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보충육군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보충육군은 제3제국 시대 각 독일 군관구에서 창설되어 징병, 인원 모집, 훈련 및 보충, 신규 군사 장비 시험, 휴가 중인 병사 관리 등의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1944년 7·20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당시 쿠데타에 이용될 뻔했으며, 사령관 프리드리히 프롬은 육군 조달 및 생산을 통제하며 독일 내 모든 육군 부대를 지휘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실패 이후, 하인리히 히믈러가 보충육군의 통제권을 인수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독일의 부대 및 편성 - 충격보병
    충격보병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참호전을 돌파하기 위해 독일군이 개발한 특수 부대로, 수류탄과 중화기를 활용한 침투 전술을 통해 참호 돌파를 시도했다.
  • 독일 국방군의 부대 및 편성 - 동부군 (독일 국방군)
    동부군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국방군이 동부 전선 등에서 운용한 군사 조직으로, 소련 점령지 출신 병력으로 편성된 동부대대를 활용하여 병력 부족을 메웠으나, 종전 후 소속 병사들의 처벌과 그 활동에 대한 논란이 있다.
  • 독일 국방군의 부대 및 편성 - 브란덴부르거즈
    브란덴부르거즈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국방군 정보국이 운용한 특수부대로, 사보타주, 게릴라 전술 훈련을 받은 소규모 부대로 구성되어 적 후방에서 작전을 수행했으며, 이후 보병 사단으로 재편되어 전투를 치렀다.
보충육군
개요
명칭보충 육군
원어 명칭Ersatzheer (독일어)
역사
창설제1차 세계 대전 이전
해체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역할
주 역할병력 보충 및 훈련
추가 역할독일 본토 방어
전시 역할점령지 치안 유지
조직
지휘 체계육군 최고 사령부 (OKH) 직속
주요 부서보충 부대 (Ersatztruppen)
훈련 부대 (Ausbildungstruppen)
예비 부대 (Reservetruppen)
지휘관
주요 지휘관프리드리히 프롬
하인리히 힘러
특징
병력 규모전시에는 상당한 규모의 병력을 보유함.
주요 임무전선에 투입될 병력의 훈련 및 보충을 담당함.
전시 상황본토 방어 및 점령지 치안 유지에도 참여함.

2. 제3제국

각 독일 군관구(Wehrkreise)에서 창설되었으며, 징병, 인원 모집, 훈련 및 보충, 신규 군사 장비 시험, 그리고 휴가 중인 병사 관리를 포함한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2]

''보충 육군''(Ersatzheer)은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고 SS 부대를 체포하며, 1944년 초 새로 임명된 참모장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주도한 조직을 통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실패한 7·20 음모의 일환으로 발키리 작전의 비상 계획이 의도적으로 악용되었다. 사령관인 ''상급대장'' 프리드리히 프롬은 육군의 조달 및 생산을 통제하고 독일 내 모든 육군 부대를 지휘하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 국가를 통제할 만큼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3] 프롬은 이전 쿠데타인 스파크 작전에는 협조를 거부했지만, 1944년의 계획자들은 여전히 보충 육군을 이용하려 했다. 하인리히 히믈러는 또 다른 암살 시도에 이용될 가능성 때문에 직접 보충 육군에 대한 통제권을 인수했다.[4]

3. 목적

전시 상황에서 국내 예비군의 주요 목적은 병사 훈련, 신기술 기반 신병기 시험 및 도입이었다. 조직으로서 육군의 각종 병과의 병감부, 병사 훈련부, 장교 교육부를 거느렸다. 일반 육군국(Allgemeine Heeresamt), 육군 병기국(Heereswaffenamt), 육군 주계국(Heeresverwaltungsamt), 육군 인사국(Heerespersonalamt, 1944년)을 예하에 두었다.

육군 사단은 모두 근거지에 연대 규모 훈련 부대를 두고, 기초 훈련 종료 후 전선으로 병력을 보냈다.

또한, 국내 예비군은 휴가 중인 귀향병, 육군 병원 치료 중인 상병병, 본국 재편성 중인 육군 부대를 통괄했다. 이들 병사는 전선 원대 복귀 전까지 국내 예비군 예하에 속했다.

