퇴장당했다. 경기 막판으로 갈수록 폭력적인 상황은 계속되었고, 후반 34분(79분)에는 브라질의 움베르투 토치가 헝가리의 로란트 줄러를 발로 걷어차 퇴장당했다. 경기 종료 직전인 후반 43분(88분), 헝가리의 코치시 샨도르가 헤딩으로 쐐기 골을 넣어 최종 스코어는 4-2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는 총 42번의 프리킥과 2번의 페널티킥이 주어졌으며, 4명의 선수가 경고를 받고 3명의 선수가 퇴장당하는 등 매우 거친 양상을 보였다.[11][2][8]
경기가 끝난 후에도 양 팀의 감정싸움은 계속되었다. 브라질 선수단이 헝가리 선수단의 라커룸에 난입하여 난투극을 벌이는 사태까지 발생했다.[10] 양 팀 모두 폭력 사태에 대한 증언과 증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FIFA는 이 사건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3. 2. 경기 후 난투극
경기가 종료된 이후에도 양 팀 간의 험악한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경기장 밖으로 나오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핀헤이류가 헝가리 관중석 쪽에서 날아온 병에 맞아 쓰러지자, 격분한 브라질 선수단이 헝가리 선수단의 라커룸에 난입하여 난투극을 벌였다.[10] 일부 소스에 따르면, 브라질 선수들은 악명 높은 헝가리 국가보호국(AVH) 보안 경찰에 의해 곤봉과 총으로 제지당하며 쫓겨났다고도 한다. 이 난투극에는 선수뿐 아니라 팬, 관계자들까지 휘말렸으며, 결국 경찰이 투입되어 가까스로 진정되었다.[13]양 팀 모두 상대방의 폭력적인 행동을 증명할 증인과 증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FIFA는 이 사건에 대해 어떠한 공식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10]
경기의 주심을 맡았던 아서 에드워드 엘리스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내가 심판을 본 경기 중 가장 이색적이었다. 그들이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마치 동물처럼 행동했다. 수치스럽다. 끔찍한 경기였다. 오늘의 우중충한 날씨가 선수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 퇴장을 유발시켜 경기를 망쳤다."[12] 라며 강한 실망감을 표출했다.
1954년 6월 28일, 현장에 있었던 타임스의 특파원 역시 "그들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던 마치 낫으로 상대 선수의 다리를 자르려는 듯한 과격한 태클을 선보였고, 심판이 보지 못하는 사이 위협적인 태도와 교묘한 반칙을 수시로 연출했다."고 보도하며 비슷한 견해를 보였다.
당시 난투극으로 얼굴에 4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었던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 셰베시 구스타브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잔인하고 흉포한 경기였다. 마치 전쟁과도 같았다. 우리는 4-2로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경기 후 브라질의 사진 작가들과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해 결국 경찰이 투입되면서 가까스로 진정되었다. 선수들은 경기 후 통로를 빠져나가면서 서로 충돌했으며, 라커룸에서 난투극을 벌여 선수와 팬, 관계자들이 모두 말려들었다."[13]
4. 경기 후 평가 및 영향
경기의 주심을 맡은 아서 에드워드 엘리스는 경기를 "내가 심판을 본 경기 중 가장 이색적이었다",[12] "끔찍한 경기였다"고 평가하며 선수들이 "마치 동물처럼 행동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12][3][9] 그는 "정치와 종교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짐승처럼 행동했습니다. 부끄러운 경기였어요. 끔찍했습니다."라고 덧붙이며, "내 생각은 경기를 어떻게든 끝내야겠다는 것뿐이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3] 또한 남아메리카 선수들의 기질에 대해 언급하며 스포츠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4]
1954년 6월 28일자 ''타임스''의 특파원 역시 "내 평생 그렇게 잔혹한 태클, 낫으로 베는 듯한 상대 선수의 반칙, 그리고 심판이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의 위협적인 태도와 교묘한 잽을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보도하며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5] 데일리 메일은 엘리스의 심판 능력과 신사적인 행동을 칭찬했다.[5]
당시 헝가리 감독이었던 셰베시 구스타브는 "잔인하고 흉포한 경기였다. 마치 전쟁과도 같았다"고 회고했다.[13][6] 그는 경기 후 브라질 사진 작가들과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하고 선수들 간 충돌과 라커룸 난투극까지 벌어져 경찰이 투입되었다고 증언했다. 이 과정에서 셰베시 감독 본인도 얼굴에 네 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13][6] 이러한 경기 양상에 대한 헝가리 대표팀의 항의로 인해, 6월 27일로 예정되었던 준결승 대진 추첨이 지연되기도 했다.[7]
헝가리는 이어진 준결승에서 월드컵 무패 행진을 이어가던 우루과이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에서는 조별 리그에서 8-3으로 대파했던 서독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브라질은 마라카낭의 비극의 아픔을 씻고자 했으나 또다시 불미스러운 경기로 기억되었지만, 4년 후 1958년 FIFA 월드컵에서 펠레의 등장과 함께 첫 우승을 차지하며 황금기를 열었다.
참조
[1]
뉴스
Aujourd'hui commence le tour final de la Coupe du Monde de football
https://www.e-newspa[...]
1954-06-16
[2]
웹사이트
Hungary vs Brazil: World CUP 1954 Quarter Final
https://web.archive.[...]
ScoreShelf.com
2012-10-11
[3]
웹사이트
Football: Ellis a knockout during the Battle of Berne – Sport
https://www.independ[...]
1998-06-09
[4]
문서
Downing
[5]
웹사이트
Gerd von der Lippe
https://web.archive.[...]
2011-02-12
[6]
웹사이트
Brazil swap beauty for brutality in 'Battle of Berne' – Sport – Mail & Guardian Online
http://www.mg.co.za/[...]
Mg.co.za
2006-05-03
[7]
간행물
Tirage au sort des demi-finales
https://www.e-newspa[...]
1954-06-28
[8]
웹사이트
Hungary vs Brazil: World CUP 1954 Quarter Final
https://web.archive.[...]
ScoreShelf.com
2012-10-11
[9]
웹사이트
Football: Ellis a knockout during the Battle of Berne – Sport
https://www.independ[...]
The Independent
1998-06-09
[10]
뉴스
1954년 `베른의 전투'
http://sports.news.n[...]
연합뉴스
2002-04-02
[11]
문서
카드 제도([[옐로카드]], [[레드카드]])는 [[1970년 FIFA 월드컵]] 때부터 도입되었기 때문에 그게 적용되기 이전이었던 당시에는 구두로써 경고나 퇴장을 명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2]
웹인용
Football: Ellis a knockout during the Battle of Berne - Sport
http://www.independe[...]
The Independent
2011-02-12
[13]
웹인용
Brazil swap beauty for brutality in 'Battle of Berne' - Sport - Mail & Guardian Online
http://www.mg.co.za/[...]
Mg.co.za
201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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