4. 대전 말기의 국내 예비군

''보충 육군''(Ersatzheer)은 1941년부터 1943년까지 20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했으나, 전쟁 말기에는 대부분을 전선으로 보내 감소 추세를 겪었다.[4] 각 군관구(Wehrkreise)에서 징병, 인원 모집, 훈련 및 보충, 신규 군사 장비 시험, 휴가 중인 병사 관리를 포함한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2]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서 보충 육군은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4]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가 주도한 조직을 통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으나 실패했다.[3] 발키리 작전의 비상 계획이 의도적으로 악용되었으며, 국내 예비군 전 병사는 출동 준비를 완료하고 히틀러 정권의 중추 기관을 점거할 예정이었다.[3]

프리드리히 프롬 상급대장은 육군의 조달 및 생산을 통제하고 독일 내 모든 육군 부대를 지휘하여 독일 국가를 통제할 만큼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3] 프롬은 이전 쿠데타인 스파크 작전에는 협조를 거부했지만, 1944년 계획자들은 여전히 보충 육군을 이용하려 했다.[3]

암살 계획이 미수에 그친 후, 프리드리히 프롬은 소극적 관여 혐의로 처형당했다.[4] 하인리히 히믈러는 또 다른 암살 시도에 이용될 가능성 때문에 직접 보충 육군에 대한 통제권을 인수했다.[4] 히틀러는 육군 군인을 신뢰하지 않고, 친위대 전국지도자 하인리히 힘러를 후임으로 임명했다(실무는 한스 쥐트너 친위대 대장이 대행).[4]

5. 지휘부

; 사령관


  • 보병대장 요아힘 폰 슈튈프나겔: 1939년 8월 26일-1939년 8월 31일
  • 상급대장 프리드리히 프롬: 1939년 9월 1일-1944년 7월 20일
  • SS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히믈러: 1944년 7월 20일-1945년 5월 8일


; 참모장

  • SS상급집단지도자 한스 위트너

;지휘관

순서계급성명재임 기간비고
1보병대장요아힘 폰 슈튈프나겔/Joachim von Stülpnagelde1939년 8월 26일 ~ 1939년 8월 31일
2상급대장프리드리히 프롬1939년 9월 1일 ~ 1944년 7월 20일
3친위대 전국지도자하인리히 히믈러1944년 7월 21일 ~ 1945년 4월 29일



;참모장

순서계급성명재임 기간비고
1SS-상급집단지도자한스 율트너1944년 7월 21일 ~ 1945년 4월 29일


5. 1. 사령관


  • 보병대장 요아힘 폰 슈튈프나겔: 1939년 8월 26일-1939년 8월 31일
  • 상급대장 프리드리히 프롬: 1939년 9월 1일-1944년 7월 20일
  • SS국가지도자 하인리히 히믈러: 1944년 7월 20일-1945년 5월 8일


참모장은 SS상급집단지도자 한스 위트너, 혹은 한스 율트너이다.

5. 2. 참모장

SS상급집단지도자 한스 위트너가 보충육군의 참모장을 역임했다.

참조

[1] 서적 Germany at War: 400 Years of Military History [4 volumes]: 400 Years of Military History https://books.google[...] ABC-CLIO 2014-10-28
[2] 서적 Beyond the Beachhead: The 29th Infantry Division in Normandy https://books.google[...] Stackpole Books 2005
[3] 서적 Moscow To Stalingrad: Decision In The East http://www.ibiblio.o[...] U.S. Army Center of Military History
[4] 서적 US Infantryman vs German Infantryman: European Theater of Operations 1944 https://books.google[...] Bloomsbury Publishing 2016-01-20
[5] 문서 한국어로 번역될 때에는 보충육군, 보충군, 훈련군, 예비군 등의 다양한 용어로 표기된다.
[6] 문서 보충군은 신병 훈련 및 전방에 대한 인력 보충을 담당한 후방 지역 조직이고, 예비군은 현역에서 예비역으로 편입된 인력으로 구성된 전투 수행 조직이다.
[7] 문서 신무기 실험은 새로 개발된 무기, 장비를 편제하여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통해 적합성 여부를 시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8] 문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육군 규모는 다음과 같다. 1939년 개전 당시 야전군 274만, 보충군 99만 명. 1941년 시점 야전군 380만 명, 보충군 120만 명. 1944년 야전군 400만 명, 보충군 251만 명. 종전 시점인 1945년 야전군 380만 명, 보충군 150만 명.
[9] 문서 독일 후방 각지에 편성되어 있던 보충군 전력으로 베를린을 비롯한 각 지역의 친위대 및 비밀경찰, 통신관계 기관을 장악하려 하였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